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3화 (193/232)

원수의 실체

***

“룰루루~~”

벌컥.

“형님 계시오?”

“······.”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와 얼굴을 보며 묻고 있으니, 호중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하는 것이 당연했다.

“진짜로 갔으면 어쩌나 걱정했잖소.”

“···네가 정신이 나갔구나.”

“크흐흐. 군자의 복수는 아무리 늦어도 늦지 않은 것이거든. 남에게 미룰 수는 없는 일이라 이리 직접 왔다오.”

“뭐라? 복수?”

호충의 복수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둘째 호중은 본인을 죽이라고 사주했던 전적이 있었다.

“네 놈이 날 죽이려 했음을 잊지 않고 있었지.”

“···무슨 소리냐?”

“자장 흑패를 통해 날 죽이라 명하지 않으셨소?”

“······.”

“덕분에 거하게 피를 보고 그 자리에서 뒤질 뻔했지.”

“어디서 헛소리를 듣고 왔는지 모르겠으나···.”

“헛소리라니···. 자장 흑패의 패주였던 마한로 놈에게 직접 들었거늘.”

“풋. 내 말은 그걸 왜 기어코 들춰 내냐는 말이었다.”

호중의 손이 검병으로 향하고 있었다.

“조용히 가주로 지내다가 채무를 책임지고 남의 집 종으로 팔려갔으면 사지는 멀쩡하지 않았겠느냐.”

스르릉.

호중은 앞으로 하오문의 채무를 책임질 호충을 죽이진 않을 생각이었다.

“큭큭. 이제 형님답소. 지금 이 모습이 진가장의 핏줄이 가진 진짜 모습 아니겠소?”

“누군 진가장의 핏줄이 아닌가 보구나.”

“맞아. 난 네 아비의 자식이 아니거든.”

“······.”

호중이 뽑아든 검이 멈칫했다. 밖에서 낳아오긴 했어도 아버지의 핏줄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너와 호현을 비롯한 형제들은 몰랐겠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내가 진원우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큭. 너를 밖에서 낳아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내치지 않아 당연히 아버지의 아들인 줄로만 알았다. 아버지가 진즉에 너를 내치지 않았는지 이유를 모르겠구나.”

“···그건 나도 차차 알아볼 생각이야.”

“죽은 아버지에게 말이냐? 멍청한 놈.”

“당시의 일을 아는 놈이 또 있거든. 그 일이야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네 놈은 신경 꺼라.”

호충은 두 손을 양쪽으로 펼치고 가볍게 말했다.

“드루와. 여우 새끼야.”

“하! 겨우 주먹질과 발길질이나 배운 주제에···.”

호중은 이미 호현에게 겪어본 오환검(五煥劍)의 궤적을 보며 둘을 비교할 수 있었다. 호중의 오환검 숙련도가 맹주보다 더 높았다.

“넌 오환검(五煥劍)이 상당히 능숙하다?”

“!”

“내가 맹주를 보고 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아! 아까 내가 너를 회의장에서 쫓아내서 못들은 모양이구나.”

“뭐라? ···왜 형님이 널 가만두셨지?”

호현을 만났다면 사지 중 하나는 부러졌어야 옳았다.

“큭큭. 호현이 날 가만둔 것이 아니라 내가 호현을 살려줬단다. 아가야.”

“!”

호충은 날아드는 호중의 검을 맨손으로 잡아챘다.

턱.

화르륵.

“!”

‘녀석이 남모르게 무공을 익혔구나!’

불과 같은 검기가 일어나는 검이었지만, 호충은 검에서 손을 놓지 않고 더욱 힘을 주었다.

땅! 쨍그랑.

반 토막 난 검신을 바닥에 던진 호충이 목을 풀었다.

우드득.

“이제 좀 맞자.”

“네 놈은 절대 날···.”

“그래. 널 죽이진 않을 거야. 널 죽이면 둘째 어미가 얼마나 슬퍼하겠어?”

호충은 지금까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맞을 이유는 충분하지.”

퍼벅.

호충의 신형이 가까이 다가와 두 번의 주먹질을 하는 순간까지는 눈 깜빡할 사이였다.

“쿠헉.”

“엄살떨지 마라. 내가 맞은 만큼 맞으려면 아직 멀었어.”

설마 흑패를 통한 살인청부가 전부였겠는가. 호성과 호란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도 있었지만, 더 어려서는 호중에게도 자주 맞았었다.

“자, 잠깐.”

“미친 놈. 멈추란다고 내가 멈추겠냐?”

슈욱.

