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134/232)

경매 시작

***

멀리서 가옥의 위치를 확인한 호충은 위지승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더 멀리 이동해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골목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했다.

우드득.

‘누군가 녀석을 지키고 있을 수 있지.’

호충이 선택한 이는 과거 자장의 흑패주인 마한로였다.

“하지만 너희가 이 얼굴을 어찌 알아보겠느냐.”

위지승이 챙겨온 묵직한 도끼를 드니 과거 녀석이 들었던 흑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색도 입힐 걸 그랬나? 큭.”

호충은 묵직한 외날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터벅터벅 골목을 나섰지만, 주변을 면밀히 탐지하고 있었다.

‘아직···. 아직···.’

아직까지 주변엔 이렇다 할 마교도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다가야 하려나?’

녀석이 숨어 있다는 가옥까지 가려면 조금 더 걸어야했다.

‘옳거니. 하나 걸렸다.’

“하암. 어디 껀 수 없나?”

호충은 하품을 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고, 초라한 가옥까지 다다랐다.

“오호라. 오늘은 이 집을 털어야겠군. 퉤.”

손바닥에 침을 뱉고 도끼자루를 단단하게 손에 쥐었다.

‘이래도 안 나온다 이거냐?’

호충은 안에 있는 마교의 장로와 멀리서 지켜보는 또 다른 마교도까지 염두에 두고 대사를 뱉었지만, 둘 다 움직임이 없었다.

호충은 어차피 둘 중에 하나는 잡을 수 있을 것이기에 가옥으로 성큼 들어갔다.

‘한 놈은 확실하게 잡고, 나머지는 들어오면 잡는다.’

“······.”

‘이건 또 무슨 지랄인가.’

장로급 무위를 갖춘 홍소는 가옥 안에서 밖의 인기척은 물론 하는 소리까지 모조리 듣고 있었다.

‘오늘 일진이 실로 흉흉하구나. 별 거지같은 놈이 다···.’

그의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방문이 박살났다.

쿠앙. 우지끈.

문을 박살내며 들어온 녀석은 우락부락한 얼굴에 제 얼굴과 잘 어울리는 도끼까지 들고 있었다.

“으헤헤. 거 반갑군.”

“······.”

홍소가 묻지 않았음에도 거한은 자신의 말을 주저리주저리 해댔다.

“난 털러 들어온 집에 아무도 없으면 기분이 좋지 않거든. 궁금하지? 궁금하다고 해봐라.”

“······왜 인지 물어야 하나?”

“큭큭. 맞아. 잘 물어봤어.”

거한은 거리낄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나는 돈만 훔쳐가는 도둑과 다른 놈이란 말이지. 피를 함께 봐야 진정한 도둑질이 아니겠는가. 크하하. 사내가 쥐새끼처럼 행동할 수는 없는 일.”

“······하아. 별 거지같은···.”

일진이 사나워도 이렇게 사납기 힘들 것이다.

“목을 꺼내봐라. 어디 네 목에선 얼마나 많은 피가 솟구치는지 봐야겠다.”

“···내가 왜 이렇게 침착한지는 안 궁금한가?”

“푸하하.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나는 그저 여기서 돈을 훔치고···.”

주변을 돌아보던 호충은 방 한 구석에 놓인 주머니를 보며 눈을 빛냈다.

“오호. 날 주려고 챙겨두셨나? 오늘 횡재했군.”

홍소는 거한이 주머니를 챙기려 걸음을 옮기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런 멍청한 놈이 어째서 아직까지 살아있을까.’

거한의 무방비한 뒷모습을 보자니 당장이라도 출수하여 명을 거둘까 싶기도 했지만, 방자한 녀석의 태도가 오히려 명을 붙잡아 두었다.

‘곱게 죽일 수는 없지. 게다가 여기서 일을 치르면 안가(安家)를 또 구해야하지 않겠는가.’

