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8화 (148/232)

타구봉법(打狗棒法)

***

“······.”

“진무검은 포악하고 한번 결정한 일을 되돌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어. 태생이 고집불통에 안하무인이야. 과거 진무검은 진가장의 가주였으나, 관부의 참견으로 어쩔 수 없이 원로원에 들었으니 그 원망이 얼마나 컸을까. 이번에 관부의 일이 사실 아들의 밀고로 인한 것임을 깨닫고 그가 움직이리라 예상했지. 최소한 팔다리 중에 하나는 자르겠거니 싶었는데···. 죽여 버릴 줄은 몰랐군.”

“진가장은 문주님과 사사로이···.”

“나는 하오문의 문주 송재호다. 진가장은 몰라.”

“······.”

호충은 송 영감에게 말했던 것을 사중환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중환에게 천륜을 저버린 인물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사중환. 나는 전대 가주의 아들이 아니다. 내 친부는 따로 있다. 그래서 진가장엔 아무런 애정이 없어.]

“!”

[내 친부의 일은 아직 네게 말할 단계가 아니다. 그러니 지금은 그 이상을 묻지 마라.]

호충이 전음으로 말했기에 사중환도 입을 열지 않고 포권으로 답했다.

“······.”

“그래도 같은 섬서 땅의 일이니 조문은 가야할 것이야. 하지만 왕호는 진호현과 악연이니 어렵고···.”

하오문의 비급을 탈취하려 찾아온 진호현을 피떡으로 만든 이가 바로 왕호였다.

“···마땅한 놈을 어디서 찾는다?”

하오문을 대표해 보내는 조문이라 적합한 이를 찾기 어려웠다.

“진가장에 진행하시는 일이 있으니, 형수님을 보내시면 어떻습니까?”

“어이쿠. 개차반 같은 그 놈들이 화진이 손에 다 맞아죽는 꼴을 보고 싶어?”

“······.”

“특히 둘째 호중이 녀석이 전부터 화진에게 마음이 있었으니, 만나면 볼만할 거야.”

화진의 미모에 혹해 추근거리다가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질 모습이 선했다. 맹주가 된 진호현이나 다른 진가의 형제들이나 루방 방주인 화진의 무위에 한참이나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럼 방주급과 자장 출신을 제외하고 남은 이들은 각 지역의 흑패주 밖에 없습니다.”

“예의도 모르는 놈들을 어떻게 보내나? 그래도 머리가 조금 좋은 놈을 보내야 할 텐데···.”

“···머리가 좋은 놈이라면 문주께서 남경에서 거두신 녀석이 있지 않습니까?”

“아! 유도영 그 놈이 있었구나!”

마침 유도영은 하오문 수련관에 들어 수련 중이었다. 호충과 왕호가 사천으로 간 동안 남경의 일을 마무리하고 바로 서안으로 향한 것이다.

“그럼 수련을 잠시 멈추라 하고 유도영을 보내지요.”

“녀석이 수련을 버거워하진 않던가?”

“부족한 부분을 근성으로 때우고 있습니다. ···악바리 근성이 투철한 놈입니다.”

“내가 사람은 잘 본다니까.”

“하지만 무공이 아직 부족합니다만···.”

“그래도 심법은 배웠지?”

“심법은 기초 체력 단련 후에 가장 먼저 배웁니다. 지금은 숙달하고 내공을 축적하느라 밤낮이 없을 것입니다.”

“영단 하나 내려주고 잠룡진을 확실히 익혀두라고 해.”

“예. 문주님. 진행하겠습니다.”

“아. 사천(四川)의 성도(成都)에 마교지부 말이야. 더 들어온 소식은 없었나?”

일전에 황혼단 위지승이 찾아낸 성도의 비단 상회를 이르는 말이었다. 하오문은 경매가 끝나고 완전히 빠져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본래 성도에 살던 문도들이 남아 감시를 이어오고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감시를 이어가고 있는데, 문도들에게 강조하지 않았더니 들어오는 소식도 별로 없습니다.”

“잘 했어. 그냥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구나 정도로만 파악하면 되는 거야.”

마교는 호충이 장로를 잡아 죽였음에도 아직까지 마교를 노리고 벌인 일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왕 방주가 당시 잡아들였던 마교도를 전부 놔줬다고 전해주었는데···. 이유가 있으십니까?”

호충이 성도의 마교지부 일을 묻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왕호에게 듣지 못한 당시의 일을 물은 것뿐이었다.

“아. 그거?”

목을 치라고 했다가 다시 잡아두라고 말을 바꿨던 이들이다. 왕호는 경매가 끝나고 이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풀어주었다기보다 놓쳤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마교도들은 감시가 소홀한 틈에 자신들의 힘으로 도망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호충의 명령에 따른 일이었다.

