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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급 마인 (186/232)

최상급 마인

***

교주는 매끄러운 야광주를 쓰다듬으며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했다.

‘자. 다시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고, 그 일들은 상당히 복잡했던 덕분에 누군가 뒤에서 교의 일을 방해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없었다.

전에 벌어진 진가장의 실패도 계획적인 일이 아니라 어쩌다 우연히 벌어진 일로 생각됐다. 당시 모습을 드러냈던 파진후가 심산유곡에 처박혔는지 이후엔 그림자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천마신교의 교도들이 투입되어도 불가능한 일이야.’

정파 무림을 움직이는 것까지는 가능할 수 있지만, 이후의 일은 군부와 황궁, 은거한 조부까지 연관되어 있었다.

“······.”

이 모든 문제들 중에 마화평과 장문소를 잃은 것이 가장 뼈아팠다.

“마 장로···. 장 교사. 너희가 먼저 마천경에 들면 나는 어쩌라는 건가.”

이제 교에 남은 수단은 많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교의 전사들이 남아 있었고, 마공을 익힌 장로들이 있었지만, 향후 실행할 목표는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궁의 힘은 무조건 얻어야 한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어!’

천마신교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바로 황궁이었다.

그래야 고개를 들기 시작한 정파 무림을 짓누르고 신교의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부교주를 들라 해라.”

“···예.”

교주의 심기가 어지러움을 알고 몸을 떨던 시비가 얼른 밖으로 나섰고, 부교주가 교주전에 들었다.

“재림천마 만마앙복. 만세. 만세. 만만···.”

“지금 예를 받을 기분이 아니다.”

손을 휘저은 교주는 마지막 수단을 활용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궁에 잠입한 아이는?”

“···여전히 태자 곁에서 궁녀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자가 혼인하기 전부터 곁에 두고 밤 시중을 들었던 궁녀였다.

“아무래도 용을 잡아야겠다.”

“!”

용은 황제를 칭하는 단어였다. 교주가 용을 잡는다 했으니, 곧 황제를 시해하겠다는 말이었다.

“왕야가 사라졌으니, 그 외엔 방법이 없어.”

“···아직 태자가 저희와 뜻을 같이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진행하라고 부교주를 부르지 않았겠는가. 녀석에게 모든 걸 전하라.”

“···태자에게 출생의 비밀을 전하고 저희 쪽으로 끌어들이겠습니다. 본인이 황제의 아들이 아님을 안다면 저희에게 붙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교주는 작은 가능성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녀석의 어미는? 어미를 만나면 녀석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일이 어찌될지 몰라 남경에 대기시켜 뒀습니다. 교의 다른 전사들과 함께하지 않았기에 이번 분쟁에 얽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활용하기 위해 지금까지 그녀를 편히 먹고 살게 해주었다. 이제 은혜를 갚을 시간이었다.

“그럼 시작해. 태자 놈에게 진실을 알리고 어미를 만나게 해줘. 우리가 잃은 왕야는 황제의 은밀한 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전하면 될 것이다.”

친부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을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용을 잡아야지.”

“···용은 어찌 잡으면 되겠습니까.”

“궁에 납품하는 약재의 양을 늘리고 강도를 높여라. 이번에 입수한 수은과 섞으면 효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의심 없이 효과를 보자면 시일이 소요될 것입니다.”

마교는 황궁에 은밀하게 약재를 납품하고 있었는데, 그 약재는 다름 아닌 양귀비의 진액이었고, 이 진액은 황궁의 가장 높은 이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즉, 황제가 양귀비 진액을 즐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태자 놈을 얻고 나서나 시작 할 일이다. 그리고 왜 의심을 두려워하는가. 약을 납품하는 녀석들이 황실에 의심을 받아 잡힌다 한들, 녀석들은 장렬히 산화하여 꿈에 그리던 마천경에 들지 않겠느냐.”

교주는 교에 충성하는 교도들이 희생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혹여 작은 의심이라도 교에 전가될까 저어하여 드린 말씀입니다. 누구보다 교를 맹신하는 녀석들이니 기쁘게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부교주도 교주와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거짓 신을 내세워 이끄는 종교 단체에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지휘부가 있을 리 없었다.

