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가의 협조
***
“허허허. 화산에서 진 공자를 만났고, 월하검문의 후계자인 진 공자를 화산의 명예 장문인으로 삼았답니다.”
“······.”
“······.”
“월하검문과 화산파는 이로써 강한 유대를 맺게 되었소.”
월하검문의 후계자 진호충이 화산파의 명예 장문인이 되었다는 말은 두 가주에게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진가장과···.”
“월하검문···.”
둘은 어째서 월하검문의 후계자를 장문인과 같은 반열에 올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장문인. 그래도 타 검문의 후계자에게 명예 장문인직까지 내린 것은 과하지 않습니까?”
“우리 사종의 결속력은 이미 공고합니다.”
“허허. 겨우 그것 때문에 진 공자를 명예 장문인으로 삼은 것은 아닙니다.”
무환은 호충의 경지를 입에 올릴 수 없었지만, 화산에 돌아온 자하신공은 얼마든지 밝힐 수 있었다. 이미 황궁에서 화산의 상승 무공을 허락 했기 때문이다. 자하신공이 상승 무공과 같은 반열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허락은 허락이었다.
“송 문주에게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이를 월하검문의 후계자인 진 공자에게 보답한 것입니다.”
“선물?”
무환은 자세를 바로하고 기쁘게 입을 열었다.
“화산의 보물. 자하신공이 돌아왔소.”
“!”
“!”
둘은 화들짝 놀랐지만, 곧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하며 축언을 건넸다.
“감축 드립니다. 장문인.”
“하하. 화산파에 경사가 있었소이다. 감축 드리오.”
무환도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하며 인사를 받았다.
“허허허. 고맙습니다.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축언을 건네긴 했지만, 두 가주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화산에···. 자하신공이 돌아오다니···. 무림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던 신공이 아니던가.’
‘자하신공. 화산에 자하신공이 돌아왔으니···. 앞으로의 무림은 화산이 주력이 될 것이다.’
무환은 홀로 다른 생각이었다.
‘앞으로의 무림은 진 공자의 손아귀에 떨어질 것이오.’
***
이후 무림맹주가 본가인 진가장에 들어왔고, 셋은 맹주를 맞이했다.
“제갈 세가의 제갈진이 맹주를 뵈오.”
“남궁 세가의 남궁곤이 맹주를 뵈오.”
“화산파의 무환이 맹주를 뵈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림맹의 주축이신 세 무림 방파에서 이렇게 와주셨으니 조부께서도 편히 영면하실 것입니다.”
호현은 이들과 인사를 나눈 다음에 가주가 되었다는 비연을 만나러 갔다.
“왔느냐. 조금 늦었구나?”
“······.”
호현을 만나자마자 하대하는 비연이었다. 이는 항렬에서 차이가 있으니 당연한 말투였다.
“···숙부님.”
그 전엔 한 상단의 상단주에 불과했지만, 이젠 자신의 손윗사람이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가문의 무사들을 통해 비연의 과거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자장 흑패에서 일했다지?’
과거는 문제되지 않았다. 흑패 이후 상단주가 되었고, 지금은 가문의 가주였다. 흑패로 일한 과거는 오히려 자신이 숨겨줘야 할 일이었다.
“가주가 되고나서야 네가 정파 무림의 맹주가 되어 진가장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진가의 피를 이었으니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저는 숙부께서 가주가 되셨다는 소식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가주가 되자마자 아버지를 잃고 말았다.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해 앞으로 오래도록 부정을 나눌 생각이었거늘···.”
“···숙부께서 진가장의 어려움을 아시고 도움을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돌아가신 조부께서 이를 아시면 기꺼워하실 것입니다.”
“그 말이 나왔으니 묻겠다.”
“말씀하십시오.”
“대체 진가장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느냐. 하오문에 빌린 자금이 무려 삼백만 냥이다. 게다가 삼백만 냥을 융통하자마자 중부전장에 빚졌던 이백만 냥을 갚고 남은 자금은 거의 다 써버렸다. 이러다가 삼도상단의 뿌리까지 흔들릴 판이야.”
“······.”
호현이 공동가주로 올라서기 전부터 있었던 빚이었다.
“돌아가신 전대 가주님께서 벌이신 가문의 사업들이 좀 많았습니다. 중부전장의 여식인 셋째 어머니를 통해 이를 충당하시다보니 그리되었지요.”
