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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4화 (4/210)

004화. 제천대살 (3)

* * *

제천대살은 밀종대혈수인의 위력을 믿었다.

흥, 소림의 무공?

어디 한번 상대해 보시지. 이미 승부는 기울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일까?

강한월은 열세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빠른 발놀림으로 공격을 피하기만 하던 그가 갑자기 검을 뽑아 들었는데….

타앙~

탄(彈)의 묘리를 담은 검으로 커다란 육장을 튕겨내고,

챠악~

흡(吸)의 묘리를 담아 방향을 틀어 놓았다.

이놈이 어디서 잔재주를!

검에 막혀 공격이 수차례 빗나가자 제천대살의 짜증은 폭발 직전이었다.

은근히 내뿜고 있는 챠크라의 파장이 강한월의 내력 수발을 방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의 검은 신묘한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었다.

자신이 우위를 점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피로가 쌓이는 것도 사실.

‘그래, 그 잘난 검부터 분질러주지!’

제천대살은 강한월의 머리를 움켜쥐려는 듯 손을 뻗었다.

역시나 손을 튕겨내기 위해 검이 뻗어왔는데….

옳지, 잘 걸렸다!

제천대살은 갑자기 손가락을 오므리며 검을 움켜쥐었다.

손안에 느껴지는 차가운 철의 감촉.

막 힘을 주어 부러뜨리려는 순간…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워낙 미세했기에 인지조차 못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야 느낌이 온 것이다.

파르르 떨리는 강한월의 검에서 발산되는 미묘한 파동.

그 결과 자신의 손에 둘려져 있는 챠크라의 비술이 무(無)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푸욱.

밀종대혈수인의 비술이 풀려 단단함을 상실한 오른손이 그대로 검에 꿰뚫려 버렸다.

“으아악! 너… 어떻게 챠크라를 상쇄하는 파장을 알고 있는 거지?”

“지난 삼 년간 내가 악몽에 시달린 횟수를 생각하면… 이 정도 대비책을 마련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니겠소?”

이해할 수 없는 말.

하지만 제천대살이 고개를 갸우뚱할 기회도 없이 검이 다시 한번 뻗었고, 충격에 몸이 굳은 제천대살의 왼손도 검첨에 꿰뚫렸다.

“크아아악.”

피가 철철 흐르는 양손을 오므리며 무릎을 꿇는 제천대살.

대결이 끝났음을 선언하듯 강한월은 검을 검집에 꽂았다.

“죽일 생각은 없소. 하지만 몇 가지 금제는 가해야겠지. 당신은 앞으로 내공을 쓸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혈교의 비술도… 헛!”

공력을 폐쇄하기 위해 혈도를 짚어가던 강한월이 갑자기 숨을 들이켰다.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던 제천대살의 품에서 튀어나온 비수 한 자루가 강한월의 심장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살수가 펼친 최후의 한 수.

누구도 예상 못 한 반전이었다.

하지만….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절망의 목소리가 터진 건 강한월이 아닌 제천대살의 입.

모든 호신강기를 파괴한다던 전설의 귀면비가 강한월의 심장을 뚫지 못하고 허무하게 부러졌으니.

“설마 진짜 귀면비가 당신 손에 들어가게 놔뒀겠소? 당신이 솔밭에서 발견한 그것은 당연히 가짜요. 오히려 평범한 비수보다도 약한 것이지.”

“그럼… 진짜 귀면비는?”

“소영영이 마침 비수를 주무기로 쓰는 터라 그녀에게 선물했소. 당신 뒤를 캐느라 고생도 많이 했으니 그 정도 보상은 받을 만하고.”

“으아아악! 이 사기꾼 놈들아!”

* * *

서늘한 달빛이 내려앉는 외딴 객잔.

이번 작전의 본부로 사용되는 그곳으로 마침내 강한월이 돌아왔다.

어깨에는 제천대살을 둘러맨 채로.

“대장. 성공하셨군요!”

강한월은 싱긋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제천대살을 객방으로 옮겼다.

“제천대살. 지금이라도 자신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면 비술을 펼쳐 확인하는 것은 생략하도록 하겠소.”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협조할 의사가 없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강하게 저항하거나 욕을 퍼붓지도 않았다.

