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1화 (201/232)

자하(紫霞)

***

[대화산파의 장문인이 아니면 서책을 더 이상 넘기지 말지어다.]

“!”

무환 본인이 화산파의 장문인이 아니던가. 넘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지만 떨리는 손은 멈출 수 없었다.

“후우.”

숨을 내쉬며 떨리는 마음을 다잡은 무환 장문인은 얼른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다음 장엔 곧장 본론이 나왔다.

[자하신공(紫霞神功) 제 일 식(第一識) 자하개화(紫霞開花)]

거기까지 읽은 무환 장문인이 눈을 뒤집으며 뒤로 넘어갔다.

“꾸르륵.”

우당탕.

“장문인!”

“정신 차리십시오!”

둘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무환을 일으키다 탁자에 놓인 서책의 글귀를 볼 수 있었다.

“!”

“!”

둘은 기껏 일으키던 무환을 놓치고 마찬가지로 발라당 넘어졌다.

우당탕.

쿠웅.

둘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무환 장문인처럼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자하···.”

“···신공이라고?”

매화검법이 화산의 정수라고 해도 자하신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미, 미친···.”

“이, 이, 이, 이걸 어떻게···.”

항상 얼음처럼 냉랭한 표정을 유지하던 현진조차 심하게 말을 더듬고 있었다.

그 사이 호충은 기절한 무환 장문인 곁으로 가서 숨소리를 듣고 맥을 잡고 있었다.

“장문인께서 너무 놀라셨네요. 미리 말씀을 드릴 걸···.”

“······.”

“······.”

호충은 내기를 일으켜 무환 장문인이 깨어날 수 있도록 자극하기 시작했고, 곧 무환 장문인이 눈을 떴다.

“흐으음.”

“정신이 드십니까?”

“···내가 왜 누워있었지?”

“잠시 정신을 잃으셨습니다.”

얼떨떨한 얼굴로 장문인의 처소를 둘러보던 무환 장문인은 탁자에 놓인 서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자신을 기절하게 만든 원흉이 거기 있었다.

“···꿈이 아니었구나. 꿈이 아니었어.”

“예. 화산에 자하신공이 돌아왔습니다.”

“허. 허허. 어허허허허.”

무환 장문인의의 청아한 웃음소리가 장문인의 처소를 넘어 밖에까지 퍼져나갔다.

***

화산 대회합이 열렸다. 무환 장문인이 소집한 것이다.

자하신공이 돌아왔는데 어찌 화산의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

호충은 화산파의 제자가 아님에도 무환 장문인 오른편에 떡하니 앉아있었다. 그 밑으로 화산의 무자배 원로들이 앉아 있었고, 현자배의 중요 화산파 제자들이 모두 들어와 있었다.

‘내가 여길 또 참석하다니···.’

매화검법과 개화검결을 돌려주고 처음 화산 대회합에 참석할 수 있었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이대와 삼대는 아예 없네.’

일전에 삼대제자들의 대사형 백준이 참석한 것은 특별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다시 맑은 눈을 되찾은 무환 장문인이 화산의 제자들을 보며 입을 열고 있었다.

“···화산의 지고한 보물이 돌아왔다. 또 진 공자 덕분이다.”

이미 한번 겪은 일이라 전과 같은 놀람은 없었다.

“허!”

“이번엔 뭡니까?”

“칠성검진(七星劍陣)이 아닐까?”

“매화산수(梅花散手)일지도···.”

‘아. 저것들을 포함한 다른 무공도 돌려줘야 하는데···.’

호충이 화산의 원로들이 하는 말을 듣고 하는 생각을 알았다면 까무러쳤을 테지만, 아무도 알 수 없어 다행이었다.

“···자하신공(紫霞神功).”

무환의 입이 자하신공을 거론했지만, 환호는 없었다.

“······.”

“······.”

“······.”

“······.”

“······.”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월하검문의 후인 진호충 공자가 오늘 자하신공(紫霞神功)을 본파에 가져왔노라!”

“!!”

“끄헙.”

“자, 자, 자하신공.”

““우아아아아아!!!””

그제야 회합이 진행되는 대회의장이 소란으로 가득해졌다. 얼싸안고 뛰는 이들도 있었고,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표현은 달랐지만 모두가 기뻐한다는 것은 같았다.

