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6화 (216/232)

마중

***

“신호가 보입니다.”

“모두 말발굽을 감싼 천을 풀어라.”

“충!”

변방의 대군이 타고 온 말의 발은 천으로 감싸져 있었다. 수도 방위군이 말발굽 소리를 들을까 싶어 조치한 것이다. 수도 성문이 보이는 곳 깊은 어둠 속에 십만 대군이 집결해 있었다.

“황궁까지 빠르게 진입할 것이다.”

“충!”

“신호하면 기병들부터 달려가 동문을 확보하라. 병사들은 성곽으로 빠르게 진입, 외부의 지원군을 막아라.”

“충!”

성문은 기병이 도착하면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다만 동문을 지키는 방위군은 역천에 가담하지 않았기에 다시 문을 닫으려는 병사들을 제지해야 했다.

서천량은 자신 뒤에서 성문을 보고 있는 진휘평을 향해 고했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대장군을 믿겠소.”

“전군! 진격하라!!!!”

북소리가 울렸다.

둥!

둥! 둥!

둥! 둥! 둥!

두두두두두.

기병이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갔고, 그 뒤를 이어 역전의 병사들이 기수들과 함께 뛰쳐나갔다.

““와아아아아아!””

***

북소리와 말발굽소리, 대군의 함성소리가 더해졌거늘 성벽의 대응은 기민하지 못했다. 기루에서 도착한 좋은 술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끄응. 이게 무슨 소리야?”

방금까지 술을 들이키다가 잠들었던 병사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성곽에서 번을 섰던 병사들이 단잠에서 깨어나 본 것은 사방을 가득 채우는 횃불이었다.

“흠냐···. 저게 뭐지?”

눈앞을 아른 거리는 수많은 불빛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술이 덜 깼나?”

“야, 야, 야!”

술을 덜 먹은 병사가 옆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왜?”

“저, 적군이 왔어. 적군이야!”

“적군?”

두두두두두.

어느새 말이 성벽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헙!”

“북! 북을 쳐야 해!”

“헛! 성문부터 막아야지!”

끼이이이익.

막아야할 성문은 오히려 활짝 열리며 적군 기병을 맞이하고 있었다.

두두두두.

기병들은 거침없이 성문을 통과해 성곽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새끼가 성문을 열었어!!”

“당장 내려가서 닫아야 해!”

“미친놈들. 늦어도 한참 늦었다.”

흑림방 호위대가 벌써 성문 병사들 곁에 도착해 있었다.

“!”

“!”

챙. 챙!

호위대는 병사들 목에 칼을 가져갔다.

“북치러 가는 놈은 뒈지는 줄로만 알아라.”

“끅.”

경고하지 않아도 이미 성문을 막으러 가던 병사들 몇이 적도들의 칼에 쓰러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 묶어서 모아놔.”

“예!”

“예!”

“기병에게 놈들을 맡기고 여기서 지휘부와 합류한다!”

“예!”

수도를 지키는 성벽은 넓었고, 기병과 흑림방만으로 모든 곳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성문을 빼앗겨 성벽의 이점을 살릴 수 없었기에 십만 대군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십만 대군은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던 실전 병사들이었기에 수도에서 놀고 마시던 병사들이 당해낼 수 없었다.

“장군! 적군이 성곽을 대부분 차지했습니다.”

“누구냐! 어느 나라에서 온 것이냐!”

“···외부의 적이 아닙니다.”

“내부?”

“군기에 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

용(龍)기는 황제가 출정할 때 사용하는 문양이기도 했고, 황실의 종친이 사용할 수도 있는 문양이었다. 자세한 용의 형태는 다를지라도 용기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반란군입니다.”

“대체 황실의 누가!”

그의 의문이 풀리기도 전에 적군이 들이닥쳤다.

“적장을 잡아라!”

“헙!”

““우아아아아!””

성곽 전부를 빼앗겼기에 수도 방위장군은 오도 가도 못 하고 적군의 손에 사로잡혀야 했다.

적들의 손에 잡혀 묶인 수도 장군은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성벽 밑에 무릎 꿇려졌다.

따그닥. 따그닥.

그의 앞으로 말을 탄 반란군의 장수가 지나고 있었고, 수도 장군은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서천량 대장군!!!”

서천량은 말을 멈춰 자신을 부른 적장을 내려다봤다.

