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7화 (157/232)

송옥과 반안

***

칙칙하게 죽은 눈을 하고 있던 신투 흠양신은 사중환의 손에 들려 밖으로 나갔고, 송 영감과 호충이 남았다.

“저 놈은 보물찾기 끝나면 수련관부터 시작해야겠어.”

“내공은 금제해야겠지요?”

“그야 당연하지. 말똥이 놈에게 제대로 굴리라고 해야지.”

“저도 패방주와 말동을 도와 수련관 일에 조금 더 나서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고. 그래도 영감은 쉬엄쉬엄해. 뼈마디가 욱신거릴 나이잖아.”

“허허허. 인형설삼에 영단까지 먹여주지 않으셨습니까. 요즘은 몸이 삼십대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뭐···. 조금만 더 정진하면 환골탈태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진짜 삼십대로 보일지 모르지.”

“······.”

송 영감은 환골탈태라는 말에 작은 기대감을 갖고 물었다.

“그 조금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래 걸릴까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한데, 영감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발전한다고 가정하면···. 오십 년?”

“···그냥 이렇게 살다 죽겠습니다.”

“큭큭. 농담도 못해? 잘 하면 십 년 내에 대성을 이룰 수도 있을 거야. 월하답보가 워낙에 대단해서 말이지.”

월하답보도 그렇지만, 송 영감이 취한 영약 인형설삼과 영단의 힘이 이를 가능케 해줄 것이다.

“허허허. 그렇습니까?”

“벽을 넘기 전에 내게 따로 배울 것이 있으니 함부로 시도하지는 마.”

“환골탈태에 관련한 무공이라도 있으십니까?”

“정답.”

“오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내 진신무공이야. 송 영감도 이걸 익혀야 환골탈태에 이를 수 있을 거야.”

호충은 환체강림천(換體降臨天)을 송 영감에게만 전수할 생각이었다.

“···그런 무공이라면 나중에 태어날 문주님의 손에게 물려주십시오. 저는 이대로 족합니다.”

“무공이라고 생각할 필요 없어. 의술의 하나라고 생각해줘.”

“문주님···.”

“어허. 괜히 잘 알지도 못하는 환골탈태를 시도하다가 송 영감을 잃으면 난 어떻게 해?”

“무림에서 누가 환골탈태를 알겠습니까. 모두 같은 위험을 감수하겠지요.”

“난 아는데? 나도 환골탈태한 몸이거든.”

송 영감이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문주님은 젊으신데···.”

호충을 젊다고 표현한 것은 점잖은 표현이었다. 어리다고 해야 옳았다.

무림엔 환골탈태에 관한 전승이 있었다.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였는데, 환골탈태를 이루는 무림인은 보통 중년 이상의 고수였고, 높은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나이는 되어야 환골탈태에 이를 정도의 공력을 쌓아 시도라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천수에서 내가 쑥 컸잖아. 그때 환골탈태를 해서 그렇게 된 거야.”

“···죄송하지만, 그때 문주님은 젊어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한참 고생한 것처럼 나이를 먹어 돌아오지 않았던가. 환골탈태는 반로환동을 동반한다고 했었다. 그때의 호충은 오히려 반동환로를 보여주었다.

“···문주님이 주신 비급으로 환골탈태를 이루면 오히려 나이를 먹는 건 아닙니까?”

“어···. 그 이유는 나도 확실치 않은데, 아마 내가 너무 어려서 성장하지 않았나 싶어. 그래도 영감이 환골탈태하면 젊어지지 않을까?”

직접 해당 비급으로 환골탈태를 이룬 호충도 확답하지 못하니 송 영감이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정확하지 않으신 거지요?”

“성공한 사례가 나밖에 없으니까 나도 확신할 순 없지.”

“······문주님의 진신무공은 나중에 천천히 익히기로 하지요.”

“나 못 믿어? 송 영감이 날 못 믿으면 누가 날 믿어?”

“문주님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비급을 믿지 못하는 겁니다.”

“에잉. 이거 되게 좋은 건데···.”

“제가 환골탈태로 반로환동을 바라는 것은 문주님의 자손을 제 손을 키울 정도로 오래 살기 위함인데, 거꾸로 나이를 먹어버리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이거 빨리 애부터 낳아야 하는 건 아닌가 몰라.”

“어휴. 그건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왕야께서 아시면···.”

황실의 직계인 호충이 혼례도 올리지 않고 덜컥 애부터 낳으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호충도 송 영감이 무슨 생각으로 한 말인지 뻔히 알고 있었다.

“걱정도 팔자야. 내가 벌써 뭐라도 됐어?”

“······.”

“어찌됐건! 나중에 벽에 막힌다 싶으면 얼른 말 해.”