호충은 주머니를 위로 들었다 받으며 쩔렁거리는 금전의 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돈 굳었군.’

“네가 이렇게 날 위해주니 특별히 인심 쓰겠다. 자. 네 스스로 대들보에 줄을 걸어 목을 매달아라.”

“허!”

“도끼에 피가 묻으면 깨끗이 씻어야 하거든. 녹슬면 큰일이잖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도끼에 피가 묻을 일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손에 죽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오늘따라 정말 말을 잘 듣는 놈을 만났군. 하늘이 복을 주시는 모양이야.”

“······.”

더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안가는 다시 구해야겠군.’

홍소의 손에 번개처럼 움직였다.

거한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도끼를 손안에서 빙글 돌려 다시 반대편 손으로 잡았다. 그저 멋을 부리기 위한 행동처럼 보였는데, 도끼는 홍소가 날린 기파를 완벽하게 상쇄한 다음이었다.

티잉.

“응? 벌레가 날아들었나?”

“···운이 좋구나.”

운이 좋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보고 막을 수 있는 암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두 번이나 손을 쓰게 하다니···.’

호충은 마교의 장로라는 홍소라는 놈이 사용한 수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침공파(針空破)를 사용할 정도라면 확실히 마교의 장로로군.’

스승들을 통해 수도 없이 경험한 마교의 마공이었다.

“밧줄 없냐? 사다 주랴? 에이 귀찮게.”

“···밧줄은 필요 없다.”

“그럼 스스로 목을 조르려고? 쉽지 않을 건데···.”

“이익! 네 놈이나 목을 졸라라!”

홍소의 손이 다시 번개처럼 움직였고, 호충은 아무렇지 않게 도끼를 바닥으로 내렸다. 도끼의 반경에 또 침공파(針空破)의 기침(氣針)이 걸려들었다.

티딩.

“뭐야? 무거워서 내려놓으려고 했더니만···. 이 집은 벌레가 왜 이렇게 많아? 자고 가긴 어렵겠는데?”

“···거지같은 놈이 운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홍소는 자꾸만 엇나가는 자신의 침공파에 아예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직접 패죽일 생각이었다.

“거지같은 새끼가···.”

‘···와라.’

호충은 모르는 척 다시 도끼를 위로 휙 들었고, 빠르게 달려들던 홍소는 딱 맞게 솟구치는 도끼를 먼저 피해야 했다. 당연히 공격은 실패였다.

“······.”

“뭐야? 내게 덤비려고?”

홍소의 눈엔 잠룡진으로 다 지우지 못한 살기가 넘실거렸다.

“···너는 곱게 죽지 못한다.”

“웃차. 그럼 나도 본래대로 피를 본다고 해주지. 크흐흐.”

홍소는 도끼를 야무지게 잡고 휘두르는 거한의 공격을 보고 경시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느려 터져서는···.’

도끼의 궤적이 모두 읽힌 것이다. 홍소는 도끼의 궤적을 보며 거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떠나간 도끼가 돌아올 일이 없다고 확신했지만, 도끼날이 아닌 자루는 돌아올 수 있었음이다.

퍼억.

“끄악.”

상대에 공격을 명중시키기 전에 먼저 뒤통수를 도끼자루에 찍힌 홍소였고, 호충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뒤로 물러섰다.

“후아. 너 좀 빠르다?”

“한 수 재간은 있었다만···.”

홍소는 여전히 거한의 무공을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본격적으로 해야겠구나. 크하하.”

도끼를 한껏 뒤로 재끼고 앞으로 휘두르려는 모습에 홍소는 기가 찼다.

‘저렇게 허술한 도끼질이나 하는 놈을 상대로 내가 대체···.’

하지만 도끼의 궤적은 예상과 크게 달랐다. 뒤로 돌아간 도끼가 그대로 회전하며 뒤에서 아래로 쏘아져 나온 것이다.

“헙!”

