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6화 (156/232)

인구 증가의 원흉

***

호충은 회칼을 닦아 다시 품에 넣었고, 유엽비도 또한 조심스럽게 빼서 하나씩 품에 넣으며 물었다.

“조상대대로 신투 일을 했나?”

여전히 호충의 손에 들린 칼을 보며 신투는 급하게 대답했다.

“옙!”

“성혼은 했고?”

“······.”

신투가 또 입을 다물었지만, 이번엔 호충도 다시 칼을 쓰지 않았다.

“이건 인정. 마누라와 자식까지 위험하게 만들면 애비 자격이 없지.”

“······저, 저는 항상 혼자입니다.”

“됐어. 괜찮아. 도둑 새끼도 마누라 만나서 애 새끼 낳고 살 수 있잖아. 누가 뭐래?”

“제발···. 문주님.”

“패방주.”

“옙!”

“마누라와 자식도 있다니까 금원보 열 개만 남겨주자.”

“어휴. 문주님은 마음이 너무 넓으셔서 큰일입니다.”

“······.”

그래도 신투의 입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조상대대로 모은 보물인데···.’

혹여 문제가 될까봐 장물을 많이 빼돌리지도 않았다. 추적이 불가능한 일부만을 사용했고, 나머지는 다람쥐처럼 모으기만 한 것이다.

‘저걸 써보지도 못하고 전부···.’

안사람도 아직까지 자신이 신투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철저하게 비밀을 지켰는데, 오늘 모든 것이 끝장나 버렸다.

“나 참···. 그래도 마누라에 자식까지 있다니까 좀 그르네. 패방주. 좀 더 챙겨줄까?”

“무공도 익힌 놈이 제 앞가림도 못하겠습니까? 알아서 잘 살 겁니다.”

호충은 신투의 다리에 꼽혀있던 칼을 모두 뽑아내고, 막아둔 혈도까지 풀어준 다음 다시 물었다.

“아. 맞다. 야. 네 경공은 쓸 만해 보이더라? 대도신투의 경공이 담긴 비급은 어디 있냐?”

“······.”

마치 자기 주머니에 있는 것을 꺼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질문이었다. 신투는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 수가 있었다.

“선조님의 무공이라 저기···. 가장 높은 곳에 모셔두었습니다.”

신투의 손이 가리킨 곳은 동혈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구멍이 보였다.

녀석이 왜 순순히 비급의 위치를 불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안가에 진법을 설치할 정도로 꼼꼼한 녀석이 저길 그냥 뒀을까?’

또한 호충은 그런 놈이 제 본명을 함부로 입에 올릴 리 없다고 생각했다.

“큭. 이 새끼는 포기를 모르네. 야. 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종태소라고 말씀드렸사온데···.”

“아냐. 분명 네 이름이 또 있을 거야. 전장마다 다른 이름을 썼겠지.”

“!”

녀석의 빠른 발을 생각하고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누구의 집이든 신출귀몰하게 드나드는 신투가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며 같은 이름을 사용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큭. 왕호 녀석을 데려왔으면 깊은 공부가 되었겠어.”

신투의 거짓말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에서 진위를 가려내는 일에 진심인 왕호라면 녀석의 태도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저기 작은 구멍엔 분명 기관장치가 마련되어 있겠지. 진법까지 남아 있는 안가에 어찌 기관장치가 없겠어? 다들 저기 근처로 가지 마.”

“옙!”

“예. 그리 하지요.”

“······.”

신투는 가까이 가지도 않고 기관장치의 존재를 맞추는 하오문의 문주가 기가 막혔다.

“왜? 내가 너무 많이 알아냈나?”

“······살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아 암담합니다.”

“어째서 사람을 못 믿니? 살려는 준다니까 그러네?”

“······.”

신투는 하오문주의 환한 미소가 너무도 두려웠다.

‘내가 정말 살 수 있을까?’

“전장 하나는 남겨주랴?”

“!”

작은 안도감이 들 찰나에 질문이 갑작스럽게 이어졌다.

“네 마누라는 몇이냐?”

“!”

“역시 한둘이 아니었어. 그래도 각 성마다 따로 마누라를 두고 있는 건 아니지?”

“!”

“와 이 새끼 능력도 좋네. 힘이 남아 도냐? 뭐 좋은 거 먹어? 같이 좀 먹자.”

“무, 문주님.”

곁에서 대화를 듣던 사중환도 혀를 내둘렀다.

“허. 그건 전문가도 못 알아내겠습니다. 문주님. 그냥 문주님이 알아서 하시지요.”

애초에 이런 질문을 던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신투는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었다. 마치 하오문주가 자신의 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네 마누라들부터 찾아봐야겠네. 자식들까지 모아놓고 잔치를 열면 볼만하겠어. 지식들이 죄다 제 아비가 왔다며 달려들겠지? 패방주. 중원 전역에 애들 풀어서 이 새끼 자식하고 마누라 다 찾아봐. 잔치 한 번 열어보자.”

