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4화 (204/232)

생사결(生死決)과 대련 사이

***

호로록.

호충은 현인이 가져온 차를 마시며 현검과 마주앉아 있었다.

“은인께서 이번엔 자하신공(紫霞神功)을 가져오셨다고?”

“예. 스승님께서 어렵게 입수하셨고 제게 화산에 전해주라 하셨습니다.”

“허허. 화산에 연달아 좋은 일만 계속 생기는구먼.”

“화산이 영산(靈山)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그렇지. 화산이 영산(靈山)이 아니라면 중원 천지에 영산(靈山)은 없다고 봐야지.”

“현검 태사조께서도 매화검법을 익히셨다 들었습니다.”

“진 공자가 매화검법을 가져온 덕분에 주해를 달며 조금 맛만 봤다네.”

“본래 주인에게 돌아간 것뿐이지요.”

현진은 현검의 뒤에 서 있다가 오늘 있었던 일을 고했다.

현역이 아닌 현검은 화산 대회합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사조님. 긴히 드릴 말씀이···.”

“은인과 대화중이지 않느냐.”

“오늘 화산 대회합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중요한 사안이 결정되었기에···.”

“화산 대회합? 어지간한 일로 열리진 않지만, 자하신공이라면 열렸겠구나.”

“예. 자하신공을 가져다준 진 공자에 대한 보답을 의논하는 자리였습니다.”

“오오. 그건 궁금하구나. 이번엔 얼마를 내주기로 했느냐?”

과거 매화검법과 개화검결을 돌려준 은인에게 장문인의 은인패를 주고 거액을 넘겨주었다고 알고 있었다.

“······.”

하지만 돈은 한 푼도 주지 않았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근래 화산의 재정이 풍족하다 들었는데···. 설마 은인께 적게 드린 것은 아니지?”

“······.”

아예 한 푼도 안 줬다.

“왜 답이 없어?”

“대회합에서 결정하기를···.”

현진은 서로의 무공 교류를 목적으로 호충에게 매화검법을 익힐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말까지만 했는데 현검이 다시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그럼 돈은?”

“···돈은 없습니다. 한 푼도···.”

드르륵.

현검이 얼굴을 굳히고 일어서자 현진이 얼른 변명했다.

“진 공자가 화산의 자하신공에 감히 가치를 매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뭐라?”

현검은 자하신공의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것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현검 또한 누구보다 화산을 사랑하는 화산의 제자였다.

“···진 공자.”

“예.”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대신 다른 값진 것을 받았습니다.”

“응?”

값진 것을 받았다는 말에 현검이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화산에 값나가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인데···.”

화산파가 과거로부터 이어오긴 했으나, 나라가 두 번이나 새로 세워지며 화산의 신물도 모두 유실한 상태였다. 또한 상승 무공도 없고 재정이 변변치 않았기에 값나가는 것은 최근에나 사들일까 고민 중이라고 들었다.

“장문인께서 제게 자하신공을 허락하셨습니다.”

“!”

‘외인에게 자하신공을? 장문인이···. 정신이 나갔구나!’

또한 현검은 방금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잠깐···. 오늘 매화검법을 허락 받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옆에서 현진이 답했다.

“예. 태사조님. 매화검법을 먼저 허락 받았고, 이후에 자하신공을 허락받았지요. 둘 다 오늘의 일입니다.”

“그럼···. 아까 은공이 보인 매화검법은 뭔가?”

현진은 현검이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생각하며 말했다.

“오늘 처음 매화검법을 보고 시연한 것입니다.”

“······.”

현검의 고개가 삐뚜름하게 기울어지며 현진을 쳐다봤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저도 압니다.’

“정말이야?”

“전에 진 공자는 단 하루 만에 개화검결을 익힌 전례가 있습니다.”

“매화검법이 개화검결과 같아?”

“저희에겐 다르지만···. 진 공자에겐 같지요.”

“허!”

현진은 현검 태사조가 믿을 수밖에 없을 다른 일도 입에 올렸다.

“그리고···. 진 공자는 장문인이 내린 자하신공도 그 자리에서 익혀 시연했습니다.”

“!!”

덜컹.

현검이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가 버렸다.

“···또한 장문인께서는 진 공자에게 명예 장문인 직을 내렸습니다. 명예 장문인도 장문인이니 자하신공을 익혀도 무방하지요.”

“······.”

노고수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허. 이 녀석들이 머리를 굴렸구나.’

현검도 단숨에 호충의 가치를 가늠하고 이후에 화산과의 연줄을 떠올릴 수 있었음이다.

‘이번 대의 장문인은···. 실로 명석하군.’

“진 공자.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는가?”

