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씨 가문
***
하지만 호충은 마교의 교주를 향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소야에게 말했다.
“소야. 전에 네게 칼을 던져 상하게 했다. 미안하다. 너는 마한로와의 오랜 친분으로 나섰는데 내가 못된 짓을 했구나.”
“···뭐. 사과를 하시면 받기야 하겠지만···.”
소야는 호충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상처가 덧나지는 않았더냐?”
“···의원에게 보내주셔서 잘 나았습니다.”
칼에 맞은 흔적이 지워지지 않았지만, 그 정도 흔적이야 흑패에게 평범한 일에 속했다. 소야의 몸엔 그 외에도 많은 흉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는 선황제 폐하의 손이다.”
“솔직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믿어지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니까.”
부스럭.
마교의 교주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초옥의 문을 기어 나오고 있었다.
“네 놈! 네 놈을 죽이고 말 것이다. 끄으윽.”
호충은 그제야 마교의 교주를 돌아봤다. 내공은 여전하지만, 몸은 폐인에 가까웠다. 머리칼은 숭숭빠졌고, 피부에선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충의 걸음이 교주를 향했지만. 무엇을 보았는지 얼른 멈춰서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
그의 품에서 새어나오는 야광주의 빛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가짜가 아니라 방사선을 뿜어내는 진짜(?) 야광주였다.
‘아직도 저걸 품에 넣고 있으니 저런 꼴이 되는 게지.’
교주가 두려운 것은 교주의 무공 때문이 아니라 바로 야광주 때문이었다.
“···노인장.”
“말 하시게.”
“손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방법을 알려드리리다.”
“그게 뭔가?”
“손자가 품고 있는 야광주를 멀리 버리십시오.”
본래 다른 대가를 받아내고 알려줄 생각이었지만, 방사선은 잠시도 맞고 싶지 않았다.
“···야광주는 정신을 맑게 하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들었네.”
“죄송하지만 저 야광주는 진품이 아니라 오직 독만 뿜어냅니다. 근처에 있어도 위험하니 최대한 멀리 아무도 없는 곳에 버리셔야 합니다.”
“!!”
“손자의 건강이 악화된 것은 바로 저 야광주 때문입니다.”
휘리릭.
연만호의 손이 뻗어지자 야광주가 저절로 교주의 품에서 딸려 나왔고, 멀리 날아가기 시작했다. 연만호는 야광주가 시야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야 손을 내렸다.
스윽.
“하. 고작 저것 때문이었다니···.”
“······.”
‘허공섭물의 기예가 아주 자연스럽다. 노인장에게 이기어검은 아무것도 아니겠어.’
호충은 야광주가 사라지고 나서 교주 곁으로 걸어갔다.
“마교 교주. 연소문. 이제야 우리가 대면하는구나. 얼마나 너를 만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끄으으. 네 놈. 네 놈!”
“내가 준 야광주를 보주랍시고 품에 넣고 있었느냐?”
“···끄윽.”
야광주를 한 시도 떼지 않고 있었고, 교단을 탈출하는 그 순간까지도 품에 넣고 나왔다. 자신의 몸에 생기는 이상이 야광주 때문일 것이라곤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빛을 발하는 구슬이니 야광주는 맞다. 하지만 사람의 몸에 맞지 않을 뿐이지.”
사용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만, 이 시대에 방사선과 방사능으로 할 수 있는 유익한 일은 없었다.
“너는 무림맹 소속이 아니냐? 신강을 지나왔다면 내 전각에 들렀을 것인데···.”
“하하. 네 전각이 어찌 되었나 궁금한가 보구나?”
‘분명 무림맹의 수뇌부나 황궁의 주요 인물이 죽었겠···.’
“네 전각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뭐, 뭐라?”
“제갈가의 기관장치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었으니 지금쯤이면 네가 꾸민 전각을 해체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
호충은 연만호에게 손자가 신강에 준비한 악독한 수를 알려주었다.
“당신 손자가 마교의 전각에 기괴한 함정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누구든 들어가면 화약과 함께 폭사하는 장치였을 것입니다.”
“!!”
호충의 시선이 다시 교주를 향했다.
“그렇지 않느냐? 교주?”
“···화약까지 짐작하고 있었더냐?”
“나라에서 금하는 화약이다. 군부에서 빼돌렸나? 아니면 제조 기술자가 있었나?”
“······.”
교주는 입을 다물고 호충을 노려보기만 했다.