“예! 문주님. 녀석의 용모파기를 그려서 맡기면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개방 놈들하고 중원 전역의 흑패와 기루까지 동원하면 달포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신투는 하오문이 얼마나 거대한 문도를 휘하에 두었는지 파악하고 있었기에 사중환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도가 최소 십만이라 했다. 중원의 모든 성에 하오문도가 활동하고 있으니···.’

“혀, 협조하겠습니다! 문주님!”

“안하려고 했어?”

“···꼭 협조하겠습니다. 그러니 제 식솔은 모르도록···.”

“너 하는 거 봐서 새끼야.”

“···옙!”

“너 해구신도 찾아 먹냐?”

“!”

“얼씨구? 대체 자식이 몇이야? 백?”

“······.”

“백 아닌 것 같고···. 오십은 넘냐?”

“!”

“육십?”

“!”

“하! 중원에 왜 이렇게 인구가 많이 늘어나나 했더니 다 이 새끼 짓이었네.”

“으으···.”

신투는 갑자기 물어오는 질문에 자꾸만 반응하게 되는 자신이 견딜 수 없었다.

“그럼 그 중에 네 후계자도 있겠네? 하나? 둘? 몇이나 키워?”

“그, 그만···.”

“본단으로 돌아가서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적당히 챙겼으면 가자. 나머지는 내일 챙겨!”

“예! 문주님.”

이후 호충은 신투의 목덜미를 잡아들어 다시 하오문 본단으로 돌아왔고, 사중환 손에 고이 넘겨주었다.

“야. 종태소라고 주장하는 놈.”

“···예. 하지만 저는 정말 종태소입니다.”

“내 손에서 벗어났다고 마음 놓지 마라. 네가 비협조적이라는 소식이 들리면 나와 다시 대면해야 할 거야.”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문주님.”

호충은 품을 뒤적거리며 칼을 찾았다.

“나 참. 자꾸 적극 비협조 하겠다는 말로 들린단 말이지.”

“저, 정말입니다!”

“···내가 너 지켜본다. 알았지?”

“옙!”

“패방주. 녀석 데려가서 치료해주고 다리에 쇠사슬이라도 걸어놔.”

“그냥 자르는 편이···.”

“!!!”

“에이. 애가 놀라잖아.”

‘아까도 발목을 자른다고 말만하고 결국 자르지 않았지. 하오문주가 내 다리는 자르지 않을 생각···.’

“그런 얘긴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하든가···.”

“죄송합니다. 이후에 다시 말씀드리지요.”

“······.”

이들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신투는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흠양신이라 합니다.”

“네 이름?”

“예. 문주님. 제발 두 다리만 멀쩡하게 남겨주십시오. 신투의 전인에게 다리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보물입니다.”

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중환에게 말했다.

“이봐. 애가 얼마나 놀랐으면 본명까지 부냐? 다리를 자르긴 왜 잘라?”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자르려거든 팔을 자르란 말이야. 다리가 아니고.”

“아. 이해했습니다.”

그렇다고 팔이 잘리긴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흐흑. 문주님. 팔도 제발···.”

“뭐 이 새끼야? 바라는 게 자꾸 많아지네? 너 하오문이 만만해 보여? 아니면 내가 만만해?”

“제발···. 그 이상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좋아. 거기까지 받아준다. 패방주.”

“예. 문주님.”

“이 새끼 말 안 듣거든 거시기를 깔끔하게 도려내고 황궁에 내관으로 보내버려.”

“!!”

“!!”

“팔다리 빼면 자를 게 없을 줄 알았냐?”

“···허흑. 흐흑.”

사중환도 차마 남성의 상징을 자르고 싶진 않았다.

“무, 문주님. 그건 좀···.”

“왜? 너무하다 싶어?”

“녀석이 하오문에 헌납할 것이 많지 않습니까. 부디···.”

“말 안 들으면 자르라니까? 누가 이유 없이 자르래?”

“그럼···.”

“딱 봐서 거짓말이다 싶으면 부랄 한 짝 자르고, 또 거짓말하면 나머지 부랄도 떼어내고! 마지막엔···.”

호충은 회칼을 빙글빙글 돌리며 무언가를 자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커흑. 이 흠양신! 무조건 하오문에 협조하겠습니다! 문주님!”

호충은 신투의 머리칼을 야무지게 움켜쥐고 녀석의 얼굴을 위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꽈악.

“끄윽!”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 동물인지 내가 잘 알아. 특히 너 같은 놈은 돌아서면 마음을 바꿔먹지.”

“아, 아닙니다. 하오문에 협조를···.”

“협조가 아니라 충성이다. 중원 전역의 도둑들이 하오문 휘하에 들었는데, 너만 단독 행동을 하시려고?”

“하오문에 충성하겠습니다!”

“그럼 네 경공과 기술을 하오문의 도둑들에게 전수해라.”

“!”

“싫어? 이것보라니까. 내가 돌아서기도 전에 마음을 바꿔 먹잖아? 당장 한 쪽 알부터 떼어볼까?”

“하, 하겠습니다! 모조리 다 전수하겠습니다.”

“네가 할 일을 일러주마. 하나, 너는 신투의 모든 안가를 소상히 지도에 기록하고 출입 방법을 적는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

“둘, 하오문의 도둑들에게 네 무공을 전수한다.”

