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공파]
“거참. 미안하게···. 자꾸 아는 것만 쓰면 내가 민망하잖소.”
호충은 가볍게 고개를 틀어 비도를 피하며 쏘아진 침공파의 기운을 회칼로 튕겨냈다. 그리고 곧장 회칼을 앞으로 찔러 들어갔다.
슉. 추주죽.
회칼은 잠깐 사이 마화평의 몸을 수차례 왕복했다. 회칼에는 호충의 은밀한 내기까지 들어 있었기에 앞으로 마공을 사용할 수 없을 터였다.
“꺼흑.”
“···많이 잡수셨소? 동생의 마지막 접대라 생각해주시오.”
“시, 신교는 너를···.”
호충은 마화평이 마지막 저주를 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몸을 벌벌 떨고 있는 마화평의 귀에 조그맣게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지켜주어 고맙소. 아버지 대신 비도까지 맞아주시다니···.”
“!!”
“몰랐소? 왕야께서 내 부친이시라오. 내가 바로 왕야께서 잃으셨던 부인의 아들이라오.”
“!!”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
사악.
호충의 피 묻은 회칼은 마화평의 목을 빠르게 스쳐지나갔고, 피분수와 함께 끝을 고했다.
푸악. 투둥.
“······.”
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보던 호충은 부릅뜬 마화평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간 아버지에게 무례한 복수요.”
이제 마교의 손에 아버지를 남겨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스윽.
호충은 아버지와 함께 사라진 묵혈단이 어디로 향했는지 확인하고 신형을 뽑아냈다.
파앙.
***
집결하라!
***
진휘평은 아들이 듣길 바라며 소리쳤다.
“날 어디로 데려가느냐!”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대인.”
오른쪽에 붙어 있던 녀석이 그나마 윗선이었는지 왼쪽에 있는 녀석에게 명령했다.
“너는 대기 중인 마승단으로 가라. 가서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전하고 지원을 요청해라. 빨리 가야 장로님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예!”
왼쪽의 인물은 곧장 신형을 뽑아내 옆으로 빠졌는데, 그의 신형은 멀리가지 못했다.
슈욱. 투웅. 치익. 퉁퉁퉁.
“!”
빠르게 날아든 비도가 녀석의 목을 몸에서 떼어낸 것이다. 그 바람에 경공으로 날아가던 몸은 바닥을 끌며 앞으로 밀려나갔고 목은 더 멀리 공처럼 튀고 있었다.
“!”
“!”
“네 놈들만 처리하면 오늘 일을 아는 놈들은 없다는 뜻이지?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구나.”
“제길!”
진휘평을 두고 검을 뽑아 앞으로 나선 녀석은 앞으로 나선 것보다 빠른 속도로 뒤로 날아갔다.
퍼엉!
마교의 윗선을 치우고 거칠 것이 없어진 호충이 전력으로 경공을 발휘해 권을 날린 것이다.
“······.”
굳게 주먹을 쥐고 진휘평 옆에 서있던 호충은 몸을 털고 아버지를 향해 지극한 예를 보였다. 무릎을 꿇고 머리와 손을 땅에 올려 깊이 절을 올린 것이다.
“불초소생.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허허허. 어허허허허. 아들. 내 아들···.”
호충도 아버지와의 해후를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른 녀석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호충은 진휘평을 들쳐 업었다. 그리고 빠르게 북선기루로 향했다.
파앙!
.
.
.
“잠시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몇 년을 숨죽이고 기다렸는데, 잠시는 아무렇지도 않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아버지 진휘평을 내실로 모신 호충은 아직도 바글바글하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담주환을 불렀다.
“담 패주.”
“어?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문으로 나섰던 호충이 기루 안쪽에서 내려오니 하는 말이었다.
“연회는 끝이다. 지금부터 나를 도와라. 할 일이 생겼다.”
“!”
“빨리 정리하고 애들 집합시켜.”
“옙!”
문주의 환영 연회에 모였던 이들이 돌아가고 승장흑패의 중요 조직원만 남아 있었다.
