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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21화 (21/210)

021화. 연쇄 실종 사건 (4)

* * *

겨우 두세 명이 구하러 올 거라는 말에 사내들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여기 괴인들이 자그마치 오십 명이오! 절정급 고수만 서너 명이고 우두머리는 초절정일지도 모른단 말이오! 그런데 고작 두세 명이 구하러 온다고?”

송거이의 목소리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토해냈다.

진가린으로서는 믿기 힘든 말이었다.

초절정 고수에 절정이 서너 명… 그게 말이 돼?

아무리 회귀자와 관련된 집단이라 하더라도, 고작 일류 무인 납치하는 일에 그만한 전력을 투입했다고?

섬뜩한 생각에 솜털이 곤두섰다.

강한월과 광군영의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적들이 이 정도로 많다면 이건 도저히….

* * *

삼십여 장 떨어진 나무 뒤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강한월이 광군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여기 다 모여 있는 것 같군. 더 이상 기다릴 필요 없겠어.

—좋아. 몸 좀 풀어보자고. 밤새 달리기만 했더니….

—자네 혼자서도 문제없겠지?

수십 명의 고수들을 혼자서 상대하라는 말을 저렇게 태연하게 하다니.

광군영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당연한 소리.

강한월과 광군영이 몸을 일으키고 빛살처럼 달렸다.

더 이상 은밀한 움직임은 필요 없었다.

바람을 가르는 파공성이 일자, 경계를 서던 붉은 가면들이 반응했다.

누군가 날카로운 호각을 불었고, 몇몇은 검을 뽑아 들었다.

막 건물의 앞마당에 도착한 강한월의 옆구리로 날카로운 검이 쇄도했다.

하지만 강한월은 찔러오는 검을 무시하고 달렸다.

콰아앙!

역시나, 뒤따라오던 광군영이 장력을 날려 검을 찌르던 붉은 가면을 짓이겼다.

신났구나.

강한월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창고로 향했다.

창고를 지키던 붉은 가면 두 명이 지체 없이 강한월에게 검을 날렸다.

쇄애액.

제법 강력한 기운이 담긴 검.

일류를 뛰어넘는 공력.

하지만 그에 못 미치는 검술.

붉게 충혈된 눈.

비술을 통해 억지로 공력을 끌어올린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부조화였다.

강한월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과감하게 검을 뻗었다.

푹, 푹.

가죽 주머니를 뚫는 소리가 울리며, 동시에 심장을 관통당한 붉은 가면들이 쓰러졌다.

시체 사이를 통과한 강한월이 가볍게 검을 휘둘러 창고 문에 감긴 쇠사슬을 잘랐다.

끼이익.

열린 문 뒤로 강한월의 모습이 보이자 진가린이 달려왔다.

“오빠!”

오빠? 강한월은 어이가 없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어 호칭을 바꾼 것이겠지만, 그래도 오빠라니.

“오빠. 적들이 오십이 넘는데요! 초절정 고수도 있고요. 괜찮겠어요?”

“그런 걸 걱정하는 애가 멋대로 사고를 쳐?”

차가운 목소리로 핀잔을 던진 강한월은 진가린을 지나쳐 구석의 사내들에게로 다가갔다.

“고생 많으셨소.”

사내들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강한월이 손가락을 튕겼다.

핑, 핑.

부드러운 지풍에 수혈을 짚인 사내들은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와 함께 자연스레 바뀌는 호칭.

“대장! 괜찮겠냐고요? 적들이 생각보다 강한데….”

“그렇게 걱정이 되면 직접 나가봐. 광군영 혼자 싸우고 있으니까.”

강한월이 목 뒤 천주혈로 내공을 불어넣자 진가린의 막혔던 공력이 풀렸다.

얼른 뛰어나간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심장에 구멍이 뚫린 시체들.

눈살을 찌푸린 그녀는 허리를 굽혀 검 하나를 주워들었다.

붉은 가면의 심장에서 흐른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공중에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버린 후, 연달아 폭음이 터지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것이… 흑철기린 광군영?

그녀가 본 것은 들개 무리를 질타하는 한 마리 호랑이였다.

검을 들고 쇄도하는 붉은 가면들을 거침없이 휘저어 놓는 압도적인 무위.

팔이 여러 개로 늘어난 듯한 아수륜팔비장(阿須倫八臂掌)이 뻗어갈 때마다 두세 명의 붉은 가면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적들도 만만치 않았지만, 특히 몇몇의 검에는 검기 비슷한 뿌연 광채가 흘렀지만, 갑옷 같은 호신강기를 두르고 바람처럼 움직이는 광군영에게는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대장. 광 선배 실력이… 정말 혼자서 다 상대할 생각…?”

