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화 (168/232)

승장 탈출

***

“···도무지 종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단주님.”

“······.”

마승단은 벌써 며칠이나 지났음에도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승장을 나서는 마차는 물론이고, 길목마다 나가는 이들을 확인하고 있사온데···.”

“내부는.”

“단주께서 명하신대로 승장 내부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으나, 흉수의 종적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진 왕야를 봤다는 이가 없습니다.”

“···마 장로님과 장 교사님을 비롯한 묵혈단이 당해낼 수 없었다면 우리가 흉수들을 찾지 못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지도 못한 왕야는 아니지! 작은 실마리도 없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야. 왕야의 등에 날개라도 달렸단 말이냐!”

“묵혈단이 가장 마지막에 흉수를 마주한 곳에서 왕야의 발자국을 찾았사온데, 거기서부터 족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경공이 뛰어난 흉수가 왕야를 납치한 것이 분명합니다.”

“왕야가 누구인줄 알고!”

“군부에서 나섰다면···.”

“승장은 우리 마승단이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다. 말을 끌고 왔다면 우리가 알았을 것이야. 그리고 군부는 잠잠하다. 왕야에게 벌어진 일을 전혀 모르고 있어.”

“···승장을 더 수색해보겠습니다.”

“윗선에서 내려온 명령은 없었나?”

“예···. 다른 장로님이 오실 것은 분명한데, 지금은 어떤 분이 오실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후우.”

마승단주는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지키던 진 왕야가 감쪽같이 실종되었으니 누구에게 책임을 묻겠는가. 일차적인 책임은 묵혈단과 장문소, 마화평에게 있을 것이나, 이들은 이미 명을 달리 했기에 책임을 묻는 다면 마승단 외에 없었다.

“제길. 대체 어떤 놈들이···.”

“놈들이 아닙니다. 단주님.”

“뭐?”

“충돌이 있었던 장소의 족적을 파악한 결과···. 흉수는 하나였습니다.”

“······.”

“저도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흉수는 단 한명입니다.”

“묵혈단과 화경에 달한 장로님까지 상대했는데, 고작 하나였다고? 흉수의 무위가 교주님과 동급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다시 파악해보겠습니다.”

“분명 여럿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일이다. 일행 중 가장 높은 신분으로 보이니 왕야를 납치했을 것이야.”

“······.”

높은 신분의 인물을 납치했다면 연락을 취해야 옳지 않겠는가. 납치를 한 이들이 무슨 목적으로 행한 일인지 아직도 오리무중이었다.

“교주님의 화를 감당하고 싶지 않거든 무조건 찾아라.”

“···예. 단주님.”

.

.

.

마승단이 승장 안팎을 뒤지는 동안 루방의 인물들은 이미 내부로 들어와 있었다.

“방주님. 저곳이 북선기루입니다.”

“보는 눈이 많구나. 흩어져서 진입할 것이다. 모두 채비하여라.”

“예.”

기녀들이 기루로 들어가는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기녀들이 북선기루로 하나 둘씩 들어섰다. 가장 먼저 북선기루로 향한 것은 화진이었다.

“!”

화진을 확인한 북선기루의 기녀가 화들짝 놀라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화진의 말이 먼저였다.

“조용. 위로 안내해라.”

“···예.”

방주의 등장에 잔뜩 몸을 움츠린 기녀가 화진을 위로 안내했다. 하지만 내실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기녀의 발이 멈추었다.

“이 이상은 저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문주님의 명이 있으셨습니다.”

“가 보아라. 계속해서 루방의 인물이 들어올 것이다. 너는 그들을 안내 하여라.”

“예. 방주님.”

화진은 내실로 향하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흐흡. 후우.”

연인의 부친을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게다가 연인의 부친은 황실의 직계인 왕야 신분이라니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여전히 긴장을 감추지 못한 화진이 기척을 하려 문에 손을 가져갔는데, 벌컥 문이 열리며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얼마나 급하게 온 거야? 서찰이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가가···.”

“우선 왕야께 인사부터 올리자.”

“아! 예.”

화진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가만히 절을 올렸다.

“천것이 왕야를 뵈옵니다. 천세천세천천세.”

“허허. 일찍도 왔군.”

“하시는 일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밤잠을 줄여 달려왔나이다.”

“고개를 들라.”