‘네가 입을 다문다고 뭐가 달라질까.’
“내가 왜 왕야를 구출했는지 아느냐?”
호충이 마화평과 장문소를 죽였음을 다시 떠올린 교주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크하악! 너를···. 너를···.”
교주는 손에서 검은 기운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몸은 상했지만 내공은 여전히 그의 몸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속엔 마화평과 장문소, 홍태소 장로를 죽인 흉수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오. 마교의 명왕장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한 마기로다.”
“네 놈 때문에 신교의 대계가···.”
“당연히 나 때문이지. 그럼 누구 때문일까.”
교주는 천마신공의 천마수(天魔手)에 더욱 진하고 검은 기운을 가중시켰고, 연만호는 둘의 충돌을 막으려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간 마교를 적대한 것은 내가 장왕 진휘평의 맏아들 진호충이기 때문이다.”
우뚝.
교주는 끌어올리던 힘을 멈췄고, 호충을 말리기 위해 다가오던 연만호도 걸음을 멈췄다.
‘저, 저놈이 진휘평의 아들이었단 말인가!’
“서안에서 아버지를 만나 사정을 들을 수 있었지. 너는 내 아버지를 이십년 가까이 가두어 두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네놈들 덕분에 생이별을 했고, 어머니는 홀로 나를 낳아 키우다 변을 당하셨으며, 나는 피붙이 하나 없는 진가장에서 모진 천대를 받으며 살았다!! 또한 너는 내 아버지를 통해 동생을 보게 만들었고, 그 동생을 저기 있는 황제의 아들 소야와 바꿔치기 했다!!”
“······.”
“게다가 황궁의 내 동생에게 혈기를 일으키는 약을 먹여 아이도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녀석의 살심을 일으켜 무고한 백성들의 목을 자르고 다니게 만든 것도 네 탓이다! 녀석이 독심만 가득한 이기적인 놈이 된 것도 네 탓이다!! 녀석이 혈육을 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 것도 다 네 놈 탓이란 말이다!”
“······.”
“너는 감금했던 아버지를 잃고서도 욕심을 부렸다. 결국 태자를 통해 다시 일을 꾸며 끝내 황제 폐하를 승하하게 만들었다. 내가 너희 역천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태자를 앞세워 나라를 혼란케 했을 것이다.”
“······.”
“너는 나의 불구대천지 원수다. 내가 마교를 적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그래서 마교의 모든 수작을 분쇄했다. 진가장을 도모하는 일부터 시작해 역모를 꾸민 일까지 모두 내 손으로 처리했다. 부교주 여송의 목을 잘라 보낸 것도 나다! 그리고 오늘 나는 너를 만났다! 어떠냐? 하늘이 내편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느냐? 하늘이 너를 처리하라고 나를 이곳으로 보냈다! 너는 극도로 쇄약 해졌지만, 나는 지고한 경지에 올라 너를 죽일 힘을 얻었다!”
“······.”
연만호가 손자 연소문과 진호충 사이로 들어왔다.
“진 왕야께서 황위에 올랐는가?”
“······.”
호충은 연만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후우. 그렇소. 아버지는 황위를 이양 받으셨고, 나는 태자가 되었소.”
연만호의 눈이 자신의 제자 소야를 향했다.
‘소야와 이 남자가 사촌지간이었구나.’
“또한 천마신교에서 황위를 찬탈해 넘기려했던 진패는 폐위되었습니다. 진패도 아버지의 아들이니 죽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선황제께서 자신의 친아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승하하시어, 아들인 소야를 찾으러 온 것입니다. 그는 황실의 인물. 황궁으로 가야 합니다.”
“소문이는 어쩔 생각인가.”
호충은 얼굴과 팔에 진물이 흐르는 교주를 보고 그의 끝이 멀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노인장. 손자를 살려주길 원하십니까?”
“···이미 그대는 다 얻지 않았는가. 그대의 아비는 황제의 위에 올랐고 그대는 태자의 신분을 얻었지. 하지만 천마신교의 교도들이 비명에 갔고, 신교는 분해되어 버렸네. 게다가 손자는 건강까지 잃지 않았는가.”
“저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말입니까? 노인장의 손자는 방금까지 날 죽이겠다고 마공을 일으켰습니다.”
연만호는 무림인이 무엇을 중시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합당한 대가를 제시했다.
