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0화 (230/232)

호충의 영(靈)

***

‘연만호가 본 미래는 거짓이 아닐 것이야. 돌아가는 것이 순리라면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미 자신의 스승 중 하나인 송재호 또한 천기로 미래를 읽고 자신이 황궁의 비동에 올 것을 알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이성과 감정은 전혀 달랐다.

“화진아···. 주명아···.”

호충은 절로 태자비와 아들을 떠올렸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는 또 어쩐단 말인가.”

태자비 화진은 호충의 둘째 아이를 회임한 상태였다. 이번엔 딸을 갖고 싶다며 매일같이 자신을게 보챘던 그녀였다. 호충은 한참 배가 부른 화진을 진맥하고 이번에 공주님이 태어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너희를 두고 가야 한단 말이냐. 아아. 어찌 너희를 두고 간단 말이냐.”

“······.”

마한로는 호충의 목소리에서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깊은 애(愛, 사랑)는 깊은 애(哀, 슬픔)를 낳는 법이니···.”

지금 호충에게 신선의 도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후우. 덕분에 작은 대비를 할 수 있겠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너무 큰 보답을 받았으니, 나도 그대의 스승께 하나를 더해드려야겠다.”

“······말씀하소서.”

“남경 성읍을 나서면 마차가 대기하고 있을 것이니, 그 마차를 몰아 스승께 돌아가게.”

“?”

마한로에게 마차는 필요 없었다. 튼튼한 두 다리가 있는데 마차가 무슨 필요겠는가.

“손자분의 주검엔 작은 생채기 하나도 만들지 않았으니, 그리 전하면 될 것이야.”

“!!”

“성문에 효시될 목은 다른 이의 것으로 바꿔둘 것이야. 성문에 효시하고 바로 화장할 터이니 누구도 모를 것이다.”

애초에 죽은 자의 목을 자른 것으로 공표하고 이목구비를 알아보지도 못하게 만들어 둘 생각이었다. 교주를 직접 대면했던 이가 봐도 교주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전하. 큰 보답을 받았나이다.”

“어서 가시게. 내 마음이 허전하여 대꾸할 기운도 없으니···.”

“부디 강녕하소서.”

호충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다른 손을 휘저어 마한로를 내보냈다.

***

마한로가 황궁을 떠나고 호충은 깊이 생각에 잠겼다.

‘중원에서 마흔넷까지만 살 수 있다 이건가?’

처음 중원에 와선 어떻게 사나 걱정했지만, 이젠 이곳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방인. 처음부터 나는 이방인이었다.’

십오(十五)년이라는 넉넉한 시간은 그나마 천기가 자신을 배려한 시간이 아닐까 싶었다. 당장 몇 년 뒤에 떠나라고 했다면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 어떻게 천기의 뜻에 따를 수 있었겠는가.

‘이제 주명이가 네 살. 십오 년이 더 흐르면 장성하겠구나.’

십오 년 뒤에 자신은 마흔넷이 된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인생의 절반은 살았다 할 것이다.

‘그래도 태자비와 자식들이 크게 섭섭하지는 않을 것이야.’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미리부터 충분히 언질을 해두면 될 일이었다. 곰곰이 자신이 사라질 미래를 생각하던 호충은 연만호가 전해준 정보에서 기이한 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잠깐! 영만 이동한다고?”

호충은 연만호의 서찰을 다시 펼쳤다.

[···그대의 영(靈)이 바다 속으로 전이 되었을 때···]

분명 영이 이동한다고 되어 있었다.

‘내가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그 시점으로 영만 이동한다?’

문제는 바다 속이 아니라 이곳에 남을 몸이었다.

‘그럼 이 몸은 어떻게 되는 거야? 뭐가 남지? 몸까지 없어진다면 그걸로 끝이지만, 만약 몸이 남으면···.’

호충은 처음부터 다시 따져보기 시작했다. 연만호의 서찰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대의 영(靈)이 바다 속으로 전이 되었을 때···]

‘우선 바다에 빠진 내 몸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애초에 거기서 여기로 넘어 왔을 때 나는···.’

중원의 진호충의 몸에 자신이 들어갔고, 당연하다는 듯이 본래 진호충이 죽었다고 여겼다.

‘안 죽었다면? 녀석의 영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진호충의 영이 남아 있다면!’

자신이 본래의 장소로 돌아가면 녀석의 영이 깨어나 이 몸을 차지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

잠시 아연한 얼굴을 하던 호충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환관에게 일렀다.