“···에효. 분명 자하신공을 보고 싶으신 거지요?”

“진 공자는 머리까지 좋군.”

“······.”

호충은 현검의 눈치를 보다가 눈을 딱 감고 자하신공을 운용했다.

‘더 귀찮아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군.’

아마도 확실한 느낌일 것이다.

후우우웅.

호충은 현검이 자신의 경지를 알아볼 것이 분명했기에 감추던 내공을 풀고 자하신공을 펼쳤다.

우우웅.

전보다 더욱 강렬한 보랏빛을 뿜는 자하강기가 호충의 손에 맺히고 있었다. 곧 호충의 손바닥 위에 자색의 투명한 구체가 떠올랐다. 전보다 작은 크기였지만, 내부에 꿈틀거리는 힘은 더욱 거대했다.

“자하강기(紫霞鋼氣)는 자하검결의 초식을 익히는데 기초가 됩니다. 시작부분이 약간 어렵긴 하지만 자하강기를 사성(四成)까지는 익혀야 이후의 자하검결을 익힐 수 있을···.”

“···약간 어려운 정도가 아니오.”

현검은 흔들리는 눈으로 자하강기를 눈에 담고 있었다.

“네?”

“자하신공은 본래 현경급 무인을 위한 것.”

“···아.”

‘왠지 조금 고급지다 했더니···.’

호충은 얼른 자하강기를 흩어버렸다.

파앗.

확실히 자하신공은 여타의 다른 무공 비급과 달리 웅혼한 기상이 절로 느껴지는 무림의 상승 무공이었다. 조금 괜찮다 싶었더니 애초에 기준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호충이 본래 익힌 무공이 현경의 고수들인 네 스승이 창안한 무공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니, 자하신공이 현경의 고수에게 맞춰져 있음을 어떻게 인지할 수 있었겠는가.

현검은 사라진 자하강기를 아쉬워하며 말을 이었다.

“신화경의 무인은 그저 겉핥기로만 익힐 수 있을 뿐. 그와 같이 강력한 자하강기는 현경의 무인이 아니면 보일 수 없소.”

“···실전되었다면서 아시는 것도 많으시네요.”

“구전으로 내려온 자하신공의 정보들은 실전되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아실 줄 알았습니다.”

현검의 눈은 호충을 직시하고 있었다.

“방금 실토하신 것이오?”

“이제 와서 무엇을 감추겠습니까.”

자신이 현경의 무인이라 인정한 것이다.

“연세가 어찌 되시오?”

현검은 현경에 오른 무인이 이렇게 젊은 모습을 유지할 방법은 반로환동에 의한 환골탈태밖에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결국 지금의 나이가 거짓이라는 확신이었다.

“···스물? 올해 스물 하나였던가? 나이를 따지지 않아서 헷갈리네요.”

“······.”

현검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호충을 보고 있었다.

“진짠데요?”

“······.”

현검의 눈빛은 전혀 바뀌지 않고 있었다.

“진짜로 스물, 아니 스물 하나.”

“어허.”

“못 믿어요? 나 어려서부터 키워준 사람 데려와요?”

“···진정이시오?”

“환골탈태는 했지만, 나이는 스물 하나 맞습니다.”

“······.”

“너무 젊어서 반로환동은 없었고요.”

“···오늘 믿기 어려운 소리만 듣습니다.”

“······.”

“······.”

곁에서 둘의 대화를 듣던 현인과 현진도 마찬가지였다.

‘호충이 현경의 고수라고?’

‘환골탈태도 했었어?’

“환골탈태 덕분에 월하검문의 월하답보를 대성하고 이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지요. 도장님들 저 조금 달라지지 않았어요?”

“···조금.”

“달라지긴 했지···.”

“이봐요. 제 말이 맞죠? 전엔 개화검결 시연하다가 피 토하고 그랬어요. 내공이 하도 부족해서···.”

“······.”

현검은 눈을 가늘게 뜨고 호충을 바라봤다. 그 옆에서 현진과 현인이 현겸과 같은 표정으로 호충을 보고 있었다.

“······.”

“······.”

스윽.

현검은 호충을 밖으로 안내하듯이 손을 펼쳤다.

“···같이 갑시다.”

“왜, 왜요?”

“일생에 처음으로 나와 같은 현경의 고수를 만났소. 어찌 손을 섞어보지 않을 수 있겠소.”

“···어.”

물론 호충도 바라는 바다. 하지만 이곳은 화산. 호충이 고향처럼 여기는 곳의 가장 연장자인 현검을 상대로 힘을 조절할 자신이 없었다.

‘맨날 죽고 죽이는 수련에만 익숙해서···.’