반대편으로 돌아간 호충은 비어있는 호중의 옆구리에 다시 주먹을 선사했다.

퍼벅.

“꾸억.”

호중의 무릎이 바닥에 닿기 전에 다시 발바닥이 날아들어 몸을 일으켜 세웠고, 내젓는 팔 사이로 알차게 주먹이 날아갔다.

“쉽고 빠른 나의 주먹~”

퍼벅. 퍼억.

“번개 같은 나의 다리~”

뻐억. 뻑.

“바람에 나부끼는 나의 손바닥!”

쫘악!

“얼씨구절씨구···.”

우뚝.

흥얼거리며 손발을 놀리던 호충은 마지막에 흥얼거린 타령으로 인해 몸을 멈췄다.

“XX. 여기서 이게 왜 나와? 입에 붙어가지고 그냥···.”

“끄으으.”

저도 모르게 개방의 타구봉법을 떠올린 것이다.

“아. 미안. 흐름이 끊겼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게.”

“······끄윽.”

상대의 허락이 필요치 않았기에 호충은 다시 흥얼거리며 손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쉽고 빠른 나의 주먹~”

“번개 같은 나의 다리~”

“바람에 나부끼는 나의 손바닥!”

호중이 피투성이로 기절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바람에 둘째 어미가 호중의 거처에 도착할 시간을 벌어줬다.

벌컥!

“네 이 노오옴!!!”

“어이쿠. 둘째 마님 오시었소? 내가 너무 기분을 냈나?”

“네 놈이 감히!!”

“···네 년이 뭔데 누구보고 놈이라 하지?”

“뭐라! 년?”

서문희는 아들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옆에 말했다.

“가주님부터 챙기지 않고 뭐해!”

“예. 마님.”

호충은 기절한 호중을 챙기는 이들을 두고 서문희만 노려봤다.

“네 처벌을 논하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봐줄 것이다. 저 놈을 당장···.”

“둘째 마님은 진가장에서 가주를 처벌할 수도 있는 권력을 가지셨소? 이제 진가장의 가주는 당신 아들이 아니라 나라오?”

“······.”

아들이 가주직을 내려놓았다는 것은 아까 보고를 받은 다음이었다. 서문희도 진가장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기에 아들과 함께 서문 세가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럴 권한은 없는 모양이오?”

호충은 안에 들어온 이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나가라! 가주와 단 둘이 논할 것이 있다.”

“······.”

서문희와 함께 들어온 이들은 눈치를 보다가 서문희의 고갯짓에 모두 밖으로 나갔다.

“···이제 왜 네 형을 저 꼴로 만들었는지 말해라.”

서문희도 무림 세가의 여식이라 셈이 빨랐다. 아들이 험한 꼴을 당했어도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아들을 당해낼 정도라면 녀석의 무위가 상당하다는 뜻.’

아들의 무위를 통해 호충의 무위를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온전히 진가장을 빠져 나가려면 가주가 된 호충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형? 지금 형이라 하시었소? 내 형이 아닌데?”

호충은 만약 자신의 말에 반박하면 서문희를 어머니를 죽인 용의선상에서 빼줄 생각이었다.

“······.”

하지만 서문희는 호중이 자신의 형이 아니라고 하는 호충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호충이 친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오호라. 네 년도 알고 있었구나. 내가 진원우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의심만 했을 뿐이다. 밖에서 낳아온 아들을 어찌 의심하지 않겠느냐. 네 입으로 말하는 꼴을 보니, 사실이었던 모양이구나.”

“하나 더 묻겠다. 너도 내 어미의 죽음에 관여했느냐?”

“···난 모르는 일이다.”

“넌 아는 구나. 네가 사주했느냐?”

“난 아니야!!”

“오호. 그럼 누구지? 모용 대부인?”

“······.”

“모용 대부인도 아니고···. 그럼 셋째 방자연이던가?”

“그럴지도···.”

“큭. 거짓말이군. 방자연도 어머니를 미워하긴 했지만, 어머니의 죽음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어.”

“그 년은 그저 얼굴만 반반했을 뿐. 기댈 곳이 없었어. 우리가 경계할 이유가 없었지.”

호충은 서문희의 말 속에 들어있지 않은 불안함을 눈빛으로 읽고 있었다.

“하지만 너희는 분명 어머니의 일을 알고 있었지? 그런데 알고도 말리지 않았어. 넌 뭘 알고 있지?”

“······.”

“어차피 지난 일이 아니던가. 아는 대로 말하고 이놈을 데려가.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네 아들은 죽어서 진가장을 나가야할 것이다. 내가 저 녀석을 살려둔 것은 그저 놀잇감이 필요했을 뿐이야. 재미가 없어지면 죽여 버릴 수도 있지.”