“마교의 장로를 잡았는데, 잔챙이는 놔줘야지. 그래야 또 거물을 물고오지 않겠어?”

“아. 마교의 장로를···. 장로를···.”

의미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던 사중환이 그 의미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 마교의 장로를 잡으셨다고요? 장로급 마공의 고수를?!!!”

“큭. 내가 마한로 그 새끼 얼굴을 하고 도끼로 찍어버렸지. 거기다 다 잃은 줄 알았던 마교의 정보원들까지 모조리 돌려보냈으니, 하오문이 의심받을 일은 없을 거야.”

“왕 방주는 이 중요한 정보를 왜···.”

왕호도 분명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로급의 일이라 왕 방주에겐 입 조심을 당부했어. 그러니 사 방주에게도 입을 다물었겠지.”

“정녕 하오문과의 연결점은 남지 않은 것이옵니까?”

“경매 이후 흑림방에서 조금 더 감시를 이어갔는데, 녀석들은 계속 마한로만 찾고 있더군.”

“휴우···.”

“아직 하오문의 힘이 축적되려면 멀었어. 설마 내가 하오문에 해가 될 짓을 할까.”

“죄송합니다. 문주님을 탓하려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방주로서는 합격이야. 의심 가는 일이 있으면 확실하게 해결해야 해. 그 작은 의심이 하오문도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으니까.”

“하하. 예. 문주님.”

“그리고 하오문은 장로를 잡아 죽인 일보다 영단의 일로 마교의 관심을 끌었어. 서안 근방에 마교도가 속속 모습을 드러내겠지.”

“약방은 잘 숨겨두었으니 상관없지만, 하오문 본단은 어쩔 수 없습니다. 주변을 확실히 경계하지요.”

영단을 생산하는 의원들이 머무는 곳과 재료를 보관한 창고 등이 모인 약방의 위치는 하오문의 최상위 기밀에 속하는 정보였다. 하지만 하오문의 본단은 알게 모르게 알려진 상태였다.

“마교도 우리와 같이 잠룡진을 익혔다는 건 알지? 무공이 드러나지 않으니 찾기 쉽지 않을 거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지도자의 자질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려워도 계속 찾아내겠습니다.”

“음···. 이제 믿고 맡겨도 되겠는데?”

“언제는 안 맡기셨습니까? 문주님 안 계셔도 잘 했습니다.”

“크흐흐. 개방도를 본단 주변에 쫙 깔아놔. 녀석들 눈에 안 걸릴 놈은 없으니까.”

“오. 그것도 좋겠습니다. 어차피 할일이라곤 구걸밖에 없는 놈들이라···.”

오늘의 일의 대충 마무리되는 모양새라 호충은 일손이 부족한 수련관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럼 나는 수련관에 잠시 들르지.”

일손이 없지는 않지만, 방주급에 달하는 고수는 흔치 않았기에 직접 나서는 것이다.

“송 영감에게서 서찰이 오거든 바로 알려주고.”

“예. 그리합지요. 저는 그럼 진가장에 조문 갈 인원부터 차출하겠습니다.”

***

““핫!””

부웅.

하오문의 공통적인 일을 배우는 것은 함께하지만, 개방도로 구분된 수련생들은 말동이 따로 맡아서 수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일반 문도가 배우는 무공과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흑패에 속한 하오문도들은 보통 비도술인 류상비도(柳狀飛刀)와 파산도법(破散刀法)에 공통 경공술을 배우며, 개방 소속은 타구봉법과 공통 경공술이 전부였다. 개방의 타구봉법은 이름처럼 봉을 사용하는데, 보통 소림에서 배우는 일 장 길이의 장봉과 달리 반 장에 불과한 단봉이었다.

후줄근한 훈련복을 입은 수련생들이 일사분란하게 같은 모습으로 봉을 휘둘렀다.

“하압!”

부웅.

이들 앞에 선 인물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휘두르면 병든 개도 안 맞아준다. 처음부터 다시!”

“하압!”

부웅. 우웅.

수련이 이어지던 중에 호충이 그의 옆에 날아들었다. 극도의 경공술을 발휘해 소리도 없이 다가온 것이다.

탁.

“여. 이제 후개 태가 좀 난다?”

“헙! 문주님!”

““!””

문주라는 말에 수련생들이 깜짝 놀라서 손을 멈췄다.

““문주님을 뵈옵니다!!””

“됐어. 하던 수련이나 마저 하도록.”

““옙!””

부웅.

수련생들의 봉이 다시 타구봉법의 흐름을 따르는 동안 호충은 그 사이 변한 말동의 모습에 놀라는 중이었다.

