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대회합
***
“이게 대체 무슨···.”
호중은 패잔병의 몰골로 돌아온 무림의 인사들을 맞이하며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형님!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묻지 마라. 우선 다친 이들을 돌보는 것이 순서다.”
팔다리가 부러진 이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호중의 눈엔 호현이 가장 심각해 보였다.
“형님부터 살피십시오. 형님 몰골이···.”
“으윽. 제기랄.”
온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몸이 아픈 것보다 속은 더 아팠다.
‘내 체면이 이게 뭐란 말인가! 둘째 앞에서 이런 꼴을 보이다니!’
“호성이 녀석에 이어 형님까지 당하다니···.”
왕호에게 걷어차여 기절했던 호성은 아직도 약방에 누워있었다. 의원의 말로는 갈비뼈가 세 대나 나갔다고 한다. 거기에 호현까지 크게 다쳐서 돌아온 것이다.
“어서 의원들을 불러오겠습니다.”
“···휴. 그래.”
호중은 급한 걸음으로 무림맹 대전을 나섰지만, 곧 평소와 같이 느려졌다.
‘감이 좋지 않았는데···. 역시나 뭔가 있었어.’
호중은 처음부터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꼈었다. 하오문주는 시종일관 느긋한 태도와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였고, 하오문주의 호위무사는 무림의 거두들 사이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무림맹 본단에 무단으로 침입하면서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그만한 실력이 있지 않다면···.’
배짱만으로는 불가능한 태도였음이다. 이후 하오문주와 호위무사의 무공 수위를 보고 확신을 얻은 호중은 작전에서 뒤로 물러선 것이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했던 모양이군. 저들 모두 몰려갔음에도 밀렸다면···. 하오문의 저력은 상상 이상이다.’
호중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아직 정황을 듣지 못했음에도 정확하게 짐작했다.
‘큭. 형님이 맹주 위에 올라도 중원 무림을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겠구나.’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단일 문파가 새로이 등장했으니, 무림의 지존인 맹주도 이들의 눈치를 봐야할 것이다.
‘차라리 진가장에서 왕 노릇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진가장의 가주 자리는 자신이 챙길 것이 분명했다. 의약당에 들어온 호중은 아직도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있는 호성을 보며 빙긋 웃었다.
‘겨우 이딴 녀석에게 가주 자리를 넘길 일은 없지.’
“양 의원!”
“예. 진가주님.”
“무림맹 대전에 부상자가 상당하다. 무림의 주요 인사들이 크게 다쳤으니, 의약당 전원이 나서서 보살펴야 할 것이야.”
“아! 얼른 가보겠습니다.”
호중은 잠들어 있는 호성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손을 멈추고 손끝을 호성의 목덜미로 가져갔다.
‘이렇게 쓰윽.’
미세한 감각이었지만, 목을 스치는 느낌이다. 호성은 무의식중에서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목이 잘리겠느냐. 아니면 내 밑으로 들어오겠느냐.’
호중은 손을 거두는 가 싶다가 붕대로 감겨있는 호성의 옆구리를 툭 쳤다. 의원이 부러졌다고 했던 갈비뼈였다.
“으으···.”
‘아프냐? 계속 욕심을 부리면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호중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의약당을 빠져갔다.
느긋하게 걷는 호중 주변으로 의약당의 인물들과 각 무림 방파의 제자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일문의 장문인과 세가의 가주들을 포함해 직전제자들이 모두 당했으니 어찌 분주하지 않겠는가.
‘싸워라. 싸우고 또 싸워서 무림에 혼란을 야기해라. 그래야 내가 더욱 자유로울 것이니···.’
***
무림을 대표하는 문파와 세가가 큰일을 겪었지만, 무림맹 발족을 축하하는 대회합 일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날의 일이 당사자들 외에 주변에 알려지지 않았던 탓이다.
“진가주께서 공을 들이신 만큼 화려합니다.”
“정말 많은 무림인이 모였습니다.”
“무림인뿐이 아니라 양민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지요. 모두가 무림맹의 발족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고르고 고른 무희들이 춤을 췄고, 악공들은 흥겨운 가락을 연주했으며 공연을 업으로 삼는 이들도 무림맹 밖에서 모인 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많은 무림인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행사도 무림맹의 가장 넓은 장소에서 진행 중이었다.
챙챙.
“하압!”
두 무림인이 높게 솟아있는 대련장에서 검을 나누고 있었다.
채앵!
