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5/232)

영단(靈丹)

***

‘맛이 이상하면 뱉어버리면 그만이지.’

“!”

하지만 영단은 입 속에서 물처럼 녹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헙!”

무인은 영단을 통해 전해지는 기운에 깜짝 놀랐고, 누가보든 말든 자리에 앉아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 그의 눈이 떠졌고, 유심히 무인을 지켜보던 황금석이 얼른 물었다.

“진정 영단이었는가?”

“······최소 십년 이상의 공력이 증가하였습니다.”

“!!!”

“이런 귀한 영단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인.”

‘진정 영단이었단 말인가!’

십년의 공력을 늘려주는 영단이라면 과거에 존재했다는 소림의 소환단에 버금가는 영단이라는 말이었다.

“저는 지금까지 이런 영단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오문주는 뭘 믿고 내게······.’

“아!”

‘영단은 무림인이 아니라도 무병장수를 보장한다고 했건만···.’

자신이 복용하길 원하며 영단을 내어준 하오문주였건만 자신은 그를 믿지 못하고 호위무사에게 영단을 내주지 않았던가.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

“나는 하오문주가 내게 먹으라 한 것을 믿지 못하였다.”

호위무사는 운수가 대통한 날이다.

‘내가 운이 좋았구나.’

“영단도 경매에 나온다 하였다.”

“만약 이와 같은 영단을 외부에 판매한다면 최소한 금 천 냥 이상은 받아야 합니다.”

“우리 황금전장이 전부 구입할 것이다.”

“영단을 장주님만 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무인의 말에 황금석은 얼른 주변을 돌아봤다. 여기저기 흩어진 장주들과 상단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란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뭔가를 알아냈는지 주변을 훑어보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눈빛이었다.

“···나만이 아니었군.”

자신 이외에도 견본 영단을 받아본 이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낙찰이 쉽지 않겠어.”

“영단만 있으면 저희도 무림 방파의 힘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최대한 확보할 것이다.”

***

“이제 곧 경매가 시작되겠군.”

“비급이 제 주인을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호충은 왕호의 걱정에도 손사래를 쳤다.

“걱정도 팔자다. 상단과 전장에서 산다한들 어차피 주인을 찾아갈 것이고, 상단과 전장은 다른 것을 사느라 비급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들에게 미리 영단을 맛보여주었다.”

무림 방파는 영단의 냄새도 못 맡았다. 대신 상단과 전장에만 견본을 주고 상품의 가치를 알려주었다. 이들에게 영단을 팔고 이 영단을 다시 무림 방파에 팔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아!”

“영단은 우리가 직접 팔지 않아. 하오문은 생산자가 될 것이고 판매자는 중원의 상단과 전장이 될 것이다.”

둘의 대화가 진행 되는 중에 아리따운 여인이 경매장 단상으로 나섰다.

“곧 경매가 시작되오니 모두 착석하시기 바랍니다.”

소란이 가시자 여인이 경매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중원의 귀하신 분들을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번 하오문의 첫 경매는 많은 무림의 방파와 세가의 실전 비급과 빼어난 예술품을 선보이는 행사이오며, 중원의 귀한 물품을 먼저 선보이고 이후 비급 경매로 넘어가겠습니다. 소란을 일으키시는 분은 부득이 본문에서 제재를 가할 것이오니, 편안하고 즐거운 경매가 되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불만이 나올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미 하오문을 적대했다가 호되게 당한 문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상단과 전장도 하오문의 힘을 직접 견식했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럼 누구나 갖고자하는 진귀한 보물을 먼저 선보이겠습니다.”

하오문의 문도들이 천에 가려진 물건을 끌고 왔고, 진행하는 여인이 비단천을 들추며 소리쳤다.

“첫 경매품은 팔백년 전 만들어진 고대의 옥불상으로 예술적인 가치가 상당합니다. 경매의 시초가는 천 냥부터 시작합니다. 앞에 놓인 패를 드시면 경매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오오! 대단한 물건이군.”

상단과 전장은 옥불상의 가치를 한 눈에 알아보고 경매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경매가액은 계속해서 올라갔다.

“천오백 냥 나왔습니다. 더 있으십니까? 천육백 냥! 천칠백 냥. 이천 냥! 응찰 최소 단위를 오백냥 으로 바꾸겠습니다!”

진행을 맡은 여인은 능숙하게 경매를 이끌어 나갔고, 옥불상은 한 상단에 무려 사천냥에 낙찰되었다.

“다음은······.”

이어진 경매에서도 무림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비급은 나오지 않았지만, 상단과 전장이 관심을 가질만한 시서화가 가득 출품되었다. 유명인의 필체와 그림은 관직에 오른 이들에게 상당한 값에 되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드디어 본 품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천을 걷어내고 보인 비급의 제목은 바로 석성신공으로 모용가에서 실전한 비급이었다.

