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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6화 (16/210)

016화. 사나이 곽철 (2)

* * *

곽철이 혈승일 확률이 높아지면서 광군영의 마음가짐도 바뀌었다.

천마신교의 정통 무공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고, 그가 선택한 것은 아수륜팔비장(阿須倫八臂掌).

호교신장에게만 비밀스레 전수되는 것이라, 마기만 적절히 통제하면 천마신교의 무공임을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광군영과 곽철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유가술의 몸놀림이 기괴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팔이 여덟 개로 늘어난 것 같은 광군영의 몸놀림도 신비한 것은 매한가지여서 관전하던 사내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곽철은 근육과 관절 하나하나가 무기라도 되는 듯 광군영의 요혈을 노렸다.

과연 천축의 챠크라는 중원의 내공과는 달랐고, 방어력 또한 대단할 듯했다.

‘이 정도면 절정고수.’

광군영은 철통같은 방어를 펼치며 곽철의 무위를 가늠해보았다.

밤의 세계를 주름잡기엔 부족함이 없지만… 회귀한 혈승이라 보기엔 모자랐다.

숨겨둔 기운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려면 조금 더 거세게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다.

무작정 마기를 억누르고 싸울 수는 없는 상황.

중단전에 꽁꽁 묶여 있던 마기의 봉인이 드디어 풀렸다.

순식간에 양손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곽철의 심장을 노렸고….

타앙.

인간 같지 않은 탄력을 지닌 곽철의 손이 광군영의 공격을 튕겨냈다.

손은 튕겨 나갔으나 손에 둘려져 있던 음산한 기운은 튕기지 않고 그대로 날아들어 곽철의 가슴 부근에 스며들었다.

사악.

곽철은 소름 돋는 불쾌함에 치를 떨었다.

뱀처럼 똬리를 틀고 내부를 지키는 챠크라가 아니었다면, 몸과 마음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공격이었다.

무언가가 떠오른 곽철이 급히 서너 걸음 물러서며 외쳤다.

“이건! 마공(魔功)인가?”

“왜? 문제 있나?”

“우하하하. 드디어 말로만 듣던 마공을 상대하게 되었구나. 오늘은 운이 좋은데.”

우두둑 소리를 내며 목 관절을 풀어준 곽철이 화살처럼 달려들었다.

마기를 노출했기에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어진 광군영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검은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손이 여덟 개로 늘어나더니 기름장어처럼 미끄러져 들어오는 곽철의 몸을 낚아채려 했다.

곽철의 눈빛도 달라졌다.

간만에 몸 좀 풀어줄 도전자가 왔나 했더니 실제는 그 이상이었다.

광군영이 마기를 뿜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호흡과 챠크라의 흐름에 지장이 발생하는 것을 느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이 요상한 마기는 자신을 더욱 옥죄어올 것이다.

속전속결이 필요한 때였다.

마(魔)는 천마신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도 천축의 마가 있으니….

곽철이 마라회륜(魔羅回輪)의 기운을 양손에 둘렀다.

두 손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뱀처럼 똬리를 틀며 아수륜팔비장을 막았다.

그리고 즉시 거대한 바퀴라도 되는 듯 몸을 회전시키며 광군영을 향해 쇄도했다.

광군영이 보법을 펼쳐 사선으로 피하는 순간 곽철은 순식간에 여덟 번의 찌르기를 감행했고 광군영이 몸을 공중으로 띄워 회피를 하자 물구나무 자세로 열여섯 번의 발차기를 날렸다. 여덟 개의 그림자로 늘어난 광군영의 팔이 재빨리 움직여 발차기를 하나하나 막아냈지만 그 순간 곽철의 왼손 검지에서 쏘아진 지풍이 광군영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잘라 놓았다.

광군영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드디어 본 실력을 드러내려는 것인가?

이 정도면 혈승의 수준이라 할 수 있을까?

제대로 확인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속전속결을 택한 곽철의 공격은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연이어 펼쳐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곽철의 움직임이 점차 둔해졌다.

광군영이 뿌리는 검은 안개가 공기 중에 쌓이며 움직임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하, 과연 마교라는 건가….’

끈적하게 달라붙는 마기를 방치한 채 대결을 펼칠 수는 없었다.