“예. 문주님.”

.

.

.

호충은 송 영감을 돌려보내고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미래의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걸 따질 일이 아닌데···.’

아직 일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짐작은 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대계에 성공해 황좌를 차지하면···.’

자신은 황제의 적장자이니 태자가 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호충은 아무리 생각해도 황실의 생활이 자신과 맞을까 염려스러웠다.

‘꽉 막힌 예법과 틀에 박힌 나날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왜? 안 해!’

답은 ‘못 한다’가 아니라 ‘안 한다’였다.

또한 태자가 영원히 태자로만 살아가는 일은 없다. 태자가 바뀌는 일이 없다면 태자는 적절한 때에 황제에 오르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황제는 해 볼만 하겠네.’

머리 위에 아무도 없다면 황궁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볼 수 있을 터였다.

“에이! 괜히 잡생각만 들게 만들고 말이야.”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떠오르는 상념을 날린 호충은 얼른 거처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버지는 잘 계시려나?’

호충은 잠들기 전 마교도와 함께 움직이고 있을 아버지를 떠올렸다.

***

마교의 교주전.

마교는 무림맹의 설립을 방해하고 싶었지만, 지금 진행 중인 대계가 있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파 무림의 일에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정파의 무림맹 결성 과정에 일어난 모든 일을 요약한 보고서가 교주의 손에 올라와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딱딱딱.

교주는 보고서를 읽으며 신경질적으로 팔걸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보고서의 내용 중에 교주의 심기를 크게 거스르는 문구 때문이었다.

[사천 성도 홍태소 장로 사(死)]

“사천 성도의 홍태소 장로가 대체 왜!?”

딱딱딱.

교주의 손톱은 계속해서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고, 부복한 인물의 이마는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마교의 부교주 신분이었지만, 교주 앞에서는 그저 교도 중 하나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 놈의 종적은 묘연하고? 하! 이걸 보고라고 올렸단 말인가? 부교주!”

준비도 없이 이런 보고를 올린 것은 아니었다.

“···녀, 녀석의 용모파기를 신도들에게 전파하였고, 종적을 찾아냈습니다. 지금 혈무단이 쫓고 있습니다.”

마한로는 누가 자신을 쫓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이니 어찌 짐작할 수 있겠는가.

“어디로 도주했지?”

“···호북성 죽산 근처입니다.”

사천 성도에서 호북 죽산까지는 이천 리가 넘는 거리였다.

“사천 성도에서 도주한 놈이 호북까지 갔어?”

“녀석을 생포해 교주전에 바치겠나이다.”

“감히 신교의 장로를 죽인 놈이다. 실력이 없다고 생각한 것부터가 오류가 아닌가! 그리고 신교에서 정보원이나 관리하는 혈무단이 무슨 수로 녀석을 잡아!”

“홍태소 장로의 마지막을 멀리서 지켜본 혈무단원이 있고, 혈무단주 또한 홍 장로님의 사인을 분석하고 내린 결론입니다. 홍태소 장로가 상대를 크게 경시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입니다. 녀석의 실제 무공은 형편없습니다.”

“혈무단주가 확언했다면···.”

혈무단주 팽리자는 사체만 보고도 당시 일어난 모든 것을 파악하는 전문가 중에 전문가였다.

“혈무단주는 녀석을 놓친 일을 마무리하지 않고서는 교주님을 배알할 면목이 없다고 합니다.”

“······.”

교주는 자꾸만 생겨나는 예상외의 일들에 무척 심기가 불편했다.

딱딱딱.

‘진가장을 도모하는 일부터 시작이었지.’

진가장에 갑자기 나타나 교의 일을 방해한 은거 고수는 여태 종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녀석 덕분에 산서에서 뿌리내린 신교의 영향력이 극도로 축소되었다.’

산서성에서 빼낸 인력을 외부로 돌려 중원으로 파견하고 대계에 투입할 수 있었지만, 두 개로 분할되어 있던 정파 무림이 무림맹이라는 구심점을 만들어냈고, 기껏 사천에 파견한 유능한 장로까지 잃고 말았다. 교주는 이 모든 일에 뭔가 연결점이 있을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혈무단에 확실히 일러라. 녀석을 잡는데 총력을 기울이라고 해.”

“···예! 교주님!”

“그리고 하오문의 영단은 어찌 되었지?”

중원 무림의 동향을 파악한 보고서엔 하오문의 경매와 영단에 대한 것도 가득 적혀 있었다.

“······아직 이옵니다. 아무리 값을 높여 불러도 황금전장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교주도 아직 풀린 영단 물량이 많지 않아 수급에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두 배를 더 불러서라도 가져와! 삼도상단도 영단이 있다고 했지? 거기도 들쑤셔봐!”

