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232)

인연의 조우

***

마한로는 마교에서 자신을 노리는 줄도 모르고 서안에서 구걸에 여념이 없었다.

“헤헤. 만 형님. 여긴 인심이 좋아서 먹고살기 좋습니다.”

죽산에선 쉽지 않았던 구걸이었는데, 서안에선 길을 가던 여럿이 적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만정소는 아무것도 모르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마한로의 천진만만한 행실에 고개를 저었다.

“···으휴. 구걸은 적당히 끝내고 산으로 들어가서 수련이나 해.”

근방에선 항상 마교가 감시를 이어가고 있었다. 만정소는 하오문을 통해 그 정보를 계속 듣고 있었지만, 마한로는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수련이야 나중에 하오문에 들면 받을 수 있다하지 않으셨습니까. 우선은 돈을 벌어놔야···.”

“아는 사람에게 들어보니 하오문 수련관에 드는 것도 까다로워졌다고 하더라. 미리부터 몸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수련관에 들어도 수료하지 못하는 수도 있어.”

“···수련관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고 수료하는 것도 어렵다고요?”

“애초에 너는 수련관이 문제가 아니라 하오문 문도로 받아주는 것부터가 문제다.”

일기(一期) 대선배인 위지승으로부터 마한로의 개방 입문을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개방으로 들지 못하면 이 도끼를 들고 정식으로 하오문에 입문하면 됩니다요.”

힘줄이 잘렸던 다리가 회복하며 힘이 대부분 돌아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즘 마한로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

만정소는 도끼를 붕붕 돌리며 웃는 마한로를 안타까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일기(一期)에서 반대하는데 무슨 수로···.’

그 위에서 승인하지 않는 한 마한로의 하오문 입문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기(一期) 위를 따지면···.’

일기 위지승이 단주급이었으니 그 위는 방주와 문주밖에 남질 않는다.

“······.”

아무리 생각해도 마한로의 하오문 입문은 어려울 것 같았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가자.”

“···벌써 땅거미가 집니까? 그럼 가야죠.”

둘이 사는 집은 다름 아닌 다리아래 움막이었다. 보통 개방도는 관우의 사당인 관제묘를 거점 삼아 움직이지만, 이미 서안의 관제묘는 서안 개방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만정소는 다리 하나를 골라 거적때기로 움막을 지은 것이다.

“!”

다리로 향하던 만정소는 한 가옥에서 나서던 두 인물을 보고 깜짝 놀라서 부복했다. 한 사람은 자신이 수련관에서 얼굴을 익혔던 패방의 사 방주였고, 다른 한 사람은 죽산에서 마주쳤던 왕 방주였다. 둘은 오해가 풀리고 난 다음부터 자주 만나서 회동을 하고 있었다.

“헙! 두 분 방주님을 뵈옵니다.”

왕호가 먼저 만정소의 인사를 받았다.

“어이쿠. 여기서 그대를 마주치는 군. 만정소. 잘 지냈나?”

“말단 개방도를 기억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중환은 만정소를 보고 인사하려다가 그 뒤에 있는 인물과 눈을 마주치는 바람에 난감한 상태였다.

“······.”

“야. 얼른 인사드려.”

만정소의 재촉에도 마한로는 사중환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중환.”

“이 놈이! 이분이 누구라고 이름을 불러? 죄송합니다. 부문주님.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라···.”

사중환은 만정소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마한로의 인사를 받았다.

“···오랜만이오. 마한로. 잘 지내셨소.”

과거의 인연이 오늘 얼굴을 마주한 것이다.

“!”

만정소는 부문주가 마한로를 알아보자 깜짝 놀라서 마한로를 돌아봤다. 하지만 마한로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네가 하오문의 부문주가···.”

“흑패란 흑패는 모조리 하오문 소속이 되지 않았겠소. 자장 흑패도 하오문에 들 수 있었소.”

“그럼 진호···.”

당연히 자신의 다리에 칼자국을 냈던 진호충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사중환은 얼른 그의 말을 자르며 들어왔다.

“그 분은 좋은 스승을 만나 다른 곳으로 가셨소. 현재 하오문의 문주님은 무신(武神)이라 불리실 정도로 엄청난 무위를 갖춘 분이오. 아마도 중원 무림에 그 분과 대적할 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오. 여기 왕 방주와 같이 문주님께 사사받았는데, 왕 방주는 무림 방파의 장문인과 가주를 상대로 승리를 따 낼 정도이지요. 그러니 문주님의 무위는 말해 무얼 하겠소.”

“······.”

괜히 마음에 찔려 하오문주와 하오문에 관해 구구절절 설명한 것이다.

그리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물었다.

“혹시 하오문도가 되셨소? 요즘 문도 수가 너무 늘어서 다 챙기지 못했소.”