어느새 다가와 그녀의 뒤에 선 강한월이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흑철기린이란 이름이 정파 후기지수들의 악몽이 된 것에는 이유가 있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가린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만약 나라면 저 붉은 가면들 틈에서 몇 초나 버틸 수 있을까?

광군영의 무위에 놀란 것은 진가린만이 아니었다.

붉은 가면 조장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바닥을 구르는 수하들이 스무 명을 넘어설 때, 조장 하나가 날카로운 호각 소리를 울렸다.

삐이익~

광군영을 둘러싸고 있던 자들이 썰물처럼 뒤로 물러섰고, 대신 조장들이 나섰다.

“넌 도대체 누구냐? 무림맹에서 온 거냐?”

“지옥에서 왔다.”

뻔한 대답.

하지만 붉은 가면들에게는 소름 끼치는 말이기도 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자들은 이미 모두 숨이 끊겨 있었다.

검을 쓴 것이 아니기에 유혈이 낭자하지 않았을 뿐, 이미 지옥도가 펼쳐진 것이다.

“잔인한 놈. 제법 실력은 된다만, 그렇게 설치는 것도 이제 끝이다!”

조장 넷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합격술을 익혔는지 넷의 위치와 동작이 교묘하게 어우러졌다.

지이잉~ 검명이 울리며, 조장들의 검에서 붉은 기운이 뻗어 나왔다.

“조심해요!”

진가린에게 슬쩍 웃어준 광군영이 땅을 지르밟았다.

쿠쿠쿠웅!

담쟁이 넝쿨처럼 지면을 뻗어가는 네 줄기 공력.

막대한 흡인력이 발바닥을 타고 치솟자 쇄도하던 조장들이 휘청댔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너는 마교와 무슨 관계냐?”

반쯤 쓰러지다 몸을 일으킨 조장 하나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말했잖아. 지옥에서 왔다고.”

이런, 저들이 천마신교의 무공을 알아봤네.

실은 고의였다.

슬쩍 천마군림보를 쓰고 강한월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가 제지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그렇다면 봉인해제.

검은 아지랑이 같은 마기가 온몸에서 무럭무럭 뿜어져 나왔다.

그 파괴적인 모습에 마른침을 꿀꺽 삼킨 조장들이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다.

“넋 놓고 구경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광군영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진가린의 귓가에 강한월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날아드는 검.

조장들이 광군영을 상대하는 탓에 여유가 생긴 붉은 가면 몇이 진가린을 공격한 것이다.

채챙~

급하게 검을 쳐내며 바라보니, 도와줄 생각은 없다는 듯 강한월은 창고의 지붕 위로 풀쩍 오르고 있었다.

“대장!”

“실전 기회는 흔한 것이 아니다.”

흥, 하라면 누가 못할 줄 알고.

검 손잡이를 힘껏 움켜쥐며 진가린이 공력을 일으켰다.

덤벼드는 상대는 넷.

선기가 몸 안을 돌자 어지러운 흐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광군영의 싸움 정도는 아니지만, 목숨을 걸기는 마찬가지인 또 하나의 싸움이 시작됐다.

지붕 위에 올라선 강한월은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어딘가에 있을 텐데…?

시뻘건 검기를 날리며 광군영에게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조장들.

그 주변을 둘러싸고 대기 중인 스물 남짓의 붉은 가면.

진가린을 잡겠다고 달려드는 몇몇.

누굴까?

강한월은 신경을 집중하여 한 명 한 명을 관찰했다.

이들 중에 있을 것이다.

자신이 반드시 생포해야 하는 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장들의 합격술은 수준이 높았다.

벼락처럼 검기를 쏘아 공격했고, 둘, 셋씩 합을 맞춰 광군영이 펼치는 아수륜팔비장을 분쇄했다.

마기를 흩뿌리는 광군영의 기세는 광포했지만, 넷이 합심하니 얼추 힘의 균형이 맞춰졌다.

분명 그랬다.

광군영이 육합흑철마장(六合黑鐵魔掌)을 꺼내 들기 전까지는.

콰아앙!

이번 폭음이 특별히 더 큰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장력을 막았던 검 두 자루에 쩍쩍 금이 갔고, 조장들의 입가로 핏물이 흘렀다.

광군영이 씨익 웃었다.

마치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승패가 갈리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나선다면 지금이어야 했다.