“······태자가 원한을 잊어준다면, 제자들에게 행한 비술을 태자에게 펼쳐주겠네. 제자들은 이 비술을 통해 빠른 성취를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일세.”
“······.”
호충은 소야의 무위를 가늠하곤 고개를 옆으로 돌려 마한로를 보았다. 둘의 성취를 확인해야 비술의 공능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
‘마한로···. 이 녀석은 대체···.’
아까 사과를 할 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그의 경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내공의 유무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갈무리 되어 있었고, 현현한 마한로의 기운은 분명하게 그의 경지를 일러주었다.
‘절정도 화경도 아니다. ···최소 현경. 이 녀석도 현경에 올랐단 말인가? 서안에서 이리로 온 것이 몇 년이나 됐다고···.’
같은 현경끼리 느껴지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깊고 고요한 그의 눈과 태산과 같은 자세는 그의 경지가 화경을 확실히 넘어섰음과 또한 현경에서도 완숙함에 이르렀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작은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마한로는 워낙에 적은 내공을 가진 터라 갈무리할 내공이 거의 없었고, 오직 선심후수의 영향으로 깨달음만 높아진 상태였다.
“신선의 비술이 특별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연씨 가문의 진전이라네. 나는 소야에게 연씨 성을 내리고 후계자로 삼았네.”
호충의 고개가 갸웃했다.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것은 마한로지 소야가 아니었다. 소야의 성취는 아무리 봐도 일류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도였다.
호충의 생각을 알았는지 연만호가 소야를 변호했다.
“가문의 진전은 무공이 전부가 아닐세. 깨달음은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네. 첫째 제자는 늦고, 둘째 제자는 조금 일찍 깨달았을 뿐···.”
“···노인장은 그 비술의 가치가 손자인 교주의 목숨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라는 말입니까?”
“가치를 따지려거든 내가 태자를 적대하지 않고 있음도 계산에 넣어주시게나.”
“······.”
호충은 잠시간의 대치로 그의 무위가 심상치 않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옳은 말씀입니다. 계산은 확실하게 해야죠.”
가치를 입에 올렸으니 할 말이 많았다.
“저는 야광주의 위험성을 먼저 말씀드렸지요. 이에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선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법. 태자는 선덕을 쌓았다 여기시게.”
호충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저를 적대하지 않는 것과 비술을 펼치는 것으로 손자 하나의 목숨을 바꾸신다 하셨는데, 천마신교의 교도들 전부의 목숨은 무엇으로 바꾸실 생각입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호충은 연만호의 오해를 바로잡았다. 애초에 그는 슬퍼할 이유가 없었다.
“다 살았습니다.”
“사, 살아?”
“제가 신강에 남아 있는 천마신교의 교도를 전부다 살렸습니다. 나를 죽이려 나섰던 놈들을 제외한 천마신교의 교도들과 그들의 가족 전부를 살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천마신교의 교인들은 가족들을 위해 천마신교를 모른다 할 것입니다. 그래야 본인과 가족들이 살 테니까요.”
“!”
“태자인 저는 폐하께 전권을 받아 대역죄인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배교한다면 살려준다 했습니다. 그래서 천마신교의 교인들이 배교할 핑계거리를 만들어 주었지요. 가족을 인질로 잡아 두었으니, 그들은 거리낌 없이 천마신교를 배교할 수 있습니다.”
“···아”
“어디 이들의 목숨 값도 계산해 보시지요.”
“······.”
연만호가 무슨 수로 이를 갚을 수 있겠는가.
“본래 이를 계산하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들도 나라의 백성입니다. 대역죄를 지은 천마신교의 죄인은 그대의 손자이자 마교의 교주인 연소문이 전부입니다.”
“······.”
“그러니 나는 교주 연소문을 효시해 만백성에게 본보기를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노인장은 대역죄인을 살려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꼭 죽여야겠는가?”
호충은 자신이 죽음 위험까지 무릅쓰고 교주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전대의 인물인 연만호와 겨루면 승패를 짐작할 수 없다.’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지금 교주를 죽일 수 없는 것이다.
“······시일은 조금 늦어져도 되겠지요.”
연만호는 호충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다시 찾아온다는 말로도 들리기 때문이다.
“어차피 당신의 손자는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교주는 여전히 형형한 붉은 눈을 빛내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쇄약해지고 있었다.
“손자가 죽거든 그의 주검을 황궁으로 보내주십시오. 교주의 죄는 그때 묻겠습니다.”