“석성신공입니다. 시초가는 삼십만 냥입니다. 최소 응찰 단위는 만 냥입니다.”

석성신공이 나오자마자 모용태는 패를 들었다.

“삼십만 냥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모용태는 이미 무림맹에서 논의하고 나온 다음이라 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신하긴 힘들었다. 상단과 전장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십일만 냥 나왔습니다.”

“···제길.”

걱정대로 결국 다른 곳에서 패를 든 것이다. 정확하게 누가 패를 드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용태는 비급을 다른 곳에 넘길 수 없었던 터라 다시 패를 들었다.

“삽십이만 냥! 바로 다시 삼십삼만 냥 나왔습니다. 멋진 두 분께서 경쟁이 붙으셨습니다.”

모용태는 패를 들며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다.

“단번에 삼십팔만 냥으로 늘어납니다! 하지만 상대도 지지 않으시네요. 사십만 냥 나왔습니다. 여력이 남으셨을까요? 사십이만 냥 다시 나옵니다!”

땅땅땅.

“오십오만 냥에 낙찰! 축하합니다.”

이어진 경매 끝에 모용태는 오십오만 냥에 석성신공 낙찰에 성공했다.

“휴우.”

상당한 출혈이었지만, 모용가의 가용자금 범위 안이라 다행이었다. 오십오만 냥이 모용가가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에 가까웠다.

“비급은 경매가 끝나는 즉시 낙찰자에 인도할 것을 약속드리며 다음 물품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후로도 비급의 경매는 계속되었다.

***

호충은 왕호와 함께 경매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삼도상단에서 훌륭하게 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상단이 아예 참석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 의심을 받지는 않겠습니다.”

“흐흐. 그렇게 하라고 서로를 못 보게 한 거야.”

높이 세워진 칸막이는 몇몇 중요 손님을 제외하고 서로를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삼도상단을 비롯한 상단과 전장은 무림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경매가를 치솟게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도 비급입니다. 당가의 뇌룡(雷龍)심법!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비급! 시초가는 역시 삼십만 냥! 응찰 최소 가액은 일만 냥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매가가 치솟았다.

“삼십일! 삼십사! 삼십육! 사십! 응찰 최소 가액을 오만 냥으로···. 사십오 나왔고, 바로 오십 나왔습니다!”

“!”

당가의 당세천은 당혹스러웠다.

‘제길. 나는 아직 한 번도 패를 들지 않았는데···.’

당가의 심법을 노린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세천은 얼른 두 손의 손가락을 모두 펼치며 패를 들었다.

“육십만 냥! 이어서 육십오! 칠십! 오늘 경매 중 가장 열기가 드높습니다! 칠십오!”

“제길!”

당세천은 다시 만세를 불러야 했다.

“팔십오 나왔습니다! 팔십오만 냥! 더 있으십니까!!”

이후에도 두 번의 만세를 더 부른 당세천이다.

땅땅땅.

“뇌룡심법 백십만 냥에 낙찰! 축하드립니다!”

당세천은 결국 백이십만 냥에 뇌룡심법을 낙찰 받을 수 있었다.

“······.”

‘당가의 가용자금을 다 써버렸다······.’

당세천은 그래도 만족해야 했다. 가용자금을 다 써버렸지만, 뇌룡심법이 당가의 품에 돌아오지 않았겠는가.

왕호는 경매를 지켜보다가 한 마디했다.

“저들은 우리가 예상 낙찰 범위를 짐작하고 있음을 꿈에도 모를 것입니다.”

“큭. 저들끼리 아무리 담합을 시도한들···.”

루방을 통해 각 방파의 총관과 주요 직무를 맡은 이들을 관리해왔다. 이들을 통해 가용자금을 파악하고 경매를 진행하니, 꼼짝 없이 주머니를 털릴 수밖에 없었다.

“오호. 이제 진가장도 시작합니다.”

무림 세력의 비급 경매가 끝나고 연원을 알 수 없는 상승 무공이 경매에 나오자 진가장이 나섰다.

“삼십! 삼십이! 삼십오! 최소 응찰가 오만으로 올립니다! 사십! 사십오만 냥!”

문제는 진가장이 삼십을 불러도 다른 상단과 전장이 경매가를 올려버리는 데 있었다. 이들 무공은 무림맹에서도 사전 협의가 없었다.

“아무래도 가용 자금이 많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사십이 넘어가니 패에서 손을 놓았습니다.”

“가용 자금이 사십이면···. 검법 하나는 받아가게 해줘야겠군.”