“아직이다···.”

“자장 흑패에 소속되었던 녀석들 대부분이 지금 하오문에서 상당한 직책을 갖고 있소. 물론 무공도 상당히 익힌 상태요. 과거와는 너무나 달라졌지요.”

“하오문에 드는 것은 포기해야겠군.”

“···그러니 패주시절에 부하들에게 잘 하지 그러셨소.”

“그땐 내가 철이 없었어···.”

과거 마한로는 다혈질에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는 패주였다. 자장 흑패에서 마한로에게 얻어터지지 않은 조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녀석들과 마주치면 곱게 돌아가지 못할 거요.”

마한로에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당시의 일을 다 잊은 상태였다. 그저 마교에 쫓기는 마한로를 당장 하오문에 품을 수 없기에 하는 말이었다.

“······.”

“하지만 언제까지나 조심할 필요는 없소. 내가 녀석들에게 미리 말해두겠소. 그대가 하오문에 들어올 수 있도록···.”

“······.”

마한로는 차마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배운 것은 주먹질과 도끼질이 전부였다.

‘아. 구걸도 있지.’

지금은 하오문 개방 소속인 만정소 덕분에 구걸을 해도 다른 개방도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언제까지 만정소가 자신을 지켜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오문에 입문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부탁 좀 하자.”

“다리는 좀 어떻소?”

“이제 다 나았어.”

“다행이오.”

그 말을 끝으로 사중환은 고개를 돌렸다.

“갑시다. 왕 방주.”

“예. 부문주님.”

곧 사중환은 왕호와 함께 경공을 펼쳐 사라졌다.

파앗! 팟!

“후아. 너 진짜 예전에 패주였어?”

“······.”

마한로는 만정소의 말보다 방금 사중환이 보였던 경공에 더 관심이 있었다.

‘···사중환은 내가 올려다보기도 힘든 고수가 되었구나.’

패주인 자신 밑에서 이인자 노릇을 하던 사중환이 하오문의 부문주가 되었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는데, 자신을 따라하지도 못할 경공을 보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

손에 들린 도끼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부문주님이 네 밑이었다고?”

“···예전 일입니다. 그딴 과거는 아무도 기억 못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야. 그래도 부문주님이 네 연줄이면 하오문에 드는 것도 꿈은 아니겠다.”

“후우···. 만 형. 술 한 병만 사서 들어갑시다.”

과거의 일로 속에서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속이 쓰리냐?”

“···아닙니다. 그냥···. 그냥 내가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나 싶어서 그럽니다.”

“그게 그거지.”

“아우한테 술 한 병 안 사주실 거요?”

“오냐. 산다 사. 네가 부문주님과 연이 있다는데 내가 어찌 술을 못 사겠어?”

“······.”

.

.

.

그날 마한로는 술을 마시고도 잠에 들지 못했고, 결국 뜬 눈으로 새벽을 봐야 했다.

“······.”

과거 패주로 살아온 날들이 계속 떠오른 탓이다.

‘왜 그렇게 남들을 못살게 굴었을까.’

자신의 부하를 자처하는 녀석들에게까지 못되게 굴었던 과거가 계속 떠올랐다. 그들이 지금까지 자신을 향해 원망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특히 자신을 친형처럼 따랐던 소야에게까지 마음을 주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녀석들은 원망이라도 한다지만, 녀석의 마음속엔 오로지 자신밖에 없었다.

‘소야. 네게 그래선 안 됐어.’

자신 때문에 칼을 맞았고, 발이 불편한 자신을 수레에 앉혀 관도를 오갔으며, 높은 산에 오를 때는 업어서 데려다준 한 소야였다. 친형제도 아닌 자신을 피붙이처럼 대해준 녀석이었다.

‘잘 살고 있느냐.’

반신선이라 주장하는 백발 도인에게 소야를 남겨두고 도망쳤다. 당시엔 소야의 인생이 어찌될지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과거의 인연을 만나고 나서야 소야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내가 죽일 놈이지.’

“······.”

마한로는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며 다짐했다.

하오문에 들어갈 수 있게 노력하겠다던 사중환의 말을 들었지만, 하오문에는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다. 부하들을 볼 낯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소야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 우선이다.’

지은 죄의 사죄보다 받은 은혜를 갚는 일이 우선이었다.

‘내 남은 생은 너를 위해 살겠다. 소야.’

***

느즈막이 움막에서 일어나 눈곱을 떼던 만정소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귀를 후볐다.

“뭐라고?”

“···서안을 떠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서안에서 떠나면 어디로 가려고? 먹고살 방법이라도 있어?”