“···고맙네.”
결국은 살려준다는 뜻이었다. 본래 호충이 이곳에 온 것은 소야를 데려가기 위함이었지, 교주를 잡는다는 것은 예상에 없었다. 어차피 죽음을 앞둔 녀석의 목을 잘라봐야 경지를 추측하기도 어려운 고수와 적대할 일만 생길 것이었다.
‘이게 최선이다. 괜히 교주를 죽이려 해봤자 긁어 부스럼이야.’
“덕분에 저는 처음 폐하께 받은 명을 완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비술은 확실해야 할 겁니다.”
‘그래도 얻을 것은 얻어야지.’
마한로를 단숨에 현경까지 끌어올린 비술이라면 호충 자신에겐 얼마나 대단한 공능을 일으킬지 짐작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저 놈에게 비술을 쓰려 하십니까! 제가 그렇게 부탁드려도 해주지 않으신 가문의 비술입니다! 쿨럭.”
호충은 피를 토하며 연만호를 말리는 교주의 말을 듣고 비술에 더욱 믿음이 생겼다.
‘손자에게도 베풀지 않은 비술이라···.’
“나는 내 서책을 읽고 금원보 열 개를 바치는 이에게 이 비술을 내리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이는 나 스스로 맺은 약조이니 지켜야 한다.”
“···어. 저희 인원이 열 명인데 정말로 지키시려고요?”
“······.”
호충 일행이 가져온 금원보는 백 개였다. 인당 열 개를 확실히 챙겨왔으니, 연만호가 약조를 지키려면 열 번이나 비술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잠시 난감한 기색이던 연만호는 얼른 핑계를 생각해 냈다.
“···내 서책은 태자만 읽었다고 했다.”
“아쉽습니다. 다 읽어보라고 할 걸. 다 읽고 다시 오면 해주실 겁니까?”
“어림없지. 태자가 마지막이다. 애초에 나는 평생 세 번 비술을 펼치기로 다짐했으니까.”
“저기 손자에게도 해주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알아들어도 되겠습니까?”
“소문이 녀석에겐 애당초 비술을 베풀 생각이 없었다.”
“좋습니다. 신선의 도를 닦으셔서 그런지 아주 올곧은 성품을 가지셨네요.”
“······.”
연만호는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손자를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잠시 기다려라.”
연만호는 호충을 뒤로하고 손자 연소문에게 다가갔다.
“누대를 이어온 천마신교는 네 대에서 끝났다.”
“···아닙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그때 교주의 뇌리에 직접 전해오는 뜻이 있었다.
[너는 증손까지 죽게 만들 셈이냐?]
“!”
전음과 비교할 수 없는 심어로 전해지고 있었기에 누구도 엿들을 수 없었다.
[신교는 본래의 뜻을 잃은 지 오래다. 이미 수 백 년 전에 끝나야 했지만, 천마 조사님의 지고한 무공 덕분에 여태 교세를 유지하고 있었을 뿐. 연씨 가문이라도 대를 이어가려면 다시는 교세를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크흑.”
호충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전음을 엿들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호충은 연만호가 자신이 몰라야 하는 일을 거론한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내가 몰라야 하는 일이 뭘까?’
그때 연만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앞으로 신교는 없다. 오직 가문만 남을 것이다.”
“···크헝.”
‘연씨 가문이라···.’
호충은 가문이라는 말에 연씨 성을 가진 과거의 인물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역사에 약한 호충이라 대표적인 인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연개소문?’
연씨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그밖에 없었다. 교주의 이름인 연소문이라는 이름과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노인장. 연씨 가문의 시조가 누굽니까?”
“···태자가 연씨 가문의 시조는 알아 무얼 하려는가?”
“동이족의 나라에 그와 같은 성씨가 높은 관직을 지냈음을 기억하기 때문에 궁금증이 도졌지요.”
“···허. 태자는 아는 것도 많군.”
‘어라?’
마치 그것이 옳다고 인정하는 듯한 연만호의 대꾸였다. 이어진 연만호의 말은 호충의 짐작을 확신으로 만들어주었다.
“과거 멸망한 고구려의 대막리지(大莫離支)를 지내신 연개소문(淵蓋蘇文) 조사는 연씨 가문의 직계 조사님이다.”
“허!”
지금의 연씨 가문은 중원으로 넘어와 투항했던 연개소문의 맏아들 연남생(淵男生)의 후손이라는 뜻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