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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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감정이 진정된 다음 초옥에 들어와 연만호 앞에 앉았다.
“앞으로 잡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도인께서 치료해주신 덕에 다리도 멀쩡하니 밖에 나가서 짐승이라도 잡아 오겠습니다.”
“허허. 그리해라.”
“예! 감사합니다.”
“······.”
소야는 자신이 따르던 마한로가 시종으로 일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스승에게 감히 제자로 받아 달라 청할 수는 없었다.
“제자야.”
“예. 스승님.”
“너는 내가 무림에서 경원시하는 천마신교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예.”
“상관없느냐?”
“한번 스승님은 영원토록 스승님입니다. 또한 제자는 정파 무림과 인연이 없습니다.”
“······.”
다만 아까 이 얘기를 듣지 못한 마한로의 눈이 연만호를 향해있었다.
“신교에선 네가 장로를 죽였다고 오해하고 있더구나. 다시는 이리로 오지 말라 했으니, 너를 잡으러 오는 신교의 무인들은 없을 것이다.”
“제가 무슨 수로 마교···. 아니 신교의 장로를 죽이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말이다. 네가 신교의 장로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디서 그런 오해가 생겼을지 나도 궁금하구나.”
“저랑 닮은 놈이 또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래. 그랬을지도 모르지.”
.
.
.
이후 노야산 초옥은 조금 부산해졌다. 매일 같이 연만호의 가르침에 수련을 이어가는 소야가 있었고, 그런 소야의 뒤에는 항상 마한로가 대기하고 있었다. 땀이 날 것 같으면 닦을 천을 가져오고 빨래가 쌓이면 빨래를 했다. 식사 때가 되면 부지런히 움직여 세 사람분의 식사를 마련했다. 그 전엔 모두 소야가 하던 일이었다.
소야는 연만호가 쉬라고 한 틈에 마한로 곁으로 와서 말했다.
“패주가 저 같은 놈보다 더 무공에 재능이 있으실 것인데···.”
“난 다리 힘줄이 잘려서 어려워. 네 마음만 받으마.”
“스승님이 다 낫게 해주셨잖습니까.”
“그저 범인과 같은 수준이다. 전처럼 도끼를 자유자재로 쓰지 못해.”
마한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도끼를 휘두르며 과거의 부법을 연습하고 있었지만, 도끼를 휘두르며 깨달을 수 있었다. 다쳤을 때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전에 멀쩡하던 때와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후우.”
“난 지금 생활도 너무 좋다. 어차피 중원의 모든 흑패가 하나로 통합되기도 했고···. 내가 설 자리는 없어.”
“흑패가 통합되다니요?”
“아. 너도 중환이 알지?”
자장흑패의 조직원이었던 소야가 어찌 사중환을 모르겠는가.
“사중환 형님이요? 만나보셨습니까?”
“그래. 자장에서 본 것은 아니야. 중원의 모든 흑패를 하나로 통합한 하오문이라는 곳이 있는데, 사중환이 거기서 부문주를 맡고 있더라. 무림 방파의 부문주면 크게 출세했지.”
“후아.”
“내 앞에서 경공으로 휙 날아가는데 무위가 범상치 않았어. 엄청난 무공을 익힌 모양이야.”
“사 형님은 패주님을 만났으면 하오문에 뭐라도 시켜주셨어야지! 너무하지 않습니까!”
“···내가 흑패주 시절에 어찌 살아왔는지 잊었어? 중환이가 날 패죽이지 않은 것도 고마워해야 해.”
“······.”
“다른 놈들도 하오문에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모양이더라. 놈들이 날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어. 그래도 중환이 녀석이 의리는 좀 있었지. 나중에 날 꼭 하오문에 넣어주겠다고 했는데···.”
“···패주.”
“날 언제까지 패주라고 부를 거야? 그냥 마 형이라고 해.”
“에이. 그래도 제가 어찌···.”
“소야.”
“예. 패주.”
“연소야.”
소야라는 부름에는 패주로 답했지만, 스승님의 성을 붙여 연소야라고 부르니 함부로 답할 수 없었다.
“······.”