“남경에서 암약하던 교의 정보단이 와해되었으니, 운신의 폭이 좁을 것이다.”

“어차피 외부의 대계를 진행하는 것도 아니니, 남은 핵심 인력이면 충분합니다. 이번엔 제가 직접 가서 일을 진행하지요. 다만 시간을 주십시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신교는 정파 무림과 황궁을 피해 다시 숨어들어야 할 것이다. 더는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건 간에 확실하게 일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믿어주십시오. 교주님.”

“내 믿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번 일의 성패에 따라 신교의 명운이 달려있을 뿐.”

“신교의 중원 장악에 초석이 되겠나이다.”

“가라. 가서 옛 용을 잡고, 새 용을 세워라.”

“재림천마 만마앙복. 만세. 만세. 만만세!”

***

“휘유. 남경은 어제나 오늘이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남경이다. 황궁의 존재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름답기로 소문난 태호(太湖)를 유람하려 오가는 이들이 많았다.

“남경은 전부터 항상 붐볐지요.”

남경의 임시 정보단주를 맡았던 유도영이 정식 정보단주로 임명받고 호충과 함께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이는 없지?”

“첫날 남경을 수호하는 주둔장군을 만나셨고, 이후 육부의 상서들과 대학사 종사현까지 만나셨으니 이제 없습니다.”

마교가 남경에서 물러난 다음 다시 하오문의 연락체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매번 인사하느라 허리가 뻐근할 지경이었지.”

“인사는 오히려 받으셨지요. 저마다 공자님을 알아봤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네. 인사는 내가 받았네.”

마교의 첩자들은 찾을 수 없었지만, 황궁의 감시는 그대로였기에 외부에서 만나자 청할 수 없었다. 덕분에 호충이 본 모습을 드러내고 은밀하게 잠입해야 했다.

위장성의 서천량 대장군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를 대비해 만반의 변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저마다 자신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보지 않겠는가.

“아! 왕야께 아드님이 있으셨다니! 신 종사현이 황손을 뵙습니다.”

“···어찌 아셨답니까?”

“마마와 많이도 닮으셨습니다. 거기다 왕야의 젊은 시절 모습까지 겹쳐 보이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른 상서들과 장군도 마찬가지였다.

“···황실의 손을 뵙습니다.”

“······.”

“···황실의 손을 뵙습니다.”

“······.”

자신이 북궁초연과 진휘평의 아들임을 못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덕분에 준비한 변명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하오문도를 그들 곁에 두는 것도 무리 없이 허락받을 수 있었다.

“이제 보니 서 대장군은 눈치가 없는 거였어.”

“하하. 가끔 눈썰미가 없는 분도 있으시지요.”

“나 같으면 단숨에 알아봤을 걸?”

“물론 그러시겠지요.”

둘은 조금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와서 말수를 줄였는데, 유도영의 시선이 멀리 여인에게 향했다.

“오오.”

“왜? 뭔데?”

“아, 아닙니다.”

“아니긴···. 빨리 말 안 해?”

“상당히 빼어난 미인이 있어서 잠시 눈길을 빼앗겼습니다.”

“으이그. 미인계에 홀랑 넘어갈 놈이네 이거. 얼마나 예쁜지 나도 보자. 어디냐?”

유도영은 눈짓으로 미인이 있던 방향을 가리켰고, 호충은 여인의 펑퍼짐한 뒷모습만 봐야 했다.

“중년 취향이었어?”

“몸매는 저래도 미모는···.”

“그래?”

호충은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기다렸고, 곧 뒤돌아선 여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

“공자님도 이제 제 마음 아시겠지요?”

호충이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다니까? 아예 만나지도 못한 사람까지 단숨에 알아 보잖냐.”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저 여자를 이렇게 만나다니···.”

“아는 분입니까?”

“응.”

유도영은 기억하고 있는 정보를 총 동원해서 여인이 누구일지 짐작해봤지만, 호충이 알만한 중년의 여인이 없었다.

“···누구십니까?”

유도영은 예상치 못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엄마.”

“!!!”

“정확히 말하면 내 배다른 동생의 어미다.”