곽철은 유가술 탄(彈)의 묘리로 챠크라를 일시에 폭사하여 주변에 농밀하게 쌓여 있는 마기를 소멸시키려 했다.

하지만 곧 놀란 눈을 부릅뜨고 두 팔을 가슴 앞에 모아 몸을 보호했다.

광군영이 여덟 개로 늘어난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던 팔을 하나로 합치더니, 산이라도 부술 것 같은 육합흑철마장(六合黑鐵魔掌)을 발출한 것이다.

콰아아앙!

농축된 마기와 똬리를 튼 챠크라가 충돌하자 방주전 전체가 들썩거렸다.

흑도의 떠오르는 별도 마교의 이미 떠오른 별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던 것일까… 곽철의 몸이 뒤로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한동안 바닥에서 비틀거리던 곽철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얼굴이 창백하고 입가에 핏물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내상이 꽤나 깊은 듯.

“젠장, 아 진짜 호되게 맞았네. 졌다. 항복이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곽철이 시원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는 광군영의 표정엔 무언가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왜 그랬지? 무언가 숨겨둔 힘이 있던 것 같던데… 왜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지?”

“이 새끼, 너도 전력을 다한 거 아니잖아! 나만 속옷까지 다 까라는 거야 뭐야?”

고통이 심할 터인데도 바락바락 악을 쓰는 곽철을 보며 광군영이 피식 웃었다.

역시나 곽철은 아직도 실력의 전부를 선보인 것은 아니었다.

이러면 제대로 확인을 한 것인가, 못한 것인가?

어쨌거나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공식적인 확인은 잔혼반 비술을 통해야만 하니까.

곽철을 소영영 앞으로 데려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가자, 곽철.”

* * *

항주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강한월 일행이 낙양으로 복귀했다.

“대장! 돌아오셨네요. 소 선배와 가린이도… 모두 무탈하신 거죠?”

강한월이 건물 문을 열고 들어서자 위청보가 뛰어나와 반갑게 인사했다.

위청보의 표정이 밝은 것을 보니, 광군영도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것 같았다.

역시나.

광군영과 제갈윤도 밝게 웃으며 이 층에서 내려왔다.

“아! 성공하신 거군요. 이자가 오성상단의 윤대호인가요?”

“아니, 이자는 윤대호가 아니야.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소영영이나 진가린에게 듣도록 하고… 곽철을 잡아 오는 일은?”

“흑신성(黑新星)은 지하실에 있습니다.”

“흑신성?”

“자신이 흑도의 떠오르는 별이라고… 그렇게 불러달라네요.”

“어려운 일은 없었고?”

“전혀요. 당신이랑 싸우러 왔다고 하니 오히려 좋아하던데요. 그다음은 일사천리였죠. 광 선배랑 한참 겨루다가 한 방 맞고 쓰러졌는데… 약속을 지키고 순순히 따라왔습니다.”

“실력은 어땠는데? 천축 무술을 쓰는 건 확인했고?”

이 질문에는 광군영이 답했다.

“절정 수준이었는데, 힘을 남겨둔 것 같았으니 어쩌면 초절정일 수도. 나도 천축 유가술을 상대해본 것은 처음이고 챠크라라는 것도 신기해서 몇 번 애를 먹기도 했고.”

“그래? 제법이군.”

* * *

한동안 떨어져 있던 전 대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한 데다 임무도 완수했으니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날은 당연히 부대 회식이었다.

하지만 술독에 빠지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곽철에게 잔혼반이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일과 이막기를 지하에 가두기 전에 섭혼술을 펼쳐 정보를 얻어내는 일이었다.

섭혼술은 천마신교의 신녀들에게 은밀히 전수되는 비술.

배운다고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만 했다.

강호인들이 치를 떨고 배척하는 금지된 비술이지만, 우습게도 깨끗하고 따뜻한 영혼을 가진 자만이 그것을 익힐 수 있었다.

신녀궁의 섭혼술은 상대의 영혼을 강제로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위로하며 교감하는 것이기에 그랬다.

이막기를 앞에 두고 소영영이 섭혼술을 시작했다.

제천대살 원숭이 혈승을 상대한 적이 있었기에, 이번엔 조금 더 수월했다.

이막기의 심령과 동조가 시작되자 그의 생각과 마음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살포시 전달되었다.

