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232)

장난 지금 나랑 하니?

***

일단의 무리가 안휘성 황산에 접어들고 있었다. 오랜 여정 끝에 도착한 이들이었다.

“멀기도 멀구나. 여길 달마다 오가려면 네 고생이 많겠다.”

“어르···. 외조부께서는 안 오시려고요?”

“상단주가 매번 여기까지 올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나는 서안에서 할 일이 많다.”

“···에효.”

비연도 이렇게 먼 길을 오가는 것이 쉽겠는가. 남궁가에서 원했기에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먼 길을 오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삼도상단이 거대상단으로 발돋움할 절호의 기회다.”

“영단만 팔아도 충분할 것인데···.”

“영단은 무림을 대상으로 하는 단일 품목이지 않느냐. 영단으로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겠으나, 상단의 규모를 키우는 일은 정상적인 상행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안휘성에 퍼진 남궁가의 무관과 상회에 물품을 납품하며 덩치를 키워나가면 다른 성에도 충분히 진출할 수 있다.”

“삼도상단은 이미 루방을 대상으로 중원 전역에 납품하고 있지 않습니까.”

삼도상단은 이제 중소상단이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원전역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하오문이 접수한 중원의 성읍과 주요 도시들에 존재하는 기루, 객잔을 생각하면 대상단과 비교해야 할 정도였다.

“그건 여인의 분과 차에 국한되지 않았느냐. 우리가 남궁가에 납품한다는 경력이 있으면 다른 지역도 삼도상단을 달리 볼 것이다. 문주님이 하오문 지부에만 납품하는 상단으로 키우려고 삼도상단을 일으키셨을까.”

“···에효. 이러나저러나 빠져나갈 구석이 없네요.”

“마음을 바꿔먹어라. 지금부터 너는 삼도상단에 하나뿐인 후계자다. 오직 삼도상단이 성장하길 바라는 상인이란 말이다. 또한 남궁가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길 수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이야. ”

“···예. 상단주님. 명심하겠습니다.”

“우선 객잔에 짐을 풀고 남궁가의 장원에 전갈을 넣을 것이다. 가주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니 조금 쉬도록 하지.”

“예.”

.

.

.

이후 객잔에서 며칠간 여독을 푼 송 영감과 비연은 남궁가주가 장원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상단주님. 남궁가로 모시겠습니다.”

남궁가에서 무사들을 보내 삼도상단의 상단주와 일행을 초청한 것이다.

“허허. 무사들까지 보내서 우리를 환영해주시는 군. 그럼 바로 가지. 비연아. 너는 가져온 선물을 챙겨라.”

“예. 상단주님.”

수레는 남궁가에 상납할 선물로 가득했다.

가장 귀한 선물인 영단은 옥비연이 직접 손에 들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거대한 대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간 송 영감과 옥비연은 곧장 가주전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

상석에 앉은 남궁곤은 조금 피곤한 얼굴이었다. 먼 여정을 끝내고도 삼도상단이 왔다는 소식에 지체하지 않고 만남을 청했기 때문이다.

남궁곤은 삼도상단 일행이 가주전으로 들어서자 얼른 나서서 마중했다.

“어서 오십시오. 상단주.”

“이리 환영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도상단의 송동석이라 합니다.”

송 영감에게 가까이 가서 인사를 받으며 깊은 호의를 드러낸 남궁곤은 옆에 서 있는 옥비연에게도 인사했다.

“옥 공자도 다시 보니 더욱 반갑군. 그 사이 더 헌앙해졌어? 어허허.”

남궁곤은 호충이 비연으로 변했던 모습과 다른 점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휴. 다행이군. 문주님의 역용술은 역시···.’

“저도 무척 반갑습니다. 가주님과 약조한 대로 걸음을 서둘렀답니다.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가주님.”

“하하하. 그래. 그래.”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는 중에 남궁곤은 다른 인물들도 소개했다. 가주전에 이미 자리하고 앉아 있던 이들이었다.

“이쪽은 제갈 세가의 가주라네.”

“아. 이름 높은 제갈가의 가주님을 뵈옵니다.”

‘남궁가에 제갈가의 가주까지 와 있을 줄이야···.’

서찰에서 봤던 제갈가의 여식을 떠올린 비연은 무척 마음이 불편했다.

송 영감의 인사에 제갈진은 얼른 내려가서 송 영감보다 깊이 허리를 숙였다.

“제갈가에서 온 제갈진이라 하옵니다.”

“과례는 비례라 했습니다. 어찌 작은 상단에 이리 예를 보이십니까.”

“송 문주님. 일문의 문주님이시라 나름의 예를 보였습니다.”

“······.”

제갈진은 송 영감에게 상단주가 아닌 문주라 칭했다. 게다가 어찌나 예의를 차리는지 더 허리를 숙여야 하나 고민될 정도였다.

“남궁가주에게 오는 길에 들었습니다. 송 문주께서는 월하검문을 이어오셨다 들었습니다.”