강한월이 기감을 더 넓게 퍼뜨리며 집중할 때… 뒤에서 관망하던 붉은 가면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성스러운 전쟁을 선포한다! 영생궁의 전사들은 피의 권능으로 영생을 얻으라!”

이 짧은 진언 몇 마디로 성전(聖戰)을 선포한다고?

찾는 것은 이자가 맞았지만, 이렇게 빨리 전개돼서는 안 되는 거였다.

강한월은 단숨에 진가린 곁으로 뛰어내렸다.

“흥, 이제 와서 도와주려고요? 대장이 안 도와줘도….”

막 넷 중 하나의 가슴을 베고 나머지 셋을 몰아붙이던 진가린은, 강한월의 표정을 보고 말을 멈췄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너무나도 다급한 표정이었다.

“진가린. 이자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절대로 삼 장 안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해. 창고 안으로 피신해도 좋고.”

“아니, 왜 갑자기…?”

“성전이 시작됐다.”

진가린에게 붙어있던 세 명의 목을 단숨에 베어버린 강한월이 스르륵 사라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른 검.

속도보다 더 그녀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대장의 과감함.

아니, 과감함이라기보단 잔인함이었다.

강한월은 성전을 선포한 자를 향해 일직선으로 쇄도했다.

앞을 가로막는 자는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

그러는 순간, 변화가 시작됐다.

붉은 가면들의 충혈됐던 눈이 조금씩 앞으로 돌출되며, 열병에라도 걸린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성전의 비술이 변형된 것인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돌풍을 일으키며 쏘아져 나가는 강한월의 뒤에서 폭발음이 터졌다.

퍼어엉!

장력이 충돌하는 그런 폭음이 아니었다.

붉은 가면 하나가 정말로 폭발해버렸다.

몸 안에서 부풀어 오른 핏방울들이 터져 나오는 폭기(爆氣)와 함께 사방으로 비산했다.

“광군영! 조심해!”

몸을 날려오는 가면들의 목을 베며 강한월이 외쳤다.

서서히 돌출되는 조장들의 눈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 광군영이 몸을 감싸는 마기의 농도를 끌어올렸다.

막 폭발 직전이던 조장 하나의 머리를 육합흑철마장으로 으깨버리고, 마탄지(魔彈指)를 튕겨 다른 하나의 심장에 호두알만 한 구멍을 뚫는 순간… 나머지 두 명이 폭발했다.

콰아앙!

미리 대비하던 광군영이었지만, 폭발에 휘말리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사방에서 폭음이 터졌다.

당문의 고수가 만천화우의 암기술을 펼친 듯, 날카로운 핏방울들이 하늘을 메웠다.

이… 이런 일이….

진가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대부분의 문파가 동귀어진의 수법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지만, 이처럼 잔혹하고 처절한 수법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진가린! 정신 차려!”

때마침 강한월의 호통이 들려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달려드는 붉은 가면을 피하지 못하고 같이 폭사했을 거였다.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어, 겨우 폭발의 사정권을 벗어났다.

대여섯의 목을 베고, 다른 대여섯의 폭발을 피한 끝에 강한월은 목표한 곳에 도착했다.

성전을 선포했던 붉은 가면이 눈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피가 흐르듯 붉어진 눈이 빠지기 직전까지 돌출된 상황.

이미 늦은 듯했으나, 강한월은 주저 없이 양손을 내밀어 그의 머리를 감쌌다.

관자놀이를 잡은 두 손에서 범음청량(梵音淸凉)의 진동이 흘러나왔다.

붉은 가면의 몸 안에서 들끓는 폭기를 중화시키는 파장이었다.

그 순간 몇 명의 붉은 가면들이 강한월을 노리고 접근했다.

몸을 던져 강한월을 끌어안고 폭발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범음청량을 주입하고 있던 강한월은 뒤를 막을 틈이 없었다.

호신강기로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는데… 폭발의 여파를 헤치고 일어선 광군영이 전력으로 몸을 날려 강한월의 뒤를 막아섰다.

퍼어엉!

다시 몇 번의 폭음이 터졌다.

사방을 가득 채웠던 붉은 피 안개가 가라앉았을 때, 두 발로 서있는 것은 진가린과 광군영, 강한월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한월의 손에 잡혀 있는 최후의 붉은 가면.

더 이상 몸을 떨지 않고 충혈됐던 눈빛도 가라앉은 것이, 폭기는 모두 중화된 것 같았다.

울컥 뭔가를 토해내자, 시뻘건 핏덩이가 입에서 튀어나와 바닥에서 꿀렁거렸다.

마치 모든 정기가 소모된 듯 붉은 가면은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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