이미 자하신공의 입수를 알고 있었던 현인과 현진은 장문인 곁에 앉아 있는 호충을 자랑스러운 얼굴로 보고 있었다.

“어휴. 예쁜 새끼.”

“어쩜 저렇게 예쁜 짓만 골라서 하는지···.”

호충은 둘을 마주하지 못하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

‘원래 갖고 있었던 것을 이제야 돌려주는구만···.’

오히려 너무 늦어 미안한 마음이었다.

“저 녀석 부끄러워하는 것 좀 봐.”

“대체 녀석에게 뭘 내줘야 좋을지 모르겠어.”

무환 장문인도 현진과 같은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조용. 모두 자리에 앉게.”

소란은 금방 가라앉았지만, 들뜬 얼굴은 그대로였다. 무자배 원로와 현자배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이 일을 의논하고자 화산 대회합을 소집했다. 자하신공을 돌려준 월하검문에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화산의 제자들은 오늘 이를 의논해야 할 것이다.”

“······.”

“······.”

“······.”

이미 화산파에 매화검법과 개화검결을 돌려준 전적이 있는 호충이 아니던가.

그때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오. 재경각주. 의견을 말해보게.”

호충과 안면이 있는 재경각주 현무였다.

“근래 향화객의 폭증 및 상단들과의 긴밀한 협조로 화산의 재정은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지난 날 진 공자가 매화검법과 개화검결을 돌려주었음에도 화산은 너무나 부족한 성의를 보였습니다. 당시엔 화산의 재정이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부끄러움은 한 번으로 족합니다.”

무환 장문인을 비롯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호충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호구가 괜히 호구냐.’

“먼저 현재 화산의 재정상황을 보고 드리지요.”

재경각주 현무는 화산의 가용자금을 나열했다.

“화산에 당장 없어도 되는 가용자금이 이백만 냥.”

“······.”

‘없어도 되는 가용자금이 어디 있어? 다 쓸데가 있는 거지!’

“추가로 전장에서 무담보 신용으로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이 백오십만 냥.”

“······.”

‘무담보라고 안 갚아도 되는 게 아니잖아! 전장은 땅 파서 장사해?’

“화산의 가산을 담보 잡아 추가로 상단에 융통하면 백만 냥. 도합 사백오십만 냥을 가용할 수 있으니 장문인께서 마음껏 활용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좋아. 아주 좋아.”

호충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무환 장문인을 노려봤다.

‘둘이 쌍으로 미치셨소?’

“자아···. 그럼-”

호충은 무환의 입이 열리기 전에 얼른 일어섰다.

“장문인! 제가 한 말씀 올리지요!”

“오! 그래. 본인의 뜻이 중요하지. 얼마든지 말씀하시게. 진 공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호충이 딱 잘라 말했다.

“월하검문은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

“진 공자···.”

호충은 손가락을 세 개를 펼쳐 보였다.

“자하신공을 돌려드리는데 보답을 받을 수 없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무환은 이유가 세 가지나 있나 하니 우선 들어보기로 했다.

“첫째! 자하신공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화산의 보물. 여기에 돈이 오가는 것은 자하신공을 욕보이는 일입니다! 어찌 자하신공을 현물의 가치로 매길 수 있겠습니까!”

“!!”

“!!”

“!!”

“둘째! 앞으로 월하검문과 화산파는 형제처럼 친밀하게 지낼 것입니다. 이미 장문인께서 저희 스승님과 그와 비슷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흠흠.”

송 문주에게 경탄과 존경을 동시에 표하며 형님처럼 모시는 무환 장문인이다.

“형제에게 본래의 물건을 돌려주며 가치를 따지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허!”

“셋째! 그래도 형제의 불편함을 생각하여 상응하는 대가를 제가 정하는 바! 화산의 제자가 아닌 제가 매화검법을 익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외부에서 제가 매화검법을 사용하도록 화산이 저를 화산의 속가제자로 인정해주시면 되겠지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호충은 앞으로 관부와 마주했을 때 상승 무공을 사용해야 했고, 이를 위해 화산파에 적을 두고 있어야 했다. 아직까지 남궁, 제갈, 화산만이 상승 무공을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

“······.”

