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8화 (218/232)

황태자 진호충

***

수호 신위를 넘어 보화전 대문을 열자 장관이 펼쳐졌다.

“전군! 역도를 막아서라!”

예상대로 황궁을 지키는 군사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다. 창과 방패가 가득 늘어서 있었고, 보화전 맨 위에는 태자가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추웅!!””

쿵! 쿵! 쿵!

황군이 동시에 방패를 내리찍으며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휘평과 호충은 느긋했다. 이미 십만 대군이 황궁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고, 뒤를 따르는 서천량 대장군의 군세도 충분했다.

“···녀석은 아직 제 친모를 모르고 있느냐?”

진휘평의 물음에 호충이 답을 내놨다.

“알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마교와 접촉했기 때문이지요. 당시 녀석이 방문한 장원에 마교의 교도인 친모가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지금 산서성 신강 인근 가옥에 감금되어 있지만, 마교의 부교주가 어제 제 손에 죽었기에 이를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또한 하오문에서 각별히 주시하고 있으니 안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그런데 녀석이 왜 저러고 있느냐?”

아버지인 자신이 왔음에도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저러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마주할 때마다 느끼지만, 녀석의 속은 시커멓습니다.”

“허. 확실히 후계로는 부족하구나.”

“말이라도 걸어 보십시오. 만약 녀석의 출신성분을 공표하면 황군의 경계를 풀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피를 덜 흘리겠군.”

진휘평은 호충과 논의를 끝내고 대신들과 함께 나섰다.

“나 장왕 진휘평은 형님 황제를 만나러 왔노라! 너희는 어찌하여 황실의 종친을 막아서는가!”

“장왕 전하는 이미 돌아가셨소!”

“과거 나를 따르던 신하들과 변방의 서천량 대장군이 내가 장왕임을 알아봤다. 어찌하여 내가 죽었다고 하는가!”

“······.”

“태자 진패!”

“···말씀하시오!”

“네 어미와 내가 너를 낳았을 때 지은 이름은 진건이었노라! 어찌하여 내 아들인 네가 황제의 아들인 태자가 되었느냐!”

“!!”

진휘평의 외침에 황궁 군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형님 황제는 후사조차 남기지 못했구나! 이 또한 하늘의 뜻일 것이다!!”

진휘평의 말에 태자 근처에 모여 있던 신하들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했다. 역모에 관한 정보를 듣자마자 황궁으로 입조해 태자전하 곁을 지키던 이들이었다.

“···저 말이 참인가?”

“정말 태자 전하가 왕야의 아드님이시란 말인가.”

“하지만 분명 태자 전하는 황제폐하와 황후마마의 손이실 것인데···.”

이들의 의문은 태자의 행동으로 풀 수 있었다.

털썩.

태자 진패는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장왕 전하를 뵈옵니다.”

“!!!”

“!!!”

“!!!”

그리곤 곧장 황군을 옆으로 물리라는 명을 내렸다.

“전군! 장왕 전하의 길을 열어라! 진실한 황제께서 오셨노라!!!”

“딸꾹!”

“꺼헉.”

황제파 신하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는 중에 황군은 어수선하게 옆으로 길을 트고 있었다.

“모두 장왕 전하께 예를 다하라!”

““충!””

이어진 명령에 황군이 창과 방패를 내려놓고 모두 무릎을 꿇었다. 황제의 뜻은 모두 태자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자 본인 또한 보화전 계단을 내려와 진휘평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늘에서야 진정한 부친을 뵈옵니다.”

“······네 친모는 만났느냐?”

“극악무도한 마교의 무리가 어미를 인질로 잡아 구하려 했으나, 그만···. 녀석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흔적을 지운다며 불에 태웠나이다. 하여 어머니의 유골조차 수습하지 못하였으니, 불효자를 죽여주시옵소서.”

마교에 친모를 지우라 명했기에 죽었음을 확신하고 한 말이었다.

“······허.”

진휘평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태자의 언행에 놀라고 있었다.

“황제파의 신하들을 모으기 위해 군을 동원했습니다. 저들을 일거에 처단하시고 황위에 오르소서.”

“······.”

진휘평이 씁쓸한 감정에 고개를 젓는 동안 호충의 전음이 전해졌다.

[저 녀석은 나중 일입니다. 피를 보고 황위를 찬탈하기보다 황제를 만나 양위 받으시는 것이 최선입니다. 황제파 신하들은 그대로 두십시오. 저들이 지은 죄에 따라 처벌받아야지 황제에게 충성했다고 제거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옳다. 네가 진정한 내 후계다.’

아들이 둘이라 얼마나 다행이던가. 진휘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형님 황제를 뵐 것이다! 그대들도 따르라!”

“허읍!”

“이유 없이 그대들을 적대하지 않을 것이다. 형님 황제께서도 나를 따르던 신하들에게 나를 위해 일할 기회를 주었노라. 너희도 마찬가지다.”

‘살았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는데, 태자만은 불만이 가득했다.