“모두 집합했습니다. 문주님.”
“승장에 시체가 몇 구 나올 것이다. 내게 당한 놈들이니 접근하지 마라. 녀석들의 일행이 챙겨갈 것이다.”
마교도의 주검에 다가갔다가 괜한 오해를 받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담 패주는 우선 마차를 최대한 확보해서 승장 밖으로 내보낼 준비를 해라. 마차 안에는 아무나 태우고 마차는 승장흑패의 문도들이 몰아야 할 것이다.”
“예.”
“그리고 임 루주는 이 서찰을 루방주에게 추가로 전해라. 아까의 서찰보다 이것이 더 중하다.”
호충은 잠깐 사이 작성한 서찰을 북선기루의 루주인 임소란에게 전했다.
“예. 문주님.”
“또한 기루 내실에 모신 분이 있다. 내가 시중을 들어야 할 정도로 귀한 분이다. 그러니 다른 이들은 접근을 금한다.”
“···예. 문주님.”
“그리고···. 담 패주. 곧 승장에 일단의 무리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이들을 분산시키려면 담 패주가 맡은 일을 틀림없이 실행해야 할 것이야.”
“마차를 준비하는 일은 차질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마차를 검문하려는 이들이 있을 터, 그들과 마주치면 검문을 거절하지 말고 응해라. 장사를 위해 떠나는 것이든, 유람을 위해 떠나는 것이든 이유는 알아서 만들어내고.”
“예. 문주님.”
외부로 마차를 내보내는 이유는 마교의 무리를 꾀어내기 위한 궁여지책에 불과했다.
‘화진이 여기 올 때까지 버텨야···.’
아버지를 승장에서 빼내려면 하오문 방주급의 고수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곧 마교의 공세가 시작될 시점에 하오문의 방주들을 모두 빼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거기서 선택된 인물이 바로 자신의 연인 화진이었다.
“주변을 철저히 확인해라. 그렇다고 적대하진 마라. 그들은 너희가 상대할 수준의 무인이 아니다.”
“······.”
“······.”
호충은 그 말을 끝으로 위로 다시 올라갔다. 아버지와 논의가 필요한 일이 있었다.
***
“···아들.”
“아버지···.”
호충은 다시 제대로 인사하기 위해 예를 차리려 했지만, 진휘평은 아들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품으로 안았다.
“······.”
“관여치 말라니까···. 뭐 하러 예까지 와서 피를 보느냐.”
“계속 관여해 왔습니다. 남경에서도 문관들과 접촉하시는 아버지를 멀리서 지켜봤습니다. 지금 아버지가 처한 상황도 파악하고 있고요.”
“······.”
호충은 진휘평의 품에서 빠져나와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마교의 손아귀에 계속 남아계시라 했지만, 제 마음이 불편하여 빼낼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이르긴 했지만, 어차피 행해질 일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아직 그들은 누가 마화평과 장문소를 비롯한 마교도를 죽였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돌아 가야해.”
“가지 마십시오. 대계를 실행할 이들과 제대로 소통도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나와 함께하던 마교인들이 황제에게 정보를 전할 설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대계는 물거품이야.”
“그들은 아버지와 제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습니다.”
“······.”
“특히 대계가 완성되는 시점에 아버지를 제거할 가능성이 큽니다.”
“!”
“그들의 손에 누가 있는지 잊으셨습니까? 아버지께서 태자인 녀석을 아들로 삼으시면 녀석들은 다루기 쉬운 녀석을 통해 이후의 일을 진행하지 않겠습니까.”
“···거기까지 생각했더냐?”
“지금 마교의 눈을 가린 것은 미봉책입니다. 하지만 향후 아버지의 생사가 걸린 일에 계책의 완성도를 따질 수는 없습니다.”
“···내가 어찌하면 되겠느냐.”
“이미 변방의 대장군을 만나셨을 것입니다. 이들은 주변국의 잦은 침략을 훌륭히 막아내며 민심을 얻었지요. 문관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가까이 두십시오. 장군들을 통해 대계를 이루셔야 합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만난 모든 문관과 무관들이 마교인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마교도와 같은 수준으로 능력을 갖춘 이들이 많아야 대처할 수 있을 터였다.
