새벽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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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개방을 버렸지 않느냐?”
“개방!”
무림을 대표하는 두 개의 단체인 정무맹과 협의맹. 그 안에 하층민의 집단인 하오문이 없었듯이 거지들의 모임인 개방도 없었다. 하오문은 애초에 등장하기 전이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개방은 아니었다. 실제로 존재했던 거대 방파를 상승 무공이 없다는 이유로 두 무림 세력에서 모두 제외해 버린 것이다. 이후 개방은 구심점 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조직의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변변한 무공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 거지는 그저 거지로 남아 버렸다. 하오문은 흑패와 기루를 비롯한 시전의 뒷골목 외에도 다리 아래 거적을 두르고 움막에 거주하는 거지들까지 포용한 것이다. 지금 하오문은 개방의 세력을 다시 일으키고 있었다. 과거 용두방주의 진신절학이라는 옥화타구봉법과 강룡십팔장도 모두 하오문이 소유하고 있었기에 개방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해도 아무도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설마 내가 한 지역에서만 문을 일으켰겠느냐? 누군가는 굶어 죽는 거지들을 보살펴야 할 터. 하오문은 중원 전역에서 고아들을 거두고 하층민의 삶을 보살피고 있다. 하오문은 중원 전역에 뿌리를 내렸다!!”
하오문이 거지들을 거두고 다시 개방을 일으키는 데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쪽수에서 밀리지만 않으면 뭐든 다 해먹을 수 있거든.’
과거 개방이 자금력이 없음에도 무림의 중요 세력을 차지한 이유가 바로 엄청난 숫자 때문이었다. 혹자는 개방의 무공이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으나, 무공으로 따지자면 얼마든지 비등한 문파가 즐비했다. 개방의 힘은 중원 전역에 퍼진 방도에게 있었던 것이지 무공의 고절함으로 인해 무림의 한축을 차지한 것이 아니었다. 중원 전역에 퍼진 방도로부터 전해지는 수많은 정보, 그 정보를 다시 가공하여 쓸모 있는 정보로 만들어 내고 또 이 체계를 유지하는 일 등. 개방도는 숫자에 기반한 정보력과 이를 유지할 체계 또한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자금은 필요하지 않았다. 개방은 오로지 의(義)와 무소유(無所有)라는 허울로 방도들을 공짜로 부려왔기 때문이다. 애초에 거지에게 재물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정당한 대가까지 지불할 것이니···. 이들이 어찌 하오문을 따르지 않겠는가.’
호충은 황금석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다시 예의를 갖췄다.
“제가 돈에 눈이 어두운 것은 많은 하오문의 문도들을 먹여 살려야하기 때문입니다. 황금에 눈이 먼 금충(金蟲)이라 부르신다고 해도 기꺼이 수용하겠습니다. 문도들을 위해 먹는 욕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돈을 벌어야 이 많은 문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자는 진정···.’
황금석은 그제야 하오문주의 속을 전부 볼 수 있었다. 아니, 본다고 착각했다.
‘···대인(大人)이로다.’
“송 문주···.”
“제가 괜한 말씀을 드렸나 봅니다.”
호충은 얼른 일을 수습하고자 했다.
“왕 방주! 무림맹이 충분한 성의를 표했으니, 저들을 놓아줘라.”
“예! 문주님! 얘들아 도둑들을 내 쫓으라신다!”
““예! 방주님.””
무림맹의 인사들은 저마다 서로를 부축하며 떠나갔고, 허름한 객잔엔 상단주들과 장주들이 남았다. 황금전장의 황금석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충은 얼른 이들도 내보내고 싶었다.
“···장주님. 혹시 다른 볼일이 있으십니까?”
“거지는 나랏님도 구하지 못한다 하였소. 어찌 일개 단체에서 거지들을 돌보시오?”
큰 뜻을 가진 것은 좋지만, 이로 인해 하오문이 실패를 겪을까 걱정한 것이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나라가 하지 못한다면 할 수 있는 이가 나서야지요.”
“하오문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소.”
호충은 황금전장을 가진 황금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큭. 황 장주님. 거지가 왜 거지가 되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야···.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했기 때문이오.”
“아닙니다. 거지들은 거지가 되어야 했기에 거지가 된 것입니다.”