‘저 놈들이 살아남으면 난 어쩌란 말이야!’

당장 죽여 달라고 했건만 돌아온 결과는 자신의 뜻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장왕 전하! 대업을 이루자면 곁가지를 쳐내야 하옵니다.”

“···네가 나설 때가 아니다!”

태자의 말을 일축한 진휘평은 본래 자신을 따르던 신하들과 황제파의 신하들까지 대동해 보화전 안으로 들어갔다.

“······.”

‘제길. 내가 황군을 물렸지 않느냐!’

자신의 공로를 전혀 고마워하는 것 같지 않았기에 태자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또한 내가 당신의 아들이지 않소!’

호충은 신하들 틈에 끼어 모습을 감추고 보화전으로 들어갔고, 태자는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했다.

***

불이 밝혀진 보화전 안에는 황제가 용상에 앉아 들어오는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제 곁의 환관들은 깊이 허리를 숙여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

“옥체가 크게 상하셨다고 들었는데, 예상보다 멀쩡하시구려.”

볼은 움푹 들어가고 살집도 없었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모든 것을 포기한 눈빛이었다. 정신이 돌아오며 역도들이 쳐들어 왔음을 이해한 것이다. 또한 희망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네가 살아 있었구나. 죽은 줄로만 알았다.”

“형님이 나를 잡지 못하셨는데 어찌 죽었다고 여기셨소?”

진휘평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어야 했다.

“···네가 내 아들로 환생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

“녀석을 처음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 것이다. 어찌나 너희 내외를 닮았는지···.”

“······.”

“녀석은 커가면서 더욱 너와 비슷해졌다. 녀석을 볼 때마다 네가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황제는 죽은 동생이 끝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너를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또 마셨지만 취기에서 깨어나면 항상 태자의 얼굴을 한 네가 보였다. 너는 미웠지만, 태자는 미워할 수가 없었다.”

술로 견딜 수 없어 결국 아편까지 손을 덴 황제였다.

“···내 명은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다. 저승사자가 나를 부르고 있다.”

“허···.”

“지금 내 명을 붙잡아 주는 것은···.”

황제는 자신이 손에 보주를 들어올렸다.

“아들이 가져다 준 이 녀석 때문이지. 태자가 너를 닮기는 했지만 아비를 향한 효성은 갸륵하지 않으냐?”

“······.”

호충은 신하들 틈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야광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째서···.’

태자에게 야광주를 멀리하라 했더니 황제를 죽이려고 가져다 준 것이다. 하지만 호충이 야광주를 노려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방사선을 상징하는 녹색 빛을 내뿜어야 할 야광주가 오묘한 푸른빛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빛에서 화산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영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진시황릉에 진품이 섞여 있었구나!’

수많은 야광주를 수집한 고대의 황제였다. 그 중에 진품 야광주 하나가 없었겠는가. 황제가 손에 쥐고 있는 보주는 진짜 보주였다.

“나는 하늘의 뜻대로 병을 얻었다. 평아. 원하는 것을 말해 보아라. 보위를 넘겨주면 되겠느냐?”

“······.”

“다만 패는 살려다오. 녀석은 아무런 죄도 없지 않으냐.”

“······.”

진휘평은 차마 형에게 태자 진패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형님은 밖에서 있었던 일을 듣지 못했구나!’

환관들이 황제에게 보화전 밖의 상황을 전하지 않은 것이다.

“···황위를 이양해주시오. 태자는 평안히 살게 해드리겠소.”

“오냐. 가져가라. 이걸로 됐다. ···다 됐어.”

황제는 손에 들고 있던 보주를 내려놓고 동생이 서 있는 아래로 내려갔다.

비틀.

깡마른 그의 다리는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동생에게 다가온 황제가 동생의 손을 잡아 위로 이끌었다.

“황상. 이제 본래 자리를 되찾으시오. 선황제 폐하의 뜻을 저버리고 동생에게 빼앗은 황위를 여태 내 것인 양 누리고 살았소.”

“······.”

진휘평은 뚜벅뚜벅 용상을 향해 나아갔고, 곧 용상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 모습을 본 황제가 가장 먼저 절을 올렸다.

“만세만세만만세. 황제 폐하! 부디 태평성대를 이루소서. 또한 제 절을 받으시고 패를 살려주시옵소서.”

“······.”

그는 끝까지 아들이 살아남길 바라며 자신의 몸을 숙인 것이다.

“···살려드린다 하지 않았소!”

“이제···. 아무런···. 여한이···. 없나이다······.”

그는 마지막 절을 올린 것이 끝인 양 스르륵 눈을 감고 모로 쓰러졌다.

풀썩.

“!!”

“!!”

“!!”

“···아.”

호충이 다가가 진맥하고 입을 열었다.

“···선황제께서 승하 하셨습니다.”