“복명!”

“중원의 떨거지들이 경매에서 챙긴 비급의 진위는?”

“경매 후 녀석들의 반응이 잠잠한 것으로 보아 모두 진본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거액을 주고 입수한 비급이 진본이 아니었다면, 정파 무림에서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었다.

“하. 대계를 코앞에 두고 있는데···.”

바람만 불면 날아갈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던 정파 무림이 오래전 실전했던 비급을 되찾았고, 내공을 성장시킬 영단까지 확보하고 있었다.

사실 정파에서 무림맹을 창설한다고 했을 때만해도 위기감을 느낄 수 없었다. 종이호랑이가 아무리 모여 봤자 종이호랑이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급과 영단이 더해지며 발등에 불이 떨어져 버렸다.

“비급이 진본이라 해도 익히는데 시일이 소요됩니다. 아무리 영단이 십년의 내공을 늘려줘도 신교의 전사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합니다.”

“비급이 풀렸으니, 심산유곡에 숨어들 무림의 인사들을 생각해야지! 녀석들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과거의 유진을 이어나갈 것이야!”

교주는 신교가 중원을 차지하고 난 다음의 일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번에 풀린 무림 방파의 비급은 과거처럼 회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진가장에서 신교의 일을 방해한 파진후가 바로 그 사례였다.

“파진후라는 놈의 전례를 보고도 모르겠나?”

“···파진후 놈을 찾는 것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진가장의 전대가주가 급살을 맞아 근방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하! 녀석이 조문이라도 올 것 같은가?”

“혹시 몰라서···.”

“이미 놓친 녀석은 놔두고 하오문주나 확실히 파악해! 지금 중원에서 가장 위험한 놈이 바로 녀석이다!”

“하오문의 방비가 심상치 않습니다. 알고 하는 짓인지 모르오나 외부에 문도를 가득 배치하고 하오문 본단 내부를 감추고 있어서···.”

“이번 경매로 녀석들이 챙겨간 자금이 얼마인 줄이나 아느냐! 녀석들이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혈무단이 홍 장로를 해친 놈을 잡아오면 서안으로 급파하겠습니다.”

“혈무단에 은마단을 더해서 하오문에 보내. 황금전장과 삼도상단에서 영단을 찾는 것보다 하오문에서 찾는 것이 빠를 것이다.”

“!”

“하오문이 경매에 선보인 비급은 전부가 아닐 것이야. 분명 더 많은 비급을 감추고 있을 터. 은마단을 통해 하오문에 잠입, 비급과 영단을 탈취하고 하오문주를 잡는다. 하오문주는 혈무단을 통해 입을 열도록 만들어라. 비급과 영단 말고도 숨겨둔 것이 또 있을 것이야.”

“···예! 교주님!”

.

.

.

부교주가 보고를 마치고 나간 다음 교주는 여전히 팔걸이에 손톱을 튕기고 있었다.

딱딱딱.

‘하오문주. 이런 놈은 또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진가장의 파진후부터 시작된 교주의 근심이 하오문주까지 이어진 것이다.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 것이야!”

분을 참지 못한 교주는 순간 마공을 끌어올렸고, 흰자위가 검게 변하며 이글거리는 검은 기운을 내뿜었다.

콰직.

움켜진 손아귀에 팔걸이가 가루로 변해 바닥으로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검게 물들었던 교주의 눈은 곧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분노는 여전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

호충은 기다림 끝에 서안 하오문 본단에 도착한 비연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문주님. 삼도상단 옥비연이 복귀인사 올립니다.”

“이제 상방의 방주 아니었어?”

“···어르신께서 벌써 허락을 받으신 모양입니다.”

“허락이고 뭐고···. 노인네가 다 늙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데, 내가 뭐라고 해.”

“부족하지만 맡겨주신다면 이끌어보겠습니다.”

“상방은 당연히 비연이 맡고···. 제갈미와 남궁소선도 맡아줘야지?”

호충이 둘을 거론하자 비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

“어쭈? 답이 없다?”

“제가···. 꼭 맡아야 합니까? 명하시면 따르지요.”

“에헤이. 농담도 못하겠네. 내가 다른 놈에게 넘길 수 있게 방법을 다 찾아놨지. 루방주가 송옥과 반안이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잘생긴 놈을 찾아놨다고 했거든. 그 녀석이 옆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면 두 여인이 어찌 견딜까. 하하하.”

“······.”

비연은 문주의 말을 듣고서야 두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하는 모습을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꽃처럼 아름다운 두 여인이 다른 남자를 향해 달려가 안기는 모습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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