“내가 따로 지시하기 전까진 누구도 방에 들이지 말라.”

“···예. 태자 전하.”

호충은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일전에 연씨 가문의 비술을 통해 잠시 맛봤던 천마의 영역에 도달해야 했다.

‘진짜 진호충의 영이 있다면 찾으면 그만이다.’

더 이상 무위를 올리고 싶지 않았던 호충은 다시금 진보를 향한 걸음을 내딛었다.

‘천마가 이르렀던 영의 영역에 나도 이를 것이다. 진호충을 찾아야한다.’

진짜 황제의 아들 진호충을 찾아야 했다.

.

.

.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젊을 유지하는 황태자와 황태자비는 여러 신료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 부인들이 극성스럽게 둘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황제의 뒤를 이을 태자였건만 후실을 들이지 않고 오직 황태자비 하나만을 바라봤다. 황태자비에게 다정하고 자식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황태자는 여염집 여인들의 귀감이었다. 덕분에 비교 대상이 된 신료들이 고달픈 것은 당연했다.

황손의 번창을 위해 빈궁을 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없었던 것도 아니나, 그런 주장을 하던 신료들은 오히려 집안에서 처첩의 시기와 투기로 고생하고 있음이 알려지며 입을 다물어야 했다.

루방을 지배하는 황태자비가 대소신료들의 정보를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황태자도 비빈을 더 들일 생각이 없었다. 이곳 세상에서 쫓겨날 판에 부인과 애를 더 만들어 어쩌겠는가.

근래 황태자는 외부 활동을 멈추고 오직 자식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아바마마. 경연(經筵)이 다가와 이만 가봐야 하옵니다.”

“경서를 논하는 것이야 하루 쯤 빠지면 어떠냐. 오늘 나와 말을 타고 나가자.”

“폐하께서 경연할 때 항상 곁에 붙어있으라 명하셨습니다.”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옆에 끼고 도시는지···.”

할아버지가 된 진휘평은 여전히 하나뿐인 손자 주명을 예뻐하고 있었다. 손녀 주현도 예뻐하긴 하지만, 신하들 앞에선 주명이 우선이었다.

“공주가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니 오늘은 주현이와 나가시지요.”

“···공주는 자장에 제 벗들을 만나겠다면서 유람을 갔다.”

황제는 선황제의 장례와 즉위식을 끝내고 공신록을 작성했다. 서천량 대장군을 비롯한 군의 장군들이 일등 공신에 포함되어 있었고, 하오문의 방주들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비연도 마찬가지였기에 황궁을 오갈 수 있었고, 그의 딸들도 황궁에 입조해 공주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맹주의 자리에 오른 비연과 남궁소선, 제갈미 사이에서 낳은 딸들과 벗이 된 주현 공주는 평소 궁으로 찾아온 그들을 만났지만, 이번엔 본인이 움직인다며 멀리 자장까지 유람을 떠났다.

댕. 댕.

경연을 시작하기 일 각 전에 울리는 타종이 들리고 있었다. 세 번의 종이 울리면 경연이 시작된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러다 늦습니다.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바마마.”

“···쩝.”

딸은 멀리 유람을 갔고, 아들은 장성해 자신과 놀아주지 않았다. 호충은 태자비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진은 호충이 하는 말을 듣고 달래주며 말했다.

“전하. 이제 자식들이 다 컸어요.”

“···다 컸지.”

다 커서 장성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외려 미련만 더 커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키웠다고 해서 옅어질 부모의 정이 아니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호충도 천기가 실행될 시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아버지와 내가 없어도 주명이가 잘 다스리겠지?”

“···그럼요.”

호충은 십오 년 전에 화진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자신이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며 천기에 의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이었다. 화진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기에 부군의 정신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는지 걱정했지만, 연만호의 서찰을 읽고서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시일이 흐르며 온전히 호충의 상황을 이해한 화진이었다.

“문제는 폐하의 의중이겠지요.”

아버지 진휘평에겐 이해를 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진휘평은 다음 황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아들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니 혹여 황위를 물려주려거든 손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말을 어찌하겠는가. 이 얘길 하려면 자신이 진휘평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부터 설명해야 하니 말을 할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본래의 녀석도 동의한 일이지만···.”

호충은 그간 영의 세계에 진입하려 노력해왔고, 자신의 영 깊은 곳에 웅크린 진호충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호충이 영의 수련을 시작하고 꼬박 십년만의 일이었다.