“······.”

“······.”

현인과 현진도 무환을 비롯한 화산의 인물들처럼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러니···. 제발 엉뚱한 소리는 하지 마세요. 재경각주님.”

“······너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구나. 나보다 화산을 깊이 생각하다니···. 부끄럽도다.”

무환도 재경각주와 같이 부끄러움을 느끼며 모인 화산의 제자들을 둘러봤다.

“···화산의 제자 중 진 공자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이가 있는가?”

“······.”

“······.”

“······.”

“······.”

자하신공이 가치를 따질 수 없다는 말도 사실이었고, 화산파를 형제로 대우하겠다니 그것도 반박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형제가 매화검법을 익히겠다는데 어찌 말리겠는가. 이들 중엔 호충이 가진 무의 재능을 알고 있어 오히려 매화검법을 익혀 달라 부탁하고 싶은 이들도 있었다.

“연무각주 현인.”

“예!”

“월하검문 진호충에게 매화검법을 하사한다.”

“······.”

“왜 답이 없는가?”

현인은 우물쭈물 답하지 않다가 한술 더 떴다.

“아예 자하신공도 내리시면···.”

“그건 화산파 장문인과 장문제자만 익힐 수 있잖아! 그것까지 내주면 죽어서 조사님들을 어찌 보나!”

“쩝. 예. 장문인.”

“으이그. 아무래도 네 놈을 믿을 수가 없구나. 집법당주 현진!”

“예!”

“현검(玄劍) 태사조께 진 공자의 매화검법 수련을 맡아 달라 부탁할 것이다. 가서 현검(玄劍) 태사조를 모셔오너라.”

“!!”

“!!”

“!!”

호충은 처음 듣는 도호에 고개를 갸웃했다.

‘현검? 그렇다면···. 배분이 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야?’

청자배 청진이 전대 장문인이었고, 지금은 무자배 무환이 장문인을 맡고 있었다. 백자배와 화자배가 그 윗대였는데, 태사조라 칭했으니 그보다 위인 현자배라는 뜻이었다. 까마득한 배분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나보고 여기서 매화검법을 배우라고? 그것도 화산의 한참 웃어른한테?’

밑에서 기다리는 부하들이 있었다.

‘하루 정도야 상관없지만···.’

하루만 걸릴 일이 아니었다. 적당히 평범함을 위장하고 익히다보면 년 단위는 우습게 넘어갈 수 있었다.

“에이. 장문인. 그건 좀 아니 것 같습니다만···.”

“이게 얼마나 큰 기회인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비급이나 주십시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

여기 있는 대부분은 자신이 기재라고 믿고 있었다. 이미 개화검결을 읽자마자 시연한 전적이 있으니 조금 빨리 익혀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제가 혼자 익히고 검수를 받는 방향으로 하시죠. 저도 일정이 있는 터라···.”

“매화검법은 개화검결과 차원이 달라. 아무리 너라도 혼자 익힐 수는 없다.”

“······.”

“현검(玄劍) 태사조께서는 네가 매화검법을 가져온 다음부터 검공에 주해를 만들기 시작하셨기에 누구보다 매화검법에 정통한 분이다.”

호충은 화산에 매화검법을 전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누가 누굴 가르치냐고요.’

“그럼 다 익힌 다음에 현검(玄劍) 태사조께서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허어.”

“자하신공을 가져다드린 이놈의 청입니다만?”

“······.”

자하신공만 나오면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이렇게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화산의 결정은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 흐르는 듯합니다. 허락에 감사합니다. 장문인.”

“······.”

결국 호충은 현인과 현진을 양쪽에 거느리고 화산 대회합이 열리는 곳을 빠져나갔고, 무환 장문인과 무자배 원로, 현자배 제자들이 남았다. 그리고 무환 장문인이 대회합의 종료를 선언하기 전에 원로원의 무자배가 나섰다.

“장문인. 아무래도 이건 아닙니다.”

“얘기하려면 아까 했어야지. 이미 진 공자도 나가지 않았느냐.”

“진 공자가 없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진 공자의 태도가 단호하여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들어는 주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