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232)

절세미녀의 등장

***

곧 다리가 해자를 가로지르며 내려왔고, 반장 두께의 두꺼운 성문도 활짝 열렸다.

끼이이익.

““우아아아아!!!””

“왔다! 왔어!!”

“여기 좀 봐줘!! 예쁜이!”

위장성의 내부의 병사들이 환호하며 맞이하니 기녀들은 시키지 않았음에도 마차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고 병사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했다.

“거기 잘 생긴 오라버니~ 반가워요~”

“그녀가 날 보고 잘 생겼다고 했···.”

“네가 아니라 날 보고 말 했다고!”

“너희가 아니라 바로 나야!”

“뭐? 뒈질래?”

“덤벼 새끼야!”

“오냐!”

작은 소란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 만에 보는 여인들이란 말인가.

성문의 초병 당번을 자초한 병사도 코앞에서 마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바꾸길 잘 했다.’

아리따운 기녀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고, 진하게 풍겨오는 분내는 코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흐흡.”

‘이거지. 바로 이거야. 눈물이 날 것 같군. 크흑.’

그는 눈을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지나가는 기녀들에게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어떤 기녀는 수문 병사인 그를 향해 눈을 찡긋하며 교태를 부리기도 했다.

“그녀에게 내가 모은 돈을 줘도 좋겠···.”

돈을 가장 중요시하는 그가 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마차의 창문을 가린 천이 살짝 열린 틈으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커흡!!”

화진은 소란한 밖을 내다보려고 얼굴을 내민 참이었는데, 얼이 빠진 병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성문을 지키느라 수고가 많으시네요.”

“아으. 아으···.”

‘저런···. 말을 못하시는 분이셨네.’

화진은 그저 빙긋 미소 지으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고, 병사의 시선은 멍하니 그 마차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당장 죽어도 좋아.’

“우어···.”

“어으···. 어으···.”

“······.”

화진의 선녀 같은 미모는 무수한 벙어리를 양산했다. 마차가 지나는 곳에서 화진의 미모를 본 모두가 그 대상이었다.

***

화진은 마차 창의 천을 내리고 고개를 저으며 호충을 향해 말했다.

“아직 저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화진은 위장성 내에 있다는 마교도를 확인하려 마차 밖에 얼굴을 내민 것이었다.

“이미 대장군이 파악해 두기도 했고, 내가 따로 알아보기도 할 테니 걱정하지 마.”

“그들이 갑자기 사라지면 마교가 가만있을까요?”

“대장군이 파악한 바로 녀석들의 숫자는 고작 둘이야. 서로 간에 소통을 위해 연락책으로만 남겨두었으니, 숫자가 작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

위장성은 군사적 요충지였고,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기 힘든 곳이었다. 그곳에 많은 인원을 상주시켜 괜한 의심을 받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대장군은 앞으로 대계에서 진행할 일들을 서찰로 적어 아버지께 전하게 할 거야.”

“그럼 연락책 하나는 위장성을 빠져나가야겠군요.”

“그럼 남은 놈이 하나가 될 것이고, 예비로 숨겨두었을 녀석까지 생각해도 많아야 둘 셋이지.”

“당연히 마공을 익혔을 테니, 가가께서 찾기 어렵진 않으시겠어요. 제거를 생각하시나요?”

“아니. 대장군은 서찰을 보내고 빠른 회신을 요청할 것인데···. 누가 답할 수 있겠어?”

“······.”

진휘평이 없으니 어찌 서천량 대장군의 서찰에 회신을 줄 수 있겠는가.

“이 핑계로 녀석들을 쫓아낼 계획이야. 이후 대장군은 아예 대계에서 발을 뺀다고 전할 생각이거든.”

“아!”

진휘평이 자신들과 함께 있으니, 앞으로 마교에서 대계를 이끌어갈 중심축이 사라진 것과 같았다. 거기에 대계의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변방의 대장군까지 빠져버리면 마교가 주도하던 대계는 전부 틀어져 버린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교는 대계에 욕심을 버리지 못할 거야.’

황제의 형제인 진휘평이 아니라도 녀석들에게 남은 선택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동생 녀석이 조금 위험해지겠어.’

진휘평의 핏줄로 확신하고 있는 태자를 부채질해서 역천에 가담하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했다.

“어쨌든 대장군과 아버지는 녀석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고···. 우린 마교의 눈을 피해 새로운 대계를 시작해야 해.”

“정보전은 하오문이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죠.”

“루방 덕분에 얼마나 수월한지 몰라.”