화진은 눈을 들어 왕야와 마주하지 않고 얼굴만 들어보였다. 그럼에도 화사한 미모가 실내를 환히 밝히고 있었다.

“허허. 네 어미의 반에나 미칠까 싶다더니···. 호충이 네가 농을 했구나.”

“······.”

화진은 조신한 모습 그대로 입을 열지 않았고, 호충은 화진이 모르고 있을 것이라 여기며 말했다.

“화진. 이분이 내 친부시다.”

“···예. 이미 들어 알고 있사옵니다.”

“어? 송 영감이 알려줬나?”

“···하오문의 수뇌는 알아야 한다 하셨지요. 방주들을 모아놓고 모든 정보를 공유하셨습니다.”

“얼씨구. 나 없는 사이에 그 입을 나불거리셨어?”

“덕분에 조금 일찍 출발 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왕야께서 하시는 일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가께 도움이 되려고 하신 일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셔요.”

“···송 영감이 하는 일은 뭘 해도 잘 풀린단 말이지.”

“호호호.”

“······.”

‘초연. 우리 아들이···. 미래를 함께할 여인과 함께 왔다오. 참으로 고운 아이요.’

과거 자신도 부인으로 맞이한 북궁초연과 저렇게 환히 웃으며 대화했었다. 진휘평은 아들과 함께하는 여인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

‘그대가 보았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우리 아들이···. 아들이···.’

호충은 아버지의 그렁그렁한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몸의 어미를 떠올리셨구나.’

“아버지. 저와 미래를 약조한 여인입니다.”

“네가 나를 닮기는 닮은 모양이구나. 중원 최고의 미인을 어찌 찾았을꼬?”

“하하하. 미모만 뛰어나겠습니까.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혜롭고, 현명한 여인입니다.”

“······.”

푸근하게 화진을 보던 진휘평이 물어왔다.

“양친께선 무고하신가?”

“······.”

“······.”

화진의 직업을 묻는 것만큼이나 민감한 질문이었다. 기루에 팔려오고부터 연이 끊어진 화진의 부모가 아니던가.

“아버지 그게···.”

호충이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지만, 화진이 먼저 나섰다.

“오래전 부친을 여의었고, 모친께선 차를 재배하고 계십니다.”

“?”

호충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힘들게 살았겠어.”

“···어미 홀로 저를 돌볼 수 없으셨기에 어려서 헤어져야 했지만, 이후 연이 닿아 작은 차밭을 마련해드렸나이다.”

[왜 말을 안 했어?]

호충의 전음에 작게 고개만 젓는 화진이다.

“너무 염려할 것 없네. 호충이 녀석도 나 없이 어미 손에서 자랐네. 또한 어미를 일찍 잃었고 홀로 세상을 산 것과 다르지 않으니, 내가 아들의 연인에게 무얼 요구하겠는가. 그저 둘이 좋다면 그걸로 되었네.”

진휘평은 화진의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화진은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삼키며 답했다.

“···망극하옵니다.”

“헌데···. 호충아.”

“예. 아버지.”

“대계는 험한 길이다. 여인이 걷기에는 무리가 아니겠느냐.”

여인의 몸으로 피가 난무할 역천의 길을 걷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 화진은 화오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입니다.”

“!”

“제 손에 죽은 마화평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도이지요.”

“허. 무림의 여협이셨군.”

“그저 스스로 몸을 보호할 정도지요. 아드님께서 베푸신 은혜로 익힐 수 있었사옵니다.”

“허허.”

인사는 이만하면 되었다 생각한 호충은 이후의 일을 진행하려 했다. 지금까지 숨죽이고 있었던 것은 화진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아버지. 이제 화진이 왔으니 변방의 부대로 가셔야 할 것이옵니다. 마교의 손길이 승장에 남아 있습니다.”

북선기루에 숨어 있었지만, 언제 마교의 무리가 들이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상대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하오문과 마교가 전면전을 벌이면 호충이 함께 하는 곳 외에 모든 곳에서 패배할 것이다.

“방법은?”

“변방의 장군들이 기녀들을 부르지 말라는 법이 없지요.”

“···소녀. 중원의 기루를 운영하고 있사옵니다. 제가 왕야를 뫼시고 가겠습니다.”

“화진이 함께한다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너는?”

