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
마한로는 앞으로 무림에서 고수 대접을 받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오문의 문주가 무신(武神)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무공을 익혔다고 합니다. 제가 아무리 무공을 익혀도 그 사람을 넘어서진 못할 것입니다.”
“허! 고작 정파 무림의 고수가 내 무공을 넘어설 수 있다고 여기느냐?”
연만호는 연씨 가문에서 내려온 가르침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천마신교에 고절한 무공이 얼마나 많이 숨겨져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정파의 무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문주에게 사사 받은 하오문의 방주가 무림 방파의 장문인과 세가의 가주를 이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문주의 무위는 얼마나 더 대단하겠습니까.”
“네 말이 일부 맞다 쳐도 상승 무공이 없는 정파 무림은···.”
마한로는 만정소를 통해 들었던 정파 무림의 변화를 입에 올렸다. 도인이 무림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오문에서 대도신투가 지금까지 챙겨둔 비급을 발견해서 정파 무림에 모두 넘겼습니다. 이제 정파 무림도 상승 무공을 입수해 익히고 있습니다.”
“!”
연만호는 밖의 소식에 어두워 아직 황궁이 상승 무공을 제한하고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얼마 전 태자가 무림 세가인 모용 가의 여식과 혼인하며 세 개 문파의 상승 무공 보유를 허락하기도 했지요. 앞으로 더 많은 무림 방파의 상승 무공을 허락한다 하여 저마다 입수한 상승 무공을 익히고 있습니다.”
“···황궁에서 상승 무공 규제를 철폐하고 있다고?”
“예.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선심후수도 쉬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하오문에서 엄청난 영단을 만들어 냈고 또 무림에 팔고 있습니다. 무려 단약 하나에 십년의 공력을 쌓게 해주는 영단이지요. 이미 상승 무공을 익히는 이들이 영단의 효능을 증명했다고 들었습니다.”
“허! 허!!”
외부 사정에 어두우니 이제야 무림의 소식을 듣는 것이다.
“중원 무림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제가 지금부터 아무리 무공을 익힌다 한들 어찌 무림의 고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무림에 뛰어들 시점의 정파 무림엔 상승 무공을 익힌 고수들이 즐비할 것입니다.”
“······.”
연만호는 자신의 염려가 부질없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중원 무림이 그리 돌아간다면 마한로가 소야와 함께 익혀도 무방하겠구나.’
세상의 일과 천마신교의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관심 둘 일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신선의 도를 따라 정진하면 그만이었다.
“네 덕분에 결정할 수 있겠구나. 제자야. 마한로야. 들어라.”
“예. 스승님.”
“예. 도인 어르신.”
“오늘부터 연소야는 사형이 될 것이다.”
“!”
“사형 연소야는 사제 마한로를 맞이한다. 오늘부터 마한로도 내 제자다.”
“예?”
“소야가 먼저 나의 제자가 되었으니, 마한로 네게는 사형이 될 것이다. 알겠느냐?”
소야는 청하지 않았음에도 마한로를 제자로 들이는 스승에게 연신 감사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마한로는 믿기지 않아 되물었다.
“저,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니까?”
“어서 절을 올리지 않고 무얼 하느냐. 그래야 정식 제자가 될 것이다.”
마한로는 꿈이 아님을 깨닫고 자세를 바로 했다.
“···마한로가 연만호 스승님께 예를 올립니다.”
일 배, 이 배, 삼 배······. 구 배에 이르기까지 정성스럽게 절을 올린 마한로가 연만호 앞에 꿇어앉았다.
“제자 마한로. 스승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겠습니다.”
“···천마신교는 걱정되지 않느냐?”
지금은 연이 끊어졌다지만, 자신은 정파 무림이 적대하는 천마신교의 태상장로 출신이었고, 천마신교의 교주와 핏줄로 이어져 있었다.
“무공은 누구의 손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옵니다. 바른 스승과 선량한 사형을 모시고 무공을 익힐 것인데, 천마신교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너는 쉬이 무공을 익히고 쉬이 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이다.”
“부디 스승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소야를 향해서도 절을 올렸다.
“사제 마한로가 연소야 사형을 뵈옵니다.”
“아, 아니 나는···.”
소야는 자신에게 절을 올리는 마한로를 말리고 싶었지만, 연만호가 옆에서 고개를 내젓고 있었기에 마한로의 절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스승님과 사형을 맞이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
“앞으로 사형을 진심으로 따르고 보필하겠습니다.”
