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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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서 보지 않아도 훤히 예상되는 걸 어쩌겠는가.
“시황제는 죽어서도 하늘을 보고 싶어 했다고 해. 내부에서 밤하늘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을 거야.”
“!”
“그럼 위로 열려 있다는 말씀입니까?”
“설마. 흙으로 덮어놨는데, 어떻게 하늘을 보겠어? 비슷하게 꾸몄다는 거지.”
“아.”
“그게 위험한 거야. 땅에는 수은이 흐르고 위로는······.”
호충은 어두운 황릉 내부를 밝히는 물건과 수은이 그 빛을 반사하여 만들어낼 풍경을 머리에 그릴 수 있었다.
“천장 가득히 야광주(夜光珠)가 박혀 있을 거야.”
“!”
“!”
“!”
지금도 황릉 내부의 하늘과 땅에서 빛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알알이 빛나는 야광주와 빛을 반사하는 수은의 황홀한 조합으로 지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을 터였다.
“허!”
어두운 밤에도 빛을 낸다고 전해지던 귀중한 보석인 야광주는 여러 이름을 갖고 있었다. 야광옥. 야광명주. 야명주···. 이름이 달라도 같은 것은 있었다.
“백만금을 줘야 살 수 있다는 야광주가 가득히 박혀 있단 말씀입니까?”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쳐주는 보물이라는 점이다. 야광주를 여의주와 비슷한 반열에 올려놓고 거래하는 곳이었다.
“하늘에 뜬 별만큼이나 가득 박아 놨을 거야.”
“어마어마한 규모. 실로 엄청난 대공사였을 것 같습니다.”
“황릉 조성 공사가 삼십팔 년 쯤 걸렸다지? 어쨌든 수은보다 야광주가 위험하니까 황릉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은 수명을 단축시키는 일이 될 거야.”
수은보다 야광주가 더 위험했다. 감히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야광주가 더 위험하다굽쇼?”
“그거 비싼 건데···.”
“수은이 무형지독이라면, 야광주는 치료법이 없는 전염병이야.”
“······.”
“······.”
“······.”
야광주는 대부분 방사능으로 인해 영구적으로 빛을 내기 때문이다.
그 녹색 빛을 쪼이면 방사선에 피복되니, 야광주를 꺼내오면 주변의 다른 사람까지 방사선에 노출시키게 되는 것이다. 또한 방사능은 온갖 암이란 암은 다 유발시키는 기괴한 능력이 있었다. 중금속의 일종인 수은의 위험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내말 못 믿어? 진짜라니까? 그저 수은과 야광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어서 경고하는 거야. 진짜 황릉 내에 무슨 수작을 부려놨을지는 나도 전혀 예상할 수 없어. 도굴 전문가들이 더 잘 알겠지.”
“못 믿는 것이 아니라···.”
“거길 어떻게 들어가나 싶어서 그러지요.”
“아직 기관 장치는 확인도 못했거든?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황릉을 발굴하나?”
“······.”
“······.”
“······.”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보물도 얻지 못하는 법이다.
“어차피 이걸 아는 건 우리밖에 없어. 당장은 마교 때문에라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으니까 시일을 넉넉하게 잡고 발굴을 시작하면 될 거야.”
“예. 문주님.”
“당장은 마교가 급하지요.”
“저는 보물보다 흑림방에 몰두하렵니다.”
“잠깐···.”
호충은 손을 들어 말을 막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수은···. 야광주···. 마교···.’
“···이거, 이거. 써먹을 수 있겠는데?”
수은과 야광주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곧장 마교의 일로 넘어가다가 둘을 연관 지을 수 있었다.
“마교 놈들도 너희와 똑같이 생각할 거야···.”
수은은 천고의 영약이고 야광주는 값을 따지기 어려운 보물이라는 생각을 말함이었다.
“···그렇지요. 마교만이 아니라 중원인 모두가 비슷한 상식을 갖고 있습니다.”
”문주님 빼고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럼 답 나왔네.”
호충은 야광주와 수은을 써먹을 곳을 찾아냈다.
“그럼 수은과 야광주를 마교에 싸게 넘긴다.”
“!”
“!”
“수은으로 약재를 해먹으면 마교도가 어찌되겠어? 다 뒈지거나, 못해도 병은 걸리겠지?”
“허···.”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야광주는 분명 교주 놈의 손에 들어갈 거야. 녀석이 야광주를 금이야 옥이야 아끼며 가까이두지 않겠어? 그렇게 되면 교주 놈은 병에 걸릴 것이고···. 여러 개의 야광주를 넘기면 부하들에게 상급으로 하사할지 모르지. 최소 장로급 이상이 받을 것이니 마교의 수뇌부가 전부 끝장 나는 거야.”
정파 무림이 힘을 키우는 동안 마교는 오히려 힘을 잃어갈 것이다. 힘을 잃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모두 급사할 수도 있었다.
“···정말 수은과 야광주가 몸에 좋지 않습니까?”
