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49/232)

얼씨구절씨구

***

상대의 흐름을 깨고 나의 흐름을 이어간다는 타구봉법의 핵심요결을 무수히 연마했고, 실제로 이 흐름을 유지해 활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주와 타구봉법을 겨루면 항상 자신의 흐름이 사라지고 문주의 흐름만 남았었다.

‘오늘은 결코 흐름을 놓치지 않겠다. 내가 문주님의 흐름을 깰 것이야!’

“힘은 쭉 빼고 가는 거다? 조금이라도 내공을 쓰면 뒈질 줄 알아.”

“물론입니다!”

내공을 써도 달라질 것이 없었기에 애초부터 내공을 제외하고 초식으로만 대련에 임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

“예!”

말동은 단봉을 움켜쥐고 자세를 잡았는데, 호충은 기수식도 없이 몸을 흐느적거렸다. 압권은 호충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근원을 알 수 없는 노래였다.

“쿵짝. 쿵쿵짝. 쿵짜라작작. 쿵짝짝~.”

“으익! 그딴 추임새는 하지 마시고요!”

호충은 단봉을 바닥에 끌며 건들건들 움직였다. 입으로 뱉어내는 박자와 하나도 맞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혼란! 문주님은 나를 혼란하게 만드는 거야!’

작은 긴장감이 말동의 가슴에 피어났고, 이것이 호충이 원하던 상황이었다.

“얼씨구~ 절씨구~ 들어간다아아아~~.”

“흐앗!”

‘문주님의 흐름을 깨트려야 해!’

말동이 먼저 움직였다.

“봉도라견(棒挑癩犬)!”

찰나의 순간에 단봉이 발출되며 허공에 흐릿한 잔상을 남겼다.

하지만 밑에서 쳐올린 말동의 단봉이 그린 궤적은 흐느적거리는 호충의 단봉에 걸려 있었다.

툭.

강력했던 봉의 속도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고, 곧 호충의 단봉에 말려 우상단으로 튕겨버렸다.

“읏!”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말동은 여전히 박자가 맞지 않은 노래를 뱉는 호충을 노려보며 공격을 이어갔다.

“하앗! 사타구배(斜打狗背)”

튕겨나간 단봉을 다시 사선으로 내리쳤지만, 호충은 철푸덕 바닥에 주저앉으며 피해버렸다.

“들어 간다아~~. 반절구둔(反截狗臀)”

주저앉은 호충의 손에서 단봉이 가로로 쓸려나갔고, 말동은 대경해서 위로 뛰어 올랐다.

“절씨구~ 당두봉갈(當頭棒喝)”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호충의 봉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따악!

말동이 두 손으로 단단히 잡은 봉과 호충의 봉이 마주쳤고, 그 사이 호충은 비어있는 나머지 손을 들어 말동의 눈을 찔렀다. 비겁하다고 할 수 있을 수법이지만, 엄연히 타구봉법에 정식으로 기록된 초식이었다.

“크악!”

“지랄났네~ 압견구배(壓肩狗背).”

손에서 봉을 놓아 회전시킨 호충이 막아선 봉을 피해 말동의 어깨를 봉으로 짓눌렀다.

“끅.”

“쿵쿵짝~ 안구저두(按狗低頭).”

어깨를 누르던 봉이 부드럽게 회전하더니 말동의 목을 짓눌렀다.

“컥!”

“쿵짝짝~ 발구조천(撥狗朝天)”

따악. 휘리릭.

호충이 휘두른 봉에 말동의 손에 들려있던 단봉이 하늘로 날아버렸다.

그제야 말동에게서 떨어진 호충이 단봉을 어깨에 척 걸쳤다.

“커걱.”

흙바닥에 굴러 먼지가 가득한 말동이 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커흑. ···감사합니다. 문주님. 컥. 컥.”

“이봐, 이봐. 제 놈의 흐름을 다 잊어버리곤 뭐? 귀에 피가 나도록 들어?”

“······.”

무기인 단봉까지 손에서 놓쳤기에 변명할 말이 없었다.

“네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아?”

“···왜 자꾸 흐름을 놓치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주님.”

“모르기는···. 그럼 네가 다른 놈들을 팰 때 어땠는지 생각해봐.”

개방도를 가르칠 때 말동은 항상 타구봉법을 쓰곤 한다. 맞으면서 익히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그때는 자신의 흐름대로 타구봉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사중환 패방주와 대련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타구봉과 사 방주의 타구봉은 서로의 흐름을 유지하며 대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오직 문주와 대련할 때만 자꾸만 흐름을 놓치고 만다.

“···다른 이들에게 타구봉법을 쓸 때는 제 흐름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주님과 대련하면 항상 제 흐름을 빼앗겨버립니다.”

“그땐 네 봉의 흐름에 오롯이 집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대련하면 너는 상대방인 나만 생각했지. 그러니 네 봉의 흐름을 잊은 거야. 네 평정심이 완전히 무너졌다.”