곧 힘이 빠진 상대가 검을 놓쳐버렸고, 검첨이 가슴 한 치 앞에서 멈춰 섰다.
“그만! 이번 대결의 승자는 옥산문의 민승이오!”
““와아아아아!!””
민승은 상대에게 포권지례를 보이며 예의를 차렸다.
“많이 배웠소. 그대의 검식은 훌륭했소.”
“···패자가 무슨 말을 하겠소. 부디 우승하시길 바라는 바요.”
무림 대전은 모두의 큰 관심 속에 치러지고 있었고, 한편에선 승자를 맞추는 내기까지 공공연하게 진행 중이었다.
“이번 대결의 배당은 삼 할이오!”
“에라이. 그것밖에 안 되냐!”
지금까지 승부가 진행되며 내기의 배당을 몇 배로 받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옥산문에 건 이들이 많았잖아! 불만 있으면 하질 마시던가!”
“누가 안 한데? 그냥 배당이 좀 적어서 그러지.”
“곧 삼십육 인의 결선 진출자가 가려질 것입니다. 진가주께서도 준비해야겠소.”
무공의 우열을 가리는 무림 대전에서 기존 협의맹과 정무맹 소속의 일부는 본선을 치르지도 않고 곧장 삽십육강으로 직행이었다. 예선과 본선을 통과하며 기운이 빠진 무림인들을 상대하면 되는 것이다. 상당한 혜택이었지만, 힘없는 무림의 중소문파들은 감히 불만을 표할 수도 없었다.
“부족하지만 힘써보겠습니다.”
진호현은 지난날의 부상을 모두 회복하고 본래의 몸을 회복한 다음이었다. 진호현은 무림의 주요 인사들이 앉아 있는 높은 단상에서 내려가 대련이 진행될 장소로 이동하며 생각했다.
‘내가 맹주가 되면···.’
가장 먼저 하오문의 모든 것을 파악할 생각이었다.
‘녀석들에 대해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다니···.’
그간 하오문의 정보를 얻으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진가장의 힘으로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후우.”
진호현은 대기실에 도착해서 자신보다 먼저 대련장에 올라갈 상대를 마주했다.
“화산의 이대제자 화정(花靜)이 진가주를 뵈오.”
“진가장의 호현입니다.”
화산파는 진호현처럼 삽십육강에서 시작할 수 있었음에도 예선부터 여기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제가 이번 대결에서 승리하면 한참 뒤에나 진가주와 대결하겠군요. 아. 최종 팔 인을 뽑으면 끝이라 했으니, 저희는 대결 할 수도 없겠습니다.”
“그렇게 되겠습니다. 부디 무운을 바랍니다.”
“꼭 지켜봐주십시오.”
단단하게 답한 화정이 자신을 호명하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
진호현은 화산의 무공을 지켜보기 위해 나서며 생각했다.
‘화산을 상대로는 자신이 없지···.’
화산파에 승리할 자신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매화검법이 없는 화산파를 상대로 질 자신이 없어. 크흐흐.’
매화검법이 없는 화산파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사금석에 불과했다. 자신이야말로 진짜 황금이었다. 호현은 진중한 표정으로 화산파 도인의 지켜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화산파의 화정은 상대에게 포권지례를 보이고 곧 검을 들었고, 상대는 화산파의 도인을 마주하여 상당히 긴장한 듯 굼뜨게 움직였다.
“오늘 화산의 새로운 검을 보여야하기에 조금 강하게 가겠소.”
“···오, 오시오!”
“타앗! 설풍심총(雪風枔憁)!”
화정은 처음부터 이십사수매화검법의 검식을 선보였다.
마치 매화의 잎사귀가 바람 흩날리는 것처럼 화려한 검식이었다.
따다다다당.
화정을 맞이한 상대는 끝도 없이 밀려드는 매화 잎사귀에 정신없이 뒤로 밀려나갔다.
“우아앗!”
높게 쌓아올린 대련장의 넓이가 상당했음에도 곧 끝에 도달했고, 이를 알지 못했던 상대는 밖으로 떨어져버렸다.
“어어어!”
털썩.
“장외! 승자는 화산파의 화정!”
““우아아아아!!””
“화산파가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재현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검식이 선을 보이자 구경꾼들이 크게 환호하며 들썩거렸다. 모두가 화산파의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화정을 향해 축언을 보냈다.
“화산파가 다시 일어섰다!”
“화정 도우! 정말 멋졌소!”
“허억. 허억.”