“루방만이 아니랍니다. 루방에 패방과 개방이 더해지면 중원에 하오문의 정보력을 넘어설 단체는 존재하지 않아요.”

호충은 그런 하오문에에서 취약한 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대계가 아니었다면 고려할 사항도 아니었지만, 대계를 진행하자면 무조건 필요한 부분이었다.

“···딱 하나 문제가 있어.”

“하오문에 부족한 부분이 있던가요?”

“있지. 바로 황궁.”

“거긴···.”

밑바닥 인생의 집합인 하오문이다. 황궁에 어떤 연줄이 있을 수 있겠는가. 황궁 소식에 깜깜하다는 것이 하오문에서 유일하게 부족한 부분이었다.

“알아. 거긴 잠입도 불가능한 곳이지. 황궁에 숨겨둔 고수들 때문에라도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어쩌죠? 내부의 정보를 파악해야 차질 없이 대계를 진행할 텐데···.”

“지금부터 해봐야지. 남경에서 거주하는 관료들과 황궁의 금의위를 노려보자.”

“음···. 자택에 잠입하는 건 너무 평범한데 말이죠. 기밀 정보를 빼내기도 쉽지도 않고요.”

고민에 빠진 화진에게 호충은 더 자세한 방책을 일러주었다.

“녀석들이라고 술 안 먹겠어? 남경의 기루를 빠짐없이 차지하고 접근을 시작해.”

루방이 남경의 주요 기루를 확보하긴 했지만, 여전히 하오문에 들지 않고 영업 중인 기루가 있었다. 이들을 모두 휘하에 넣고 감시를 시작하면 무조건 걸려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미 아버지께 붙은 이들을 빼고 황제파를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해야 할 거야.”

“생각보다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네요. 루방의 지휘부가 오면 논의하고 바로 진행토록 할게요. 객잔과 다루도 추가로 확보해서 빠져나갈 틈이 없도록 만들죠.”

“그럼 우리도 이제 슬슬 나가볼까?”

성곽 깊이 들어온 마차가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안에 계세요. 아직 보는 눈이 많답니다.”

“그럼 내 대신 아버지 좀 챙겨줘.”

진휘평은 마차 밖에서 인부로 위장하고 있었다.

“물론이죠.”

***

위장성의 성주인 대장군 서천량이 병사들의 막사에 기거하고 있지만, 성주의 거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위장성의 성주전은 서천량이 휘하 장수들과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회의실로 주로 활용되었지만, 오늘은 아리따운 기녀들이 가득 들어서고 있었다.

“오오···. 위장성에서 이런 광경을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오래 살고 볼일···.”

장수들은 기녀들의 자태에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촤라락.

그리고 기녀들이 양쪽으로 주르륵 갈라지며 한 여인이 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타박.

그녀가 등장하자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머리를 고정하고 몸을 굳혔다. 다른 기녀들과 전혀다른 존재감이었다.

“꺼흡!”

“!”

“!”

병사들에게 벌어졌던 일들이 여기서도 여지없이 재현되고 있었다. 하물며 얼굴만 얼핏 보았던 병사들과 달리 장수들은 가까이에서 화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자태를 마주하지 않았겠는가.

토옥. 톡.

가벼운 걸음으로 서천량 대장군 앞까지 간 화진은 날아오르듯 절을 올렸다.

파라락.

그녀의 옷자락이 마치 선녀의 날개옷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모두의 눈이 단 한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천것이 전신(戰神) 서천량 대장군을 뵈옵니다.”

“···제 시간에 왔군.”

“대장군께서 부르셨는데, 어찌 잠시라도 지체할 수 있겠습니까. 기루에서 가장 기예가 빼어난 아이들을 모아 왔나이다.”

“연회를 준비하자면 시간이 필요할 터. 준비하는 동안 그대는 잠시 나와 담소를 나눌 수 있겠는가?”

“물론이지요.”

서천량 대장군이 먼저 내실로 걸음을 옮겼고, 화진은 시종으로 보이는 인물 함께 뒤를 따랐다.

남은 장수들은 대장군과 화진이 사라지고 나서야 숨을 몰아쉬었다.

“푸하.”

“허!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난 숨도 쉴 수 없었다고!”

“지금 그게 문제야?”

“···대장군께서 먼저 담소를 나누자고 하실 정도의 미인이다.”

“······.”

“······.”

“······.”

“허. 생각해보니 그게 더 대단하군.”

“우린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말자고. 빼어난 꽃은 따로 주인이 있는 법이야.”