“저는 일행 사이에 숨어서 함께하겠습니다.”

우드득.

호충이 역용술을 풀자 본래의 얼굴이 드러났다.

“저도 이제 대장군께 인사를 드려야지요.”

“내게 장성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 크게 놀랄 것이야.”

그날 승장에서 많은 마차가 동시에 외부로 나가기 시작했다.

***

“말을 멈춰라!”

“워워.”

히이잉.

승장에서 밖으로 나가는 관도엔 일단의 무리들이 지키고 있었고, 이들은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운 마차를 두고 보지 않았다.

“무슨 일이오?”

“···도주한 노비가 있어 찾고 있소. 주인집 내외를 살해하고 돈까지 훔쳐 달아났다오.”

“저런. 꼭 찾으셔야 하겠소.”

“그대들을 의심할 일이 아닌 것은 알지만, 협조를 부탁해도 되겠소? 모든 마차를 확인하라는 윗선의 명이 있었던 터라···.”

“이렇게 예의를 갖추고 청하는 일에 어찌 협조하지 않을 수 있겠소. 마차 안의 손님께 허락을 구할 터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마차 안에 사정을 설명하니 흔쾌히 밖으로 나오는 이들이었고, 검문하는 이들은 마차 밖으로 나온 이들을 확인하고도 내부까지 다시 확인하며 철저하게 검문했다.

“고맙습니다. 그 노비는 없는 것 같소.”

“부디 은혜를 모르는 노비를 꼭 잡길 바라오.”

.

.

.

승장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마차들이 많아 마승단 인원이 대부분 남쪽으로 몰려들었고, 북으로 향하는 마차들은 드물게 이어졌다.

그리고 화려한 마차들이 북쪽 관도에 대거 나타났다. 물경 열 대에 이르는 마차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모두 멈추시오!”

“워워.”

“이 마차들은 어디로 가는 길이오?”

“···그대들은 누구요? 왜 갑자기 마차를 멈춰 세우는 것이오!”

“우리는···.”

마승단이 이유를 늘어놓기도 전에 호통이 들려왔다.

“군부의 명에 따라 행하는 일을 가로막는 그대들은 대관절 어디 소속이냔 말이오!”

“구, 군부라 하시었소?”

“그렇소! 군부에서 연회를 열기 위해 가는 길이란 말이오! 다들 다치지 않았는가?”

마승단은 마차의 창문을 통해 아리따운 기녀들을 볼 수 있었다.

“저희는 괜찮아요. 무슨 일이 있나요?”

“무슨 일이람?”

“벌써 도착했어요?”

신기한 구경이라 생각했는지 저마다 눈을 초롱초롱 뜨고 밖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마다 곱게 분칠한 여인들이었다.

“소속을 밝히시오. 대장군께 누가 길을 막았는지 전해드리다.”

“···승장에서 도주한 노비를 찾고 있는지라.”

마승단이 준비한 변명으론 충분치 않았다.

“하! 겨우 노비나 잡으려고 길을 막았단 말인가! 마차 안에는 기녀들밖에 없으니, 살피려거든 밖의 인부들이나 알아서 살피시오.”

강제적으로 검문할 수도 있었지만, 군부와 가까운 이곳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게다가 기녀들은 이미 마차의 창문으로 모두 확인하지 않았겠는가. 마승단은 마차가 그대로 갈 길을 가는 동안 마차에 타지 못한 인부들만 살펴야 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이들이 마부들이로군.’

마부를 제외한 인부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라 살피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마차 내부에서 들리는 기녀들의 목소리는 그 이상을 짐작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없다. 여긴 왕야가 숨어들 수 없어.’

기녀들 틈에 왕야가 숨어있으리라는 것을 어찌 짐작할 수 있을까.

“······.”

진휘평은 기녀들의 진한 분내를 맡으며 마차 깊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마승단이 한참 멀어지고 나서야 화진이 입을 열었다.

“대인. 이제 위기는 벗어났습니다.”

같은 마차에 탑승한 기녀들은 방금까지 조잘거리던 입을 다물고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아리따운 여인들과 함께하니 위기라 생각할 겨를도 없었네.”

“진정한 문제는 군부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그들을 정리할 것이니 그 부분도 심려치 마옵소서.”

군부와 연락을 위해 남은 마교도를 이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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