밑으로 몸을 숙이고 달려들던 홍소는 얼른 옆으로 구르며 눈앞까지 다가온 도끼를 피했다.

“크하하. 그렇지! 그렇게 굴러야 겨우 피할 수 있었겠지.”

“······.”

홍소가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크하악!”

“얼씨구?”

호충은 검게 물든 녀석의 손을 도끼로 툭툭 치며 경계했고, 홍소는 머리에 김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제발 한 대만 맞아라!”

“너 같으면 맞아주겠느냐?”

좁은 방 안에서 도끼를 휘두르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홍소는 그것도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가 있었다.

‘계속된 천운과 날아가 버린 이성. 이제 실수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지.’

홍소는 침공파를 날리고 자신도 함께 거한에게 쏘아져 나갔다.

‘이번엔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호충은 침공파를 가까스로 피하며 도끼를 앞으로 던져버렸다.

까앙.

홍소는 날아드는 도끼를 팔로 쳐냈는데, 마치 바위에 맞은 것처럼 옆으로 튕겨나갔다. 그 사이 호충의 몸이 홍소의 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우득.

깊게 찌른 팔꿈치가 홍소의 명치에 박혀 있었다.

“꺼헉.”

“저승에 가거든 이 형님이 보내셨다고 하면 될 것이니라.”

생명의 빛을 잃어가는 마교 장로의 눈을 보며 호충은 튕겨나간 도끼를 들고 와 다시 도끼질을 했다.

퍼억.

함몰되었던 명치에 다시 도끼가 박혀들었다.

‘지켜보던 녀석은 여전히 들어오지 않는군.’

밖에서 이곳을 지켜보는 마교의 인물을 마지막까지 염두에 두었지만, 끝까지 합공하지 않았다.

호충은 피 묻은 도끼를 녀석의 몸에 대충 닦아내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기운을 썼더니 목이 마르군. 독한 화주로 목을 축여야겠어. 크하하.”

호충은 돈 주머니를 위아래로 던졌다 받으며 쩔렁쩔렁 소리를 냈다.

“······.”

‘내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볼 생각인가? 그럼 따라와 보시던가.’

호충은 성도의 시내를 휘젓고 다니며 미행자를 끌고 다녔고, 그러다가 급하게 성도를 빠져나가 산으로 향했다. 호충의 손엔 성도에서 사들인 술병이 들려 있었다.

“며칠은 숨죽이고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야겠군. 우선 술 맛이나 볼까?”

한적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그 자리에서 잠을 청할 것처럼 행동하자 미행자의 기운이 옅어졌다.

‘역시···. 스스로 행동을 결정할 수 없는 말단이었어.’

말단 마교도라면 당장 잡아봤자 이득은 없을 터였다.

***

“여기라고 하지 않았느냐.”

“녀석이 분명 여기서 잠을 청하려고 했는데···.”

호충이 잠자리를 만들고 술을 마시던 곳에 도착한 이들은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남은 것은 비어있는 술병이 전부였다.

“···쫓아라. 감히 마교의 장로를···.”

“예. 단주님.”

족적으로 상대를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까지 있었지만, 증발하듯 사라진 거한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족적이 모호합니다.”

“부러진 가지도 없고, 돌을 밟아 나간 것도 아닙니다.”

“마치 하늘로 날아간 것처럼 사라졌습니다.”

상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미 추적이 시작될 것임을 짐작한 호충이 아예 위로 올라가 나무 잎사귀와 가지를 밟고 경공을 펼친 탓이었다.

“···놓쳤습니다. 단주님.”

“제길. 윗선에 뭐라고 보고한단 말인가! 마교의 장로가 비명에 갔음에도 상대의 위치조차 모른다니!”

“용모파기를 그려 수색에 나서겠습니다. 멀리가지 못했을 것이니, 주변의 다른 성읍을 찾아보면 나올 것입니다.”