여인의 얼굴은 과거의 기억을 통해 봤던 북궁초연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아버지가 했던 말을 기억하는 호충이다. 진휘평은 헤어진 북궁초연과 닮은 여인과 동침하고 아들을 얻었다고 했었다.

“헙!”

호충이 왕야의 손이었으니, 저 여인은 곧 왕야의 부인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있으셨습니까?”

동생은 물론이고 왕야에게 다른 부인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나머지는 이따 들어가서 설명하자. 듣는 사람이 많다.”

“···미행할까요?”

“당연한 일을 왜 물어?”

“싫어하실까봐 그랬죠.”

호충은 전음으로 추가 지시를 남겼다.

[마교에서 아버지로부터 씨를 받으려 붙였던 여인이다. 그 결과 아버지의 손은 얻었지만, 아버지의 부인이라고 할 수 없어. 주변에 마교의 상급 마인들이 상주할 것이니, 미행이 들통 날 가능성이 구(九)할이다.]

“···명심하지요.”

[명심하긴 뭘 명심해? 수련관도 겨우 말석으로 수료한 놈들이 무슨 수로 미행이야?]

“쩝.”

[정보단은 제 자리를 지키라고 해. 내가 용모를 바꾸고 미행해서 저 여인의 거처와 마교 마인들의 숫자를 파악하고 돌아오겠다.]

“······.”

[그리고 유 단주는 주변을 감시할 인원을 차출해 놔.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서는 안 될 것이다.]

현 황제의 뒤를 이을 수 있는 태자의 친모였다. 진휘평을 잃은 마교에서 이 여인을 활용할 가능성은 구(九)할이 아니라 십(十)할이었다.

***

호충은 어렵지 않게 미행을 완료했고, 여인의 거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장원이었는데, 예상대로 주변에 상급 마인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진짜 다 걸렸겠군.’

호충은 평범한 인상으로 변해 있었고, 팔자걸음으로 장원 앞 관도를 걷고 있었다.

“허흠.”

머리를 높이 들고 눈은 내려다보며 지체 높은 신분의 귀공자라는 것을 강조했다.

“더러운 것들. 어째서 옷을 빨지도 않고 더럽게 입고 다니는가. 저런 쓰레기는 남경에서 다 치워버렸으면 좋겠군. 쯧쯧쯧.”

장원 앞을 지나는 모든 이를 감시하는 마교의 마인들은 귀공자의 혼잣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귀공자는 기감을 활짝 열고 오히려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절정 마인들이 다섯. 그 이하 일류급 마인들이 열.’

근방에만 열다섯이나 되는 대 인원이었고, 내부엔 더한 마공의 고수들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남경에 마교의 용담호혈이 남아 있었구나.’

남경 루방의 기지로 황궁과 마교 사이에 분쟁을 일으켜 남경에서 마교를 몰아냈다고 보고 받았다. 이(二)차 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했지만, 마교 말살을 위한 삼(三)차 작전을 수행할 여력이 없다는 보고였다.

‘루방이 이들을 상대했다간 다 죽어났겠지.’

흑림방이 아니면 비벼보지도 못할 수준의 마인들이다.

.

.

.

호충은 팔자걸음으로 장원에서 멀어지고 있었는데, 일단의 무리가 장원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인원은 셋. 양쪽의 둘은 중간의 인물을 호위하듯이 붙어 있었다.

“!”

호충은 속으로 깜짝 놀라는 중이었다. 이들이 마교도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또한···.

‘최상급 마인!’

높은 경지를 이룬 마공의 고수가 그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화경···.’

사실 화경이라는 것은 짐작만 할 수 있었다. 좌우의 마인들은 희미하게 눈으로 마공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중간의 한 사람은 오히려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공을 완벽하게 갈무리했어. 분명 신화경 말미의 마인이다!’

화경이라면 최소한 마교의 장로급이라는 뜻이었다.

‘누구지? 마교의 교주가 직접 왔을까?’

호충은 앞을 보지 못한 것처럼 팔자걸음으로 당당하게 그들의 앞까지 갔다.

터벅. 터벅.

“에잉. 남경이 엉망이야.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다 치워버리고 해야지 원.”

호충의 연기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라? 이것들은 뭐야? 왜 시커멓게 입고 다녀?”

“······.”

“······.”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무심한 눈빛들이 호충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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