화정은 무리하게 펼친 검식으로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이들에게 예를 갖추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
화정의 짧은 대결을 지켜본 호현의 얼굴은 진중함을 벗어버리고 경악에 가득해 있었다.
‘어, 어째서 화산에 매화검법이···.’
아직 비급 경매가 시작되지도 않았고, 애초에 하오문은 화산파의 비급도 없다고 했었다.
‘없는 줄로만 알았거늘···.’
화산파에서 감쪽같이 속인 것 외에 다른 것을 예상할 수 없었다.
대련장에서 내려온 화정은 진호현을 향해 감사인사를 전했다.
“진가주님의 응원으로 더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제 승리와 화산파의 정수인 매화검법이 돌아온 두 가지를 전부 축하해주십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부디 화산파의 상승 검법을 황실에 승인 받을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
진호현은 좀처럼 평온을 되찾을 수 없었는데, 화정의 신색은 차분했다. 대련을 시작하기 전에 윗대의 현 자 배에서 들었던 말 때문이었다.
‘진가장이 매화검법을 화산파보다 먼저 입수했을 것이라 했지···.’
화산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상단에서 얼마 전 정보를 전해왔다. 하오문과 충돌하며 진가주가 화산의 매화검법을 사용했다는 정보였다. 화산파는 매화검법을 중원 무림에 선보여 소유를 확실히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매화검법을 빼앗길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매화검법은 화산파의 검법이었다.
“···노력해보겠소.”
이후 진호현은 자신의 대련에서 매화검법을 감히 사용할 수 없었고, 힘든 대결을 이어갔다. 이미 상승 무공을 익힌 가락이 있어서 승기는 챙기고 최종 팔 인에 들었지만, 자잘한 부상으로 꼴은 말이 아니었다.
이후 진호현과 마주한 진호중은 참담한 얼굴이었다.
“······.”
“······.”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같은 심정이었다.
‘일이 이렇게 망가질 수도 있단 말인가.’
‘화산파의 매화검법은 이제 진가장이 가질 수 없어졌다.’
“형님.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
진호현이라고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무림맹 발족에 참여한 모든 무림인의 눈이 화산파의 매화검법을 지켜봤고, 이를 축하해 주지 않았던가.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화산파의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매화검법이 진가장의 진강이십사검이라고 주장할 명분을 완벽하게 잃어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화산파에 퍼준 자금이 모조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화산파에 거액의 향화금을 주고 화산파의 무공을 일부 받아오긴 하였으나, 진가장엔 쓸모없는 하위 무공일 따름이다.
“···남은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호현은 이 와중에 마지막 남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하오문이 있지 않느냐.”
진호현은 그날 이후 하오문이라는 이름도 꺼내기 싫어했었지만, 이제 남은 것은 하오문밖에 없었다.
“그럼 하오문에서 팔겠다는 상승 무공을···.”
“그래. 하오문이 여는 경매에서 다른 상승 무공을 수급해야겠다. 너는 호성이에게 자금을 준비하라고 일러라. 나와 너도 마찬가지다. 진가장의 가용자금을 모조리 끌어오고 모용가와 서문가에서 추가로 융통해야 한다.”
안 그래도 무림맹 발족을 위해 진가장의 자금을 사용했는데, 또 거액이 필요해졌다.
“···무림맹에 납입한 자금을 빼면 되지 않겠습니까.”
“······.”
호현은 이미 그 자금을 빼서 전장에서 융통한 돈을 갚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건 뺄 수 없는 돈이다. 잊어라.”
“휴우. 안 그래도 진가장의 재정이 빠듯한데···. 서문가도 비급의 회수를 원하고 있습니다. 자금 융통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형님의 외가인 모용가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하오문의 경매에서 비급을 낙찰 받아야 하는 가문과 무림 방파가 한 둘이던가. 모용가와 서문가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가의 가주들이 외손주들의 손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당장 본인들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내일 내가 맹주로 추대되면 그깟 돈이야 얼마든지 더 마련할 수 있다. 그러니 전장에 문을 두드려라.”
“중부전장 하나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호현은 자꾸만 어렵다고만 하는 호중의 말에 짜증이 일었다.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지 않느냐!! 너와 내가 앞으로 무림에서 고개를 들고 살려면 상승 무공은 필수다. 하오문이 타 문파의 진산절기를 모조리 돌려주면 우린 무림의 끄트머리에 걸쳐 명맥도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진가장이 그런 꼴을 당할 수야 없지요.”
“나 또한 전장에 직접 요청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 같이 자금을 마련해보자.”
“예. 형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