“···후우. 이곳의 일이 우선이다. 용모파기는 윗선에 전달하고 너희는 이번 행사에 집중해야 할 것이야.”

““예. 단주님.””

‘으득. 오늘일은 홍태소 장로의 잘못이 크다. 어찌 상대를 얕잡아 보고···.’

당시의 일을 낱낱이 보고 받은 다음이었다. 상대는 무공도 일천한 무뢰배에 불과했으나, 상대의 격장지계에 넘어가 이성을 잃었다고 했다.

***

마교도가 그토록 찾고 있던 무뢰배는 무수히 찾아오는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오셨습니까. 장주님.”

“허허. 그제도 만났지만, 항상 다시 보고 싶습니다. 문주.”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던 황금전장의 황금석은 정말 이후에도 몇 번이고 호충을 찾아왔다. 호충이 가진 생각을 나누기 위함이었는데, 호충은 본래 세상에서 배운 사상에 현 시대상을 더해 적당히 사설을 늘어놓았다. 그것만으로도 황금석에겐 충격의 연속이었다. 군왕이 나라의 모든 권한을 갖고 굴러가는 곳에서 민주주의는 근본을 깨트리는 사상이었다. 게다가 현대의 민주주의는 일부 사회주의적인 이념도 품고 있었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통치이념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저도 매번 보아도 반갑습니다.”

“오늘 경매가 끝나면 다시 뵐 수 있겠소?”

“다음으로 미루시지요. 일정이 쉬이 끝나지도 않겠지만, 무척 곤하지 않을까 싶어···.”

“그렇지. 행사가 행사이니만큼 문주도 바쁘게 움직여 노곤할 터. 나만 생각한 모양이오.”

“비급 외에 좋은 물건도 많이 경매에 등장할 것이니, 부디 지켜봐주십시오.”

“오오. 미리 언질을 주시면 좋겠구려.”

호충은 대수롭지 않게 경매물품을 입에 올렸다.

“금과 옥으로 만들어진 불상과 과거 유명한 이들의 시서화가 몇 점 나올 것이고···.”

“보통의 경매에도 자주 나오는 물건들이군.”

비급 외에 가장 중요한 물건은 그것이 아니었다.

“영단(靈丹)도 준비되어 있습지요.”

“!”

“무림인들에게도 좋은 약이겠으나, 무림인이 아닌 이들에게도 무병장수를 선물하는 좋은 영단이옵니다.”

“허허. 그런 영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지금껏 듣지 못했는데···.”

듣기는 들었다. 시전에서 차력을 자랑하며 약을 파는 이들이 판에 박힌 듯이 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기꾼 외에는 무병장수를 보장하는 영단을 팔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하나 드셔보시렵니까?”

“···그냥 주시려고?”

“하하. 하나 정도는 견본으로 드려도 되겠지요.”

“······.”

결국 황금석은 작은 상자에 담긴 영단 하나를 받아들어 경매장으로 나왔다. 경매장에는 이미 도착한 많은 전장의 주인들과 상단의 상단주가 즐비했다. 또한 하오문주에게 호되게 당한 장문인들과 가주들도 보였다. 다행인 것은 하오문주가 자신을 비롯한 중요 인문들에게는 편히 경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칸막이를 통해 분리해 둔 것이었다.

‘이걸 먹어볼 엄두가 나질 않으니···.’

황금석은 고민 끝에 자신을 호위하는 무인에게 영단을 넘겼다.

“무림인에게 좋은 영단이라는데 먹어보고 알려주게.”

“죽지만 않는다면야···.”

“몸에 이상이 생기면 내 따로 보상하지.”

“······.”

그런 말을 들으니 더욱 먹기가 꺼려졌지만, 무인은 눈을 딱 감고 영단을 입에 털어 넣었다.

‘맛이 이상하면 뱉어버리면 그만이지.’

“!”

하지만 영단은 입 속에서 물처럼 녹아 삼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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