“이자는… 십이지신 중 돼지, 해(亥) 혈승… 교의 자금을 조달하고 운영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요.”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영상과 기억을 나직이 전하기 시작했다.

“너무 억울하다. 나는 혈제에 관여하지 않았다. 회귀도 내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닌데….”

파장의 동조가 점점 강해지는지 소영영의 목소리가 탁하게 갈라지면서 이막기의 목소리를 닮아갔다.

“무서운 것은 피의 제사장들… 자(子) 혈승… 그리고 힘을 가진 자들… 용과 호랑이….”

그녀의 표정이 공포로 일그러지며 목소리가 떨려왔다.

모두가 집중하여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제갈윤이 열심히 소영영의 말을 받아 적었다.

“조만간 그들이 나를 부를 텐데… 난 자금을 준비해야 해. 세상을 뒤집어엎을 만한 큰돈을. 세상 만민의 핏값을 지불할 돈을….”

“돈은 누구에게 전할 생각이었소? 피의 제사장이오? 당신이 말한 자 혈승 그자요?”

강한월이 궁금한 점을 물었다.

“제사장… 피의 왕… 자 혈승 그는….”

자 혈승을 이야기할 때 이막기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더니, 갑자기 충혈된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피 흘림이 없으면 영생도 없나니. 오직 피를 통해서만 자유를 얻으리라!”

섭혼의 동조가 끊어졌다.

식은땀을 비처럼 흘리던 소영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혈승을 이야기하는 순간 핏물이 흐르며 모든 기억을 덮어버렸어요. 뭐였을까? 무슨 정신 금제 비술에 걸려있는 것 같은데….”

“수고했다. 일단 좀 쉬도록 해. 곽철의 잔혼반도 확인해야 하니.”

“아뇨, 전 괜찮아요. 지금 바로 해요. 빨리 끝내고 술 마셔야죠!”

* * *

곽철이 감금되어 있는 곳은 원숭이 혈승이 감금된 곳과는 다른 층이었다.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는 동안 강한월이 광군영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엔 어떤 것 같아? 곽철이 회귀자일 가능성은?”

“내가 볼 땐 아니야. 어떤 배경으로 천축의 무공을 익힌 건지 모르지만 그래도 회귀한 혈승은 아닌 것 같아.”

“제갈, 네가 보기엔?”

“저도 광 선배의 의견에 동의해요. 하지만 모르죠… 아직 각성하지 못한 걸 수도 있으니.”

원숭이 혈승이 있는 곳에서 한 층을 더 내려가 곽철이 있는 지하실에 도착했다.

곽철은 쇠창살 안에 갇혀 있지는 않았다.

지하실에서 편안히 무공을 수련 중이었는데, 약속을 지켜 순순히 따라와 준 것에 대한 나름의 배려였다.

“흑신성. 어서 인사해요. 우리 대장이 왔어요.”

웃통을 벗고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던 곽철이 몸을 일으켰다.

“오~ 당신이 광군영의 대장이시군. 말씀은 많이 들었소이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사람들을 둘러보던 곽철의 시선이 소영영에게서 딱 멈췄다.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더니 서둘러 웃옷을 걸치는 곽철.

“제갈윤! 이런 법이 어딨어? 숙녀분이 오실 거라고 미리 알려줬어야지. 민망한 모습을 보였잖아!”

뭐야, 이 사람? 흑도의 거친 사내가 웬 부끄러움?

제갈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곽철은 소영영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험험, 초면에 실례가 많았소. 본인은 흑도의 떠오르는 별 곽철이오. 친구들은 날 흑신성이라 부른답니다. 소저께서는…?”

“안녕하세요. 전 소영영이에요.”

“오, 소영영 소저셨군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포권을 하며 허리까지 깊숙이 숙이는 곽철을 보고 진가린이 심술 맞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여기 숙녀 한 명 더 있는 거 안 보여요? 제 이름은 안 궁금하냐고요?”

“어? 아… 그래, 넌 이름이 뭐니?”

“흥, 안 가르쳐줘요.”

얘는 왜 삐쳤을까 의아했지만, 그걸 알아볼 여유는 없었다.

제갈윤이 끼어들어 잔혼반 확인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인사는 되었고… 빨리 확인이나 합시다. 곽 방주도 결과만 잘 나오면 오늘이라도 서안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협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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