“그게 확실해야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 아니면 오히려 녀석들에게 값비싼 보물을 싸게 넘기는 꼴만 되겠지요.”
“에헤이. 문주가 하는 말인데, 좀 믿어라. 내가 너희를 아껴서 하는 말이잖아. 몸에 좋으면 내가 먼저 먹고 내 품에 먼저 넣었지. 안 그래?”
“···문주님이 저희를 아끼시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과 어긋나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뿐입니다.”
왕호는 아까부터 믿고 있었다. 문주 호충의 말이라면 뭐든 신뢰할 수 있었다.
“교주 놈은 뭣도 모르고 보물을 얻었다며 좋아하겠지요?”
“크흐흐. 역시 우리 왕호는 날 믿어준다니까.”
“딸랑딸랑. 저는 언제나 문주님을 향해 울리는 종입니다.”
“이 귀여운 녀석. 덩치는 산만한데 항상 예쁜 말만 골라서 해.”
“헤헤.”
“그나저나 저번에 칼 맞은 데는 다 나았냐?”
죽산에서 마교도와 충돌했을 때 상처를 입었던 왕호다.
“그 얘긴 왜 또···.”
상처는 한참 전에 아물었지만, 그날의 아픈 기억은 여전했다.
“말하고 행동이 다른 네가 떠올라서.”
대월천룡권을 쓰지 않기로 해 놓고는 대월천룡권의 초식으로 상대를 죽였기 때문이다.
“······.”
왕호가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굴리는 모습에 사중환은 웃음을 참느라 고역이었다.
“큭큭.”
“그날 일은 잊으셔도 될 터인데···.”
“잊기는 개뿔. 평생 기억하고 때마다 너한테 말해줄 거야.”
“에효···.”
“앞으로 지시는 서찰로 보낼 테니까 얼른 수련생들에게 돌아가. 말똥이 녀석만 혼자서 고생이겠어.”
“쉬고 계십시오. 흑림방 방도들에게 맡기고 돌아오겠습니다.”
“저도 새로 뽑은 수련관 교관들에게 나머지 수련을 맡기고 돌아오지요.”
사중환과 왕호가 얼른 나섰고, 송 영감은 남았다. 수련관에 조금씩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깊이 발을 담그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영감.”
“예. 문주님.”
“애들 안 싸우고 잘 지냈지?”
“물론입니다. 방주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하오문을 위해 바쁘게 일합니다.”
“싸우면 조저 버려.”
“예. 일이 커지기 전에 말로 타이르고 있답니다.”
“타이르기는···. 조지면 간단하잖아. 패면 얼마나 말을 잘 듣는데.”
“방주가 얻어맞으면 방도들 앞에서 어찌 얼굴을 들겠습니까.”
“전엔 자장 흑패 조직원들 앞에서 사중환이 얼마나 얻어맞았는데···. 왕호 놈도 천수 흑패 조직원들 앞에서 대차게 맞았었지?”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요. 이제 하오문 문도가 이십만에 육박하는데···.”
“뭐야. 언제 그렇게 늘었어?”
최대 십오만을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이를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하오문의 가지가 늘어나 열매를 맺었고, 그 열매가 다시 씨앗으로 변해 뿌리를 내리니 자꾸만 커질 수밖에요.”
하오문의 패방과 루방, 상방, 개방, 배방 등으로 가지를 치고 있었다. 또한 이들이 뻗은 가지는 중원 전역으로 뻗어나가며 거점을 늘렸고, 확보한 거점에서 다시 문도를 모집하고 숫자를 늘리니 문도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내실을 다져야겠네. 너무 팽창했어.”
하오문의 구속력이 크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오문에서 진짜 문도 취급을 받으려면 수련관에 들어 수료생 신분을 얻어야 했다.
“하오문의 입문 요구조건을 상향하고 패방의 숫자를 제한하겠습니다. 제한한 숫자 이상을 늘리지 못하도록 특별 지시하지요.”
“숫자 늘어나는 건 개방 탓일 텐데 패방은 왜?”
개방도에게 요구할 조건이 뭐가 있겠는가. 녀석들은 가진 것이 없는 거지라는 이유 하나로 개방에 들어오고 있었다.
“개방은 애초에 숫자 계산이 어려워 초기에만 셈에 넣었습니다. 지금 문도가 늘어나는 것은 패방과 그 지역 휘하의 기술자들입니다. 아. 루방도 문도수를 늘리는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중원에 기루가 좀 많은 것이 아니니까요.”
“······.”
각종 전문 기술자를 우대하는 하오문이다. 본래 도박 기술자와 배수, 장물아비 등.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힘든 기술자들이 중심이었으나, 대장장이를 포함한 상공업 기술자들을 확보하며 기술자의 범위를 늘려갔다. 야시시한 그림을 그리는 화공이나, 난잡한 글을 쓰는 문장가까지 기술자 범위에 들어가고 있었다.
“근래에는 농업도 기술로 쳐줘야 하지 않느냐며 소작농들까지 패방의 문을 두드린다고 합니다.”