“···설마 그 검법 말씀이십니까?”

“살기가 조금 강하긴 하지만, 성능은 확실하잖아.”

“그건 상승 무공이라고 하기가···.”

“초기엔 모르는 법이지. 하지만 진가장에 알맞다.”

진가장에 넘기려는 검법은 절정까지 이를 수 있는 상승 무공이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다. 절정에서 화경으로 넘어갈 수 없는 수준의 검법인 것이다.

“혹시 해당 비급을 사지 않으려 할 수도 있으니, 미리 보여주는 것이 좋겠어.”

“내려가서 따로 지시하지요.”

“아니다. 차라리······.”

“아. 그게 좋겠습니다.”

이후 진행하는 비급 경매는 전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비급의 진위를 확인하지도 못하고 응찰하시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하여 저희 하오문에서 특별한 분을 초청해 진위여부를 감별하도록 하겠습니다.”

눈을 빛내던 여인은 한 곳을 지목했다.

“무림의 지존이신 맹주님을 모시겠습니다.”

“!”

진호현은 여기서 갑자기 지목될 지 예상할 수 없었다. 어찌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이어진 말에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의 맹주님을 모시면서 저희도 성의를 보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이번 비급 경매에 나온 물품 중 하나를 시원하게 넘겨드리도록 하지요. 지금 나오시면 비급을 저렴한 가격으로 맹주님께 선물하겠습니다. 경매 없이 이십만 냥에 넘기지요.”

“!!”

진호현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섰다.

“맹주님. 이렇게 헌앙하신 맹주님을 직접 뵈오니 일생의 영광이랍니다.”

“흠흠.”

“우선 맹주님께 드릴 비급을 살펴주시겠나이까?”

“어디···.”

진호현은 오환검(五煥劍)이라는 제목의 비급을 펼쳐서 슬쩍 살피다가 잠시 후에는 뚫어져라 보기 시작했다.

“······.”

진호현은 손까지 벌벌 떨며 비급을 살폈다.

‘가히 불꽃과 같은 검이다! 틀림없는 상승 무공이야! 대단한 수준의 검공! 이십만 냥이면 거저나 다름없다.’

오환검(五煥劍)이라는 비급의 이름처럼 다섯의 불꽃을 그려내는 이 검공은 매화검법을 익힌 자신과 호중에게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무공이었다.

“어떠하신지요. 상승 무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틀림없다.”

“맹주께서 확언해주셨습니다! 상승 무공이 분명한 하오문의 비급 경매! 계속 함께해주셔요!”

다른 비급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진호현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

‘이 무공이면 된다! 다른 건 필요 없어!’

오환검(五煥劍)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탓이다.

“다음 비급은······.”

진호현은 손에 오환검을 들고 자리로 돌아갔고, 호중은 곁에서 크게 관심을 보였다.

“진정 상승 무공입니까?”

“···후우. 너도 살펴보아라.”

오환검을 받아든 호중은 얼른 비급을 펼쳐 읽어 내렸고, 호현과 마찬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저, 저희가 익힌···.”

자신이 익힌 이십사수매화검법과 묘하게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상승 무공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래. 너와 내게 이만한 검공은 또 없을 것이다.”

“후우. 그럼 지금까지 전장을 통해 마련하고 남은 자금은 얼른 갚아버려야겠습니다.”

“아직 경매는 끝이 아니다.”

“···또 나올 것이 있겠습니까?”

“경매에서 중요한 물건은 나중에 나오는 법이다.”

“비급이 마지막이 아닐지···.”

“두고 보아라.”

진호현의 장담처럼 비급 경매가 끝났음에도 경매는 계속 되었다.

“무림인들을 위한 하오문의 특별한 경매가 곧 시작됩니다. 오늘 경매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

“내 저럴 줄 알았지.”

“바로바로~~”

황금 천을 걷어내고 보인 것은 작은 상자들이었다.

여인은 상자 중 하나를 들고 말했다.

“이 물건으로 말씀드리자면···. 하오문의 십만 문도가 중원 전역을 이 잡듯이 뒤져 찾아낸 영약! 만년석태를 가미하여 제조한 지고한 영단으로 무림인의 내공 증진에 특효를 보입니다.”

“!!”

“!!”

“그 효과는 무려···. 내공 십년!”

영단이라는 말에 관심을 보였던 무림인들은 내공 십년이라는 말에 고개를 돌려 버렸다.

“십년이라니···.”

“그런 영단이 어찌 존재한단 말인가.”

“비급이야 얻을 수 있지만, 저건 말이 안 되지.”

장내가 소란한 와중에도 상단과 전장이 자리한 곳은 고요했다.

“······.”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