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맹과 마교
***
“···아버지가 영감 보고 싶어 하더라.”
진휘평은 호충을 만나 여태 살아온 일들을 듣고부터 어린 아들의 보호막이 되어준 송 영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고 한다. 고작 서찰을 보내는 것으로는 마음을 전할 수 없다며, 송 영감을 그 분이라 칭하며 마음을 드러냈었다.
“어휴. 이 천것을 뭐 하러···.”
“아들을 이렇게 잘 키워줬는데 안 고맙겠어? 내가 아버지 같았으면 매일 같이 절을···. 나부터 할까?”
“허허. ···도련님은 홀로 잘 크셨습니다. 제가 한 일은 그저 끼니마다 식사를 챙겨드린 것이 전부입지요.”
설마 그것뿐이겠는가. 물질적인 것도 그렇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특히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은혜는 은혜지.’
“이번에 내가 돌아갈 때 같이 가자. 가서 인사드리고 아버지와 안면 익혀. 하오문은 두 놈이 알아서 하게 두고.”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송 영감은 이제 천것이 아니야. 멀쩡한 이름도 있는데, 왜 자꾸 천것이래?”
“···허허.”
“아버지를 만나면 하오문의 태상방주이자, 월하검문의 삽십칠대 문주인 송동석입니다! 이렇게 인사해.”
“···그리하지요.”
곧 사중환과 왕호가 돌아왔고, 호충은 일행을 이끌고 하오문 본단으로 향했다. 얼른 돌아가야 하지만 하루도 머물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호충은 집무실에 들어가 그간 챙기지 못한 하오문의 대소사를 보고 받고나서 모두를 물리고 다시 송 영감만을 남겼다.
“하실 말씀이 남으셨습니까?”
“어. 하나 더 있었어.”
호충은 최근 서안 주변에서 출몰하는 마교도와 무림맹의 충돌에 대한 보고서를 덮으며 말했다.
“화진이는 언제 모친을 찾은 거야?”
“···아. 루방주가 이제야 말씀을 드렸군요.”
“아버지께서 양친이 무고하시냐고 물으니 어쩌겠어. 내게는 감쪽같이 숨기고 거기서 입을 열더라.”
“···괜히 문주께 심란함을 안길지 모른다며 나중에 직접 말씀드리겠다하셨습니다.”
“차밭을 경작하신다고 하던데, 언제부터?”
“루방을 통해 어머니를 찾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상방에서 차밭을 매입하여 안정적으로 차를 수급하려 할 때 루방주께서 오셔서 알맞은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당시 상방이 차(茶)사업을 진행하고 있음을 아시고 차밭을 사서 어머니께 맡긴 것으로 보입니다.”
“유향차?”
“예. 여인들이 차를 따야하는데, 차밭의 주인도 여인이니 알맞았습니다. 그곳 차밭에서 유향차 생산량의 삼(三)할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어휴. 고생 많으시겠는데?”
“본래 상방에서 더 많은 이익을 남겨드리려고 했으나, 루방주가 극구 반대해서 낮은 비율을 책정했습니다.”
“화진이도 참···.”
“다른 차밭은 상방의 소유이고 그곳만 타인 소유입니다.”
“타인이라니···. 화진이 모친이니 타인은 아니지.”
“허허. 그렇지요.”
“아버지도 화진이 좋다고 하셨어.”
“정말 다행입니다. 루방주가 어찌나 걱정이 많았는지 달래느라 고역이었지요.”
“내가 왕야의 아들이라니 많이 놀랐겠지.”
“루방주는 보면 볼수록 마음이 갑니다. 문주님을 잘 보필할 것입니다.”
“영감까지 허락하면 더 볼 것도 없지.”
“제가 뭐라고 감히 허락을 하고 말고 하겠습니까.”
“어허. 아버지는 고작 몇 년 봤지만, 영감은 평생이야. 날 키워준 사람은 영감이잖아. 영감이 허락해야 나도 마음이 편하지.”
“······저는 언제나 문주님 편입니다.”
“알지. 알아.”
그래서 영감에게 모든 것을 맡겨도 걱정이 없었다. 혹여 영감이 하오문을 말아먹어도 뭐라 하지 않을 호충이었다.
“가서 짐이라도 챙겨놔. 내일 일찍 출발할 테니까.”
