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제지황(廢帝之皇)
***
“좋아. 확실히 알아차리기 힘들겠어.”
“···이제 마지막 연입니다. 오르시지요.”
유도영은 호충이 연을 타고 하늘에 날아오를 줄 알았지만, 호충은 애초에 그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내가 타면 연이 뜨지도 않아. 줄이나 잘 붙들고 있으라고 해.”
호충은 훌쩍 뛰어 연과 연결된 줄 위로 올랐다. 몸을 가볍게 하고 천상제를 펼치는 것과 다름없이 줄을 타고 하늘로 뛰고 있었다.
“!”
유도영은 문주가 마치 외줄을 타는 것 같았다.
“우아.”
“문주님의 경공이···.”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그저 바람이 조금 더 분다고 생각될 정도의 감각만 손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경공뿐이 아니지. 문주님의 무공은 천의무봉이야. 공연히 무신이라 불리겠느냐.”
유도영의 말에 모든 정보단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연을 안정적으로 띄우는 것만 신경 써라. 저 높이에서 떨어지면 문주님이라도 무사하지 못하실 것이다.”
“예! 단주님.”
휘이이잉.
호충은 불어오는 바람을 가늠하며 첫 번째 기름을 꺼내 불을 붙였다.
화르륵.
술의 순도가 높아서인지 금방 불이 붙은 기름통이었고, 불비처럼 보이려면 통과 함께 던질 수 없었기에 기름을 밑으로 흩뿌렸다.
“···어라?”
호충은 커다란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기름에 불이 잘 붙었고 불비처럼 떨어지기도 했지만, 규모가 너무 작았던 것이다.
“이걸 누가 봐?”
연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불이 붙은 기름은 하늘에서 떨어지며 금방 타올랐고, 반짝 빛을 내고 사라지는 수준이었다.
연에 매달 수 있는 기름의 양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연에 기름을 가득 매달면 아예 띄울 수 없었기에 기름을 더 매다는 것은 답이 아니었다.
호충은 천상제로 연을 넘어 다니며 기름통을 모았지만, 이것도 잠시 빛을 내는 정도일 것이다.
“···제길.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잠시 생각하던 호충은 눈을 빛냈다.
“그렇지!”
연에 매달린 호충은 자신이 매달릴 연을 제외한 모든 연에 기름을 들이 부었다. 그리고 불을 당겨버렸다.
화르륵.
연에 불이 붙고 타오르자 그제야 오래도록 불이 타오르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연에 불을 붙인 것은 시선을 사로잡기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진짜 불비는 따로 보여줘야 했다.
“남은 것은 내 몫이군.”
호충은 진가장에 주었던 오환검(五煥劍)의 화려한 불꽃을 월하답보에 접목했다.
화르륵.
호충의 손에 작은 화월(火月)이 떠오르고 있었다.
‘겉보기에만 화려하면 되니 많은 내공을 쏟을 것도 없다.’
[화월난무(火月亂舞)]
호충의 양 손에서 생성된 무수히 많은 화월(火月)이 땅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파바바박.
이제야 진정 화우(火雨)라고 부를만한 모습이었다.
***
“저, 저!!”
“하늘에서 불비가 쏟아진다!”
하늘에서 내리는 불비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어디서도 이와 같은 일을 보지 못했던 남경의 백성들은 저마다 집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또한 남경에서 퍼지던 소문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오문에서 일부러 더욱 입소문을 만들어 내서 퍼트린 비석의 문구였다.
“진황(眞皇)이 천형(天刑)을 얻기 전 남경 하늘에 화우(火雨)가 내려 경고할 것이다···.”
“화, 황제 폐하께 문제가 생길 거야.”
“하늘이 진노하셨다.”
“비석은 진짜 예언석이었어!”
황궁에서도 멀리 남경 하늘에서 내리는 불비를 지켜보고 있었다.
“······.”
“······.”
내관들과 밖으로 나와 불비를 지켜보던 태자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대체 저게 무엇이냐?!”
“하늘의 벌···.”
“진짜로 화우(火雨)가 내리다니···.”
“정녕 저것이 하늘의 뜻이란 말이냐?”
떨리는 눈으로 화우를 지켜보던 태자는 비석에 새겨진 다음 문구를 기억해 냈다.
“···진황(眞皇)의 종말(終末)이 머지 않았······.”
태자는 자신이 야광주를 황제에게 주었기에 이것도 확신할 수 있었다.
‘곧 황제가 죽는다. 황제가 죽으면 내가···.’
비석엔 자신을 향한 예언이 없었기에 태자는 화우(火雨)가 내리는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곧 내가 황제가 된다! 이건 아무리 예언이 실현되어도 변하지 않을 거야.’
