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환검(五煥劍)
***
진무검은 애초부터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스르릉.
“네 녀석까지 깨끗하게 지웠어야 하는데 말이야. 진원우 그 새끼는 일처리가 항상 이 모양이야.”
“너···. 내 친부가 누구인지 아느냐?”
“알아 무엇 하겠는가. 무림에선 힘 있는 자가 법인 법이다.”
“···동감이야. 덕분에 나 같은 놈이 너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이지.”
“뻐꾸기 새끼가 입만 살았군.”
“···네 목을 자르고 싶지만, 흔적을 남길 수 없어 아쉽구나.”
“큭. 손자와 같은 나이인 네게 이 몸이 당할 것 같으냐.”
“어.”
호충은 검을 뽑아든 진무검을 향해 빈손으로 쇄도했고···.
“하앗!”
진무검은 자연스럽게 검을 휘둘렀다. 원로원에서 수도 없이 익혀 몸에 각인된 검술이 물 흘러가듯이 펼쳐졌다.
휘릭. 슈각.
호충은 진무검의 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빗겨내며 주변을 돌았다.
타닥. 탁.
“쥐새끼!”
“···노괴야. 오늘이 네가 이승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이다.”
“하앗!”
휘익. 샤샥. 휘리릭.
진무검의 검은 마치 연기를 가르는 것처럼 허탕만 치고 있었다. 호충은 진무검이 펼치는 진가장의 검술을 낱낱이 지켜보다가 말했다.
“살기가 가득한 검법. 너를 포함한 진가의 핏줄과 잘 어울리는 검법이구나.”
“······.”
“그 검법은 사장될 것이다. 앞으로 누구도 익히지 못한다.”
“···제길. 네 놈 친부가 누구냐?”
“힘이 있는 자가 법이라 하지 않았더냐? 왜 갑자기 궁금해졌지?”
“나는 관에 의해 무림에 관여하지 않는 몸이다. 나를 죽이면 나라의 법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오호. 형세가 불리할 것 같으니 이제 와서 나라의 법을 내세우는가?”
“진원우 놈이 네 아비가 관인일 수 있다고 했었지. 하지만 네가 뻐꾸기 새끼가 아닌 호랑이 새끼라도 나라의 법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큭큭.”
“나는···.”
호충은 진무검은 작은 희망마저 깨부술 생각이었다.
“호랑이 새끼가 아니라 용의 새끼다.”
“뭐라?”
“황실의 피를 이었다는 말이다. 황실의 손이 나라의 법을 조금 벗어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
“오늘 너를 죽여 어머니의 복수를 마무리하는 것이 진가장에도 좋을 것이야. 아니면 황궁의 힘이 진가장에 미칠 것이니···.”
“······.”
손자 진호현의 외가인 모용가에서 황실과 백년가약을 맺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황실? 누구의 자손이던가. 설마 태자보다 높지는 않을 터.”
“아. 태자 녀석은 내 동생이지. 몰랐나? 하긴 알 턱이 없지.”
“!!”
“오늘 네가 살아서 이곳을 나가지는 못할 것이라 알려준 것이야.”
호충은 여전히 눈알을 굴리며 살아날 궁리를 하고 있는 진무검을 보며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겨우 이따위 녀석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구나.’
세상에 존재해봐야 하등 득이 되지 않을 녀석이었다. 숨 쉬는 공기조차 아까운 놈이었다.
스륵.
호충이 움직이자 검이 날아들었다.
휘익. 턱.
마지막까지 살의 가득한 검을 날리는 진무검이었고 호충은 그 검날을 가볍게 잡아 옆으로 젖히고 있었다.
찌이잉.
검이 휘어지며 비명을 질러댔다.
“이익!”
진무검은 이마에 핏발이 설 정도로 검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도저히 검을 잡아 뺄 수 없었다.
툭. 투둑. 툭. 툭.
기운을 가득 머금은 호충의 주먹이 진무검의 몸에 빠르게 닿았다 떨어지고 있었다. 호충은 그걸로 자신의 공격을 끝냈다는 듯이 잡았던 검을 놓고 뒤로 훌쩍 물러섰다.
“엉?”
공격이 공격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먹에 닿은 곳이 아프지도 않았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
진무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묻자 호충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답했다.
“아. 이거 꼭 해보고 싶었거든. 몸에 흔적을 남길 수도 없었고···.”
호충은 목소리를 굵게 만들어 대사를 뱉어냈다.
“너는···. 이미···. 죽어있다···.”
“뭐? 이 미친놈이 지금 뭐라는 거야?”
호충이 내지른 정권에 담긴 진기는 그때부터 진무검의 몸 내부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 어···. 어. 어! 어윽! 아아아악!”