“제가 하오문의 문주입니다. 아버지.”
“···지금까지 내가 확인한 마교도들이 몇 인줄 아느냐? 오늘 네가 죽인 마교인들은 행적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소화했을 뿐이야. 근방에 최소 수백의 인원이 상주하며 마 장로를 따르고 있었고, 남경의 문관들 주변, 장군들 주변에 상주하는 마교도를 더하면 최소 일천 이상이 될 것이다!”
“······하오문의 문도 수는 십만이 훌쩍 넘습니다. 마교 따위와 비교하시면 섭섭하지요.”
“!!”
“아버지께서 과거의 인연을 만나시는 동안 저는 중원 전역에 하오문을 심었습니다.”
“주, 중원 전역?”
하오문이 이렇게 커졌을 줄을 어찌 짐작했겠는가. 불과 몇 년 전에 아는 이들과 문을 세우고 있었던 아들이었다.
“마음이 맞는 이들 몇이 전부라고 하지 않았더냐?”
“···아버지를 만난 시점에 이미 천 단위는 훌쩍 넘었습니다. 중원 전역의 하류 잡배가 하오문과 함께하고 있으며, 이후 하오문은 중원의 정파 무림의 구성원이 되기도 했지요.”
“······.”
“하류 인생이라고 해도 모이면 만만치 않습니다. 지금 하오문은······.”
호충은 현재까지 하오문이 이뤄낸 성과를 나열하기 시작했고, 진휘평의 턱은 더 이상 벌어지지 못할 만큼 벌어졌다. 그리곤 호충의 말이 끝나기까지 한참이나 입을 벌리고 있어야 했다.
“파리 들어가겠습니다.”
“합!”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진휘평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기루와 흑패는 그렇다 치는데, 상단까지 운용한다고?”
“거지들도 빼지 마시죠. 앞으로 이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될지 짐작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
“여기에 무림 방파인 남궁가와 제갈가, 화산파가 하오문에 뜻에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의 맹으로 거듭난 무림맹은 마교의 시선을 확실히 잡아둘 것이니, 우린 그 사이 마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대계를 실행에 옮기면 됩니다.”
“무림방파들까지 포섭을 끝내?”
“어차피 무림맹은 마교와의 대립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 무림맹의 수뇌로 자리하고 있으니, 맹을 움직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마교의 손아귀에 잡혀 놀아나는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구나.”
“아버지께서 하신 일과 쌓은 인연이 어찌 가볍겠습니까. 아버지께선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하셨고, 그 성과가 곧 아버지 앞에 놓일 것입니다.”
“허허. 허허허.”
진휘평은 아들이 마교를 대체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근방에 네 휘하의 인물이 몇이나 되느냐.”
“급작스럽게 아버지와 만난 터라 핵심인력은 조금 기다리셔야 하옵니다. 지금은 본래 승장에서 활동하던 이백여 명이 전부입니다. 이들은 아버지께 시간을 벌어줄 것입니다. 우선 이번에 만나고 돌아오신 변방의 장수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이들도 아버지께 손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부터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들 주변에 잠입하고 있는 마교도를 치워야 합니다. 장군들과 문관들이야말로 주도적으로 대계를 이끌어갈 인물들입니다. 이제 제가 마교의 역할을 맡을 터이니 이제부터 함께하시지요.”
“그렇다면 숨죽이고 때를 기다려야겠군.”
“···한 가지 드리지 않은 말씀이 있습니다.”
“응?”
“소자 아버지와 마주하기 전 미래를 약조한 여인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제가 기다리는 지원군은 그녀가 이끌고 올 것입니다.”
진휘평은 오랜 시간 마교의 손에 붙잡혀 아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그런 아들에게 인연이 생겼다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네게 해준 것이 없거늘 내가 뭐라고 하겠느냐.”
“그 마음이 나중에도 변치 않기를 바랄뿐이옵니다.”