“아. 하하. 그렇습지요.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역시 이들에겐 무림의 배분이 먼저구나···.’

“인사를 나눌 분이 한 분 더 계십니다. 이쪽은 화산파의 무환 장문인이십니다.”

“아. 오늘 이 송 모가 높으신 분들을 많이 뵙습니다. 삼도상단의 송동석입니다.”

화산파의 장문인도 예상에 없었던 만남이었다.

“···현자 배로부터 송 문주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지요. 그리 소탈한 모습을 보이셨던 송 문주께서 삼도상단을 이끄실 줄은 몰랐습니다.”

“!”

옥비연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문주님이 어르신의 얼굴을 하고 화산의 제자들과 마주하셨던가! 어르신은 모르실 것인데!’

놀란 옥비연과 달리 송 영감은 차분한 안색으로 답했다.

“허허. 그 소식이 장문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입니다. 부끄럽습니다. 그저 차를 한 잔 대접했을 뿐이지요.”

“고된 여정에 올랐던 화산의 제자들에게 마른 목을 축이는 감로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화산의 제자들이 가신 일은 나중에 소문으로만 들었습니다. 현진 도우와 현인 도우를 비롯한 화산의 제자들은 본파로 잘 돌아갔는지요.”

“하하. 덕분에 모두 무사히 귀환하였습니다.”

송 영감은 아는 척을 하는 김에 더 입을 열었다. 호충에게 들었던 일이 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화산파의 도우들께 진하게 매화향기가 진하게 풍겼지요. 아마도 당시 매화검법을 익힌 모양입니다 그려.”

“역시! 송 문주께서 거기까지 알아봐 주셨구려. 하하하.”

‘도련님께 그날의 일을 듣지 못했다면 경을 칠 뻔 했구나.’

호충이 월하검문을 알리며 자신을 문주로 만들었다 얘기해준 그날의 일이었다. 옥비연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우.”

남궁곤은 월하검문을 입에 올렸다가 화산파와 송 문주의 만남에 관해서 들을 수 있었다. 무척이나 대단한 일화였다.

“후우. 저도 무환 장문인이 전해준 송 문주의 무위에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일검에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날아가 바위를 쪼갰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누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뛰지 않겠는가. 검을 쓰는 무인에겐 엄청난 경지의 검공이었다.

“여전히 부족할 뿐이지요. 오르고 또 올라도 산은 높기만 합니다.”

“허허. 역시 대단하십니다.”

송 영감의 진심이었다. 아무리 올라도 호충의 무공이 어디에 있는지 끝자락을 잡을 수 없었다.

‘···송 문주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할지 직접 보고 싶구나.’

남궁곤은 속내를 숨기고 말했다.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제가 응대가 서툴렀습니다. 자리를 마련했으니···.”

자리를 옮기기 전에 처리해야 할 물건이 있었다.

“잠시만 시간을 주시지요. 남궁가에 그냥 올 수 없어 선물을 조금 챙겨왔답니다. 제갈가주님과 화산파의 장문인까지 계실 줄 알았다면 조금 더 힘썼을 건인데···. 실로 손이 민망합니다. 비연아.”

“아. 예.”

비연은 손에 들고 들어온 보자기를 두 손으로 건넸다.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근래 중원 무림에서 많이들 찾는다하여 여정 중에 급히 받아왔습니다.”

“···흐음.”

남궁곤은 확답을 들을 수 없어 얼른 보자기를 열었다.

“헙!”

상자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하오문에서 경매를 통해 무림에 전한 바로 그 영단이었다.

제갈진과 무환도 선물이 하오문의 영단임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저···.”

“저 귀한 영단을···.”

“고작 다섯 개의 영단을 구했답니다. 남은 물량은 부상단주가 이미 다른 무림 방파에 모두 팔아버렸다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허허허허. 안 그래도 삼도상단이 남은 물량을 어쩌나 싶었더니···. 제게 가져오셨습니다 그려.”

사천에서 삼도상단의 부상단주를 통해 일부 물량을 산 곳도 남궁가와 제갈가였지 않은가. 일부 물량은 당가로 갔다고 들었지만, 남궁과 제갈 두 가문이 더 많은 물량을 구입했었다. 그런데 남은 물량마저 남궁가로 들어온 것이다.

“앞으로 남궁가와 좋은 인연을 이어가기 위한 약소한 선물입니다.”

“선물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영단 값은 확실히 치를 것입니다.”

지금은 천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는 제 마음이니 부디···.”

“이제 보니 옥 공자가 상단주를 빼다 박은 모양입니다. 비급 값을 받지 않으려고 용을 쓰던 옥 공자와 어찌 그리 닮으셨단 말입니까.”

“···안 그래도 호되게 혼을 내준 참이지요. 주인에게 물건을 돌려주면서 그리 많은···.”

송 영감은 주변의 듣는 귀가 많아 입을 다물었다. 남궁곤 가주도 얼른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남궁가에서 비급을 회수한 당시의 일과 가격은 외부에서 알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자자. 오늘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이리 세워둘 수는 없지요. 하하하하.”