오장육부가 뒤틀어지는 느낌이었다. 진무검은 굳게 잡고 있던 검을 놓치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쨍그렁.
크게 벌린 입으로 침이 줄줄 흘러나왔고, 눈은 붉게 핏발이 섰다.
“허윽. 끄으으···.”
지극한 고통이 온몸을 휘저었다. 마치 온 몸의 피가 바늘로 가득 채워져 휘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
“······.”
비연과 호충은 몸을 웅크리고 부르르 떠는 진무검을 가만히 지켜봤다.
“끄윽. 차라리 죽여······.”
“···네게 남겨진 자비는 없다. 저승에 가서든 내 어머니께 꼭 사죄해라.”
“네가 죽인 내 형님도 곧 만나겠구나.”
“끄헉. 어흑. 꺼어억.”
몸을 파고든 진기에 몸부림치던 진무검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고, 오래도록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언제까지 저 꼴을 봐야합니까? 놈이 죽기는 죽는 겁니까?”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계속 숨이 붙어있으니 묻는 것이다.
“아마도···. 곧 죽겠지?”
호충이 펼친 수법은 편수협 스승의 서책에 나온 내가기공을 활용한 고문법이었다. 오장육부가 가닥가닥 끊어지는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글귀만 믿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실제로 이 수법으로 죽음에 이르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 제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저도 한 손 보태고 싶습니다.”
본래 호충이 마무리하기로 약속되어 있었지만, 이젠 누가 죽이든 상관없었다. 고통은 줄만큼 줬기에 복수를 하려하려던 마음도 희석되었다.
“···이젠 상관없어. 하지만 표 나지 않게 해주겠어?”
“양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대형.”
비연은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고 진무검 곁으로 갔다.
“···이것은 네가 잊고 산 내 어미를 위한 것이다.”
투웅.
웅크린 진무검의 등 옆구리에 옥비연의 주먹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옥비연도 내가중수법을 무리 없이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퍼억.
진무검의 몸 내부에서 신장 하나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내 어미는 나를 위해 기루에서 몸을 팔았다.”
투웅. 퍼억.
“끅!”
진무검의 나머지 신장 하나가 또 터졌다.
“그리고 나는 쓰레기를 뒤지며 살아남아야 했다.”
비연의 발이 진무검의 낭심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퍼억. 오도독.
“!”
진무검은 소중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오장육부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이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절로 손이 사타구니로 향했다.
“모자의 삶을 이리 만들었으나, 네 덕분에 대형을 만났으니 보답해주마.”
진무검은 무방비하게 열린 진무검의 가슴에 주먹을 쏘아냈다. 진무검에게 죽음을 선사할 마지막 공격이었다.
퍽. 푸슉.
“······.”
진무검의 심장이 터져나가며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욕심으로 가득했던 노괴의 두 팔이 풀어지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투욱.
야심만만하던 진무검의 허망한 죽음이었다.
“침상에 눕혀놔. 내일 사람을 보내 놈의 죽음만 확인시키면 될 것이다.”
“복수···. 해보니 별거 아니었습니다. 허무합니다.”
옥비연은 가볍게 진무검의 시신을 들어 침상에 올렸다.
“앞으로 하오문에 진 빚을 갚자면 허무하다는 생각을 할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네?”
“···제가 갚아야 합니까?”
“그럼? 안 갚으려고 했어?”
“······.”
비연은 호충이 빚을 탕감해 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원금을 조금 갚았지만, 이자가 늘어 다시 삼백만 냥을 넘어갔다. 착실히 갚아라.”
“대형. 거 너무하신 거 아니오. 조금만 깎아주쇼. 지금까지 진가장을 도모하는데 삼도상단이 도운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일부는 탕감을···.”
“이 양심 없는 놈 좀 보게···. 남궁소선과 제갈미를 날로 먹으려고 했냐?”
호충이 괜히 옥비연을 가주로 만들기 위해 수고했겠는가. 지금까지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는데 온 힘을 다하라고 다른 귀찮은 일을 다 처리해준 것이다. 비연을 세가의 가주로 만들어 남궁가와 제갈가의 여식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기까지 했으니, 호충 입장에선 당연한 요구였다.
“머, 먹기는 뭘 먹습니까!”
“······.”
호충은 버럭 반박하는 옥비연의 말투 속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어라?”
호충은 가까이 가서 비연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 이 새끼···.”
“왜, 왜 그러십니까?”
“껍데기도 안 벗겼는데 홀랑 삼켰어?”
“무, 무슨 말씀을···.”
호충은 비연의 흔들리는 눈빛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설마 둘 다?”
“······.”
옥비연은 호충의 눈을 피해 다른 곳을 바라봤다.
“허! 이누무시키가 일이 끝나기도 전에···.”
“가, 갚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갚는 게 문제가 아니라 네 놈이 일을 먼저 치른 것이 문제지 임마!”
