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교주 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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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수까지는 아니지 이 사람아. 기껏해야 한 수 아래라면 모를까.”
타닥. 휘익.
번개 같은 발 구름으로 멀찍이 물러선 여송은 자신처럼 야행복을 입은 복면인을 향해 외쳤다.
“네 놈은 누구냐!”
여송의 기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상대가 방으로 들어오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큭. 내 목소리 몰라?”
호충은 과거 부교주와 마주했던 당시에 했던 말을 다시 똑같이 뱉었다.
“다음엔 꼭 목을 자르도록 하게.”
“···너는!”
여송도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황궁 관료의 자식으로 짐작되는 인물을 만난 날이었고, 처음 남경에 도착한 날이었다.
“큭. 본인은 산적의 목을 자르라고 했지 황제를 때려잡으라고 하지 않았느니라.”
여송은 상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어디서 온 놈이냐.”
‘그때부터 감시당하고 있었나···.’
“내가 어디서 왔는지가 무슨 상관이냐? 네 놈들이 태자와 획책하는 일이 문제지. 마교는 항상 이 모양이지.”
“설마 황궁?”
황궁의 무인들이 남경을 은밀하게 지키고 있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곧 그리 되겠지.”
“······.”
여송은 뒤로 물러서며 등 뒤에 꽃아 둔 비도를 잡았다.
“······.”
‘놈의 무위를 파악하기 어려우니 여럿이 상대해야···.’
“모두 안으로 들어와라!”
하지만 장원을 지키는 수하들의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밖에 너를 도울 지원군은 없어. 변수는 미리미리 확인하고 처리하자는 주의라···.”
“!”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수하들을 처리했다는 의미였다.
“소란피우지 마. 남경에서 괜히 시선을 끌면 피곤하니까.”
“······.”
여송은 상대의 움직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곧장 비도를 날리고 몸을 빼낼 생각이었다.
호충은 부교주의 눈이 어디로 향하는지 파악하고 말했다.
“아. 그렇다고 도주를 허락한다는 말은 아니다? 밖에 너 잡으려고 기다리는 애들이 이천 쯤 되거든. 창문으로 뛰쳐나가면 벌집이 될 걸?”
“······웃기는 소리.”
이천이면 중원 무림 방파 하나의 온전한 전력이었다. 밖에 그만한 인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았기에 전혀 믿을 수 없었다.
“정말이거든?”
“······.”
‘내가 속을 것 같더냐?’
여송은 등 뒤로 손을 감추고 조금씩 옆으로 걸었다. 비도를 날리고 창문으로 몸을 빼내기 위해 가장 적합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다.
“이번엔 핵심 전력이 다 왔단 말이야. 너 그 창문으로 나가면 진짜 큰 일 난다?”
“···훗.”
“야. 그러지 말고-”
여송은 호충의 입이 다시 열리는 순간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비도를 날렸다.
슈슉. 슈슈숙.
일수에 다섯 개의 비도를 날린 여송은 자신만만하게 창문으로 부수며 밖으로 나갔지만, 창문으로 나서자마자 많은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
기감이 아니라도 장원 마당을 가득 채운 인원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정말 이천이 넘을 것 같았다.
‘기막! 녀석이 안에 기막을 둘러두었구나!’
여송은 자신이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원인을 파악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슈각! 부우웅. 콰가각.
위에선 강기를 두른 쌍단창이 떨어지고 있었고, 좌측에선 옥빛 단봉이 잔상을 남기며 날아들고 있었으며, 우측에선 거친 강기를 두른 태도(太刀)가 들이닥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정면에서 날아드는 은빛용이 문제였다.
후아앙.
“!”
뻐억.
여송은 날아드는 은빛용을 박차며 빠르게 뒤로 물러섰고, 그곳엔 본인이 뚫고 나왔던 창문이 있었다.
치이익.
“끄윽.”
강기로 이루어진 은빛용을 받아낸 덕분에 한쪽 발이 너덜너덜해 졌지만, 몸을 낮춰 신형을 멈출 수 있었다.
“거봐. 새끼야. 형 말을 개똥으로 들으니까 뒈질 뻔했잖아.”
여송은 자신의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긴장을 더했다.
주륵.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깝다. 사정권이야.’
그 와중에 상대와의 거리를 가늠한 여송은 몸을 돌리며 검게 물든 장을 뻗어냈다. 화경의 끝자락에 오른 마인이 펼쳐낸 마교의 지독한 명왕장이었다.
휘익.
‘멍청한 놈! 네놈은 끝이다!’
명왕장은 오래전부터 신교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장법이었다. 그만큼 강력하고 치명적인 장법이다. 명왕장의 마기가 단 한 번이라도 침투하면 상대는 마기에 대항하다가 죽기 일쑤였다.