“하하. 이제 제가 형님 대접을 받는 겁니까? 세상 오래살고 볼일입니다.”
“예. 연 사형.”
“어우. 그래도 사형 소리는 도저히 못 듣겠습니다. 스승님.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마한로를 제자로 삼아준 것은 고맙지만, 호칭은 정리하고 싶었다. 어떻게 마한로에게 형님 소를 들을 수 있겠는가.
“호칭에 따라 마음도 달라지는 법이다. 전처럼 한로를 형님이라 부르면 네가 경을 칠 줄 알아라.”
“···예. 조심하겠습니다.”
연만호 스승의 말은 제자들에게 곧 법이었다.
“제자 마한로는 내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라.”
“예. 스승님.”
마한로는 스승 연만호가 무엇을 하려는지 묻지도 않고 따랐다.
“이미 네 사형도 거쳐 간 일이다. 내가 배워 익힌 연씨 가문의 무공을 네게 전할 것이다.”
상단전의 공능으로 행하는 격체전공의 일종이었다.
이는 연씨 가문의 가장 비밀스러운 의식이었는데, 수많은 무공을 단번에 전할 수 있는 괴이한 술법이었다. 다만 이를 전수받는 제자의 뛰어난 오성이 함께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고, 전수하는 고수의 정신력을 갈아먹는 단점도 존재했다.
연만호의 손바닥이 마한로의 정수를 덮었다.
“긴장을 풀고 내가 전하는 모든 것을 편히 받아들여라. 네가 마음먹기에 따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제 전부를 스승님께 맡깁니다.”
‘마음가짐부터 소야와 다르구나.’
소야의 경우 긴장을 풀라고 해도 자꾸만 몸을 움츠렸는데, 마한로는 내뱉은 말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스승에게 내맡기고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마한로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는데, 심상에 처음 보는 무공이 가득 새겨지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통해 연씨 가문의 모든 무공과 깨달음이 전해지는 것이다. 연만호의 이마에서 흐른 땀이 턱 밑에서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상단전의 공능을 활용하는 이 술법은 어마어마한 정신력이 소모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술법이 행해지는 동안 마한로의 감은 눈꺼풀은 지진이 난 것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연만호의 손이 떨어지고 나서 한참 뒤까지 마한로는 감은 눈을 뜨지 않고 있었고, 소야는 그런 마한로가 걱정이었다.
“스승님. 뭐가 잘못 되었나요? 저는 이렇지 않았는데···.”
“···조용히 기다려 보거라.”
“···예.”
마한로가 눈을 뜬 것은 잠시 뒤였다.
“······.”
마한로가 눈을 떴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는 것 같았다.
“정신이 드느냐?”
“···제가 세상이고 세상이 저인 기분입니다.”
연만호는 마한로가 말하는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허허.”
“이런 세상에서 제가 존재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가 살아있음이 새롭고 세상이 새로우며, 세상 만물이 유기적으로 물려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저이며, 저 또한 세상입니다.”
연만호는 마한로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너 스스로를 깨닫는 것이 첫째요, 네가 디디고 서있는 세상을 깨닫는 것이 둘째다. 세상과 네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 셋째인데, 너는 벌써 거기까지 깨달았구나.”
“···모든 것은 스승님의 은공입니다. 덕분에 제자가 마음(心)을 준비하였습니다.”
선심후수에서 심(心)을 얻었다는 뜻이었다. 내공은 부족하지만 의(意)는 확실하게 얻은 것이다.
‘연씨 가문의 진정한 전인을 찾았구나.’
자신도 아버지로부터 같은 방식으로 무공을 전수 받았지만, 당시 마한로와 같은 깨달음까지 도달하진 못했다. 고작 나를 깨닫는 것이 전부였다.
“···제게는 그런 말씀이 없으셨는데요?”
소야는 첫째인 스스로를 깨닫는 것부터 막혔기에 지금도 직접 가르침을 내려주고 있었다. 스스로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몸을 움직이며 기초 무공을 익히게 한 것이다.
“이 방법은 평생에 단 한번만 가능하다. 너는 앞으로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해야 세 번째 단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하세요.”
“그래도 네가 사형이 아니냐. 사제의 깨달음이 높다한들 사제일뿐.”