***
또한 불비가 내리고 며칠 뒤 남경의 황궁 근방의 나뭇잎에서 기이한 문구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몇 그루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남경에 사는 대부분의 백성들이 나뭇잎에 새겨진 문구를 찾을 수 있었다.
[폐제(廢帝)]
황제의 폐위를 뜻하기도 하고 폐위된 황제를 뜻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황제에게 천벌이 내리기 전 화우가 내린다고 했던 예언이 이루어졌기에 대상을 특정하기 어렵지 않았다.
“황제가 하늘에 죄를 지어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
“황제를 끌어내려야 한다!”
“아니면 우리에게까지 천벌이 내릴 것이다.”
“분명 비석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
“폐제! 폐제가 답이다! 하늘이 우리에게 답을 주신 것이야!”
정보단원들은 남경의 민심을 움직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다.
***
부교주 앞에는 작은 나뭇잎들이 놓여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
벌레가 갉아먹은 흔적이 역력한 나뭇잎은 인위적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정말 벌레가 글을 썼다고?”
“···몇몇 나뭇잎의 문구가 불완전하긴 하지만 이는 오히려 벌레의 소행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늘이 진정 황제를 노리고 있다는 뜻이냐?”
“···신께서 노하셨습니다. 저는 화우(火雨)를 직접 보았사온데 마치 해와 달이 함께하는 모습의 화우(火雨)였습니다.”
“······.”
이들은 신을 믿는 종교단체였다. 그렇기에 일반 백성들과 받아들이는 수준이 달랐다.
“교주께서 곧 신이시다!”
부교주가 아무리 강변해봤자 다른 교도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확고했다.
“교주께서는 신의 뜻을 대변하고 신의 화신(化身)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배하시고 해와 달을 관장하시는 천지일월신의 뜻이니 교주께서도 동조하실 것입니다.”
“······.”
보통 종교의 수뇌부는 신이 아니라 다른 것을 믿기 마련이었다.
‘천마신교의 모든 것은 교주가 관장해야···.’
부교주는 교리를 뛰어넘어 교주만을 따르고 있었다.
“부교주님. 저희가 행하는 일도 천지일월신의 뜻과 다르지 않음이옵니다.”
“···폐제(廢帝).”
마교도 황제를 폐위하려 하고 있었다.
“현 황제의 폭정으로 민심이 폭발하기 직전입니다. 신께서 때를 일러주신 것이고, 저희는 그에 맞춰 움직인 것입니다.”
“···근래 태자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근래 부교주는 태자의 궁녀 매(昧)를 통해 태자와 접촉하려다가 알 수 있었다. 매(昧)가 며칠 전 급사했다는 소식이었다. 평소 앓던 지병으로 인한 것이라며 시신도 내어주지 않았기에 사인을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태자를 지근거리에서 감시하는 궁녀가 사라졌기에 지금 마교는 황궁 내부 사정에 깜깜했다.
“신께서 직접 나서셨습니다. 태자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신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
하지만 휘하의 마인은 아예 말이 통하지 않는 수준이었다.
‘광신도 새끼들···.’
같은 교인들을 미쳤다고 표현하는 같은 종교의 부교주였다. 그렇다고 이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남경에 남은 마인들이 많지 않았기에 능력이 출중한 교도들에게 함부로 벌을 줄 수는 없었다.
“···너희는 곧 정리할 대신들이나 감시해라.”
마교는 황제파의 대신들 중에 일부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래야 태자를 적대하던 세력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태자를 음지에서 돕고 있다는 흔적을 남길 수 있었기에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들도 신의 뜻을 따르고 있어 움직일 수 없습니다.”
“뭐, 뭐라?”
대신들도 이번 예언석 사태에 크게 흔들리며 황제의 권력 이양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도들은 대신들이 신께서 비석에 남긴 지시를 따르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신께서 지시하신 모든 것이 이루어지면 저희도 움직일 것입니다.”
“······.”
“교주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부교주는 교주가 아니십니다. 근래 교주께 내려온 서찰도 없지 않았습니까?”
남경에 오래 머무르며 주체적으로 일을 진행한 부교주였다. 덕분에 교주의 지시를 받은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게다가 교주에게 서찰이 도착하면 이들이 가장 먼저 받아 전하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
“신의 오묘한 뜻에 따르면 저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가라. 교주께 서찰을 보낼 것이다.”
“예! 부교주님.”
.
.
.
부교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마음을 다스렸다.
“푸후······.”
그토록 오래 준비한 일들이 허망하게 갈려나갔다. 태자의 어미를 통해 진행하려던 일들은 처음부터 틀어졌고, 태자의 성정은 예상보다 지독했다. 그래도 태자와 같은 배에 탔다고 여기고 있었다. 마지막엔 자신의 안위와 황위에 욕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녀 매(昧)가 죽은 다음, 오가던 서찰이 막히면서 모든 것이 불안해졌다.
