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인 대(對) 마교도
***
“그녀의 몸에 상처를 남기다니, 네 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인데···.”
“감히 그딴 소리를 해!!”
관인의 칼은 더욱 매섭게 마교도를 몰아붙였다.
사각.
관인의 검이 스쳐지나간 볼에서 붉은 핏방울이 흘렀다.
덕분에 마교도는 자신의 무공을 일부 드러내야 했다. 관인도 대학사를 감시하는 일을 맡을 만큼 일정 이상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채앵. 팅.
마교도 품에서 뽑힌 중간 길이의 검이 관인의 검을 뒤로 튕겨냈다.
“네 놈은 무림인이었구나!”
“······.”
마교도는 녀석의 입의 막아야할지 고민 중이었기에 눈에서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잘 됐군. 네 놈을 잡아들일 이유가 생겼어.”
“날 잡아들여? 네깟 놈이 무슨 권한으로?”
드르륵.
기루의 방문이 열리며 관복을 입은 관인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동료들의 등장에 관인이 소리쳤다.
“인걸. 우리가 늦은 건 아니지?”
“제 때 오셨습니다! 저 녀석을 잡아야 합니다! 높은 무공을 익힌 무림인입니다!”
척. 척.
관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마교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틈을 찾기 시작했다.
‘일진이 사납군.’
마교도의 눈에 작은 창이 들어왔다.
타닥.
관인들도 자신들이 잡으려는 상대가 창문으로 신형을 날리려하는 모습을 봤지만, 너무 빨라 막을 수가 없었다.
쾅. 콰자작.
창문을 부수며 밖으로 몸을 날린 마교도는 경공을 발휘해 몸을 피했고, 관인들은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잡아라!””
마교도는 멀리서 들리는 관인들의 고함을 들으며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훗. 네 놈들이 날 잡으려면 백년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몸은 목적지에 가까워지며 조금씩 굼떠지기 시작했다. 경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더니 걷는 것도 힘들어 졌다.
“내, 내 몸이 왜···.”
뒤에서 관인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당장 담을 넘어 숨어야 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뛰어 넘을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에 난 상처로부터 들어온 독이 경공을 펼치자 빠르게 온 몸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도착한 곳이 마교도들이 집결한 장소라는 점이다. 마교도 하나가 밖을 살피다가 동료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조장! 얼굴에 피가···.”
“······윽.”
다른 마교도를 마주했지만, 이미 관인들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피하라고 하고 싶지만, 이젠 입도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도즈···. 프흐······.”
“예?”
“도주해야 한다. 피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혀가 꼬여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저기다!”
“제길. 저건 뭐야?”
챙!
마교도는 관인들을 맞이해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지만, 상대는 무공을 익힌 관인들이었다.
“이 녀석도 무공을 익혔다! 조심하라!”
“제길!”
소란이 일어나자 은신처에 머물던 마교도들도 밖의 상황을 주시하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동료를 구하자!”
“우아아아!”
조장이 있었다면 오히려 몸을 숨기라 했겠지만, 이들의 조장은 땅바닥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조장이 저기 있다!”
‘지금 이들과 충돌하면······.’
남경에서 진행하는 대계에 큰 구멍이 생길 것이 뻔했다. 하지만 자신은 아무런 경고도 할 수 없었고 점점 흐려지는 눈으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안 돼···. 안 돼···.’
두 무리가 칼을 섞는 동안 독은 착실하게 심장으로 향했고, 가늘어지던 숨은 결국 끊어지고 말았다.
“하아·········.”
누워서 힘겹게 팔을 뻗던 마교도의 손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툭.
죽어서도 감지 못한 그의 두 눈엔 두 무리의 충돌이 고스란히 비춰지고 있었다.
챙챙.
“잡아라!”
“녀석들을 치우자!”
그 와중에도 두 무리는 열심히 검을 날리고 서로의 피를 보고 있었다.
“······.”
“······.”
관인과 마교도의 싸움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일차 작전은 대성공입니다. 녀석이 무리에게 돌아간 덕분에 단번에 일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보다 관인들이 분투하고 있어서 다행이야.”
하지만 관인들은 고강한 마공을 익힌 마교도들의 칼에 패퇴하고 있었고, 방금 마지막 관인이 쓰러졌다.
“···다 죽었습니다만?”
“그러니 더 잘 됐지.”
