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 신위
***
황궁 신하들은 옥새의 등장에 역모가 절반 이상 끝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뜻이 장왕 전하를 향하고 있나이다!”
“옥새! 옥새가 벌써 품에 들어오다니!”
진휘평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허허. 네가 또 나를 놀라게 하는 구나.”
“아버지. 아들 팔 떨어집니다.”
“하하하.”
진휘평은 옥새를 받아 다가온 화진에게 넘겼다.
“잘 들고 있거라. 아가.”
“···예,”
“가자. 이제 남은 것은 형님과의 대면일 것이니···.”
호충이 진휘평 곁에 섰고, 나머지 하오문의 고수들이 둘을 경호하며 황궁을 가로질렀다.
수시로 황군이 나타나 공격을 가했지만, 흑림방 고수들이 나서서 막아냈다. 이들이 충돌하며 숫자가 줄어들면 어느새 다시 나타난 다른 흑림방 고수들이 숫자를 채워주었다.
“멈추시오!”
내공이 가득실린 음성에 호충이 나섰다.
“먼저 가십시오. 녀석을 치우고 다시 합류하겠습니다.”
“내공이 상당하군. 분명 절정을 넘어선 금의위일 것이다.”
지난 시간 진휘평도 무공을 익혔기에 금의위 위사의 무위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조심하겠습니다. 아버지.”
“네가 오지 않으면 나 또한 황제를 대면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죽으면 황제가 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서두르지요.”
호충이 금의위 고수 앞에 섰고, 금의위 고수는 호충을 경시할 수 없어 황궁의 내밀한 곳으로 들어가는 진휘평 일행을 막아설 수 없었다.
“···중문 금의장 강포. 너를 죽이고 나머지도 역도들을 모두 도륙을 낼 것이다.”
챠앙!
호충은 자신의 신분을 밝힌 상대를 위해 친절하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장왕(長王)의 맏아들 진호충이오.”
“······.”
“내가 폐하의 형제이신 진 왕야의 아들이라 밝혔거늘 금의장은 어찌 예를 갖추지 않소?”
“···너희는 폐하의 뜻에 반하는 역도일 뿐이로다!”
“···어디보자.”
호충은 주변을 둘러보며 은신한 금의위의 규모를 가늠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흑림방으로 충분하겠어. 왕호!”
탁.
은신하고 있던 왕호가 호충 곁으로 내려섰다.
“부르셨습니까!”
“내가 나서기엔 좀 약하다. 네가 얘들 치워.”
“충!”
호충은 왕호에게 금의위를 맡기고 훌쩍 뛰어 일행을 뒤 쫓았다.
남은 왕호는 목과 어깨를 돌리며 금의장 강포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청소 시작!”
파박. 타다닥.
은신했던 흑림방의 고수들이 전각 구석구석으로 쇄도했다. 은신했던 금의위는 저마다 은신을 풀고 나와 흑림방을 맞이했고, 동시에 왕호는 강포를 향해 뛰어들었다.
“하앗!”
“차앗!”
강맹하고 곧은 검초가 왕호를 향해 날아들었고, 왕호는 손목의 철환과 보법으로 이를 막아냈다.
채쟁! 챙!
샤아악.
왕호는 거리를 좁히려 더욱 파고들었고, 강포는 검의 사정거리를 유지하며 검초를 날리고 있었다.
타닥.
어느 순간 왕호가 뒤로 훌쩍 뛰며 주먹을 날렸다.
쑤악.
지룡(地龍)이라 부를만한 작은 용이 강포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
강포는 상대가 권기를 날릴 정도의 고수라는 것을 몰랐지만, 부시불식간에 검면에 기를 둘러 튕겨내고 있었다.
투앙!
덕분에 작은 지룡은 강포를 비껴갔지만, 그는 왕호의 사정거리에 들어와 있었다. 뒤로 빠지며 권기로 시선을 끌고 다시 앞으로 몸을 옮긴 것이다.
[천룡출두.]
쿵. 두두두두.
대성한 대월천룡권의 첫 초식은 과거와 많이 달랐다. 겉보기엔 화려함이 사라지고 파괴력도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흡자결을 운용하며 상대를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힘을 조절하여 최소한의 내공을 소모할 줄도 알았다.
투두둥.
덕분에 강포는 천룡출두를 피하지 못하고 고(柧)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쿠헉.”
몸 여기저기 뼈가 부러진 강포는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었다.
풀썩.
왕호는 흑림방이 상대하는 다른 금위위를 향해 몸을 날렸다.
타앗!
보통 때라면 실력 향상을 위해 그대로 두었겠지만, 오늘은 임무가 우선이었다.
“빨리 청소를 끝내라! 다시 합류할 것이다!”
***
호충이 아버지 진휘평 곁에 내려섰다.
탓.
“벌써?”
“황궁의 최고수라 부를 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럼 누가 상대하고 있느냐?”