.

.

.

[호충···. 맞느냐?]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

[여태 내 영과 함께했으면서 어째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느냐.]

작은 존재감이라도 드러냈다면 호충의 영을 찾는데, 십년이나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두려웠어요.]

녀석의 영은 호충이 중원에 진입한 당시의 나이인 열여섯에 멈춰있었다.

[피를 보는 것도 두려운데, 사람을 죽이다니요. 저는 감히 당신에게 말을 걸 수 없었어요. 그래서 더욱 깊이 숨었어요.]

[···그래. 두려웠구나.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다.]

[그래도 고마워요. 무서웠던 형님들께 통쾌한 복수도 해주셨어요. 또한 제 어머니를 살해한···. 녀석을 처리한 당신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복수를 대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영으로 남아 있으며 그간의 일을 지켜본 것이다.

[또한 당신 덕분에 저의 근본을 찾았어요. 제가 왕야의 아들일 줄은 몰랐어요.]

[···그래. 이젠 네 아버지가 황제다. 너는 황제의 아들인 황태자다.]

[하지만 저는 황태자가 아니라 그저 겁 많은 진가장의 막내아들이에요. 당신이 황태자이지요. 저를 이대로 두세요. 저승에 가는 것도 두렵거든요.]

[내가 아는 것을 너도 아느냐?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다.]

[···당신이 황태자가 된 다음부터 더는 엿보지 않았어요. 당신의 힘이 자꾸만 더 커져갔으니까요. 저는 당신의 영에 밀려 여기까지 왔어요.]

[······.]

자신이 현경을 넘어 그 이상의 경지에 도달해서 생긴 문제였을 것이다. 연만호에게 전해진 서찰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호충의 영은 자신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영의 힘에서 크게 밀려났기 때문이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 또 오겠다.]

[······.]

이후 호충은 틈이 날 때마다 호충의 영을 찾아가 말을 걸었다. 두려움을 희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또 왔다.]

[···왜 자꾸 저를 찾아오시나요.]

[너를 강하게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저는 이대로 좋아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으냐?]

누구라도 앉고 싶은 지고한 자리였지만, 두려움으로 가득한 호충의 영에겐 부담스럽기만 했다.

[예. 되고 싶지 않아요.]

[······.]

[그럼 무림의 고수가 되는 것은 어떠냐? 무림의 고수가 되면 하늘을 날고 세상을 발아래 둘 수 있다.]

[피를 봐야 하잖아요. 피는 두려워요.]

[하지만 너는 강인한 힘을 가져야 한다.]

[당신이 지금처럼 하시면 되잖아요.]

호충의 영에게 진실을 전해야 할 때였다.

[나는 오 년 후에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럼 네가 이 몸을 다시 차지할 것이다.]

[!]

[본래 내가 너의 기억을 흡수한 것처럼 너도 나의 기억을 흡수할 것이다.]

[저는 당신처럼 살지 못해요. 당신의 아내와 아이들도 지금처럼 돌 볼 수 없다고요.]

[···생각해 보아라. 다시 오겠다.]

호충은 꾸준히 호충의 영을 찾아가 달래주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피의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나의 기억을 가질 테니까.]

[···으으.]

[물론 그 전에 이겨내면 더욱 좋겠지. 하여 네게 특별한 수련을 제안하려 한다.]

[수련···. 꼭 받아야 하나요?]

[그래. 더는 기다릴 수 없기에 강제적으로라도 너를 수련시킬 생각이다.]

[···저는 영에 불과해요. 제가 무슨 수로 당신처럼 무예를 수련하나요.]

[큭. 너도 알지 않느냐? 내겐 네 분의 스승님이 계시다.]

[!!]

이후 호충의 네 스승이 심상의 영역에서 호충의 영을 단련시키기 시작했다. 현경에 오른 스승의 심상은 보잘 것 없는 호충의 영을 맞이해 비슷하게 수준을 맞춰주었고, 호충의 영은 조금씩 무공의 맛을 알아갔다.

[···너무 힘들어요. 하지만 재미있기도 해요.]

[군자는 다능(多能)을 부끄러워한다는 말이 있으나, 이는 무엇 하나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해박한 지식만 얻는 상황을 경계한 말이다. 네가 무공을 깊이 익혀 깨달음을 얻으면 문(文)을 익히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제 앞에서 문자를 쓰십니까?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은 외울 수도 있습니다.]

호충의 영은 무(武)보다 문(文)에 조예가 깊지 않았던가.