여송은 자신의 장에 마주 손을 뻗는 상대를 보며 희망을 느꼈지만, 상대의 손은 장을 펼치기 위해 뻗은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나타난 유엽비도가 그의 손에 잡혀 있었고, 유엽비도는 검게 물든 자신의 손바닥을 뚫고 안으로 깊이 박혀 들어갔다.
쑤욱.
자신이 익힌 신교의 명왕장이 뚫리지 않을 거라 자신하고 있었기에 벌어진 참사였다.
“끅.”
“멍청한 놈. 쟤들이 내 부하들인데 내가 더 약하겠냐?”
쌍단창에 강기를 두르고 화가창법(樺家槍法)을 펼친 이는 패방주 사중환이었고, 옥빛 단봉으로 타구봉법(打狗棒法)을 펼친 이는 말동이었다. 황룡살도의 살기 가득한 태도를 휘두른 이는 옥비연, 정면에서 대월천룡권(大月天龍拳)의 최후 초식을 보여준 이는 당연히 왕호였다.
하오문의 전력이 남경에 도착하자마자 부교주를 잡으러온 호충이다.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지만, 하오문 수뇌부는 온전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호충은 내일 진행할 대계를 위해 하오문의 전력을 이곳에 부른 것이다.
“······.”
여송은 말을 줄이며 다치지 않은 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아갔다. 끝까지 대항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발끝은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검을 나누는 척하며 도주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살길을 모색해? 징그럽다. 증말.”
“대체 네 놈들은···.”
호충은 녀석이 말을 걸며 빈틈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았지만, 감추지 않고 자신을 드러냈다.
스윽.
호충이 복면을 벗자 중년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하오문의 송재호가 마교의 부교주를 잡는 순간이로다.”
“하오문주!”
“교주 놈도 곧 보낼 터이니,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서 해후하겠구나.”
“교주님의 무위는 네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홍태소.”
“!”
“마화평.”
“!!”
“그리고 장문소를 비롯한 마교의 졸개들.”
“네, 네 놈이···.”
“그래. 녀석들이 내 손에 죽었으니 저승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 왕야를 납치한 것도 너희···.”
“워워. 그건 곧 죽을 네 놈이 궁금해 할 일이 아니다. 넌 네 이름이나 밝혀라. 교주에게 네 수급을 전하려면 이름 정도는 알아야하지 않겠느냐.”
“······.”
여송은 하오문이 남경에서부터 움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교주님은 어찌 되는 것이냐.”
하오문이 미리부터 준비했다면 교주의 생사도 위태로웠다.
“산서성 신강은 이미 포위 되었을 것이다.”
“허. 이미 교단의 위치까지···. 누가 배신했지? 누가 입을 열었더냐!”
“너희 마교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면, 하오문은 누구든 될 수 있고, 누구도 아닐 수 있다고 답해주마. 신강의 객잔에서 일하는 점소이 대부분이 하오문의 문도다.”
“······.”
“뒷간에서 똥을 퍼 나르는 일꾼도 하오문도지.”
“······.”
“푸줏간에서 가축을 잡고 고기를 자르는 이도 하오문도야.”
“······.”
“네 놈들이 천하다며 마교도로 받아주지 않았던 많은 이들이 바로 하오문의 근원이다.”
“······.”
호충은 신강을 그대로 둘 수 없었기에 신강에서 새로운 하오문도를 찾아 나섰다. 신강에 많은 마교도들이 암약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어려운 일이 되리라 여겼지만, 예상 외로 마교도가 아닌 일반인들이 상당히 많았다.
‘사람 가려서 받으니 그 꼴이 나는 거지.’
마교의 신도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있었던 것이다. 천한 일을 하는 자들, 가난한 자들, 몸에 장애를 가진 자들···. 이들은 마교도가 될 수 없었지만, 하오문도는 될 수 있었다.
‘하오문은 밑바닥 인생의 총집합. 이들이야 말로 하오문의 뿌리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더냐?”
눈을 꾹 감았다가 뜬 여송의 입이 열렸다.
“···여송(呂宋).”
“비석에 새겨서 교주에게 보내주마.”
“그냥 죽지는 않는다. 네 놈의 팔 하나는 가져갈 것이다.”
“그럼 나는 팔을 자르고 목을 잘라주마.”
“······.”
여송은 상대의 말이 거짓으로 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상대는 자신과 비등하거나 높은 경지였는데, 자신은 이미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태였다. 팔은 고사하고 손톱이라도 자를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너무 불공평하군.”
“세상은 항상 불공평하지. 언제는 공평한적 있었더냐?”
슈각! 샤악!