“······.”
이해할 수 없다는 황금석의 표정을 잃은 호충이 비슷한 말을 다시 보탰다.
“거지는 거지가 될 수밖에 없었기에 거지가 되었습니다.”
“······.”
조금 전과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휴우. 간단하게 다시 말씀드리자면···. 여기 있는 상단주님들과 장주들이 그들의 가능성을 모조리 빼앗은 것이지요.”
“!”
“부자 하나는 백(百)인, 천(千)인의 거지를 만드는 법입니다.”
“우, 우리는 그런 적이 없···.”
“없긴 왜 없습니까? 상단에서 물건을 비싸게 받을수록 손님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손님들은 다른 이들에게 돈을 수급할 수밖에 없지요. 맨 마지막에 가서는 강탈당하듯 재산을 빼앗기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관계가 거지들까지 이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하십니까? 결론은 결국 같습니다. 부(富)를 누리는 한 사람을 위해 수많은 이가 가난의 고통에 허덕여야한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
황금석이 관심도 갖지 않았던 일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이득이 생겼다면 당연히 누군가는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하오문주의 말대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돈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큰 손해를 입어 거지가 된 이도 있을 수 있었다.
아니, 있었다.
‘···많았지. 내게 가옥과 토지를 저당 잡히고 길거리에 나앉은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물론 상행위와 같은 평범한 일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개인의 오판으로 사업을 하다가 가산을 탕진한 이도 있을 것이고, 관부와 얽혀 도망자 신세가 된 이도 있겠지요. 무림과 얽혀 부모를 잃은 이도 있을 것이고, 산적이나 수적을 만나 목숨만 건진 이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자신들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황금석은 애써 지금까지 자신이 한 일을 외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거지도 저마다 거지가 된 이유가 있을 것이야. 우리 탓만은 아니지!”
“하지만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산처럼 높은 재산을 쌓아두고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들에게 있음입니다. 큰 성공을 이룬 거상과 장주들이 하층민에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많은 이들을 구원했을 것인데···. 많은 재산을 얻은 상단주와 장주들은 지금까지 어찌 살았습니까? 거대하고 화려한 장원에서 가장 좋은 옷을 찾아 입고, 맛있는 고급 음식을 먹으며 못사는 이들을 깔보지 않았습니까? 이 모습은 양민들에게 오로지 부(富)가 전부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릇된 관념은 결국은 그대들이 심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도 아니라고 해보십시오.”
“······.”
‘이건···. 옳다. 전부 옳은 말이야.’
사람을 속이고 재물을 챙기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이의 행동이라며 정당성을 부여했고,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무시하고 높은 관직에 오른 이들을 대우하며 양민들과 보이지 않는 거리감을 만들어 두었다. 자신을 향해 보내는 부러움 가득한 눈길은 언제나 어깨를 우쭐거리게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내가, 우리 모두가 오래전부터 이러한 인식을 만들어왔음이로다.’
“가장 큰 문제를 꼽자면, 수를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거지를 양산하는 사회 구조부터가 문제겠지만, 나라의 일은 제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하층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하오문이 얻은 부를 나눌 것입니다. 이러한 제 생각이 그르다 하고 싶으십니까? 최소한 저 하나라도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 것입니다.”
“······내가 제대로 한 방 맞았군.”
‘내가 나이를 헛먹었구나.’
아직 젊어 보이는 일문의 문주는 높은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는데, 자신은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재물 속에 파묻혀 지내고 있었다. 너무나 부끄러워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군소리가 길어졌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고 경매가 행하는 날에 다시 뵙지요.”
“···또 오겠소. 송 문주. 문주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구려.”
“······.”
호충에겐 귀찮기만 한 일이지만, 하오문이 경매에서 상단과 전장에 얻을 협조를 생각하면 거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든 환영입니다. 장주님.”
“다들 이만 돌아가세.”
다들 조용히 객잔을 빠져나가는데, 삼도상단의 성도(成都) 지부장은 호충을 약해 보일 듯 말듯 고개를 숙이고 얼른 상단주 일행에 합류했다.