“이제 넌 도인 어르신의 제자이고 도인의 성까지 받아 연소야가 되었어. 나도 흑패주가 아니고 너도 과거의 네가 아니야. 우린 그저 사람과 사람으로 다시 만난 거야. 그러니 우리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해.”
“그럼···. 형님이라고 부를래요. 마 형은 좀 그렇잖아요.”
“그럼 난 동생이 생긴 건가? ···연 동생. 앞으로 잘 부탁해.”
“형님도 스승님께 말씀드려서 뭐라도 배워 봐요. 꼭 무공이 아니라도 스승님은 정말 많은 걸 알고 계신다고요.”
“나 같은 놈은 아무리 좋을 것을 배워봤자 쓸모없어.”
“쓸모가 없기는 왜 없습니까?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터인데.”
“···같은 물을 마셔도 소는 영양 가득한 유(乳)를 내지만, 독사는 치명적인 독(毒)을 만든다. 나는 독사 같은 놈이다. 좋은 것을 배워도 좋은 곳에 쓰지 못하는 놈이지.”
“···나 없는 동안 공맹의 도를 깨우치기라도 하셨소?”
“큭. 너는 무공이 아니라 현인의 가르침을 먼저 배워야겠구나. 이게 어찌 공맹의 도에 비기겠느냐. 그저 인생을 살다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
연만호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신교는 오로지 무공의 고하로 지위가 결정되지만, 속한 가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 역사상 가장 많은 교주를 배출한 가문이 있었는데, 바로 연만호의 가문인 연씨 가문이었다.
연씨 가문의 시조로부터 이어온 유산은 마교의 마공과 결을 달리하는 선(仙)을 지향하고 있었다. 신선(神仙)이 되는 것이 목적이기에 부수적으로 몸을 단련하기 위해 무공을 익히고 주력으로 상단전을 단련하여 높은 깨달음을 추구한다. 그 결과로 등선하여 신선(神仙)에 이르는 지극한 상승 공부였다.
이러한 연씨 가문의 독특한 무공을 어려서부터 맛보았기 때문일까? 덕분에 아들과 손자뿐 아니라 많은 선조들이 마교의 교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만호의 아들과 손자의 경우 진정한 연씨 가문의 후계자라고 볼 수 없었다. 부수적으로 익히는 무공을 주력으로 삼고 정신 수향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가문의 후계자들에게 소외 받는 무공이니, 신교 내에서 받는 대우도 다르지 않았다.
신선(神仙)을 목표로 하는 연씨 가문의 가전 무공은 언제나 소외당하기 일쑤였다. 대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공능이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할 사람은 연만호 단 하나뿐이었다. 연만호는 교주가 된 아들과 절연하며 금지에서 가전 무공에만 파고들 수 있었고, 자신이 익힌 가문의 무공을 후대에 전하려고 무공서까지 만들어 외부에 전한 것이다.
‘일인전승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가문에서 내려온 유진(遺塵)을 이으려 소야를 제자로 들였다. 아무도 익히지 않으려 했기에 첫 제자에게 모든 것을 물려줄 각오였다.
‘하나보다는 둘이 낫겠지.’
비인부전(非人不傳) 부재승덕(不才承德)에 따라 마한로를 내쳤지만, 이제 마한로가 달라졌으니 제자로 들여도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만 쉬고 둘은 이리로 와 보아라.”
연만호의 명에 마한로와 연소야가 얼른 달려왔다.
“예. 스승님.”
“부르셨습니까. 어르신.”
“제자야.”
“예. 스승님.”
“무공은 그저 몸을 단련하는 수단에 불과하며, 정신의 깨달음을 위해 적당한 수준으로 단련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무공을 우선하면 진정한 깨달음을 찾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같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마한로는 연만호의 부름에 따라왔다가 현기(玄機) 가득한 말을 듣고 탄성을 내질렀다.
“아!”
마한로의 탄성에 연만호가 물었다.
“마한로야. 너는 무엇을 깨달았느냐?”
마한로는 연만호의 말에 깊이 빠져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줄줄 뱉어냈다.
“선심후수(先心後手). 마음(心)과 의(意)를 먼저 수련하여 익히면 수법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법. 이야말로 신선(神仙)의 도(道)라 할 것입니다. 무공만으로 따지자면 깊은 내공을 쌓고 이후에 초식을 배우는 방식이 되겠습니다. 오히려 이 길이 무공을 익히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지 않을지···.”
