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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화 (1/210)

001화. 서장(序章) - 꿈 혹은 기억

* * *

콰아앙!

거센 폭음이 울리며 호교 전사의 몸이 터져나갔다.

후끈한 폭발의 열기와 함께 화살처럼 변한 피와 살점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맞상대하지 마라! 호신강기로 막으면서 그대로 돌파해!”

앞을 가로막는 상대를 베어 넘기며 장무영이 외쳤다.

시간이 없었다.

일차 저지선을 형성한 천여 명의 광신도들을 헤치고 나오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길고 처절한 전쟁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하는데….

콰아앙!

다시 한번 폭음이 터졌다.

순교를 통해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 광신도들의 정신을 지배했고, 성전(聖戰)의 술법으로 안수받은 그들은 주저 없이 자폭을 선택했다.

인간의 몸에 이토록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던가?

생명의 상징인 피가 죽음의 도구로 전락하는 광경은 참혹했다.

적들의 광기에 치를 떨며 척혈단(刺血團)은 한 발 한 발 산 정상을 향했다.

선두에서 달리던 장무영의 측면에서 또다시 폭음이 터졌다.

상당한 고위 사제의 자폭이었는지, 이번에는 폭발력이 몇 배로 강했다.

호신강기를 온몸에 두르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던 장무영조차 폭발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몇 걸음 밀려났다.

비 오듯 쏟아지는 핏물과 함께 폭발의 열기가 휩쓸고 간 자리….

그의 뒤를 엄호하며 달리던 팽월도가 쓰러져있었다.

“월도!”

“난… 괜찮으니 단장은 빨리 가쇼.”

한쪽 팔이 통째로 날아간 팽월도가 힘겹게 말했다.

복부에서도 피가 흘렀고, 허벅지의 살점도 떨어져 나가 허연 뼈가 드러난 것이 폭발의 충격을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다.

“괜찮다니? 자네 팔이….”

“팔 한 짝 없어도 죽지 않으니까 빨리 가라고! 가서 이 미친 짓을 벌인 놈들을 잡아! 나이도 어린놈을 단장이라고 떠받들어 줬으니, 이제 네가 마무리를 지어야지!”

순간 적 둘의 목을 베며 다가온 무당의 청학이 팽월도의 자리에 대신 섰다.

동료의 상태를 보고 먹먹한 표정을 짓던 그가 울분을 삼키며 말했다.

“팽월도의 말이 맞소. 빨리 갑시다. 단장.”

‘미안하다.’

복수를 해주겠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장무영은 이를 악물고 다시 달렸다.

적들은 순교자의 탈을 쓰고 악귀처럼 달려들었다.

악귀에 맞서야 했으니 장무영도 지옥의 야차가 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각오한 것은 적들이나 척혈단이나 마찬가지.

베고 또 베었고… 마침내 산 정상에 올랐다.

이차, 삼차 저지선을 뚫고 목적지에 도달한 것은 삼백 명의 척혈단 중 오십여 명에 불과했다.

그렇게 형제들의 죽음을 뒤로하고 도착한 그곳에 혈교(血敎)의 사원이 있었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간간이 내비치는 달빛이 사원의 지붕 위로 떨어져 내렸다.

교도들이 목숨으로 지켜내려 했던 곳이니, 분명 이곳에 혈교의 사도(使徒)들이 있을 것이다.

끼이익.

두꺼운 사원의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산 아래에 펼쳐진 지옥도와는 달리 이곳은 너무도 평온했다.

장무영은 불길한 예감을 피할 수 없었다.

교의 최고 사제들이 머무는 곳인데, 지키는 무사들이 없다니…?

몇 개의 문을 더 지나, 사원 가장 깊숙한 곳에 도착했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마지막 문이 열렸다.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넓은 원형의 공간.

기이한 문자가 양각된 열두 개의 돌 제단이 공간을 따라 둥그렇게 배치되어 있었다.

장무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돌 제단 앞으로 다가갔다.

아니, 정확히는 돌 제단 위에 앉아있는 열두 명의 사제들 앞으로 간 것이다.

조금의 미동도 없이, 고승이 좌선하듯 정자세로 앉아있는 그들.

온기는 남아있으나 숨결은 없었다.

혈교의 최고 사제 열두 명.

그들은 모두 죽어있었다.

이건 대체 뭐지?

설마, 설마… 이렇게 끝나는 거라고?

장무영의 허망한 마음을 아는 듯, 차갑게 부서지는 달빛이 제단을 휘감았다.

* * *

강한월은 천천히 눈을 떴다.

관자놀이를 쑤시는 듯한 지독한 통증이 예외 없이 찾아왔다.

분명 꿈이었으나,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한 장면들.

우박처럼 쏟아지는 살점들과 사방으로 비산하여 안면을 적시는 핏방울의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얼굴을 닦아냈다.

간혹 평온하고 흥겨운 꿈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수많은 동료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끔찍한 꿈이었고, 요즘 들어 그 빈도가 더욱 잦아지고 있었다.

악몽과 두통.

그러니 강한월이 손을 뻗어 침상 옆을 구르고 있는 술병을 집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장.”

병뚜껑을 열고 막 입에 대려는 순간, 방문 밖에서 현실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시간이 된 것이냐?”

“네, 이제 출발해야 합니다. 아까부터 불렀는데 대장이 답이 없으셔서….”

자신이 악몽을 꾸는 사이 동료들은 안절부절 자신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손에 든 술병을 내려놓으며 강한월이 침상에서 일어섰다.

계속되는 두통으로 술을 끼고 산 지 오래지만, 그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하려는 일이야말로 이 악몽을 끝내줄 유일한 해결책.

그리고 자신이 챙겨야 할 동료는 꿈속에서 죽어 나간 그들이 아니라 문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바로 저들인 것이다.

깊이 숨을 들이쉬어 의지를 북돋은 강한월이 방문을 열며 말했다.

“작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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