폐위되지 않고 스스로 황권을 이양하였기에 폐제가 아닌 선황제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형님은 황제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리고 가시는 구려. 나를 내 쫓고 부인을 죽게 만들고···. 여태 많은 죄를 지었으면서 단 하나의 벌도 받지 않고 가시는 구려. 내 화를 어찌 그리 피해가시었소.”

형은 자신에게 험한 소리 한번 듣지 않고 죽어버린 것이다.

진휘평은 어느새 용상에서 내려와 선황제의 주검에 다가와 있었다.

“내 원망 한마디라도 들어주셨어야 하지 않소! 형님은 마지막까지 이기적이오! 어찌 죽을 때까지 저만 생각하오! 허어엉.”

원망과 슬픔이 뒤섞인 울음소리가 보화전을 가득 채웠다.

“흐흑. 게다가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시었소? 대체 형님의 아들을 어찌 찾으란 말이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게 뭐요! 허어어엉.”

태자 진패가 자신의 아들이었으니 진짜 형님의 아들을 찾아주어야 했다. 하지만 황제의 진짜 아들이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은 이곳에 남아있지 않았다.

호충은 아버지 진휘평의 슬픔을 달래주려고 나섰다.

“···폐하. 제가 찾아보겠나이다. 중원 전부를 뒤져서라도 생사를 알아내겠습니다. 살아 있다면 꼭 황궁으로 데려오겠습니다.”

“···찾을 수 있겠느냐?”

“꼭 찾겠습니다.”

“···너만 믿겠노라.”

“선황제 폐하의 유해를 모셔라. 곧 국상이 치러질 것이다.”

아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슬픔에서 벗어난 진휘평은 형님이 그토록 아꼈던 태자를 떠올렸다. 눈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기만하던 둘째 아들 진건이었다.

“태자 진패를 들라 해라!”

황제가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진패는 태자 신분이었다.

태자는 선황제가 승하하고 새로이 황위에 오른 황제 폐하께서 안에서 부른다는 말에 희색이 만연하여 보화전으로 들어섰다.

“만세만세만만세! 황제 폐하의 즉위를 경하 드리옵니다! 누대에 영광을 누리시고 만수무강하소서!”

“······.”

‘분명 형님의 죽음을 전했음에도 녀석은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는구나. 형님이 크게 잘못 키웠도다.’

진휘평은 진패의 인사를 받지 않고 신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태자 진패를 황태자의 위에서 폐하고 다시 황태자를 정하겠노라. 대소신료에게 다른 뜻이 있다면 듣겠노라.”

황제파의 신료들과 본래 진휘평을 따르던 신료들이 동시에 답했다.

““뜻대로 하소서.””

누가 감히 새로운 황제의 뜻에 거역할 수 있겠는가. 서슬 퍼런 군사들이 대전에 들어와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진패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진패가 아닌 진건. 나는 진건으로 다시 황태자가 될 것이다.’

진휘평은 앉은 자리에서 붓을 들어 일필휘지로 교지를 작성하고 화진을 불렀다.

“태자비는 옥새를 가져오도록.”

화진은 아직 혼례도 올리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태자비로 확정해 부르는 황제의 언행에 얼굴을 붉히며 걸음을 옮겼다.

“···예. 폐하.”

이때 진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태, 태자비?”

태자비는 자신의 부인인 희비였다. 하지만 지금 비단 주머니를 들고 사뿐히 계단을 오르는 이는 난생 처음 보는 여인이 아닌가.

“와아.”

진패의 일그러진 얼굴이 다시 환하게 변했다. 화진의 빼어난 용모를 확인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다른 태자비를 준비해두셨나? 나야 고맙지. 애도 낳지 못하는 희비야 내치면 그만.’

그가 아이를 갖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 마교가 그에게 주입한 혈기 탓이었지 모용희 탓이 아니었다.

쾅. 쾅.

진휘평은 옥새를 날인한 교지를 종사현 대학사에게 전했고, 종사현은 교지를 신하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었다.

“황태자 진패를 황태자 위에서 폐위하고 선황후, 폐태자비와 함께 별궁에 유폐한다!”

“헙! 유, 유폐?”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진패가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기 전에 대학사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엔 다른 교지였다.

“황제 폐하의 맏아들인 일 황자 진호충을 황태자로 책봉하며 호국충정공신무왕의 칭호를 하사 하노라. 황태자 진호충은 나와서 황제 폐하의 교지를 받으라!”

“마, 맏아들? 진호충? 내 이름이 진건이 아니라 진호충이었나?”

진패의 어처구니없는 착각은 진호충의 등장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일 황자 진호충이 폐하의 교지를 받드나이다! 만세만세만만세!”

호충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어 종사현 대학사로부터 교지를 받았다.

“저 놈은 누구야!”

호충이 교지를 받고 일어서서 진패를 돌아봤다.

“어전에서 누가 폐하의 허락 없이 입을 열라고 하더냐. 폐하와 대소신료가 함께하는 곳이다!”

“···너, 너는!”

자신과 너무도 닮은 얼굴.

단 한 번 봤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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