“!”
“와아···.”
“실로 엄청난 가르침입니다. 어르신.”
연만호는 마한로의 오성(悟性)이 생각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야는 하나를 알려주면 알려준 하나를 조금 뒤에 잊는(?) 정도였기에 평범한 수준에서 조금(?) 못 미친다 할 것이다. 마한로의 경우···.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우칠 아이로구나.’
“···마한로야. 너는 부법(斧法)을 익혔다고 들었다.”
“예. 어르신.”
“누구에게 부법(斧法)을 사사 받았느냐? 스승이 있었더냐? 아니면 무공서를 보고 홀로 익혔더냐?”
상단전의 공능으로 마한로의 어린 시절까지 살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설픈 스승에게 무공을 배웠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면 홀로 하급 무공서를 보고 부법(斧法)을 익혔다는 가정으로 마한로가 보였던 낮은 무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마한로의 답은 연만호의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 넘었다.
“집안이 보잘 것 없는데, 어찌 스승을 모실 수 있었겠습니까. 하급 무공서를 살 돈도 없었습니다. ···어려서 홀로 나무를 하다가 배웠습니다. 나무를 이리 찍고 저리 찍고 하다 보니 도끼가 가야할 길이 보였습니다. 초식의 이름도 제 마음대로 붙였지요.”
아예 무공서조차 보지 않았다는 말에 연만호는 황망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물었다.
“···내공심법은?”
“나중에 흑패주가 되고서 얻은 삼재심법을 몇 년 익혔지요.
“몇 년?”
“한 삼 년 쯤 됩니다. 술 먹고 노느라 그마저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지요.”
“······.”
삼십 년도 아니고 고작 삼 년, 그마저도 깊이 정진하지 않았단다.
만약 마한로에게 내공심법과 무공서가 있었다면 엄청난 무위를 보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절로 들었다.
‘···최소 일문의 종사급.’
연만호는 오히려 염려하기 시작했다. 마한로를 제자로 들일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뛰어난 오성이 오히려 독이 되진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무공이 늘 것이니 게을러 질 것이고···. 거대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니 그 힘으로 남을 짓밟지 않겠는가.’
“마한로야.”
“예. 어르신.”
연만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다리가 다 나아서 고절한 무공을 익힌다면 너는 어찌 살고 싶으냐?”
“···저는 계속 소야 동생의 시중을 들며 평생 살 것입니다.”
“소야가 더 이상 너와 있는 것이 싫어 너를 자유로이 보내준다면?”
“···소야 말고 은혜를 입은 형님이 한 분 계십니다. 이후엔 그 형님을 뫼시고 평생 살지요.”
“그 마저 너를 자유롭게 해준다면 어찌하겠느냐? 그리고 네 무공이 하늘에 이르러 누구도 너를 넘보지 못한다면 말이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만···.”
“쓰읍.”
“···무, 물론 있을 수도 있지요.”
마한로는 무시무시한 연만호의 표정에 얼른 머리를 굴렸다.
‘내가 절대 무위를 갖췄어. 그리고 세상에 나갔어. 중원 무림에서 내가 최고야. ···그래서 뭐?’
“······.”
짧은 시간 동안의 고민이었지만, 마한로는 깊이 자신을 돌아봤다.
‘다리가 나아도 만 형과 구걸이나 하면서 살려고 하지 않았는가. 지난 과오를 바로잡을 것인데, 무공의 유무가 무슨 상관인가.’
“제가 절대 무공을 익힌다면 저는 지금까지 제가 지금까지 죄를 지은 부하들에게 갚으며 살겠습니다. 녀석들에게 지은 죄가 남았습니다. 하나 당 일이 년만 따져도 백년은 훌쩍 넘어설 겁니다. ···예전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너는 그 생각뿐이더냐?”
“예. 남들 위에 서는 이기적인 삶은 충분히 살아봤습니다. 그리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
연만호는 마한로의 말에서 단 한 점의 거짓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변화한 마음이 천기를 변화시키듯이 이후엔 뒤바뀔 수 있을 것인데···.’
“하지만 도인 어르신의 가정에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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