그의 눈빛은 이미 죽어 있었다.

충격과 좌절에 휩싸여 자포자기인 상태, 바로 그것이었다.

“잔혼반(殘魂斑)이라 부르는 비술을 펼칠 거요. 다른 사람의 영혼이 몸에 들어온 흔적을 찾는 것인데, 원래는 파사국 술사들이 이혼대법(移魂大琺)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썼던 것이라 하더군. 하지만 회귀의 흔적을 찾는 데에도 효과가 있지.”

강제로 제천대살의 입을 벌리고 시약을 먹였다.

약이 효과를 나타내는 시간은 대략 이 각.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시간이 되었고, 소영영이 비술을 발동하는 주문을 외웠다.

잠시 후, 강한월이 손을 뻗어 제천대살의 앞섶을 열어젖혔다.

그곳으로 향하는 모두의 시선.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표정.

지난 삼 년간의 자신들의 노력이 혹시 헛된 것은 아닐지… 드디어 지금 그 증거를 직접 확인하게 되었으니.

“저, 저거… 잔혼반 맞죠? 그럼… 정말로 회귀자가 있는 거네요!”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위청보가 외쳤다.

열어 젖혀진 가슴에서 빛나고 있는 엽전 크기만 한 보랏빛 반점.

대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확신을 가지고 있던 강한월에게는 당연한 결과였지만.

“제천대살. 역천의 회귀행위와 미래에서 벌인 혈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당신을 체포하겠소.”

제천대살의 얼굴에 절망감이 더해졌다.

강한월은 지체 없이 손을 뻗어 그의 천중혈을 짚었다.

잠시 봉쇄해 두었던 챠크라의 기운과 서장 밀교의 내공을 완전히 소멸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소영영, 회귀자라는 것은 증명되었고, 이제 십이 혈승 중 누구인지를 알아보자.”

“그러죠. 내공이 소멸되었으니 섭혼술 걸기가 수월할 거예요.”

제천대살을 앞에 두고 소영영이 섭혼술을 시작했다.

정신 계열의 술법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

나머지 대원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지켜봤다.

소영영의 상단전이 열리며 비술의 파장이 흘러나와 제천대살의 영혼과 동조를 시도했다.

그의 영혼은 두꺼운 장막으로 가려져 있었고, 동조를 강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그녀는 서두르지 않고 부드럽게 문을 두드렸다.

‘알아요, 당신이 얼마나 분하고 원통한지. 내가 들어줄게요, 당신의 그 억울한 목소리를….’

제천대살의 격한 감정이 조금씩 느껴졌다.

미움과 원망, 두려움과 공포, 절망과 복수심, 그리고 과거의 회상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서서히 동조가 이루어지며 가려졌던 장막도 조금씩 열렸다.

장막 뒤로 보이는 흐릿하고 모호한 형상들.

“이자는… 십이지신 중 원숭이, 신(申) 혈승… 혈교에서 비술을 담당하는 자들 중 하나에요.”

소영영이 나직이 읊조리며 떠오른 영상을 전했는데….

“너무 억울하다. 이곳 세상에 있어 미래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어째서 내가 미래의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파장의 동조가 점점 강해지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탁하게 갈라지면서 제천대살의 목소리를 닮아갔다.

“너희는 무슨 권한이 있어 감히 회귀를 단죄하느냐…?”

섭혼술의 부담이 큰 것인지 소영영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이 되었지만 강한월은 궁금한 것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혈승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는 흔한 것이 아니니까.

“원숭이 혈승. 묻고 싶은 것이 있소. 지금껏 회귀한 다른 동료를 만나본 적이 있소?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요?”

“아니, 만난 적은 없다. 아직은….”

만난 적이 없다고?

다행히 아직 혈승들이 다시 모이지는 못한 모양.

궁금한 게 많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인 것 같았다.

강한월이 더 물으려 하자 소영영이 고개를 휙 돌리며 거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흐흐흐. 너희는 만인의 피로 몸을 씻어라! 피의 힘을 숭상하고 영생을 얻으라!”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자각한 그녀가 눈을 질끈 감으며 정신의 연계를 끊었다.