“···이러다 중원인 전부가 하오문도로 변하는 거 아냐?”
“설마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허허.”
“개방도 때문에 늘어난 것이 아니면 입문 조건 상향은 진행하고 숫자 제한은 하지 말자.”
“그리하지요.”
“수련생도 함부로 받지 마. 비인부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어. 다른 무림방파에선 일대 제자나 배울까 말까한 빼어난 무공을 가르치는데 아무나 받을 순 없지. 어차피 문도를 정예화하자면 필요한 일이기도···.”
중요한 말이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었다.
“애초에 인성을 갖추지 못한 수련생을 추천하면 아예 수련관에 문도를 추천할 수 없게 된다고 공지했습니다. 덕분에 인성을 갖춘 이들이 수련관에 들어옵니다.”
“벌써 시행 중이었구나···.”
“또한 수련관을 수료한 다음엔 선후배의 기강 때문에라도 함부로 버릇없이 행동할 수 없지요. 자칫 동기 전부가 집합당할 수 있답니다.”
“···하여간 영감은 내가 안 시켜도 알아서 잘 해.”
“수련관의 기수 문화가 하오문 조직을 단단하게 붙들어주고 있는 것이지 제가 무얼 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어. 이것도 실행 중이면 내가 하오문에 무슨 필요가 있나 싶을 것 같아.”
“허허. 있어도 없다고 해야겠군요.”
“아마 정말 없을 걸?”
호충은 가볍게 시작했다.
“하오문도 중에 성혼해서 자식을 낳은 이들이 상당하겠지?”
“그렇지요. 흠양신 같은 녀석은 많지 않지만···.”
“발정난 놈은 빼자.”
“예. 어쨌든 하오문도가 되고 정기적으로 월봉을 받는 이들은 안정적인 벌이 덕분에 쉽게 짝을 만나곤 합니다.”
“오오. 그럼 하오문도의 자식들이 생기겠군.”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요.”
남자와 여자가 만나 혼인했으니, 몸에 문제가 없는 한 자식을 낳을 것이다.
“걔들이 나중에 학당에 다닐 수 있을까?”
“예?”
“유림의 자식들이야 아비가 가르친다지만, 우리 하오문도 중엔 아예 까막눈이 놈들이 많잖아.”
“···그렇지요. 보통 글월을 익히는 것은 부호의 자식들이나, 관부와 관련한 일을 하는 일이지요.”
“거기에 무림인도 들어가지? 무관에서 가르쳐 주잖아.”
“···예. 옳습니다.”
어려서 무관에 들어가면 무공만 익히는 것이 아니다. 무공을 익히기 위해 가장 먼저 글월을 배우기에 부모들이 기를 쓰고 무관에 아이를 보내는 것이다.
“생각해봐. 하오문에 수련관이 있지만, 수련관은 성인 하오문도를 위한 글월을 비롯해 하오문도가 지킬 내부 규칙과 세상의 상식을 위주로 가르치고 있어.”
수련관은 무공만 익히는 장소가 아니라 종합 훈련소였다.
“하지만 그보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수련관은 없지. 즉 하오문은 무관이 없다는 말이야.”
“···없지요.”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오문의 지부는 수련관이 아니라 패방. 즉, 지역의 건달패가 기거하는 흑패전각이 바로 무관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방의 경우엔 기루가 그 역할을 한다. 흑패와 기루에서 무관과 같은 기능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주먹패 소굴은 물론이고 여인들이 술을 파는 기루에 누가 자신의 아이를 보내겠는가.
그렇다고 보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배우기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흑패에 속한 문도, 기루에 속한 기녀들, 상방의 인물들, 배방과 도방···. 하오문 본단에서 일하는 이들도 마찬가지. 이들이 자식을 낳으면 다른 무관으로 보낼 건가? 그러다 문도들까지 다 빼앗기지 않겠어?”
“!”
“아니지. 그래선 안 돼. 한번 하오문도가 되었으면 대대손손 하오문도가 되어야지. 우리가 차지한 모든 지역에 하오문의 무관을 세우고 소(小)수련관의 역할을 하게 할 거야. 나중엔 소(小)수련관을 수료해야 하오문 본단의 여산 수련관에 들어올 수 있게 되겠지. 하오문에 영속성을 부여하려면 무조건 행해야 해.”
“정말 좋은 생각이십니다! 문도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입니다.”
“휴. 이건 아직인 모양이네. 영감이 벌써 추진했으면 어쩌나 했어.”
“문주님은 대국을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그러니 나중에도 정말 잘 하실 것입니다.”
역천 대계 이후의 일을 짐작하고 하는 소리였다. 곧 호충이 훗날 황제의 위에 올라서도 나라를 잘 다스릴 것이라는 뜻이다.
“하여튼 앞서가기는···.”
“하오문의 지휘부도 모두 같은 마음이지요.”
“······.”
호충은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진휘평은 자신이 없는 와중에 아들을 살뜰하게 보살펴 주었다던 송 영감에게 무척 고마워했었다.
“···아버지가 영감 보고 싶어 하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