“아버지께서 남경으로 들어오시고 부터 아버지 주변에서 은신했던 왕호라는 놈입니다.”
“왕호. 이름이 기억나는구나. 송 노사께 들었다. 내 이목을 피해 은신해 있었던 모양이로고···.”
“어서 가시지요.”
진휘평은 믿음직한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황제가 머무는 내전을 향해 나아갔다.
문을 통과해 나갈 때마다 새로운 적들이 길을 막아섰다.
“동문 금의장 악승태다! 너희는 여기까지다!”
“이번엔 송 노사께 부탁드리지요.”
아버지가 스승으로 높여 부르는 송 영감이다. 이젠 호충도 함부로 말을 놓을 수 없었다.
“그리하지요.”
다음 문에도 어김없이 금의위가 나타났다.
“서문 금의장 단포고다! 역도를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다!”
“비연. 가라!”
“옙!”
다음 문도 마찬가지였다.
“북문 금의장 주사등!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흠···.”
호충이 고민하며 낸 소리에 흠양신이 나섰다.
“저요? 저 나가면 됩니까?”
“···너 부른 거 아니거든? 왕호!”
중문에서 금의위를 처리하고 돌아온 왕호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흑림방은 저들을 치워라!”
“······.”
흠양신이 풀이 죽어있자 호충이 달래주며 말했다.
“야. 너는 벌써 옥새를 챙겨왔잖아. 그 공로가 얼마나 큰데 너를 사지로 내보내겠냐?”
“헤헤.”
“네 무력이 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네가 저 놈 상대하면 너 뒈진다고. 엉?”
“······.”
중원 각 지역에 가족을 만들어둔 녀석은 가족들 챙기느라 신투의 고급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가족들에게 오가느라 경공술과 은신술만 날로 늘어나는 중이었다. 덕분에 도방을 맡았으면서도 아직 방주 직함도 얻지 못하고 있었다.
“···맨날 나만 갖고 그래.”
“넌 닥치고 있어. 아버지. 가시지요.”
“오냐. 어려움이 많을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숫자가 적구나.”
“아마도 황제 곁에 모두 모여 있겠지요.”
“······.”
진휘평은 작은 염려가 들었지만, 곧 보화전 근방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과거 시험을 치르거나 황궁의 행사가 열리는 곳이기에 상당히 넓었고, 군사들이 집결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저 놈들은···.”
보화전이 눈앞이었는데 황궁 무사들 몇이 앞을 또 막아섰다.
이번엔 호충이 나설 차례였다.
“여기서 기다리시지요. 녀석들을 치우고 문을 넘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녀석들의 경지를 짐작할 수 없구나.”
진휘평의 경지로 알아볼 수 없는 무인들이었다.
“···신화경 말미의 무인입니다. 이들이 셋이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
“일행과 함께 계십시오. 위험합니다.”
호충이 상대했던 마교 부교주와 같은 경지의 무인이 셋이었다. 호충은 얼른 앞으로 나섰다.
셋은 희끗한 머리칼을 단정하게 틀어 묶었고, 저마다 금실로 수놓아진 금의위 복장을 입고 있었다.
“장왕 전하와 일행은 보화전에 들 수 없소.”
“우리가 용납지 않으리다.”
“폐하의 재가 없이는 어림도 없는 일.”
이들은 황제의 호위를 맡고 있던 황궁 수호 신위였다.
“······.”
호충은 수호신위가 위협하지 않고 있음에도 기감을 활짝 열고 긴장했다.
‘나머지 하나가 없다!’
각자 동서남북(東西南北)을 상징하는 황궁 수호 신위였다. 눈앞에 드러난 이는 셋. 하나가 비어 있었다.
“!”
‘거기냐!’
호충은 순식간에 품에 손을 가져가 열두 개의 비도를 뽑아 날렸다.
슈슈슈슉.
호충의 비도가 날아가는 방향은 바로 자신이 지나친 곳이었고, 진휘평이 서있는 몇 발자국 앞의 돌바닥이었다. 방금 호충이 걸어서 지나간 길이었지만, 미세한 흔적이 그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노리고 있었어!’
쿠가가각.
호충의 비도는 마치 뱀처럼 날아가 돌바닥을 파고들었다.
우드드드.
열두 개의 비도가 자루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박힌 곳에선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광경에 세 수호신위가 얼굴을 굳혔다.
“······.”
“······.”
“···북(北)의 은신조차 통하지 않는 상대였던가.”
“···황가의 피를 이은 전하를 암살하려 했느냐? 황실의 호위인 너희가 감히?”
“이것이 역모를 중단시키는 최선이었다.”
스르릉.
“최선이 통하지 않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스릉.
“아직 늦지 않았거든.”
스르릉.
정면 돌파가 남아 있었다.
파앗. 탓. 타닥.
신화경의 무인 셋이 호충을 향해 날았고, 호충은 품에서 두 자루의 폭이 얇은 검을 뽑아 들었다.
“황제를 상징하는 색은···.”