마교도의 승리로 끝난 싸움이지만, 이곳은 남경이다. 바로 황제가 기거하는 황궁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교교가 끌어들인 녀석은 아직 기루에 있지?”
“예. 놀란 교교를 달래주겠다며 남았지요.”
“녀석에게 알려줘. 교교를 통해 하오문이 파악한 마교도의 안가와 중요한 놈들의 용모파기를 녀석에게 전달할 것이다. 동료를 잃은 관인들은 오늘의 일을 그냥 넘길 수 없어.”
남경은 그 어느 성보다 많은 관인들이 모인 곳이다. 특히 황궁의 숨겨진 고수들까지 염두에 두면 용담호혈이라는 말도 부족했다. 첫 단추를 꿰었으니 남은 것은 순서대로 진행하면 될 일이었다.
“이대로 진행하면 황궁의 고수들도 나설 수 있어. 마교라고 해도 이들을 경시하진 못해.”
“이차 작전 시작이군요.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삼차 작전은 지원이 와야 해.”
“남경 마교 말살···.”
남경에서 마교를 말살하는 일은 루방의 힘만으로 불가능했다.
.
.
.
“조장! 조장! 정신 차려 봐요!”
이미 숨이 끊어진 조장을 붙들고 흔드는 마교도는 오늘의 일이 어디까지 커질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장이···. 숨을 쉬지 않아.”
“······조장이 죽었어?”
“젠장!”
“···이곳을 정리하고 다른 조장에게 가자.”
당장은 몸을 피할 수 있을 테지만, 그곳도 그리 안전하진 않을 것이다.
***
호충은 단언한 대로 사흘만에 서안에 도착하고 있었다.
‘무림인이 상당히 많이 보이는군.’
무림맹에 마교의 등장을 알린 덕분에 고개만 돌리면 무림인을 찾을 수 있었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잘 대처 했네.’
호충은 무림인들만 보고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저벅.
호충이 서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주변을 걷던 한 사람이 얼른 곁으로 붙었다.
“서안 정보단 삼십오(三十五)호 입니다. 안에는 오셨다고 전달했습니다.”
유도영의 정보단 소속 하오문도였다. 호충이 송재호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알아본 것이다. 문주를 알아보지 못할 문도가 어디 있겠는가.
“이야. 반응 속도가 어마어마하네?”
“···오신다는 연락을 못 받아서 마중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뫼시지요.”
“내가 혼자 다니면 불안해?”
“···무림맹에 속한 이들이 수시로 검문합니다.”
“나 하오문주거든?”
“···그러니 더욱 함께 가셔야지요.”
문주가 호위도 하나 없이 돌아다니면 체면이 상한다는 뜻이었다.
“마음대로 해.”
호충이 정보단과 서안 시전으로 들어서자 몇몇 인물이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소란은 생기지 않았다. 밖에선 함부로 문주에게 인사하지 말라는 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오호. 교육도 잘 됐네.”
예전엔 뭣도 모르고 문주를 뵙는다며 큰 소리로 인사한 문도들이 있었다.
“패방주께서 틀림없이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역시. 패방주가 일머리가 있어.”
하오문 본단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다른 정보단원이 다가와 조그맣게 고개를 숙이고 전했다.
“서안 정보단 구십육(九十六)호 입니다. 현재 패방주와 흑림방주, 어르신은 수련관으로 가셔서 본단에 없습니다.”
“수련관?”
호충이 수련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려하자 얼른 말을 덧붙였다.
“여산 수련관으로 가셨습니다.”
“아. 거기가 벌써 완공되었나?”
“예. 어제부터 수련생들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수용인원이 열 배로 늘어 할 일이 조금 많아졌지요.”
“그럼 그리로 가자.”
어차피 하오문 수뇌부를 보기위해 서안에 온 것이다.
***
호충은 느긋하게 경공을 펼쳤는데, 뒤를 따르던 정보단 둘은 흠뻑 땀을 흘리고 있었다.
“수련관은 수료했고?”
“···예. 말석으로 겨우 수료했습니다.”
“저도···.”
“살려면 경공을 꾸준하게 익혀. 정보단은 빠른 발이 생명이야.”
““예. 문주님.””
여산 수련관에 가까이 온 호충은 멀리서 울리는 기합소리를 들으며 여전히 힘들어하는 둘에게 농을 걸었다.
“아예 다시 들어갈래? 이번에 수료하면 우수 수료생이 될 지도 모르잖아.”
“···끅.”
“그, 그건···.”