“그럴 일은 없다. 네 어미와 그리 헤어진 나다. 그런 내가 아들의 인연을 함부로 하겠느냐.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헤헤. 그러실 줄 알았지요.”
“예쁘냐?”
“젊은 시절 어머니의 반은 따라갈 겁니다.”
“오오. 경국지색이라는 말이렸다?”
“하하하.”
큰 위기를 벗어나 부자가 함께하는 첫 날이었다. 진휘평은 아들의 긴장을 풀고 싶었고, 아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서로 가벼운 대화로 시시각각 다가오는 마교의 위협을 잠시라도 잊고자한 것이다.
‘만나보시면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화진의 미모가 경국지색이라고 한 말에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
화진은 승장으로 가는 길에 호충의 서찰을 받아볼 수 있었다. 화진의 여정을 루방의 기루가 모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가께서 서찰을? 벌써 승장에 도착하셨나보네?”
“예. 승장에서 출발한 서찰이옵니다. 모두 두 건 이온데, 전부 가장 빠르게 보내라 하셨다고 합니다.”
“어디보자···.”
첫 번째 서찰은 호충이 승장으로 가던 중에 화진에게 남긴 연서였다.
[나는 지금 마치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무기력해. 마치 구름에 붙잡힌 것처럼···.]
“!”
깜짝 놀란 화진이 서찰을 주르륵 읽어 내려갔다.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야. 그대의 손을 잡으면 자욱한 안개가 내 눈앞에 펼쳐져. 그대가 내게 오면 내 머리에선 징이 울리고 머리는 하얗게 비어버리거든.]
“휴. 놀래라.”
첫 문장은 그만큼 자신을 애정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특유의 강조법이었다.
“가가는 장난꾸러기.”
이어진 연서는 어디서도 읽지 못했던 사모곡이었기에 화진은 마지막에 눈을 붉히며 서찰을 고이 접어 품에 넣었다.
“좋으십니까? 방주님?”
“좋지. 그럼. 자은 너도 어서 낭군을 만들어보렴.”
“문주님 같으신 분이 어디 흔히 있겠습니까.”
“호호호. 그야 그렇지.”
화진은 얼른 다음 서찰의 봉투를 뜯어 읽기 시작했다. 연인의 또 다른 사모곡이 들어있으리라 짐작한 것이다.
[루방주는 당장 승장으로 출발 할 것!]
“!!”
화진은 눈을 부릅뜨며 서찰에 집중했다.
[루방의 기녀들 필요. 변방의 장군들 곁에 둘 연락원 필요. 승장에 루방의 연락체계 구성 필요. 루방의 중요 인원을 호출, 대동하고 무력을 갖출 것. ······.]
하나같이 중요한 정보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대인 구출 완료. 변방에 재방문 예정. 남경 마교의 감시자들은 곧장 지울 것. ······.]
그 와중에 화진의 눈에 들어온 문구는 하나였다.
‘가가께서 마교와 충돌하셨다고?’
[대인를 지키던 마교도 전원 살(殺). 또 다른 마교 무력단 남아있음. 정보 교란을 위해 작업 진행 중. 승장 입구의 마교도를 따돌릴 방책을 마련할 것.]
와락.
서찰을 구긴 화진이 입을 열었다.
“마차를 멈춰!! 날랜 경공을 갖춘 루방도만 나서라. 나와 먼저 출발할 것이다!”
이미 화진은 승장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도착한 다음이었다. 마차를 타면 마교와 마주할 것을 염려해 경공으로 이동, 야음을 틈타 승장으로 진입할 계획이었다.
“자은! 너는 서찰을 받아온 광평기루로 가서 루방의 소집을 전해.”
“루방의 소집! 범위는 어디까지로 하시겠습니까.”
“루방의 중요 간부와 정보단! 그리고 투입할 루방의 정예 기녀들.”
“!”
“전부 승장으로 집결하라고 해!”
“옙!”
“아. 지필묵부터 가져와. 남경 루방에 하달할 새로운 명령이 있어.”
화진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