‘괜찮아. 태자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 궁녀 매(昧)의 일은 분명 우연한 일이었을 거야.’
끊어진 줄을 다시 잇는 것이 급선무였다.
‘약재상을 통해 태자에게 서찰을 보내야겠군.’
부교주는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관심을 둬야 했다.
***
두두두두.
군마의 말발굽이 지축을 뒤흔들며 달리고 있었다. 남경이 혼란하기 전부터 변방의 대군이 움직인 것이다.
“이랴!”
정찰도 필요 없고, 황궁에 정보가 전해질 염려도 없었다. 이미 하오문에서 파견된 문도들이 대군이 지나는 길을 재차, 삼차 훑어 경계를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대군이 움직이는 길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대장군! 급전(急傳)입니다!”
서천량은 말을 타고 가는 길에 전해진 서찰을 그대로 뜯어 읽었다.
[예언석 성공. 화우(火雨) 성공. 대신들 폐제(廢帝) 논의. 폐제지황(廢帝之皇) 오(五)할 진행.]
폐제지황(廢帝之皇)은 이번 대계를 칭하는 말이었다. 폐제(廢帝)는 진휘평을 이르는 말이었고, 지황(之皇)은 황제가 된다는 뜻이었으니, 폐제를 황제가 된다는 뜻이다.
‘공자께서 이미 반을 이루셨다.’
나머지는 자신과 병사들의 몫이었다.
두두두두.
***
“아직 안 죽었지?”
“예. 아직입니다.”
호충은 곧 시작될 대계 전에 황제가 죽어버리면 어쩌나 싶어 노심초사였다.
“설마 일찍 죽진 않겠지?”
“···죽어도 상관없습니다만.”
“왜 상관이 없어? 황제가 서거하면 군이 바짝 긴장태세를 유지할 텐데. 대장군의 남경 진입부터 난관을 겪을 거야.”
“···어차피 남경 주둔장군 중에 일부는 포섭하지 않았습니까. 이들을 통해 다른 수도 방위군을 막아내고 길을 터면 됩니다. 대장군의 군세가 남경으로 진입하기만 하면 끝입니다. 애초에 수도 방위군은 변방에서 닳고 닳은 병사들을 상대할 방법도 없지요. 물론 더 많은 피를 흘리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후우.”
“이제 서천량 대장군이 남경 근방까지 왔을 것입니다.”
“···하루거리가 남으면 나도 시작해야지.”
“그럼 내일 쯤 시작하시면 되겠습니다.”
“녀석들 동태는?”
“일전에 황궁 약재상을 중심으로 감시하라 하셔서 녀석들의 은밀한 움직임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마교는 약재상을 통해 태자궁에 서찰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신도 받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그 장원에서 대기하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큭. 태자 놈이 마음을 바꿔 먹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마교가 가진 패가 가치가 없었음을 깨달은 태자는 이후 황제가 서거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권력을 잡으면 곧장 움직이겠지요.”
“크크. 그 권력을 누가 준다든?”
황제의 자리는 태자가 아니라 아버지를 위한 자리였다.
‘동생 놈아. 오늘도 내일도 좋은 꿈을 꿔라. 그 이후에는 악몽만 이어질 것이니···.’
호충은 태자의 숙면을 빌어주었다.
***
마교의 부교주 여송은 고요한 가운데 눈을 감고 있었다.
“······.”
수하들 앞에서 교주께 서찰을 보내겠다고 장담했지만, 여전히 그의 앞에는 깨끗한 종이가 놓여 있었다. 차마 서찰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그토록 오랜 시간 대계를 준비했음에도 계획은 빈틈으로 가득했다. 내가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겠다며 너무 몸을 사렸다. 자신의 뛰어난 마공만으로도 얼마든지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위기가 닥치면 이겨내야 했고, 장애물이 있으면 부수고 지나가야 했다.’
벌떡.
여송은 감았던 눈을 뜨고 움직였다.
“이젠 참지 않을 것이다. 태자 네 놈부터 작살을 내주마.”
여송은 자리에서 일어나 야행복과 복면을 찾았다. 당장 황궁으로 들어가 태자와 대면할 각오였다.
“황궁 금의위의 무력은 나보다 몇 수는 아래이니···.”
꽈악.
야행복으로 갈아입고 손아귀에 검은 복면을 움켜쥐며 다짐하던 여송은 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을 들었다.
사락.
“!”
“···몇 수까지는 아니지 이 사람아. 기껏해야 한 수 아래라면 모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