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5화 (155/232)

도둑놈에 새끼

***

호충도 신투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생각을 마친 호충이 들었던 손날을 신투의 머리에 덮었다.

턱.

“!!”

신투는 온 몸의 털이 곤두섰고, 등줄기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재미있었냐?”

“······.”

신투는 얼른 몸의 내기를 순환하며 반격을 준비했지만, 평소 의지대로 움직이던 내기가 요지부동이었다.

“!”

‘제기랄! 몸이 움직이질 않아!’

내기가 끝이 아니었다. 몸도 마찬가지였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상대는 점혈을 쓰지 않았는데, 머리부터 온 몸에 퍼져나간 기운 때문에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용쓰지 마라. 어련히 알아서 방비를 했을까.”

호충은 신투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앞으로 돌아와 가볍게 다른 쪽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을 격한 지법이 공간을 넘어 뭉근한 기운을 쏘아냈고, 신투가 바라던(?) 점혈이 완성되었다.

투둑. 툭.

“!”

‘고, 고수! 그것도 절대 고수!’

허공에서 점혈을 사용하는 수법은 과거 무림 비사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기사였다. 애초에 여기까지 자신을 따라온 상대를 생각하면 자신이 감히 비벼보지도 못할 고수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음이다.

호충은 점혈을 끝내고 주변을 돌아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거 다 들고 나가려면 여럿 고생하겠네.”

과거 사중환과 마한로의 보물창고를 옮겼던 때가 떠올랐다. 이후에 정리했던 흑패주들의 비밀 금고도 마찬가지였다. 쌓인 금원보와 보물은 호충의 눈에 그저 짐일 따름이다.

“그럼 가볼까?”

“······.”

신투의 뒷덜미를 잡아 가볍게 든 호충은 진법을 역으로 이동해 안가를 빠져나왔고, 하오문 본단까지 빠르게 이동했다.

호충은 잠들었던 사중환과 송 영감을 깨웠고, 사정을 설명했다.

“···신투를 잡으셨다고요?”

“도둑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하오문 본단이 그리 허술했을 줄이야···.”

“우선 둘은 나와 같이 가자. 이 녀석이 무슨 무공을 익혔을지 모르니 이 녀석도 같이 가야겠네.”

신투가 이혈대법을 익혔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의심으로 여기까지 데려온 호충이다.

“어딜 가신단 말입니까?”

“신투의 보물창고.”

“!”

“!”

점혈을 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신투는 눈만 굴리고 있었다.

“······.”

“하오문을 턴 녀석이 어디까지 가나 따라가 봤는데, 거기에 지금까지 훔친 물건을 가득 모아놨더라고.”

“······.”

“······.”

“중원 무림에 신투의 비급을 얻었다고 둘러댔는데, 진짜가 나타날 줄은 나도 몰랐지.”

“허! 진짜로 있었다니···.”

“역시 문주님은 하늘이 내려준 복을 받으신 분입니다.”

“위치 알려줄 테니까 따라와. 진법이 설치되어 있어서 조심해야 할 거야.”

“예. 가시죠.”

“따르겠습니다.”

.

.

.

호충은 다시 움직였고, 사중환과 송 영감은 신투의 보물창고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건 정말···.”

“엄청난 규모입니다. 역시 신투!”

“내일부터 애들 데리고 와서 다 챙겨가. 흑림방 애들 시키면 딱이겠다.”

“우선 저는 하오문 전표부터 다시 챙기겠습니다.”

“그럼 저는 중요한 비급을 챙기지요.”

둘이 당장 들고 갈 물건들을 챙기는 동안 신투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내 돈! 내 비급! 내 보물!’

호충은 녀석의 얼굴에 가까이 눈을 가져가 바라보다가 아혈을 풀어주었다.

툭.

“지금부터 묻는 말에 똑바로 답해라.”

“···끄윽.”

“다람쥐는 한 곳에만 도토리를 모으지 않거든. 나머지 도토리는 어디에 모아 놨니?”

“!”

호충은 눈을 부릅뜬 신투를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또 있네. 또 있어.’

다람쥐의 습성은 항상 비슷했다. 한 곳에만 먹이를 저장하지 않고 곳곳에 저장고를 만들어두는데, 가끔 잊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대부분이 비슷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다람쥐가 아닌 인간의 경우 잊어버렸다고 말하길 좋아했다.

“자. 형이 마음은 넓은데 말이야···. 말 많이 하는 건 질색이거든?”