“너는 또 컸어? 왜 자꾸 크냐? 이러다 나보다 크겠는데?”

“흐흐. 다른 건 이길 가능성이 없으니 이거라도 이겨야지요.”

“밥을 굶기라고 할까보다.”

“동냥하고 구걸하면 어딜 가서든 밥 굶겠습니까?”

“큭. 우리 말똥이가 후개 다 됐네.”

“저를 믿고 맡겨주셨으니 맡은 일에 충실해야지요.”

“너도 네 수련하느라 바쁠 테니 오늘 저들은 내가 맡으마.”

“거의 끝난 참입니다.”

말동은 개방 수련생들에게 자율 훈련을 명했다.

“지금까지 배운 타구봉법(打狗棒法) 초반 팔(八) 초식을 자다가 일어나서도 펼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연습한다! 실시!”

“실시!”

호충은 말동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아직 많은 남은 타구봉법의 초식에 관해서 물었다.

“이제 겨우 팔 초식이야? 남은 십육(十六) 초는 언제 배워?”

타구봉법은 도합 이십사(二十四) 초식으로 이루어진 개방의 상승 무공이었다. 혼자서도 펼칠 수 있지만, 숫자가 많을수록 거대한 힘을 발휘하는 이 무공은 익히기도 상당히 까다로웠다.

“이들에 남은 초식은 십육(十六) 초식이 아니라 사(四) 초식입니다.”

수련관에서 배울 수 있는 초식은 십이(十二) 초식이 전부였다.

“나중에 분타주 급이나 되어야 이십사(二十四) 초식을 허락할 생각입니다.”

“하긴···. 아무나 익힐 타구봉법이 아니지.”

이십사(二十四) 초식으로 이루어진 타구봉법도 익히기 어렵지만, 용두방주가 익히는 옥화타구봉법은 더했다. 이십사(二十四) 초식의 타부공법에 후반 십이(十二) 초식을 더해 삼십육(三十六)에 이르는 옥화타구봉법이었다.

“애초에 이 녀석들도 그리 욕심이 없어서 더 가르쳐준다고 해봐야 다 도망칠 겁니다.”

“풋. 지금은 십이(十二) 초식이라도 배우지만 나중엔 더 줄어들겠군.”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지요.”

“으이그. 놈들은 지금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도 모르지.”

개방 소속이 아닌 흑패는 그간 무림인들을 겪으며 무공을 부족함을 뼈저리게 실감한 이들이었다. 그래서 하오문이 가르치는 무공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개방 소속의 문도들은 무림인과 마주할 일이 많지 않았기에 무공을 익히는데 절실함이 부족했다.

“일부 개방도 중에 무림인을 경험한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분타주로 성장시켜 중원 전역에 뿌릴 예정입니다.”

“무림인은 어디 안 끼는 데가 없지.”

“또한 개방도는 무리를 중시합니다. 무리에 끼지 못하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더욱 강한 무리를 이룰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던 것이지요.”

거지도 급이 있었다. 아는 거지도 없이 아무 집이나 동냥하러 다녔다가는 집 주인이 몽둥이를 들기도 전에 근방의 거지들이 알아서 치워버린다. 남의 영역에서 동냥질을 했다는 이유였다. 거지들은 생존의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기에 양민들보다 더욱 잔인하고 포악한 행태를 보이기 일쑤였다.

“소속이라도 중시하면 다행인데···. 네가 너무 어리다고 무시하진 않고?”

거지들은 중늙은이가 태반이라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이 많을까 걱정이었다.

“녀석들이 조금이라도 불만을 드러내면 먼지가 일도록 두드리고 있습니다.”

“말 안 듣는 놈들은 매가 약이야. 몇 놈 뒈져도 뭐라 하지 않을 테니 손속에 자비를 남기지 마.”

“···예. 문주님.”

호충이 말동과 걸음을 옮긴 곳은 수련장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송 영감의 처소였다.

“어르신께서 일을 잘 마무리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알아서 잘 하겠지. 영감 나이가 있는데···.”

“그럼···. 봉을 들까요?”

자연스럽게 대련을 기대하는 말동이었고, 호충도 당연하다는 듯이 정원 구석에 진열된 단봉 하나를 들었다.

“이번엔 박자 잘 맞춰라. 흐름에 중점을 둬야해. 타구봉법은 나만의 흐름을 가져가면 필승을 노릴 수 있는 무공이야.”

“그 말씀은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지요.”

부웅. 후웅.

“그래도 못 알아먹으니 내 입이 아파도 또 잔소리를 하지 않겠냐?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소리니라.”

사악.

“······.”

자신이 봉을 휘두르면 붕붕 소리를 내는데, 호충의 봉은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제기랄. 이러다 오늘도 내 흐름이 깨지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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