말동은 대련을 돌아보며 문주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문주님과 대련하며 내가 크게 긴장하고 있었구나!’

“!”

“처음 내가 흐름을 가져가며 박자를 맞췄을 때부터가 시작이다. 너는 내 박자에 신경 쓰느라 네 봉의 흐름에 집중하지 않았어. 그저 내 흐름을 깨는데 집중했지.”

자신이 아닌 상대에 집중하며 몸을 굼뜨게 움직였고, 자신의 흐름을 잊어갔다.

“···맞습니다.”

“너는 내 흐름을 깨는데 집중할 일이 아니라 네 흐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지해야 했다. 그랬다면 더 길게 대련을 이어갈 수 있었어.”

길게 이어가는 것이 전부인 대련이다. 어차피 이길 확률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문주님.”

“왜 이렇게 타구봉법이 익숙한지 모르겠단 말이야. 전생에 개였을지도 모르지. 하도 타구봉에 많이 맞아서 익혀버렸을지도? 개방의 용두방주는 내가 할까?”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야 절을 올릴 일입니다.”

“그래도 우리 말똥이가 올라갈 자리를 탐할까. 어서 자라서 후개 딱지를 떼고 용두방주나 해먹어라.”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문주님.”

“대련은 짧게 끝내고 우리 말똥이 고기나 먹일까? 뭐 먹고 싶냐?”

보통 대련과는 다른 태도였다. 왕호를 상대할 때나 사중환, 옥비연과 대련을 진행하면 생사대적을 상대한다는 각오로 실전과 같이 진행했다. 그런데 말동을 상대로는 온화한 봄바람과 같이 대련하고 식사까지 챙겨주고 있었다.

“고기 냄새 풍기면 개방의 거지들이 다 몰려와서 저희는 맛도 못 봅니다.”

“누가 여기서 먹자든? 나가자.”

호충은 얼른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고, 그 사이 말동은 수련복을 벗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말동은 호충 곁에서 함께 문을 빠져나갔고, 송재호의 얼굴을 했던 호충은 어느새 본래 진호충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이럴 때는 문주가 아니라 공자로 호칭이 변경되곤 했다.

“우리 말똥이 술은 내가 가르쳐줘야 하는데 말이야. 어때? 한 잔?”

“···공자님. 술은 아직···.”

“나중에 거지새끼들하고 술 배우면 어떻게 될 것 같냐? 네가 취해도 누가 말릴 사람이 없잖아.”

“······꼭 공자님께 술을 배우지요.”

호충과 말동이 함께 걷는 동안 하오문 본단에 포진한 거지들이 슬쩍슬쩍 눈길을 주고 있었다. 아까 지시한 일을 벌써 실행에 옮긴 것이다.

“저것들은 제대로 교육이나 하고 내보낼 것이지···. 저러다 다 들키겠네.”

“저는 녀석들에게 일을 맡긴 기억이 없는데···.”

“아까 할일 없는 놈들 경계나 세우라고 했어. 저 녀석들도 밥값은 해야지.”

“수련관을 수료하긴 했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은 놈들입니다. 제가 더 교육하지요.”

호충은 밖에서 하오문 경계를 서는 개방도들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이 앞에 꺼내놓은 바가지에 은전을 꺼내 던져줬다.

“가서 만두라도 사먹으쇼.”

“아이고. 나리. 감사합니다요.”

개방도는 말동이 후개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을 돌리며 눈길을 줄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호충은 더 멀리 가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아예 교육이 안 된 건 아닌 모양이야?”

“···하하. 매가 약이라 그렇습니다.”

말동에게 얻어터져가며 배웠기에 극도로 행동을 조심하는 개방도였다.

“나도 시간을 내서 타작을 해야 하려나?”

“하하하.”

호충은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객잔에 들어갔고, 몇 가지 요리를 시켰다.

“더 먹고 싶은 건 없고?”

“충분합니다. 시켜서 남기면 방도들 볼 낯도 없고요.”

“나와 같이 있을 때나 이렇게 먹잖아.”

“아닙니다. 본단에서 주는 식사도 훌륭합니다. 끼니만 제대로 챙겨도 어딥니까.”

“으이그.”

자장 배수패에 있을 때는 만두를 훔치다 걸려서 얻어맞기도 했고, 아예 굶은 날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에 비해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는 지금은 꿈에도 그려보지 못한 나날이었다.

“나 없는 동안 중환이 녀석이 잘 챙겨줬어?”

“예. 형님들이 잘 챙겨주십니다. 막내라고 많이들 예뻐하시고요.”

자장에서 잠시나마 흑패에 몸담았던 말동은 자장 흑패를 통틀어도 항상 막내였다. 덕분에 많은 형님들을 알고 지냈고, 지금 그 형님들은 대부분 하오문의 고위직이었다.

“아. 비연도 얼마 전까지는 같이 있었겠구나?”

“장위 형님도 가끔 들러서 저를 보고 가십니다.”