호충은 오랜만에 품에서 회칼을 꺼냈다. 오랜만에 꺼내는 회칼에 호충은 날이 상하지 않았는지 살피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처음이라 봐준다. 간단하게 설명할 테니까 두 번 설명하지 않도록 잘 들어.”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신투의 허벅다리 위에 회칼이 거꾸로 섰다. 호충은 회칼의 손잡이만 살짝 잡고 있었기에 날카로운 칼끝은 살을 조금 파고들었다.

“끅.”

“지금부터 묻는 말에 거짓말을 하거나 입을 다물고 있으면 이 칼이 네 몸으로 쑤욱 들어갈 거야. 알았지?”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담백한 설명이 오히려 신투의 심장을 옥죄고 있었다.

“···예.”

“그래. 방금 대답 잘 했어. 네 머리가 좋아서 다행이네. 대답 안 했으면 우선 박아 놓고 시작할 생각이었거든.”

호충은 품에서 다른 회칼을 꺼내 다른 쪽 허벅지에 올려두며 말했다.

“내가 칼이 좀 많아서 말이야. 하나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하, 하문하십시오.”

“다시 같은 질문이야. 네 다른 안가는 몇 개나 있냐?”

“······.”

신투가 잠시 머리를 굴리는 사이 여지없이 회칼이 허벅다리를 파고들었다.

푸욱.

“끄악!”

신투가 비명을 지르건 말건 질문은 이어졌다. 물론 박히지 않은 나머지 회칼에 손을 올린 채였다.

“다시 질문. 다른 안가는 몇 개나 있냐?”

“하, 하나가 더···.”

푸욱.

“아악!”

어차피 호충은 두 다리에 모두 칼침을 놔줄 생각이었다.

“두 번 말하기 싫다고 그렇게 얘길 해도 알아듣질 못 하네···.”

호충은 느긋하게 유엽비도를 꺼내 신투의 발목에 올려두었다.

“자아. 이번 질문에도 같은 답을 하면 네 발목이 날아간다. 쉬운 질문이야. 남은 안가는 몇 개?”

“셋! 셋 입-”

호충의 손에 들린 유엽비도가 빙글 돌아 회칼이 꼽혀 있던 자리 옆에 다시 박혀들었다. 차마 발목을 자를 수 없었던 탓이다.

푹!

“끄아아악!”

“그나마 답이 달라져서 봐줬다. 다시 질문할게. 남은 안가는 몇 개?”

“다, 다섯!”

“에효. 얘는 내 비도가 더 없을 줄 아나? 이번엔 진짜 발목 날아간다?”

호충은 품을 열어 가득 꼽힌 유엽비도를 보여주며 하나를 더 빼들었다.

그 모습에 신투의 입이 다시 열렸다. 발목이 잘리고 싶지는 않았던 탓이다.

“열! 진짜 열입니다! 더는 없습니다!!”

고개를 저은 호충이 사중환을 불렀다.

“패방주. 이리로.”

“옙!”

“얘가 방금 ‘진짜’, ‘더는 없습니다.’라고 했거든? 너는 어떻게 생각해?”

사중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진짜 더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자, 잠깐···.”

신투의 입이 다시 열리는 와중에 호충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파바박.

순식간에 비도 세 개가 신투의 허벅다리에 솟아났다.

“끄아아아!”

사중환은 신투의 비명에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문주님. 손을 거두십시오.”

“······끄으윽.”

신투는 신음을 내면서 속으로 말리는 이를 응원했다.

‘그래! 저 새끼 정신이 나간 놈이야! 빨리 멈추게 하라고!’

하지만 곧 이어진 사중환의 말은 신투를 절망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이런 잡스러운 일은 저희에게 맡기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

사중환은 문주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에이. 이 재미있는 일을 어떻게 남에게 시키나?”

“!!”

“문주님도 이제 점잖은 일을 하셔야지요. 언제까지 손에 피를 묻히시려고요. 지금까지 문주님이 묻은 놈이 대체 몇입니까.”

“!!!”

“간만에 건수가 생겼는데···.”

아쉬움 가득한 호충의 말에 사중환은 신투가 아연할 말을 태연하게 했다.

“저희 하오문에 이런 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가가 있습니다. 단 오 일이면 중원 전역에 존재하는 신투의 안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오 일? 왜 그렇게 늦어? 얘 먹이고 재우면서 물어볼 거야? 전문가는 아무나 해?”

“삼 일 내에 끝내지요.”

“이틀 준다.”

“···옙!”

“···끄윽. 끅.”