“수도군 장문호 장군. 오랜만이군.”

“···어찌하여 반란을 일으키셨소! 그대는 변방을 지키는 나라의 대장군이 아니오!”

황실의 피를 물려받지 못했다면 황궁을 차지 할 명분이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설마 내가 권력에 탐을 낼 것 같은가?”

“그, 그럼···.”

따그닥.

서천량 뒤를 따르던 진휘평이 나섰다.

“형님의 폭정이 극에 달해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하늘이 그에 화답하고 있다. 나 장왕(長王) 진휘평은 선항제께서 이룩하신 나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노라.”

선황제가 진휘평을 장자로 여겼기에 장왕(長王)이라는 칭호를 내렸었다.

“!!!!”

장문호는 한참 전에 죽었다던 황제의 동생이 반란군을 이끌고 나타났음을 알 수 있었다.

“와, 왕야께서 살아계셨을 줄이야···.”

“네 놈에게 붙잡히지 않았으니 살아있지 않겠느냐.”

“!!”

‘왕야가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장문호는 과거 진휘평과 악연이 있었다.

“···장문호 장군과 인연이 있으십니까?”

“녀석이 백인장일 때의 일이다. 놈은 형님의 명으로 나를 쫓던 황군이었다. 놈이 이끄는 황군이 가장 지독하게 나를 쫓았지. 이 녀석이 이끄는 군의 눈을 피해 도주하던 중에 마교 놈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이 놈이 아니었다면 마교에 잡힐 일도 없었을 것이다.”

“!”

“······.”

스르릉.

장문호는 묶인 몸으로 어떻게든 뒤로 물러서려고 버둥거렸지만, 서천량은 검을 빼들고 말을 몰았다.

다그닥.

“사, 살려···.”

촤악!

장문호의 목이 둥실 떠올랐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퉁.

서천량은 장문호의 수급에 미련을 두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남경에 진입하면 양민들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라! 전군! 다음 목적지로 진군하라!”

“진군하라!”

둥! 둥! 둥!

십만 대군이 남경 성곽을 넘어 황궁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

황궁은 난리 통이었다.

“폐하! 반란군이 남경에 침입했나이다!”

“폐하! 성곽이 위험합니다. 지금 수도군이 막아서고 있사오나···.”

“폐하. 성곽이 뚫렸다 하옵니다!”

“······.”

내관들이 반란군의 정보를 소리 높여 전하고 있었지만, 황제의 눈은 흐릿했다. 조금 전 복용한 아편이 그의 피를 타고 온 몸을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뭐?”

“!”

“!”

환관의 수장은 자주 있는 일이라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폐하께서 노곤하신 모양이다. 어서 보주를 가져다드려라.”

“예이.”

“남은 희망은 태자 전하다. 어서 태자 전하께 고해야···.”

***

태자의 거처에도 황궁 내관들과 황궁 수비군 대장이 도착해 있었다.

“전하! 피하셔야 합니다.”

“저희가 길을 뚫을 것이니···.”

“누구냐! 누가 난을 일으켰느냐!”

‘조금만 더 있었으면 황위가 내게 떨어질 것인데!’

황제가 붕어(崩御)하기도 전에 난이 일어날 줄을 어찌 알았을까.

“···적군의 깃발에 용(龍)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또한 장왕(長王)이라 수놓아진 깃발도 있다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장왕의 깃발을 본 금의위가 이 소식을 황궁으로 전한 것이다.

“장왕(長王)? 그렇다면!!”

“예. 실종되신 이(二) 왕야가 이번 난의 주동자로 보입니다.”

이(二) 왕야가 자신의 친부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하.”

‘죽었다더니, 살아 계셨소?’

최소한 자신이 죽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폐하를 대신해 황궁을 지킬 것이다!”

“전하!”

“나는 황제 폐하의 적장자다! 내가 황태자란 말이다!”

‘마교가 알고 있었으니 왕야도 내가 아들임을 알고 있을 것이야. 난 죽지 않는다.’

황위가 조금 멀어지긴 했지만, 결국은 자신에게 떨어질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가 둘째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황실의 권위를 끝까지 지킬 것이다!”

“···전하.”

***

그 사이 서천량 대장군의 군세가 황궁을 포위하고 있었다.