“···그럼 산서의 무관과 섬서의 상회는? 거액을 쏟아 부었던 가문의 확장 사업은 완전히 말아먹었다. 산서의 무관은 어째서인지 파리만 날리고, 섬서의 상회는 산서로 인원을 빼는 바람에 영향력을 크게 상실했다.”
“······.”
이것 또한 전대 가주인 아버지가 시작한 일이었다.
“또한 나라의 눈을 피해 파내던 철광산은 바닥이고, 소금 밀매도 힘들어졌다. 대체 어디서 이 거액을 벌어 갚아야 할지 난감하다.”
“······.”
호현이라고 방법이 있겠는가. 이미 자신은 무림맹의 맹주이고 진가장에선 손을 떼고 있었다.
“이럴 때 맹주인 조카 덕을 좀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만···.”
“제가 어찌해야 옳겠습니까?”
‘조금 도울 수도 있겠지.’
“···황궁. 조카의 외가인 모용가와 황실의 연줄이 필요하다.”
“!”
호현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무림맹에 진가장의 상회들을 포함시켜 이익을 몰아주는 것이었지, 황궁은 예상에 없었다.
“무림맹의 사업이야 당연히 맹주가 알아서 해줄 터이니 거기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
“······.”
“진가장이 황궁에 물건을 납품하기 시작하면 삼백만 냥의 빚도 금방 갚을 수 있을 것이야.”
문주 호충이 진가장의 채무를 갚으라 했으니, 비연 나름대로 수를 생각해낸 것이다. 어차피 대계를 실행하자면 황궁에도 연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진가장은 작은 상회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황궁에 납품할 정도의 물건은···.”
“어허. 네 숙부가 누구인지 잊었더냐?”
“아.”
비연은 진가장 가주이기 이전에 최근 크게 성장한 삼도상단의 상단주였다.
“그럼···.”
“삼도상단이 황궁에 납품할 물품을 준비하고 진가장은 중간에 넘기기만 하면 되겠지. 진가장이 따로 움직일 것도 없을 것이다. 나머지는 상단에서 모두 처리할 것이니까.”
‘그리 나쁜 일은 아니야.’
외척의 득세를 견제하는 황궁 대신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모용가는 오히려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황궁과의 거래를 트기만 하면 나머지는 거칠 것이 없었다.
‘무림의 상승 무공도 허락 받았는데, 거래는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무얼 납품하느냐가 문제로다.’
문제는 황궁에 납품하는 물건들은 중원에서 가장 좋은 것들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저 그런 물건을 납품하면 목이 잘려도 할 말이 없었다.
“네가 일을 진행하자면 성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것 또한 내가 준비해줄 것이고···.”
또한 비연은 황궁에 넘길 물건도 입에 올렸다.
“야광주와 수은이면 되지 않겠느냐?”
황릉 도굴을 통해 얻은 광은(光銀)을 황궁으로 넘길 생각이었다.
“!!!”
야광주와 수은이라면 엄청난 가치를 가진 보물에 준하는 물품이었다.
“보주를 황실에 납품한다면 누가 이를 거절 할 수 있겠습니까? 수량은 얼마나 되옵니까?”
“나라의 곳간을 거덜 낼 정도로 준비해주마.”
“···허.”
진호현이 삼도상단의 저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네 숙부가 나름 능력이 있지 않느냐?”
“꼭 성사시킬 터이니 맡겨주십시오.”
“당장 가문에 닥친 일부터 끝내자꾸나. 조문객을 받고 아버지의 상을 치러야 가문의 행보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 맹의 인물들이 도울 것입니다. 헌데···.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호현은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었다.
“무엇이냐?”
“···막내 호충이 잠시 가주의 자리를 맡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
“녀석의 목적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엄청난 무위를 보이며 자신을 찍어 누른 녀석이다. 가주가 되겠다며 자신의 서찰까지 받아갔는데, 마지막에 가주에 오른 것은 자신의 숙부가 아니던가.
‘대체 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모르는 모양이구나.”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월하검문.”
“!”
월하검문을 어찌 모르겠는가. 호충의 입으로 자신이 월하검문 문주의 하나뿐인 제자라고 했었다.
“압니다. 녀석이 월하검문의 진전을 이었지요.”
“네가 모르는 것은 삼도상단의 상단주님이 월하검문의 문주와 같은 분이라는 점이다.”
“!!”
“그 분이 곧 내 외조부님이시니, 호충과 내가 알고 지낸 것은 당연한 일이지.”