“예. 문주님.”
“아. 위장성 수문 군사들에게 줄 육포도 챙기자. 나오는 길에 가져다준다고 했거든.”
“허허. 군량에 병장기만 해도 충분하거늘 별걸 다 챙기십니다.”
“변방에서 나라를 지키느라 고생하는 병사들이잖아. 뭐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질 좋은 우(牛)육포로 챙기지요.”
***
호충과 송 영감이 떠난 서안에선 여전히 마교와 무림맹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마교를 맞이한 무림맹 직속의 무력부대 맹호진천대는 마교와 직접 붙어보고 그들의 무위에 크게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
“대주님. 맹에 추가 무인들을 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녀석들의 무위가 너무 높습니다.”
“우리 숫자가 세 배도 넘는데···.”
숫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마교의 무력단은 평균이 일류급 마인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을 이끄는 인물은 최소 절정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다. 맹의 무인들은 장문인이나 되어야 겨우 절정에 이를까 말까한 수준이었으니, 이하 무인들의 수준은 그보다 훨씬 아래였다. 이들이 어찌 마교의 무력단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용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수들을 상대한 흑림방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조만간 각 방파의 고수들이 오기로 했다. 이들이 온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야.”
“!”
정파 무림에서 입수한 비급과 영약으로 조금이라도 성장한 고수들이 투입되는 것이다.
“그들이 온다면 저희도 마교에 반격을 가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마교 놈들이 여기서 뭘 노리고 있는지를 모르겠단 말이지.”
윗선의 명에 따라 서안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었지만, 마교가 무엇을 노리는지도 모르고 싸움만 이어가고 있었다.
“마교 놈들이야 마귀 같은 놈들이 아닙니까. 양민이고 무림인이고 따지지 않고 살수를 날리는 놈들에게 목적은 무의미하지요.”
보통의 정파 무림인이 마교에 가진 생각이었다.
“놈들이 생각 없이 움직일 것 같으냐?”
“살행에 미친놈들이 아닙니까.”
“생각해봐라. 진가장이 시작이었지. 지금까지 꼭꼭 숨어 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어.”
“···맹주님의 본가인 진씨 세가를 공격한 것이 시작이긴 했지요. 산서에 진출한 진씨 세가의 무관을 노리기도 했고요.”
“마교가 성공했다고 가정하면? 섬서를 주름잡고 있는 진가장이니, 섬서가 온통 마교도 천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곳 서안도 마찬가지지.”
“마교가 계속 섬서를 노린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거기까진 추측이 되는데 그 이상을 모르겠단 말이야.”
“······.”
“······.”
둘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
“!”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이냐?”
“저는 영약을 떠올렸습니다.”
“맞아. 나도 같은 생각이다. 하오문에서 영약을 만들었고, 이를 황금전장과 삼도상단에 유통하도록 했지. 녀석들이 이번엔 영단을 노리는 모양이군.”
“후우. 비급은 늦었지만, 영단은 탈취만 할 수 있으면···.”
마교가 영단을 탈취한다는 가정까지 넘어가자 절로 위기감이 엄습했다.
“지금도 강한 마교를 더욱 감당하기 어려워질 거야.”
“하오문에 맹의 고수를 보내서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가보겠다. 하오문이 영단을 지키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맹은 더 많은 영단을 수급할 수 있을지도···. 겸사겸사 하오문의 무력 지원도 기대할 수 있겠지.”
***
무림맹의 직속 무력부대인 맹호진천대의 대주인 오화령은 마교의 움직임이 뜸해진 사이 하오문으로 향했다. 하오문에서 맹호진천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오화령은 무리 없이 하오문 지휘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맹호진천대의 대주 오화령입니다.”
“···하오문의 부문주를 맡고 있는 사중환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부문주님이셨군요.”
“오 대주님이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마교도의 움직임을 주시하다가 이들의 목적을 알 것 같아 하오문에 들었습니다.”
“마교의 목적?”
“그렇습니다. 마교가 이유 없이 섬서의 서안에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는 가정 하에 연유를 따져봤고, 그 끝에는 하오문이 있었습니다.”
“마교가 하오문을 노린다는 뜻입니까?”
“예. 하오문의 영단. 그것이 마교의 목적으로 보입니다.”