둘은 낌새도 없이 검을 날렸고, 여송은 화경의 고수답게 한쪽 발로 보법을 밟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찰나와 같은 시간 속에 여송은 상대의 신형이 다섯으로 나눠지는 것을 확인하고 그 중에 둘을 선택했다.
샥.
첫 번째는 환영이었다. 검에 닿자마자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첫 번째 환영이었고, 연달아 다음 환영에 검을 날렸다.
슈욱.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고수들의 접전에서 두 번의 검초를 날려먹은 것은 치명적이었다.
‘제길···. 끝이군.’
여송은 남은 세 환영 중에 하나가 자신에게 검을 날릴 거라 짐작했지만, 검이 날아든 곳은 아무것도 없었던 빈 공간이었다.
‘···뭘 선택해도 틀렸겠군.’
투욱.
유엽비도가 박혀 있던 여송의 팔이 바닥에 떨어졌고, 갈라진 그의 목에서도 핏물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꾸륵.
“잘 가라.”
부교주 여송의 목이 떨어지며 목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퉁퉁. 츄악!
호충은 죽은 여송의 시체에서 몸을 돌렸다.
“장원 깨끗하게 정리하고, 놈의 팔과 목도 잘 붙여서 신강으로 보내라.”
“예! 문주님!”
호충은 장원 밖으로 나가서 대기 중이던 방주들을 마주쳤다.
“문주님! 대단한 검식이었습니다.”
창밖에서 안의 대결을 지켜본 사중환이었다.
“여. 부문주는 실력이 더 늘었더라? 쌍단봉이 멋지게 날아들었어.”
사중환은 호충의 칭찬에 허리를 숙이며 포권했다.
“감사합니다. 문주님.”
“흑림방주는 마지막 초식 끝내줬다. 이제 제대로 펼치던데? 은룡이 촤라락 풀려나오는데 진짜 용이 승천하는 것 같았어.”
왕호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크흐흐. 감사합니다.”
“말똥이 너는 타구봉에 가미한 변초가 대체 몇 개야?”
마교 부교주 여송을 향해 날아가던 흔들리는 단봉은 옥화타구봉법의 수많은 변초를 내포하고 있었다. 여송도 이를 알아봤기에 함부로 대항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선 것이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감사합니다. 문주님.”
옥비연은 이제 자신의 차례라 호충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고, 기대와 같이 호충이 비연을 향해 돌아서서 입을 열었다.
진가장의 가주가 되었지만 여전히 옥비연은 옥비연이었고, 하오문 상방의 방주였다.
“상방주는 재미 좋냐? 깨가 쏟아져?”
“커헉. 문주님! 왜 저만 말씀이 다르십니까? 저도 황룡살도를 열심히 연마했단 말입니다.”
옥비연은 하오문 삼도상단의 상단주, 진가장 가주, 두 부인을 맞이한 남편의 역할까지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맡은 일들을 훌륭히 해내면서 황룡살도를 극한까지 연마했다. 덕분에 오늘 마교의 고수를 맞이해 자신이 익힌 황룡살도의 절초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황룡살도가 문제야? 너는 남들 하나 갖기도 힘들다는 마누라가 둘이나 되잖아 새끼야. 노총각들이 얼마나 궁금하겠냐? 그래서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지.”
“그래도···.”
“대형 재끼고 먼저 장가간 놈이 말이 많네···.”
“맞습니다. 그것도 마누라를 둘이나 얻지 않았겠습니까?”
“형수님들이 엄청난 미인이시던데···.”
옥비연은 괜히 입을 열어봤자 타박만 들을게 뻔했기에 차라리 입을 다물기로 했다.
“······.”
“어쭈? 왕 방주. 얘가 이젠 아예 딴 짓이다?”
“허어. 형님들이 말씀하시는데 대꾸가 없어?”
사중환과 왕호는 옥비연을 앞에 두고 놀리는데 재미를 붙였고, 개방을 맡은 말동은 눈만 굴리다가 말했다.
“···저는 가만히 있을게요.”
말동은 어려서부터 옥비연을 대형으로 모셨기에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너까지 나서면 내가 확 뒤집으려고 했다.”
“크하하. 비연이 두 마누라에게 시달린 얘기는 가서 듣자. 나도 궁금했거든.”
“시달리긴 왜 시달립니까? 얼마나 잘해준다고요!”
“오오. 밤일을 상당히 잘하는 모양이야?”
“이 녀석 내공이 몇 갑자인데 시원치 않겠습니까? 그것도 제대로 못하면 떼버려야죠.”
“떼긴 뭘 뗍니까!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뗀다고 그러세요?!”
오늘의 안주는 비연이었다.
“하하하. 밤일도 제대로 못하면 떼긴 떼야지.”
“대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