“은혜를 갚을 사람이 있습니다. 만 형님과 지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덕분에 저도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고, 세상을 어찌 살아가야할지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

“과거에 제가 흑패주로 살아갈 때 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로 지극한 충성을 보였던 녀석입니다. 다른 녀석들이 전부 제게 등을 돌려도 그 녀석은 저를 위해 남아 주었지요.”

“그럼 녀석은 네 다리가 병신이 된 다음에 떠난 거야?”

지금 곁에 없으니, 결국 마한로의 상태에 따라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느냐는 물음이었다.

“······아닙니다. 저를 낫게 해주려고 은거기인이 머무는 산 정상까지 저를 업어간 놈입니다. 거기서 만난 도인이 저를 치료해주었습니다. 도인께서 녀석을 두고 가라고 해서···. 저 혼자 도망쳤지요.”

“허! 널 위해 모든 걸 내바치는 놈을 나 몰라라 했어?”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런 때는 생각이 짧다고 표현하지 않아. 그냥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만 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살았지요.”

“부문주님이 너를 위해 신경 써주신다고 했다만? 나중에 물어보시면 내가 뭐라고 한단 말이냐?”

“···제가 백배 사죄드린다고 대신 전해주십시오.”

“사죄를 대신 전하는 법이 어디 있어?”

“나중에 돌아올 수 있으면 제가 직접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을 정했구나.”

“예. 앞으로는 세상을 달리 살아갈 생각입니다.”

“······.”

안 그래도 마교의 일에 마한로가 연루되어 있어 하오문에 마음이 불편한 참이었다. 하오문도가 아닌 마한로를 위해 너무 많은 하오문의 전력이 투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갈 생각이냐?”

“고대중원무림비서라는 서책에 기록된 백발 도인의 거처입니다.”

“고대중원무림비서?”

아무리 생각해도 사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 서책의 제목이었다.

“서책의 제목은 신뢰가 가지 않지만, 도인에게 신통력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도인에게 그 아이를 맡겨두고 왔습니다. 청해(靑海)에 노야산이 있는데 거기로 갈 생각입니다. 거기서 녀석과 함께할 생각입니다.”

소야만을 제자로 받아준다 하였기에 자신은 곁에서 시중이라도 들게 해달라고 매달릴 생각이었다.

“청해까지 가려면 한참이겠어. 에휴. 네 놈 때문에 나만 고생이다.”

“···같이 가주시려고요?”

“그럼 네 놈을 혼자 보내겠느냐!”

짐이라고 할 것도 많지 않았지만, 만정소는 툴툴거리면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울컥한 마한로는 멍하니 만정소를 보고 있다가 호통을 들어야 했다.

“빨리 움직여! 얼른 다녀와서 홀가분하게 편히 살 생각이니.”

“···감사합니다. 형님. 녀석에게 입은 은혜를 모두 갚으면 이후 만 형에게 은혜를 갚겠습니다.”

“은혜는 개뿔. 산에 들어가거든 다시는 나오지 마라. 괜히 나만 귀찮아지지.”

“······.”

“밖에 다녀올 테니 넌 움막이나 치워.”

“예.”

.

.

.

마한로를 두고 밖으로 나온 만정소는 서안의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고, 곧 하오문의 인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한로 주변을 지키는 흑림방이었다. 만정소는 항상 이 골목에서 흑림방을 만나왔다.

“···녀석이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합니다.”

“어디로?”

“산속에 틀어박힐 생각으로 보입니다. 안 그래도 흑림방에서 고생하시는 터라 녀석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녀석이 서안에서 사라지면 마교의 공세가 그나마 조금 덜해지긴 할 것이야.”

“위치는 청해성 노야산입니다. 거기까지만 동행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기랄. 멀리도 가네.”

흑림방도 꼼짝없이 청해성까지 동행할 판이다.

“고대무림비서라는 서책을 작성한 도인이 노야산에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녀석을 따르던 부하를 그곳에 남겨두었다고 했습니다.”

“···에효. 윗선에 전달하지. 언제 갈 생각이지?”

“지금 짐을 꾸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인원을 차출하고 출발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니 저녁에 출발하는 편이 좋겠어.”

“예. 그리하지요.”

“아예 마교를 따돌리고 가면 편할 것이니, 수레를 준비해주지.”

외지에서 마교까지 상대하면서 길을 갈 수는 없었다. 죽산에서 서안까지 오는 길은 그나마 짧은 여정이었지만, 청해까지는 무리였다. 인원을 최소화하고 중간에 돌아오려면 마교를 따돌려야 했다.

“부탁드립니다.”

그날 저녁 무림맹의 맹호진천대를 경계하느라 마교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에 상행에 나서는 일련의 무리가 서안을 빠져나갔다. 상행에 오른 수레 중 하나에는 거적을 두른 두 거지가 얼굴을 감추고 탑승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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