“에효. 벌써 따라잡혀 버리다니···. 사형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허허. 서로 도우며 함께 익히면 빠른 성취를 보일 것이다. 그러니 상심할 필요 없다.”
연만호는 마한로를 제자로 들인 것 또한 하늘의 뜻이고 천기의 오묘한 흐름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둘째 제자 덕분에 큰 짐을 덜겠구나.’
***
이후 연만호는 자신이 수행하던 신선의 도에 집중할 수 있었고, 소야의 수행은 마한로가 돕게 되었다.
“···사형. 이건 이미 스승께서 다 알려주신 것인데···.”
마한로의 머리에 각인된 연씨 가문의 모든 무공과 깨달음과 달리 소야는 무공부터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둘은 여태껏 배운 기초 무공에서 조금 더 높은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소야는 다 익혔고, 마한로는 배울 필요조차 없었기에 넘어가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걸?”
소야는 스승의 명이라 마한로를 진정한 사제로 여기고 편히 말하고 있었다. 누구의 명이라고 거역하겠는가.
“···그럼 심법부터 하실까요?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선심후수를 위해서는 심법을 가장 우선해야지요.”
“심법도 있었나?”
“······.”
‘그럼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수련을 이어왔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소야가 내공심법을 수련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혹시 매번 스승님께서 봐주셨습니까?”
“그랬지.”
스승님의 제자가 되기 전엔 이상하다 여기지도 않았던 일이다.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하겠는가.
“······.”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한로는 스승이 상단전의 공능으로 전해준 연씨 가문의 무공과 깨달음은 잊혀 질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제가 심법을 하나씩 다시 일러드리겠습니다. 사형.”
“···응.”
“입이 아닌 코를 통하여 숨을 들이키는데, 이를 입식이라 합니다. 입식으로 천천히 들어온 기운은 옥당과 단중, 중정을 통과하여 신궐에서 탁기를 정화하고 기해, 석문, 관원, 중극을 돌아···.”
“자, 잠깐 천천히···. 그 혈도가 어디인지부터 다시 설명해줘.”
“······.”
마한로는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렸다.
‘나는 지금 어르신을 모시고 무공을 가르치는 거야. 그래. 아무것도 모르시는 어르신이 처음 무공을 익힌다고 생각하자.’
방긋 웃으며 눈을 뜬 마한로는 도를 닦는 마음으로 소야의 무공 수련을 도왔다.
또한 지금까지 지은 죄에 벌을 받는다고 여겼다.
‘내가 지은 죄가 너무 많구나···.’
“여기가 옥당인가?”
“으득. 거긴 중정이죠.”
하지만 첫 단추부터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
“그럼 여기?”
“으드득. 거긴 신궐. 왜 자꾸 옥당에서 멀어집니까! 지금 장난 나랑 합니까!”
“···지금 사형에게 화내?”
“···아, 아닙니다. 사제가 어찌 사형에게 화를 내겠습니까.”
마한로는 화를 누그러트리며 소야의 가슴어림에 옥당혈을 짚어주었다.
“자. 여기가 옥당입니다. 꼭 기억하세요.”
“아휴. 혈도가 상당히 어렵네.”
“······이제 내공심법의 첫 혈도를 잡았습니다만.”
이제 하나 알려주었는데 어렵다면 어쩌자는 건가.
“시작이 반이라잖아. 반이나 했으니 어렵지.”
“······훗날 제가 꼭 하오문의 영단을 챙겨서 먹여드릴 것입니다. 하오문의 부문주가 된 철필에게 빌어서라도 가져다 드리지요.”
하오문의 영단이 아니면 대사형이 평생 심법을 수련해도 십 년의 공력조차 쌓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우리 사제밖에 없지.”
“···저는 사형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형 고수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스승을 향해 절로 존경심이 일었다.
‘그간 얼마나 고생을 하셨으면 제자들 수련 중에 한 번을 안 오신단 말입니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정도 둔재라면 어지간한 수행을 쌓지 않고는 가르치지 못했을 것이다.
‘스승님. 편히 신선의 도를 닦으십시오. 사형은 제가 맡겠습니다.’
.
.
.
연만호는 산중의 깊은 굴에 들어가 온화만 미소를 보이며 명상에 잠겨 있었다.
‘이제 살만 하구나. 역시 고난을 거쳐야 삶의 평화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