호충은 화산의 내공심법을 일으켰다.
후우웅.
“자색이라 하였지.”
두 자루 회칼에 자하강기(紫霞鋼氣)가 덧씌워졌다. 화산의 인물들이 봤다면 경기를 일으킬 장면이었다. 화산의 매화검이 아닌 엉뚱한 회칼에 자하강기가 맺혔기 때문이다.
“!!”
“!!”
치이익.
수호 신위들이 급하게 신형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탓! 타악!
세 수호 신위도 신화경의 무인이었기에 호충이 일으킨 자하강기의 강맹한 힘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진한 보랏빛으로 빛나는 강기가 당장이라도 자신들의 몸을 찢어버릴 것 같았다.
“화산의 자하신공(紫霞神功)!!”
수호 신위 중 하나가 호충이 일으킨 내공의 근원을 정확히 알아보고 있었다.
“···오. 황실에서 자하신공을 숨겨두었더냐? 헌데 너희는 왜 익히지 않았지?”
“자하신공은 폐하와 폐하의 직계만을 위한 무공이노라!”
호충의 말대로 자색은 황제를 위한 색이었다. 덕분에 자색을 띄는 자하신공을 입수해 황제와 황태자가 익힐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지만, 자하신공의 난해함으로 인해 그 어떤 황제와 태자도 이를 익힌 역사가 없었다.
“곧 그리 될 것이다. 내가 바로 전하의 맏아들이지 않은가.”
“······.”
아버지가 황위에 오르면 자신은 태자가 되니 얼마든지 익힐 수 있었다.
“너희는 익히지도 못하는 남의 무공을 제 것으로 여기는가? 황궁은 오직 황궁의 것만 가져야 한다. 나는 무림의 것을 무림에게 돌려줄 것이다.”
물론 자하신공은 이미 돌려준 다음이다. 호충이 의미하는 것은 황궁이 지금까지 무림으로부터 압수한 상승 무공을 의미했다. 자하신공을 보유했다면 그 외의 다른 상승 무공도 상당할 것이지 않겠는가.
“···화산의 자하신공을 익힌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나는 이미 화산파의 허락을 얻었으니 논외로 치자꾸나. 내가 화산의 명예 장문인이거든.”
“!”
호충은 뒤에서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먼저 움직였다.
[자하개화(紫霞開花)]
호충의 양손에 들린 회칼이 손바닥 위에서 회전하기 시작했고, 곧 거대한 보라색 꽃이 펼쳐졌다.
파바바박.
“위험! 피해!”
자색 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하자 수호 신위가 저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콰광. 쾅. 콰과광.
자하의 꽃잎이 떨어진 돌바닥이 터져나가며 그 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유효한 공격은 하나도 없었다.
‘수호신위의 이름값은 하는 군.’
호충은 자하개화를 거두고 회칼을 높이 들었다가 양쪽으로 펼쳤다.
[자우선형(紫雨扇形)]
촤라락.
마치 부채처럼 펼쳐진 자하강기가 생겨났고, 호충이 회칼을 떨치자 강기 부채가 빛살처럼 날아갔다.
“흡!”
가까스로 강기의 부채를 피해내는 수호 신위였지만···.
‘그 부채는 피한다고 끝이 아니란다···.’
수호 신위를 비껴가던 강기의 부채가 그 순간 분열했다.
파라라락.
마치 자색(紫)의 비(雨)가 내리는 것 같았다.
“!”
지근거리에서 많은 숫자로 분열한 자하강기를 막아낼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퍼버버벅.
수호 신위 하나가 제대로 자우선형(紫雨扇形)에 걸려들었다. 자우선형의 비에 온몸이 흠뻑 젖은 그는 붉은 피를 흘리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퉁.
“동(東)!”
“북(北)과 동(東)이 끝났으니 남(南)과 서(西)가 남았구나.”
“······.”
“······.”
남은 수호 신위 둘이 눈을 마주치더니 동시에 호충에게 쇄도했다.
[자하신검(紫霞神劍)]
호충의 등에서 뭉클뭉클 솟아난 자색 기운이 손에 들린 두 개의 회칼에 집중되고 있었다.
샤라락. 피잇. 피잇.
어느 순간 호충의 손에서 모습을 감춘 회칼이었다. 회칼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우뚝.
“······.”
“······.”
하지만 달려 나가던 자세 그대로 멈춘 두 수호 신위를 보면 회칼이 어디로 갔는지는 명확했다.
호충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결전은 끝났기 때문이다.
‘현경의 고수 넷을 상대하는 내가 화경의 고수 넷에게 어려움을 겪을까.’
쿵. 쿵.
등 뒤에서 두 수호 신위의 신형이 꼬꾸라지고 있었다.
“이제 보화전 문을 열지요.”
“···가히 신공이라 불리기에 마땅하도다.”
“화산의 자하신공이옵니다. 나중에 화산파에 현판이라도 하나 내려주십시오.”
“허허. 꼭 그리하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