“일은 다 잘 되지 않았습니까?”
“어휴. 그 사이를 못 참고···. 네가 혈기를 못 참을 나이도 아닌데···.”
“···둘이 죽자고 덤벼드는데 제가 어쩝니까. 아리따운 낭자들이 저만 좋다고 그렇게···.”
두 여인은 옥비연의 마음이 자신들을 향한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 경쟁하듯이 애정공세를 펼쳤고, 옥비연도 마음이 없지 않았던 터라 결국 일이 벌어지고만 것이다.
“너는 아니라도 걔들이 어리긴 했지···.”
그렇다고 이미 치른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네가 알아서 말렸어야지! 앞으로 두 집안에 어떻게 허락 받으려고 일을 먼저 치냐?”
“헤헤.”
“웃기는···.”
그 사이 진무검을 죽인 무거운 마음은 둘의 뇌리에서 깨끗하게 지워져 버렸다.
“우선 나가자. 내일부터 바쁠 것이다.”
“···제가 가주가 되었다는 소식과 태상가주의 부고를 같이 전하면 조금 혼란하겠습니다.”
“남궁가와 제갈가에 제일 먼저 알려야 할 것이야.”
“···예. 무림맹에도 같이 전해질 것입니다.”
“큭. 녀석은 네가 가주가 되리라 감히 생각지도 못했겠지.”
호충은 비연과 함께 들어왔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담을 넘어 빠져나갔다.
한밤중에 일어난 소란은 누구도 듣지 못했고, 침상에 몸을 누이고 피눈물을 흘리는 진무검의 시신만이 남아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
“···주, 죽어? 이렇게 갑자기?”
강여홍은 새로운 가주의 소식을 전하러 들어갔던 이가 진무검의 죽음을 확인했음을 전해 듣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져서 달려 나가기에 기이하다 여기긴 했지만···.”
“이 일로 가주님이 강 무사님을 호출하셨습니다. 당장 가주전에 드시지요.”
“···지금 가지.”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우.”
“가주님. 원로원을 지켰던 강 무사가 왔습니다.”
“들라 해라.”
“예. 강 무사님. 오르시지요.”
“···예, 예.”
강여홍은 조심스럽게 가주전으로 들어갔고, 빼어난 용모를 가진 젊은 가주를 마주할 수 있었다.
“가, 가주님을 뵙습니다. 원로원 소속 강여홍입니다.”
“경황이 없어 인사는 생략하겠소. 강 무사. 혹시 어제 원로원에 드나드는 이가 있었소?”
“제가 밤새 지켰으나 원로원은 고요함을 유지하였습니다. 정말입니다.”
“···아버지께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허망하게 보내고 말았소.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태상가주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것은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분명 진가장에 해악과 혼란을 몰고 왔을 분이야.’
강여홍은 잘 된 일이라 여기며 입을 열었다.
“태상가주께서는 편히 가셨을 것입니다.”
“······.”
그를 저승으로 보낸 이가 바로 옥비연이였다.
‘그리 편한 죽음은 아니었지.’
오장육부가 꼬이는 고통에 이어 신장을 터트렸고, 소중한(?) 알도 터트렸고, 심장도 터트렸다.
“강무사는 아버지께서 편히 가셨다고 생각하오?”
“···물론입니다. 태상가주께서 아드님이신 가주님이 오셨기에 끝까지 붙잡고 계시던 생의 끈을 놓으셨겠지요. 직접 소식을 듣지는 못하셨지만, 지금은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옥비연은 어제 강여홍이 정말 아무것도 듣지 못했음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강 무사의 말을 들으니 힘이 나는 듯하오. 중원 무림 방파에 이 소식을 전하고 아버지의 장례를 엄중하게 치를 것이오.”
“······.”
“또한 강 무사가 지금까지 아버지를 지켜주셨으니 보답을 하고 싶소. 강 무사는 바라는 것이 있소?”
“보, 보답이라니요. 저는 진가장의 일개 무사에 불과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간의 일을 들어 알고 있소. 조카 호현과 호중, 호성을 겪으며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소. 거기다 잠깐이지만, 막내 조카 호충까지 가주 자리에 올랐다 내려갔으니, 혼란하기도 할 것이오.”
“···그저 진가장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과정의 하나라 생각합니다.”
“듣자하니 강 무사가 호성 조카의 지도 무사였다고?”
“···보잘것없는 검술로 잠시 어린 호성 도련님을 지도하였지요.”
“그 검법이 진강십이검이었던가?”
“예. 당시엔 몇몇만 익히고 있었으나, 지금은 진가장의 무사 대부분이 이를 익히고 있습니다. 맹주님의 명이셨습니다.”
“그럼 오환검(五煥劍)을 아시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