호충은 살기와 함께 내공을 밖으로 드러냈다.

우우웅.

그리고 발을 들어 진호중의 가슴을 지그시 밟았다.

“!”

서문희가 무공을 깊이 익히지 않았지만, 무가의 여식으로 배운 것이 있어 상대의 기운은 읽을 수 있었다.

‘아들이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구나!’

서문희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전부 말해줄 수 있었다.

‘어차피 지난 일. 상관없을 것이다···.’

“···가, 가주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계속해.”

호충은 서문희의 입을 통해 어째서 어머니 북궁초연이 죽음에 이르렀는지 들을 수 있었다.

“······. 당시 네 어미의 미모는 누가 봐도 혹할 정도였고, 많은 이들이 네 어미를 흠모했다. 그 중에 가장 위험했던 인물은···.”

당시의 일을 설명하는 서문희의 말을 들으며, 호충의 뇌리에 가득 끼어있던 피안개가 투명하게 변해갔다. 기억 속에서 당시 어머니께 칼을 내려치던 흉악한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째서 지금까지 감춰져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네 놈이 흉수였구나.’

호충의 기억을 확신시켜 주듯이 서문희의 말이 이어졌다.

“···태상가주님께서는 당시 소가주에 불과했던 가주님도 말릴 방법이 없었으니까.”

어머니는 시아버지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다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여기까지다.”

“······.”

“이제 아들과 나는 진가장을 떠날 것이니···.”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남았어.”

호충은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기 전에 발생한 일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께 사고가 발생한 당일 송 영감을 외부로 내보낸 것은 누구지? 당시 총관을 시켜 송 영감에게···”

“!”

“큭. 네 년이 송 영감을 밖으로 내보냈구나. 네 년이 진무검의 계획에 동조했어. 그걸 네 년이 숨기고 있었구나.”

“나는 그저 아버님께서 명하신대로 했을 뿐이야!”

아름다운 미모로 인한 질투였을 것이다. 자신의 부인이 다른 남자, 그것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범해진다면 어떻게 같이 살 수 있겠는가.

“할미를 밖으로 보낸 것도 네 년이냐?”

“그건 모용 언니가···.”

“하. 이것들이 쌍으로···.”

세 부인 중에 방자연만이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이 없었다.

호충은 어미의 죽임에 관여한 둘을 당장이라도 찢어죽이고 싶었지만, 자신이 모두 처리할 수는 없었다.

‘이 년들은 아버지께 양보하겠습니다.’

아버지 진휘평도 어머니의 죽음에 복수를 원하고 있었다. 두 여인은 아버지에게 남겨줄 복수였다.

‘대신 진무검은 제 손에 죽을 것입니다.’

“···가라. 모용소군과 함께 가문을 나서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내 눈에 보이면 전부 목을 잘라 버릴 테니까. 서문 가와 모용 가는 앞으로 진가장에 얼씬도 하지 말아라.”

“······.”

살기등등한 호충의 모습에 서문희는 얼른 눈을 내리깔았고, 호충은 서문희를 지나 밖으로 나갔다.

.

.

.

호충이 대문에 모습을 드러내자 무사들이 어정쩡한 모습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호충이 가주에 올랐다는 것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벌레로 취급하던 막내 공자가 갑자기 진가장의 가주로 올라섰으니, 어찌 대해야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오늘은 봐주마. 어차피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니.”

“······.”

수문 무사들이 대답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하나 물을 테니 이것만 답해라. 이삼은 어디 있느냐?”

“···가주님의 호위 무사 말씀이십니까?”

“그래.”

“···오늘 쉬시는 날로 알고 있습니다.”

“제길. 알았다.”

호충은 본래 어머니의 일은 전 가주의 호위인 이삼에게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예기치 않게 서문희의 입을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교차 확인은 필수다. 내 기억이 온전치 않을 수도 있음이야.’

호충은 대문을 나서며 방금까지 불처럼 끓어오르던 마음을 차분하게 식힐 수 있었다.

생각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누구의 복수가 더 절실할까···.’

호충은 고민은 계속되었고, 곧 옥비연이 머물고 있는 예전 자장 흑패의 전각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안에 상방주 있지?”

“예. 밖으로 돌아다닐 수 없어서 안에만 계십니다. 방금 유 단주께서도 오셨는데···.”

“아. 내가 너무 급하게 왔나보군.”

유도영에게 대신 비연을 만나라고 해놓고 자신까지 달려온 셈이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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