송동석은 이름만 알려져 있었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진호현은 호충의 노복인 송 영감과 삼도상단의 상단주이자 월하검문의 문주인 송동석을 연관 지을 수 없었다. 진호현은 송 영감의 본명조차 들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그럼···.”
월하검문의 문주가 삼도상단을 일으킨 전대 상단주와 동일인물 이었고, 월하검문의 제자인 호충은 송 문주의 외손자인 숙부를 위해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이제 의문은 풀렸겠지?”
“······.”
물론 풀려버렸다. 왜 녀석이 단 하루뿐인 가주가 되어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조부님의 숨겨진 자식인 숙부님을 진가장에 데려오려면 녀석이 가주에 올라야 했어. 녀석은 제 스승의 뜻에 따라 움직인 것이야.’
이어진 비연의 말이 호현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자장 저잣거리를 배회하던 나를 외조부께서 찾아주셨고, 덕분에 삼도상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외조부가 제자를 들이며 호충과 안면을 텄지.”
비연은 호충과 말을 맞춰둔 대로 말하는 것뿐이다.
“외조부께서는 호충을 통해 진가장과 뗄 수 없는 인연을 느끼시고 나의 출신을 알려주셨다. 나도 내가 진가장과 이어졌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막내가 가문의 일에 책임감을 느꼈나 봅니다.”
“옳다. 나를 버린 조부의 일을 제 손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모양이야.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가주에 오른 날 세상을 떠나셨지. 내가 가주가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신 모양이야.”
“···그런데 막내는 어딜 갔습니까?”
잠시라지만 진가장의 가주에 올랐고 숙부를 가주에 올렸으니, 공로 또한 상당할 터인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막내 조카는 조부의 죽음이 자신 탓이라 여기는 모양이야. 사흘 사이 가주가 두 번이나 바뀌지 않았느냐. 자신이 집안에 일으킨 큰 변화가 가문을 존장을 떠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구나. 죄인이 가문에 남아 있으면 안 된다며 떠났다.”
“허. 미신을 믿고 있나 봅니다?”
사실 호현은 호충이 이곳에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야 네 놈에게 독수를 쓸 수 있었을 것인데···.’
호현은 호충에게 당한 앙심으로 품에 독을 준비해왔다. 이곳에서 호충을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누구든 그리 생각할 수 있다.”
“···의문은 모두 풀렸습니다.”
“듣자하니···. 네가 호충에게 가주직을 허락하는 서찰을 써주었다지?”
“···다른 말도 들으셨습니까?”
자신이 녀석에게 무공으로 밀렸다는 것을 말함이다. 그 때문에 써준 서찰이었다.
“글쎄. 그저 맹주가 허락했다는 얘기만 들었다. 그래서 네가 고맙다는 말을 하려던 차였지. 덕분에 내가 가주에 오르는 것이 수월했으니까.”
“······.”
가문에 그리 좋은 감정을 갖지 않았으면서도 자신과의 일은 감췄던 모양이다.
“하지만 호충 조카와 둘째 조카는 사이가 별로 안 좋았던 모양이더구나.”
“···그러고 보니 둘째도 보이지 않습니다.”
호충은 그렇다 치는데, 본래 가주직을 수행하던 호중이 보이지 않았다.
“막내 조카가 녀석을 조금 심하게 다룬 모양이다.”
“예?”
“내가 진가장에 들어서기 전날 호중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호충에게 맞았고 둘째 형수와 같이 진가장에서 쫓겨났다고 들었다.”
“!”
‘놈이 둘째에게도 앙갚음을 했구나!’
“왜인지 모르겠으나, 첫째 형수도 함께 나갔다고 들었다.”
“······.”
자신의 어머니까지 녀석의 뜻에 따라 진가장에서 쫓겨나지 않았나 싶었다.
‘네 놈이 감히···.’
“내가 그 소식을 듣고 얼른 사람을 보냈으니, 첫째 형수는 돌아오실 것이다.”
“아···.”
“모용가와 진가의 협조가 절실한데, 큰 형수님께 결례를 범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어머니는 제가 모시지요. 어차피 가문의 어른도 없으시니 제가 모셔도 됩니다.”
“조카의 뜻이 그렇다면 허락해야지 어쩌겠나. 형수도 나와 함께 진가장에 머무르시는 것이 껄끄러울 것이야.”
“감사합니다. 숙부님.”
‘네가 얼마나 그 자리에 있을 지 두고 보자.’
겉으론 예의 바르지만 속으론 언제나 의뭉스러운 마음으로 가득한 호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