신투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열다섯. 정말 더는 없습니다요.”

하지만 아무도 신투의 말에 관심이 없었다.

“그럼 패방주가 알아서 해. 난 손 뗄 테니까.”

“예. 문주님. 맡겨 주십시오.”

“문주님! 살려주십시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대로 전문가의 손에 맡겨지면 목숨을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까지 제가 신투로 이어온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저벅.

호충은 신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제대로 말했으면 이런 일이 없잖냐. 형이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인데···.”

“다 말씀드릴 터이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면? 너 어차피 또 도둑질이나 하고 다닐 거잖아.”

“···배운 게 도둑질이라···. 하지만 그만 두라하시면 앞으로 하지 않겠습니다.”

“흠. 좋은 기술 배워놓고 안 써먹으면 그것도 문제지.”

“!”

“패방주.”

“옙! 문주님.”

“이 새끼 잘 고쳐서 써먹자. 응?”

“······벌써 이 녀석의 다리가 병신이 됐는데, 앞으로 도둑질은 힘들지 않을까요?”

녀석의 허벅다리에 꼽힌 칼만 벌써 여섯 자루였다.

“아. 이거?”

퓻!

호충은 아무렇지도 않게 녀석의 허벅다리에 꼽힌 칼을 하나 뽑았다.

“끄악!”

사중환은 피가 솟구치리라 예상했지만, 잠잠했다.

“어라?”

“혈 자리를 피해서 찔렀다. 통각은 건드렸지만, 내기가 흐르는 혈도와 혈관은 전혀 상하지 않았으니 상처만 아물면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어.”

“······.”

‘하지만 이미 칼을 맞은 놈을 무슨 수로 하오문에 충성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사중환의 염려는 이어진 호충의 전음으로 불식시킬 수 있었다.

[녀석은 우리가 회수한 보물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하오문에 합류할 것이다. 협조하면 잘 써먹고 적당히 챙겨줄 수도 있겠으나, 수틀리면 정리해버려라. 대신 신투의 안가는 확실히 챙겨.]

“써먹는 건 나중 일이지요. 녀석이 안가를 제대로 부는 가 봐서 결정하겠습니다.”

호충은 신투를 보며 다시 말했다.

“···우리 패방주가 그렇다네? 이제 네가 죽고 사는 건 네 몫이다?”

“···다시 기회를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리만 멀쩡하면 얼마든지···.’

다시 자신의 재물을 빼돌릴 자신이 있었다.

퓻.

“끅!”

“엄살부리지마 새끼야. 형이 안 아프게 찌르느라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데.”

“죄, 죄송합니다.”

퓻.

“흡!”

퓻.

“으읍!”

신투도 칼이 뽑혀 나오는데 피가 나지 않는 것이 기이했다.

‘정말 피가 나질 않아···. 금방 회복할 수 있을지도···.’

그 와중에 훅 질문이 들어왔다.

“야. 네 이름이 뭐냐?”

“어···.”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 감춰둔 전장까지 탄로 날까 두려웠다. 전장의 자금은 마지막까지 밝히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푸욱!

“끄앗!”

뽑혔던 칼이 도로 허벅다리로 박혀들었다.

“패방주! 이 새끼 이거 또 시작이야!”

“아휴. 저희한테 맡기시라니까요. 이 새끼 살던 마을과 친지들까지 모조리 불게 만들겠습니다.”

“저, 저는 종태소입니다.”

“애용하는 전장은?”

“···흐흑. 황금전장입니다.”

“그래? 거긴 고객의 비밀을 잘 지켜준다지?”

“부디 선처를···.”

“설마 우리가 네 껍데기까지 벗겨 먹겠냐? 먹고 살 정도는 남겨 줄게.”

“······.”

얼마나 남겨줄 지는 저들의 마음이었다.

“패방주. 그때 그 새끼는 얼마 남겨줬더라?”

마한로를 떠올린 사중환은 당시 마한로가 챙긴 금액을 알고 있었다.

“아마 금원보 하나 남겨주셨지요? 그 정도면 먹고 사는데 지장 없습니다.”

“······.”

여기 눈에 보이는 금원보만 해도 산더미였는데, 그 중에 단 하나만 남겨준단다. 절로 욕이 나왔다.

“에라이. 도둑놈에 새끼···.”

“뭐?”

호충의 손에 들린 비도를 보자 끓어오르던 화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문주님. 제가 도둑놈에 새끼라는 말씀을 드리려던 참입니다. 자비하신 처분에 이 도둑 새끼가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려 했습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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