수련관에서 보냈던 시간이 무공을 익히는데 기초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다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을 또?!’
‘차라리 죽고 말지···.’
“유 단주에게 내가 잘 말해두지.”
“······.”
“······.”
가겠다는 답도 못하고 안 가겠다고 답할 수도 없었던 둘은 입을 열 수 없었다.
“큭큭.”
사색이 된 둘을 보며 웃던 호충이 수련관 정문을 넘자마자 검은 인형들이 여기저기서 솟구치더니 호충의 앞에 부복했다.
““문주님을 뵈옵니다.””
“오호. 흑림방은 그 사이 또 발전이야?”
흑림방이 보여준 은형술과 경공이 상당히 숙련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따로 옷까지 맞추었는지 저마다 흑색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하여튼 왕 방주는 애들 좀 적당히 굴릴 것이지···.”
“안으로 드시지요.”
호충이 걸음을 떼자 흑림방이 양쪽으로 길을 텄다. 호충이 걸음을 내딛자 바람이 펄럭이며 옷자락을 나부꼈고, 그 뒤로 흑림방이 따라붙었다.
정보단의 둘은 차마 따르지 못하고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아. 걷기만 하는데 왜 이렇게 멋있담?”
“크흐. 역시 우리 문주님.”
흑림방이 문주의 뒤를 따르는 모습이 마치 영웅의 행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호충이 전각 안으로 들어가 기다리자 소식을 들은 사중환과 왕호, 송 영감이 바람처럼 달려 들어왔다.
“문주님!”
“오셨습니까.”
“금방 오셨습니다. 그려.”
“큭. 나도 이렇게 금방 올 줄 몰랐어.”
최소한 해는 지나고 돌아오리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오문 수뇌부 회의를 소집할까요?”
“아냐. 어차피 여기 하오문 중추가 다 있으니 따로 소집할 필요 없어.”
상방의 옥비연은 상행으로 자리를 비웠을 것이고, 개방의 말동은 지금 수련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호충이 입을 열기 전에 송 영감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문주님. 제가 입을 가벼이 놀려서···.”
“괜찮아. 이미 다 들었어. 덕분에 루방주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지.”
“감사합니다.”
“······.”
호충의 눈은 송 영감을 지나 사중환과 왕호에게 향했다.
“나는 나다.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어.”
자신이 왕야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호충의 말에 왕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흐흐. 당연합니다. 대형은 언제까지나 대형이죠.”
근래 비슷한 깨달음을 얻은 사중환도 마찬가지로 답했다.
“하오문은 언제나 문주님의 하오문일 것입니다.”
전부터 알고 있었던 송 영감은 빙긋 웃고만 있었다.
“자아. 그럼 일을 맡겨볼까?”
호충은 탁자에 모두를 앉게 하고 지도를 꺼냈다. 그리고 위장성에서 벌어졌던 일부터 시작해 여태까지 서천량 대장군과 나눴던 대화를 공유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자세히 설명했다.
“···해서 우선 하오문은 위장성에 보낼 군량과 병장기를 마련해야 할 거야. 따로 루방주가 서찰을 보내긴 할 테지만, 한참 뒤에 도착할 것이고···.”
또한 남경에서 마교도를 정리하라 지시한 일이 있었기에 하오문의 무력부대를 보내야 했다.
“흑림방 일부와 정보단은 남경으로 가서 대계를 준비해야 해. 남경에서 마교를 몰아내는 일을 루방에서만 맡기는 무리야.”
“예.”
“패방주는 날랜 놈들 뽑아서 남경흑패 지원해. 무력부대 역할을 흑림방만 맡을 수는 없어.”
“수련관 우수 수료생을 따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흑림방에 지원하지 않고 남은 이들이 있으니, 이들을 조직해 남경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지시를 이어가려던 호충은 방 한구석을 차지한 물건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까부터 거슬리는데···. 저건 왜 세워둔 거야?”
천으로 감춰둔 거대한 물건은 마치 사람이 보자기를 쓴 것처럼 보였다.
“아! 수련관을 짓다가 나온 유물이온데 문주님께 보여드리려고 했습니다.”
“유물?”
“보여드리지요.”
사중환이 얼른 다가가서 천을 걷어냈다.
전과 다를 바 없는 토기 병(兵)이 모습을 드러냈고, 호충은 멍하니 토기 병(兵)을 쳐다봤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저게···. 여기서···. 왜 나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