“이미 전수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셋, 네 식솔이 거주하는 위치와 숫자를 소상히 적는다. 중원 전역의 하오문도를 통해서 이중으로 확인할 생각이야. 하나라도 빼먹으면 바로 자른다?”

“···그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나중 일이긴 하다만···.”

호충은 신투의 머리채를 놓고 다시 조심스럽게 정돈해주며 입을 열었다.

“향후 네가 도적패(盜賊牌)의 모임인 하오문 도방(盜放)을 맡아 이끈다.”

“예, 옛?”

“도둑질은 네가 최고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는 전 중원 도둑들의 수장이 되어 세상을 질타해라. 마지막은 너를 위한 상이니 거절하지 말고.”

“···정녕 저를 하오문에서 쓰려하십니까?”

“밖에서 그렇게 도둑질을 하게 놔둘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러다가 칼 맞아 죽기 딱 좋다. 세상에 너 만한 무공을 이룬 이가 없을 것 같으냐? 내가 아는 이들만 해도 수두룩하다. 지금까지 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아서지 네 무공이 높아서가 아니야!”

“신투의 무공은 지금까지 실패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네 무공은 아니지. 너는 대도신투가 아니라 그의 전인일 뿐. 지금 네 무공 수준은 객사하기 딱 좋은 수준이다. 네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혼자 활동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야.”

“···제 무위는 문주님이 아니시면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뭘 믿고 맡기십니까?”

문주의 무위는 감쪽같이 자신을 속이고 따라온 경공과 은형술로 짐작할 수 있었으나, 주변의 인물들은 아무리 봐도 자신보다 하수였기 때문이다. 하오문주가 없다면 언제든 자신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풉!”

“끕!”

“······.”

호충과 사중환이 비웃음을 참지 못했고, 송 영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기껏해야 일 갑자를 겨우 넘긴 내공으로 자신감이 과하지 않소?”

“···내가 가진 내공을 어찌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대는 그마저도 없어 보입니다만?”

“허허. 난감한 지고···.”

“영감. 그러지 말고 그냥 보여줘.”

“허락해주시니 그럼 조금만 선보이겠습니다.”

송 영감은 월하답보의 후반부 중에서 주변에 영향을 덜 주고 손으로 펼칠 수 있는 월광난무를 골랐다. 그나마도 끝까지 펼치는 것이 아니라 초식을 펼치기 전 준비단계에 불과했다.

“이것이 나의 소월(小月)이니라.”

송 영감의 오른손바닥 위에서 희미한 구체가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은은하게 빛을 더하기 시작했다. 월광난무는 이렇게 만들어진 소월(小月)을 수십 개 만들어 전 방위를 점하는 초식이었다.

덜덜덜덜.

신투 흠양신은 처음 보는 무공의 신묘함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대도신투의 무공은 경공과 은형술에 특화되어 있었을 뿐, 상대와 대적하기 위한 초식은 극소수였다. 덕분에 상대의 무위를 파악하고 도주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그 결과 대도신투는 누구보다 상대의 무위를 파악하는데 주요한 무공을 창안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흠양신은 잠룡진으로 풀어낸 송 영감의 내공을 느끼고 놀란 것이었다.

‘노인장의 내공 수위가···. 대체 몇 갑자나 되는 것인가!’

“그건 너무 약해 보이지 않나? 차라리 패방주가 보여주는 편이 좋겠어.”

“옙!”

사중환은 이때다 싶어 등에 꼽아둔 쌍단창을 뽑아들었고 내공을 감추는 잠룡진을 풀어냈다.

부웅. 부웅.

“간다!”

순식간에 두 개의 단창에서 봉강(棒强)이 솟아났고, 그대로 흠양신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패방주. 애 잡을 일 있어?”

우뚝.

사중환은 쌍단봉은 흠양신의 머리 한 치 위에 멈춰 있었다.

“끕!”

“제가 설마 대가리를 뽀개려고 했겠습니까? 이 녀석이 하도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니까···.”

호충의 말에 대꾸하느라 강기에 실린 경력이 살짝 녀석의 코에 닿았다.

푸학.

“어! 쟤 코피 나잖아. 거 조심 좀 하지!”

“아차차.”

잠시간의 소란이 끝나고 흠양신은 자신의 위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

‘···용담호혈. 감히 하오문을 털려고 했다니···.’

양쪽 코에 천 조각을 구겨 박아 넣은 녀석의 몰골은 볼만했다. 다리는 대충 천으로 감아두었고, 아무렇게나 끌려 다녀 옷도 흙투성이였다. 개방도라고 해도 믿어줄 정도였다.

“아휴. 얘를 어쩌면 좋냐.”

“시간이 약이지요. 저보다 강한 이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을 알면 조금 얌전해 질 겁니다.”

흠양신은 자신보다 강한 이들이 여럿이라는 말에 몸을 움찔거렸다.

‘이들이 전부가 아니라면, 대체 얼마나 더 많은 강자들이 하오문에···.’

“패방주는 저 새끼나 얼른 데려가서 치료하고 재워. 곧 해 뜨겠다.”

“예. 문주님.”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