흑패와 배수패 뿐일까. 하오문의 문주인 호충도 말동을 아끼는 형님들 중 하나였다.

“마음껏 먹고 부족하면 더 시켜라. 이 형이 이번에 돈을 좀 많이 벌어 왔거든.”

“말씀은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감축 드립니다. 공자님.”

“오냐. 크흐흐.”

호충이 이번 무림맹의 행사로 벌어들인 돈은 실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우선 무림맹의 비급 탈취로 받은 보상금이 사백만 냥이었고, 경매로 벌어들인 돈은 물경 천만 냥에 이르렀다. 무림 방파의 자금을 박박 긁어모았고, 상단과 전장의 자금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흡수한 것이다.

“진짜는 앞으로야. 우리가 생산하는 상품은 앞으로도 쭈욱 시장에 통용될 테니까 말이야.”

만년석태의 냄새만 맡은 영단이었지만, 영단제조법을 충실히 따라 만든 고급 영단이었다. 만년석태가 떨어져도 비슷한 수준의 영약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체품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영단으로 벌어들일 자금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들으셨겠지만, 진가장에 부고가 있었는데···.”

“왜 너도 가서 조문하려고?”

“···아닙니다. 제가 갈 일은 아닌 듯 합니다.”

호충이 가야하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는데, 호충은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비연이 녀석이 진가장엘 가야하는데···.”

“형님은 너무 멀리 길을 떠나셔서 진가장까지 못 가실 텐데요?”

“그야 그렇지···. 요리 식겠다. 얼른 먹자.”

“옙!”

말동과 식사하는 중에도 호충은 비연과 진가장의 일을 떠올렸다.

‘···놈이 너무 개차반이란 말이지.’

진가장에 개차반이 한둘 이었던가.

‘나야 거리낄 일이 없어서 더 좋지만···.’

호충이 계획하는 일이 수면으로 드러나려면 아직 시일이 필요했다.

***

전대 가주의 부고로 상중(喪中)인 진가장의 식솔들은 예상 외로 차분했다. 이미 진원우가 원로원에 들어 이미 무림에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원을 방문하는 조문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진가장의 첫째인 진호현이 무림맹의 맹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조문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 문주님.”

“장문인께서도 와주셨군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일거에 들이닥쳤지만, 진가장은 마교의 습격 이후 다수의 무림인들을 맞아본 경험이 있어 수월하게 조문행렬을 소화하고 있었다.

“맹주. 아들이 이제 막 맹주가 되었는데, 고인께서 너무 서두르셨소. 아들의 영광을 더 지켜보아도 좋았을 것을···.”

“아. 당 가주님. 이래서 사람의 앞날을 모른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분명 서찰을 주고받았을 때는 강녕하셨는데···.”

서찰은 보낸 적도 없었지만, 이미 죽은 이가 일어나 반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맹주. 저희도 왔습니다.”

“크게 상심하셨겠습니다.”

남궁가, 제갈가는 겨우겨우 본가로 돌아갔다가 진가장의 비보에 다시 먼 길을 달려온 참이었다. 먼저 도착해 있던 화산파의 무환 장문인도 이들과 같이 돌아왔다.

“떠나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먼 길을 오시게 했습니다.”

“저희가 어찌 수고스럽다 하겠습니까. 부친을 잃으신 맹주의 비통한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이럴 때일수록 주변을 철통같이 경계해야 합니다. 남궁가의 무인들을 주변에 배치하고 혹여 있을지 모를 불상사에 대비할 것입니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맹주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맹의 일을 챙겨서 보고 드리지요.”

“여러분 덕분에 한시름 놓겠습니다.”

호현은 처연한 말투로 슬픔을 가장했지만, 속으로는 분노를 삼키고 있었다.

‘이제 막 맹주에 올라 무림을 질타하려던 차에···.’

하려던 일이 산더미 같은데, 아비가 비명횡사해서 자신의 길을 막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번 기회에 본가의 일을 정리해야겠어. 그래야 맹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림인들이 모두 내게 인사하러 오고 있으니, 맹주로서의 위치도 더욱 확고하게 알릴 수 있겠지.’

조문행렬이 뜸해졌을 때 호현은 호중을 불러들였다.

“형님. 부르셨습니까.”

“···앉아라.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예.”

호중은 아직까지 아무런 기색도 드러내지 않고 숨죽이고 있었다.

“셋째는 언제까지 두고 볼 생각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솔직하게 말하마. 그나마 일이 정석대로 흘러가 내가 맹주가 되었다만, 아직 본가가 안정되지 않아 마음이 불편한 참이다.”

“······.”

“네가 어서 가주에 올랐으면 좋겠구나.”

“···지금은 상중입니다. 이 일은 후일 다시 의논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내가 다시 장원에 올 일이 얼마나 되겠느냐. 내가 도와줄 수 있을 지금이 네겐 기회가 될 것이야.”

“···아직 중부전장을 대신할 자금력을 찾지 못했습니다.”

“네 대신 내가 찾아 두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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