“형제를 내치고 황위를 도둑질한 가짜 황제를 끌어내려라!”

““황제를 끌어내려라!!””

“하늘에게 버림 받은 가짜 황제를 끌어내려라!”

““황제를 끌어내려라!!””

“폐제(廢帝)가 살아 돌아왔도다! 가짜 황제를 끌어내려라!”

““황제를 끌어내려라!!””

“나라를 혼란케 한 가짜 황제를 끌어내려라!”

““황제를 끌어내려라!!””

변방 대군의 농성이 시작되었다. 당장 황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끌어내릴 수도 있지만, 이는 서천량 대장군의 불충을 증명하기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이 대군의 종착역이었다.

“하늘이 나라의 폐단(弊端)을 벌하고 있사옵니다!”

“진짜 황제가 돌아왔소이다!”

농성에서 병사들만 소리를 높인 것은 아니었다. 이미 포섭된 황궁 대신들과 관료들이 병사들과 같이 좌정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덕분에 늦은 밤부터 남경의 백성들까지 황궁 근방에서 이들의 농성을 들을 수 있었다.

“진짜 폐제(廢帝)가 되려나봐.”

“예언비의 내용에 하나도 틀림이 없었어!”

진휘평이 나설 차례였다.

“나 장왕 진휘평이 황제를 대면할 것이다!!”

“함께 하겠나이다! 왕야!”

“저희도 황제의 잘못을 따져 물을 것입니다!”

진휘평이 나서자 황궁의 관료들이 분분히 일어났다. 그리고 옥비연과 흑림방이 나섰다.

“호위를 맡겨주십시오.”

“···호충이 보냈더냐?”

“예! 하오문의 옥비연. 문주님의 명으로 왕야를 돕겠습니다.”

진휘평 뒤에 서 있던 송 영감이 옥비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주 호충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주님이 보이지 않는구려.”

“호충이는 어디가고?”

진휘평도 아들 호충을 찾았지만, 호충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바로 합류하실 것입니다.”

“···어련히 알아서 오겠지. 서 대장군. 부탁하네.”

“충! 문을 열겠나이다! 부숴라!”

서천량의 명에 병사들이 공성추를 밀고 왔다.

쿵!

“다시!”

쿵!

몇 번의 충돌 끝에 황궁 정문이 박살났다.

서천량 대장군이 황궁 정문을 부수자 옥비연이 나섰다.

“먼저 나서겠나이다. 허락해주소서.”

“혼자는 위험하다. 송 노사. 같이 길을 열어주십시오.”

진휘평의 부탁에 송 영감이 비연 옆으로 갔다.

“그리하지요.”

“저도 나서겠사와요.”

송 영감과 함께 진휘평 곁에 있던 화진이 나섰지만, 진휘평은 고개를 저었다.

“너는 따로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아직은 나서지 마라. 내 곁에 있어라.”

“···예. 왕야.”

옥비연은 송 영감을 비롯한 하오문의 고수들을 이끌고 조심스럽게 정문을 넘었고, 그 안에 두 인영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안에서 열어주려고 했더니···. 아까운 문만 작살났네.”

“문주님!”

호충이 부서진 황궁 정문 뒤에 있었던 것이다.

송 영감은 반가운 마음에 웃음이 먼저 터졌다.

“먼저 들어가 기다리셨습니다. 그려. 허허허.”

“가가. 늦으셨사와요.”

“조금 늦긴 했지.”

“그러니 제가 빨리 오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호충 옆에서 말하는 이는 이제 하오문에 정착한 신투 흠양신이었다.

“야. 네가 늦어서 이렇게 됐거든?”

“···그게 쉽게 찾아지는 물건입니까? 하도 꼭꼭 숨겨놔서 찾는데 한참이나 걸렸단 말입니다. 지키는 놈들도 워낙에 대단해서리···.”

“그거나 내놔봐.”

“옙!”

흠양신은 비단 보자기에 싸인 물건을 호충에게 건넸고, 호충은 물건을 두 손으로 받아 진휘평 앞으로 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물건을 받쳐 들었다.

“진정한 황제께 옥새를 바치나이다!!”

“!!”

“!!”

옥새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고 황제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옥새를 얻었다는 것은 곧 황위를 얻은 것과 같은 의미가 있었다. 호충은 흠양신을 적제적소에 활용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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