“아. 그야···.”
누구나 거기까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맹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오긴 했지요.”
“그렇습니까?”
“무림맹의 제갈 군사가 전한 말이 있었습니다. 마교에서 하오문의 영단을 노릴 것이니 조심하라는 전언이었지요.”
‘우리가 의심할 정도이니, 군사라면 당연히 알고 있었겠구나.’
“허면 어찌 맹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으십니까. 지금이야 우리가 밖에서 막고 있지만, 마교가 하오문을 노리면···.”
하오문에서 갖고 있는 영단이 모조리 마교에 탈취당하지 않겠는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오 대주.”
“···하오문에 마교를 막을 힘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말이 아닙니다.”
물론 막아낼 여력이 있었고, 실제로 막아내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여긴 영단이 없으니 걱정할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예?”
“하오문 본단에 영단은 없습니다. 모처에서 비밀리에 제조, 보관하고 있지요. 중원 무림에서 커다란 관심을 받고 있는 영단을 이렇게 다 드러난 곳에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
“제갈 군사에게도 이를 전했기에 하오문에 따로 무인들을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교에 이런 정보를 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럼 어디에···.”
“비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물어본다고 말해줄 수 있으면 그것이 비밀이겠습니까?”
“아. 예···.”
결국 오화령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하오문을 나섰고, 맹호진천대로 돌아가 대원들에게도 그대로 알렸다.
“여기 없단다.”
“네?”
“하오문의 영단은 여기서 만들지도 않고, 보관도 안 한다고 했어. 서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제조하고 유통하는 모양이야.”
“아···.”
“썩을. 마교가 그걸 모르니 여기서 활동하고 있는 거야.”
사실 마교가 서안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맹호진천대의 예상과 같이 하오문의 영단을 확보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 이유 하나가 아니다. 무림맹이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천에서 죽은 마교의 장로 홍태소의 일로 마한로를 쫓았고, 죽산에서 마한로를 찾아낸 것이 발단이었다. 거기서 마교의 무력단 중 하나인 혈무단이 하오문의 흑림방에 전멸했고, 이후 마한로가 이동 경로를 따라 서안까지 쫓아온 것이다.
“그럼 마교에서 영단이 여기 없다는 사실을 알면···.”
“걸핏하면 숨어드는 녀석들이다. 괜히 알려서 숨어들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이번 기회에 놈들을 찾아내 전부 죽여 버려야지.”
“······.”
맹호진천대는 객잔의 별채에 머물고 있었는데, 별채 담벼락에선 이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교주의 명으로 서안에 들어온 은마단원 중 하나였다.
‘겨우 네까짓 놈들에게 우리가 당할 것 같으냐? 오늘 밤 너희 전부를 멸할 것이다.’
맹호진천대의 위치를 확인한 은마단원이 조심스럽게 골목을 빠져나가려 했는데, 허벅다리에 따끔함이 느껴졌다.
얼른 고개를 내려 확인하니 반짝이는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
은빛 암기였는데, 문제는 그 끝이 검게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도, 독!”
얼른 고개를 돌려 암기를 날렸을 방향 주변을 확인했지만, 흉수는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픽.
그 사이 다른 쪽 허벅다리에도 따끔함이 느껴졌다.
“!”
역시나 같은 암기였다.
“······제길.”
얼른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다리가 마비되기 시작한 터라 경공을 펼칠 수가 없었다.
피빅. 픽.
“끅. 끄윽.”
은마단원의 등이 고슴도치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암기가 날아든 탓이다.
“끄으으.”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바닥에 몸을 누인 은마단원은 숨을 거두었고, 곧 검은 장포를 입은 인물들이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타닥. 탁.
“시체 치우고 암기 정리해.”
“예.”
“···무림맹의 무인이라는 놈들이 너무 조심성이 없습니다.”
“이 새끼들은 똥오줌까지 가려줘야 하려나?”
“그래도 저희 대신 피를 흘려주지 않습니까.”
“에효. 얼른 제 자리로 복귀해. 황혼단이 오면 얼른 교체하고.”
“예. 단주님.”
흑림방의 여명단과 황혼단이 번갈아가며 맹호진천대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여태 마교가 맹호진천대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흑림방이 아니었다면 무림맹의 무력대는 초기에 전멸을 당해 흔적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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