호충은 마지막 손님들까지 보내고 나서야 왕호를 비롯한 문도들의 눈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들의 눈에서 일어난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를 정도로 뜨거운 눈빛이었다. 이들도 황금석과 문주의 대화를 모조리 듣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왜?!”
왕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주먹 쥔 손을 심장 어림에 가져갔다.
“···문주님. 앞으로 문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명을 다 바칠 것이옵니다. 충!”
흑림방에 소속된 여명단과 황혼단이 모두 왕호처럼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복창했다.
““충!””
“······이것들이 장난하나. 그럼 내 말대로 안 할 생각이었어? 얼른 주변 정리하고 잠이나 퍼질러 자!”
호충은 얼른 별채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쾅.
왕호는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황혼단주 위지승도 기쁜 얼굴로 얼른 왕호 곁에 섰다.
“우리가 문주님은 참 잘 만났어. 그렇지? 위 단주?”
“황왕 그 녀석에게 술이라도 한 번 더 사야겠습니다. 녀석 아니었으면 어디서 저런 분을 또 만나겠습니까.”
위지승은 문주를 흑패의 본거지로 데려온 황왕을 떠올렸다. 녀석 덕분에 하오문에 들어와 고강한 무공을 익힐 수 있었고, 존경하는 문주까지 모실 수 있었다.
“못 만나지. 암. 누가 저렇게 큰 뜻을 품고 또 펼칠 수 있을까···.”
왕호는 상념을 거두고 남은 일을 떠올렸다.
“곧 경매가 시작될 것이다. 오늘 가장 큰 문제는 해결 했지만, 자잘한 문제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수 있음이다.”
“비급 경매는 차질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루방과 의약방에 확실히 준비해달라고 하지.”
루방은 기루연합을 일컬었고 의약방은 이번에 신설된 영단을 생산하는 이들의 방이었다.
무림맹이 세워질 이곳 사천(四川)의 성도(成都)에도 루방의 지부가 존재했다. 또한 의약방은 경매장에서 무림에 선보일 영단을 준비해야 했다.
“두 방과 긴밀하게 협조하겠습니다.”
“특히 의약방의 영단은 경매 당일까지 기밀을 유지해야 한다. 마교의 귀에 들어가면 큰일이야.”
“유념하겠습니다.”
마교의 대대적인 행사가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었기에 비급과 함께 영단까지 배포해야 했음이다. 그래야 중원 무림의 전력을 빠른 시일 내에 끌어올릴 수 있을 터였다. 물론 황혼단이 섭취한 영단에도 미치지 못하는 하급 영단일 것이나, 지금의 무림인들에게는 천고의 영단으로 느껴질 수준이었다.
“경매가 끝나고 나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영단이 존재한다는 것이 마교의 귀에 들어가면 이번과 같이 쉽게 끝나진 않을 일이다. 마교의 숨겨진 마공은 현 무림과 비교하기 어려울 지경이기 때문이다.
“루방에서 이곳 성도(成都)에 들어온 이방인을 골라낼 것이야.”
루방이 맡은 임무가 상당했다. 마교의 첩자들을 골라내는 일은 루방이 맡은 가장 큰 임무였다.
‘이들만 제대로 걸러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직 무림맹 대회합까지 시일이 남았으니, 더 확실히 챙겨야겠어.’
왕호는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끝내야 다음을 준비할 수 있음을 깨닫고 얼른 위지승에 지시했다.
“우선 주변 정리부터 끝내자. 그래야 단원들이 조금이라도 잠을···.”
꼬끼오~~.
“···새벽닭입니다. 무림맹 놈들이 조금 늦게 오긴 했지요. 썩을 놈들. 좀 일찍 올 것이지.”
“썅. 오늘 잠은 다 잤네.”
곧 해가 모습을 드러낼 시간이었다.
“단원들 모두 영단을 취했습니다. 녀석들은 운기하면 피곤이 가실 겁니다. 괜찮습니다.”
“돌아가면서 쉬라고 해. 일만 붙들고 있다가 병나면 그게 더 손해다.”
“예. 방주님. 방주님도 쉬엄쉬엄 하시지요. 오늘 크게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위 단주의 말을 명심하지.”
왕호는 말만 그렇게 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자신의 주군은 언제나 문도들을 향해 마음을 쓰고 있으니,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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