[모든 것은 실행해야 의미가 생기는 법이다. 아무리 많은 지혜를 머리에 담아도 무엇 하나 실행하지 않으면 무용하다. 무공은 네게 문(文)으로 익힌 것을 실행에 옮길 힘을 줄 것이다.]

[무예를 익히는데 전력을 다할게요.]

그렇게 오년이 흘렀다. 호충이 떠날 때가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호충의 영은 여전히 호충과 같아질 수 없었다. 전과 달리 성장하긴 했으나, 여전히 유약하고 겁이 많은 호충이 영이었다.

[아무래도 저는 당신과 다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나도 그럴 것 같다.]

네 스승을 통해 무공을 익혔음에도 호충의 영은 절정의 소성을 이룬 것이 전부였다. 이는 이황자 소야보다 못한 성과였다.

[그릇이 되지 말라 하셨지만, 제가 가진 그릇은 여기까지 입니다. 제 한계가 명확해 보입니다.]

[네가 나의 몸을 차지하면 조금 달라지기야 하겠으나, 가진 기질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황제의 자리는 다른 이에게 넘겨야 할 것 같구나.]

[동의합니다. 이황자나 그대의 아들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이황자가 그간 많은 것을 익혔으나, 극구 혼례를 거부하여 여태 홀로 지내고 있지 않은가.]

소야는 자신이 혼례를 올려 손을 보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자신을 통해 역모를 획책할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하고 싶다는 의중을 호충에게 보였기에 호충도 소야의 생각에 동의한 바였다.

[그럼 남은 것은 그대의 아들 주명밖에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라. 곧 그날이 올 것이다.]

천기가 예정했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이다.

[저보단 당신이 준비해야 옳을 것입니다. 저는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마음이 이리 헛헛하니, 내가 준비가 덜 되었구나.]

.

.

.

호충이 깊이 상심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화진이 손을 잡아왔다.

“천기를 거스를 수 없다고 하잖아요. 나는 당신과 지금까지 함께한 것만으로 충분해요.”

“······.”

호충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글썽이는 눈물을 삼켰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내가 더 고마웠소. 진정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오.”

화진의 눈에서 주르륵 흐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화진은 얼른 뺨을 훔쳐 눈물을 닦아냈다.

“이 나이에 주책이지요?”

“고운 마누라가 주책이면 어떤가. 내가 더 주책을 부리면 되겠소?”

호충의 눈에서도 참지 못한 눈물이 흘렀고 턱에 방울져 떨어졌다.

“슬픈 얼굴로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아요. 우리 밖으로 나가요.”

“그럼 오랜만에 같이 나갈까?”

둘은 환복하고 남경의 저잣거리를 거닐었다.

풋풋한 젊은 남녀의 모습처럼 보이나, 한쪽은 오십이 훌쩍 넘었고, 한쪽은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였다.

“갖고 싶은 것은 없소? 저잣거리에 예쁜 장신구가 많구려.”

“아무것도요.”

둘은 그저 손을 꼭 붙잡고 길을 거닐 뿐이다.

“당신과 산천을 유람하던 때가 그립군.”

“그게 어디 유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당신은 중원 전역의 흑패를 접수하느라 바빴고 저는 기루를 접수하느라 바빴는걸요.”

하오문을 일으키며 가장 바쁘게 움직인 둘이었다.

“그 와중에 시간 내서 뱃놀이도 하고 명승지에 유람도 다녀왔잖아.”

“어딜가도 당신은 나를 쫓아온 놈들을 쫓아내느라 바빴지요.”

화진의 미모에 혹해 들러붙은 이들이 한둘이었겠는가. 호충은 언제나 도전자들의 위협에서 연인을 지켜내야 했다.

“주명이는 제 짝이나 제대로 구할지 모르지. 제 어미가 아직도 이리 만개해 있으니, 보통 미모로는 성에 차지 않을 거야.”

“왕자의 배필을 미모로 뽑는 줄 아세요? 기준 이상의 학식과 지혜가 없으면 후보에도 오르지 못할 걸요?”

“그 기준으로 당신을 평가하면?”

“······미모는 평가 기준에 없는 걸요?”

“그럼 당신은 후보에 오르지도 못하겠어.”

“뭐라고욧!”

“하하하.”

둘은 다가올 헤어짐을 잊고 하하호호 웃으며 하루를 보냈다. 평범하고도 특별한 하루를 통해 영원한 이별을 준비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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