남궁곤은 영단을 보자마자 피로가 싹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헌앙한 모습으로 예의를 갖추고 있는 옥비연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 옥 공자를 보여줘야지.’

“가서 한천과 소선을 데려와! 귀한 손님께 인사를 올려야 할 것이야.”

“!”

제갈진도 얼른 자신의 딸을 찾았다.

“저도 가서 제 여식을 데려오지요.”

“허허···.”

남궁곤은 자꾸만 옥비연의 신상을 캐물었던 제갈진을 향해 조그만 경계를 드러냈다.

“그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남궁가의 손님인데···.”

“일문의 문주께서 오셨으니 응당 인사를 드려야지요.”

차마 인사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

‘우리 소선이와 이어져야 할 것인데···.’

제갈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삼도상단과 길이 엇갈려 중간에 마주하진 못했지만, 결국 옥 공자는 제갈가의 사위가 될 것이오.’

“······.”

이미 남궁가와 제갈가의 일을 알고 있는 비연은 둘의 눈치만 보고도 앞으로의 고난을 예상할 수 있었다.

‘제길. 아무래도 낌새가···.’

툭.

비연은 자신의 옆구리를 치는 손길에 상념을 멈출 수 있었다. 송 영감이었다. 송 영감은 비연을 향해 조그맣게 말했다.

“정신 차려라.”

“예. 상단주님.”

이후 둘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요리가 올라간 탁자에 앉아 연신 남궁곤이 건네는 술을 받아야 했다.

“오늘 밤이 새도록 마셔야 하실 것입니다.”

“허허허.”

“오늘에서야 가주님께서 주시는 술을 받습니다.”

남궁곤은 옥비연에게 술을 따라주며 아직 연회장에 들어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녀석은 부른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와!’

.

.

.

사실 소선은 오라비의 벗이 장원에 온다는 말에 아침부터 소란을 떨었다. 소선은 한껏 치장하고 가주전에서 찾는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오라비와 함께 연회장으로 향했다.

늦을 이유가 없었지만, 연회장 앞에서 이유가 생기고 말았다.

“······.”

“······.”

두 여인이 연회장 앞에서 마주친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 힘든 일이었다.

또한 둘은 서로를 크게 의식하고 있었다.

‘누구지? 분명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화장을 했어.’

‘···남궁가주의 딸인가? 향후 일봉이 될 거라고 하더니···.’

한천은 두 여인이 인사도 건네지 않고 눈싸움을 벌이는 사이에서 난감했다.

‘얘들은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얼른 들어가서 자신의 벗을 만나고 싶었는데, 두 여인이 길을 막고 있었다.

‘설마 옥 공자님을 만나려고?’

‘일봉도 옥 공자님을 만나려고?’

그래도 자신의 집이라 소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처음 뵈어요. 남궁가의 소선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갈미입니다.”

“아. 제갈 가주님의 따님이셨군요.”

“···남궁가에 일봉이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요. 직접 뵈니 소문이 실제보다 크게 축소되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제갈미의 말투는 딱딱했지만, 내용은 칭찬이었다.

“허명입니다. 저보다는 제갈가의 여협이 일봉에 어울리는 용모를 갖추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공이 일천하다면 허황된 칭호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보다는 남궁가의 여협께서 더 어울리실 것입니다.”

웃지도 않고 서로를 칭찬하는 차가운 분위기에서 한천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나섰다.

“인사드리오. 남궁가의 한천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갈가의 미입니다.”

“두 분은 대화 나누시고···. 저는 먼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제 벗이 안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터라···.”

‘벗?’

“안에는 일파의 장문인과 세가의 가주님들이 계십니다만···.”

“삼도상단의 상단주와 상단의 후계자인 제 벗도 있습니다. 그러니 잠시 자리를···. 소선아 제발 길 좀 터라.”

“그럼 제가 먼저···.”

옥 공자가 한천의 벗이라는 말에 제갈미는 얼른 문 앞으로 향했다.

‘내가 불리하잖아!’

옥 공자를 노리고 왔는데, 장소부터 제갈가의 장원이 아닌 남궁가의 장원이었다. 거기다 옥 공자의 벗이라는 인물도 남궁가의 대공자였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한술 더 떠서 소선은 제갈미의 발 앞으로 자신의 발을 들이밀었다.

탓.

“제가 먼저 들어가 아뢰지요.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신 터라···.”

발을 뗀 제길미가 다시 소선의 발 앞에 자신의 다리를 앞세웠다.

탓.

“저도 가주님께서 부르셨습니다만.”

“······.”

한천은 두 여인이 길을 막아 또 들어갈 수 없었다.

‘이것들이···. 장난 지금 나랑 하니?’

이런 이유로 한천의 도착은 물론이고 제갈미와 남궁소선의 걸음까지 늦어지고 있었다.

“내가 먼저!”

“내가 먼저!”

여인들의 하염없는 기싸움은 계속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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