“휴우… 더 이상은 무리예요.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핏물이 번지며 모든 기억을 덮어버렸어요. 뭐였을까? 무슨 정신 금제 비술에 걸려있는 것 같은데….”

“수고했다. 이 정도면 되었어. 혈승에게도 섭혼술이 통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만 해도 큰 성과다.”

* * *

새벽을 향해가는 시간이었지만, 오늘 같은 날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당연히 자축하는 자리가 필요했다.

객잔의 주방을 뒤져 술 단지를 꺼내 왔고, 소영영과 위청보가 몇 가지 안주를 만들었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만약 요식업계로 진출했으면 진작에 거부가 되었을 저 소영영이 만든 요리이니 맛있게 드세요.”

그녀의 말마따나 안주는 맛있고, 술은 달았다.

“아, 저는 진짜 눈물이 나려고 해요. 대장한텐 미안하지만, 솔직히 회귀자의 존재를 믿지 못했거든요. 괜히 이상한 조직에 들어와 아까운 청춘 허비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술이 오른 위청보가 촉촉해진 눈망울로 말했다.

사실 강한월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다.

대장이 허튼소리를 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설마 하는 의심이 마음 한편에 있었던 것.

“나를 믿고 따라준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야. 남은 혈승만 해도 열한 명이고 그들의 조직과 수하들을 생각하면….”

“에이, 대장은 오늘같이 기쁜 날 무슨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해요? 다음 임무 생각일랑 내일부터 하기로 하고, 오늘은 원숭이 혈승을 잡은 것만 축하하자고요. 호호호.”

소영영의 말이 맞았다.

오늘의 기쁨은 오늘 즐겨야 했다.

내일은 반대로 슬퍼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강한월은 단숨에 술잔을 비워 그녀에게 동의를 표했고, 다시금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나저나 저 혈승은 창의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자기 살수명을 제천대살이라고 짓다니. 제천대성 손오공과 비슷해서 설마 했더니, 정말로 십이간지 중 원숭이 혈승이네요.”

“하하하, 그렇지? 어딘지 어설픈 혈승이야. 게다가 무공도 그리 강한 것 같지 않고. 장력을 교환해본 광 선배 말을 들어 보니 절정 후반 혹은 기껏해야 초절정 초입 같던데. 어때요 대장? 그 정도였죠?”

제갈윤이 강한월을 향해 물었다.

모두 귀를 쫑긋하고 대장의 답을 기다렸다.

궁금할 수밖에.

자신들이 상대하게 될 회귀 혈승들이 어떤 실력인지가.

남은 열한 명도 모두 원숭이 혈승 정도라면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아니. 그들의 실력을 그렇게 얕보면 안 돼. 어제는 절정이었더라도 오늘은 초절정이 되고… 몇 달 후에는 절대의 경지를 돌파할 수도 있는 게 그들 회귀자야. 한번 거쳤던 길을 다시 걷는 거고, 남들은 평생 구경도 못 할 기연을 수시로 도둑질해 독식하는 그들이니까.”

“휴우, 역시 그렇군요. 오늘 원숭이 혈승 잡는 게 순조롭길래 혹시나 했는데….”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애초에 이건 우리에게 불리한 싸움이야. 우리가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직 그들이 우리 존재를 모른다는 것뿐이다.”

“대장. 하지만… 우리가 이기지 못할 거란 뜻은 아니죠?”

이런, 내가 또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나 보네.

강한월은 아차 하는 마음에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대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담담하면서도 믿음직한 미소였다.

“광군영, 소영영, 제갈윤, 위청보. 너희와 함께라면… 우리가 반드시 승리하리라 믿는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합리적인 근거랄 것은 없는 막연한 자신감.

하지만 대원들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보니 효과는 확실했다.

“호호호, 대장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자, 이제 일 이야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고요. 비록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지만… 우리 문무대(文武隊)를 위하여!”

“문무대를 위하여!”

소영영의 선창에 맞춰 다 같이 잔을 들었다.

흥겨운 자리가 이어졌고, 심지어 객방에 감금된 원숭이 혈승에게도 술 몇 병을 보내줬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 후에야 술자리는 끝이 났다.

위청보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제갈윤도 피로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강한월은 대원들을 재촉하여 길을 떠났다.

무림맹에서 새로운 대원을 보내주기로 한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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