네 스승들을 상대로는 생사결(生死決)을 치렀지 느긋하게 서로의 무위를 겨루는 대련은 치러본 역사가 없는 것이다.

“화산파 제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시는 태사조께서 다치기라도 하시면···.”

“허! 날 상대로 이길 자신이 있다는 말이오? 이거 오랜만에 무인의 피를 들끓게 하는군.”

“······.”

‘아. 승질 건드렸네.’

“일생의 이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오! 어서 나와 붙어 봅시다!”

호충은 열을 올리는 현검을 말려달라는 눈빛으로 현진과 현인을 돌아봤다.

“······.”

“······.”

둘은 호충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진짜 뒈지신다고요!’

호충은 핑계를 찾다가 아까부터 둘이 자신을 놀리던 말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흠흠. 제 위치가 위치인지라 대련은 어렵겠습니다.”

“위치?”

“이미 듣지 않으셨습니까? 오늘 대화산의 장문인께서 저를 명예 장문인으로 명하셨지요. 명예 장문인이 어찌 함부로 화산의 제자와 검을 섞을 수 있겠습니까. 현검 태사조께서는 다음을 기약하시지요.”

“다음이라니···. 대체 언제?”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나이였다.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음이다.

“······.”

호충은 다른 변명을 생각해 내기위해 고심 중이었다.

‘생각해라. 호충아. 생각해야 해! ···그렇지! 그게 있었어!’

“태사조께서도 자하신공을 익히셔야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대화산의 자하신공을 익히고 사용하는데 어찌 이를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대화산의 지고한 무공인 자하신공입니다!”

“······끄응.”

“호충아. 아까도 말했지만, 자하신공은 화산의 장문인과 장문제자만 익힐 수 있는 무공이다.”

“태사조께서 익히기엔···.”

“···에이. 그럼 무환 장문인이 현경에 들어서 자하신공을 제대로 익힐 때까지 썩히려고요?”

“!”

“!”

“여기 떡하니 현경의 무인이 있는데, 먼저 물고 뜯고 맛봐야 다음 대 장문인이 편히 익힐 수 있게 주해라도 붙일 수 있지 않겠어요?”

“······.”

“······.”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매화검법도 현검 태사조께서 주해를 붙이셨다면서요. 자하신공도 마찬가지죠. 화산의 최고수이신 태사조께서 자하신공을 봐야할 명분은 확실합니다.”

“내가 자하신공을 익히는 동안···.”

십년 이상을 수련해도 대성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사이 진 공자는 더욱 성장하지 않을까?”

“···그럼 놀고 있습니까? 당연히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죠.”

“······.”

“저 이기려고 하셨어요? 못 이긴 다니까요?”

호충은 아예 배짱이었다.

“지금 붙으면 목숨이 간당간당하실 것이고···. 그나마 자하신공이라도 익히시면 목숨은 부지하시겠지요.”

“으득!”

무인의 호승심은 나이가 들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

“무인이 어찌 목숨을 아까워하여 대련을 피하겠는가!”

‘잘하면 미룰 수 있었는데···.’

하지만 호충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작은 호승심도 이를 반기고 있었다.

‘떡하니 현경의 무인을 만났는데, 그냥 지나치는 것도 몹쓸 짓이지.’

“···대신 화산의 제자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시죠.”

“따라오시오!!”

타앗. 파앙. 탓!

호충은 발을 굴러 밖으로 쏘아져나가는 현검을 따라 몸을 날렸고, 현인과 현진도 둘을 놓칠 새라 얼른 몸을 날렸다.

***

현검은 화산파 경내를 벗어나 산 하나를 더 넘었다. 곧 너른 공토에 도착했고, 호충은 현검의 뒤를 착실하게 따라 붙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현인과 현검은 가까스로 그들이 멈춘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후우. 오랜만에 부족함을 느끼는 군.”

‘호충의 경공만큼은 확실해···.’

‘그럼에도 여전히 무공을 익힌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 구나.’

둘의 생각을 읽었는지 현검이 물었다.

“경공이 상당하군.”

“최근 괜찮은 경공을 입수한 터라 소성(小成)이 있었지요.”

“···어찌하여 무공을 익힌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가. 지금도 그대의 무위가 짐작되지 않는군.”

아까 매화검법과 자하신공을 시연하며 무공을 드러낸 때를 제외하면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믿지 못할 정도로 내공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현경에 오르면 무위를 갈무리할 수 있지만, 저는 내공을 감추는 특별한 무공을 따로 익히고 있습니다. 월하검문의 비기입니다.”

월하검문의 비기가 아닌 마교의 비기였지만 그딴 것은 상관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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