호충은 어느새 인부들 틈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고 있었다.

‘역시 우리 화진이는 어디서든 알아본다니까.’

***

내실로 들어서 문이 닫히자 서천량이 얼른 몸을 돌려 부복했다.

“신 서천량이 왕야를 뵈옵니다.”

화진의 뒤를 따르던 시종이 앞으로 나서며 굽혔던 허리를 폈다. 진휘평이었다.

“난 그리 잘 알아보면서 아들은 왜 못 알아봤을까?”

“왕야께 손이 있으실 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터라···.”

“하하. 어서 일어서게.”

진휘평은 부복한 서천량을 일으켰고, 서천량은 다시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어라. 중요한 대화가 있을 것이다.”

“······.”

화진을 그저 기녀들을 이끌어 온 기루의 인물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닐세. 그녀도 들어야 할 것이야.”

“···한낱 기녀가 들을 일이 아닙니다.”

화진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아버님. 소첩은 두 분이 나누시는 담소를 멀리서도 들을 능력이 있답니다.”

“대계의 중임을 맡을 네가 엿듣는 모양새가 되어서야 쓰겠느냐.”

“······.”

서천량은 화진이 진휘평을 아버님이라고 부른 순간부터 얼음이었다. 진휘평과 여기까지 마차에 함께 타고 오며 호칭까지 아버님으로 바꾼 화진이었다.

“차후의 일이지요. 오늘 두 분이 편히 만나셨으니, 소첩은 자리를 피해드리겠습니다.”

“어허. 이보게 월량. 자네 때문에 며느리가 자리에 앉지 못하겠다지 않나.”

“며, 며느리라니···.”

“되찾은 아들에게 며느리까지 있었지 뭔가. 허허허.”

“컥.”

서천량은 오늘 두 번이나 큰 실수를 범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신 서천량. 마마께 인사 올립니다.”

“과례이십니다. 아직 혼례도 치르지 못한 몸입니다.”

“······.”

대계가 성공하면 왕야의 아들인 호충은 태자가 될 것이니, 그녀가 태자비가 될 여인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동석하여 앞으로의 일을 논할 기회를 주소서.”

“어서 앉으시지요.”

진휘평이 상석에 앉았고, 그 옆으로 서천량과 화진이 자리했다.

서천량은 진휘평을 만나 묻고 싶었던 일부터 시작했다.

“왕야. 정말 마교도에게 붙잡혀 계셨습니까?”

진휘평은 이제 마화평을 비롯한 마교도가 곁에 없었기에 편히 말할 수 있었다.

“형님께 쫓기던 중에 도움을 주겠다는 이들이 나타났다. 난 그들이 내가 알지 못하던 협력자들이라 여겼지만, 알고 보니 마교도였더군. 그걸 알았다면 차라리 형님 손에 붙잡혀 죽었을 것이야.”

“허.”

“녀석들은 나를 통해 하늘을 뒤집고자 하였다.”

역천을 이르는 말이었다.

“녀석들의 힘으로 역천에 성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않았기에 동참할 수 없었어. ···나를 죽이려한 형님이지만, 형님이 나라를 평탄하게 다스릴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지.”

“그럼 이번에 녀석들과 함께하신 것은···.”

“십칠 년이 지나 세상에 나와 보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다. 월량 그대도 알지 않는가.”

“···황제파의 전횡이 극에 달해있지요. 저도 변방으로 쫓겨난 것과 다르지 않음입니다.”

“그리고 아들 호충을 만났다. 녀석을 통해 희망을 볼 수 있었어.”

“후우.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이곳에 머무시지요. 제가 단단히 지켜드릴 것이옵니다.”

“월량을 믿지 않으면 내가 누굴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녀석들이 준비하던 일은 어찌 되옵니까. 녀석들이 남경에서 명분을 쌓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녀석들이 확보한 남경의 종사현 대학사를 비롯한 왕야의 신하들도 걱정입니다.”

일전에 진휘평이 마교도와 함께했을 때 들었던 정보였다.

화진이 나설 차례였다.

“그 부분은 저희가 맡아서 이어갈 것입니다. 대장군.”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어찌···.”

“호호호.”

우우웅. 딸그락. 딸그락.

작은 웃음소리에 대기가 떨리고 탁자에 놓인 찻잔이 흔들리고 있었다. 호충이 비도를 공중에 띄운 것과 마찬가지의 기사였다.

‘음공(音功)의 고수로구나!’

“제가 그리 연약하진 않답니다. 대장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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