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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23화 (23/210)

023화. 기연 도둑 (1)

* * *

원진탁의 무공 지도가 끝났고, 예정대로 영생궁을 찾는 임무가 시작되었다.

특별히 정해진 기한이 있는 임무가 아니었지만, 강한월은 이상하리만큼 길을 서둘렀다.

호북을 거쳐 호남으로 진입한 어느 날.

정신없이 말을 달리다 보니 인적이 드문 산중에서 밤을 맞았다.

중추절(仲秋節)이 가까운 시점이라 밤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꼼짝없이 야영을 해야 할 상황.

서둘러 지핀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일행이 둘러앉았다.

“광동으로 가기 전에 형산(衡山) 축융봉(祝融峰)에 들리기로 한다.”

모닥불에 잔가지를 던져 넣으며 강한월이 말했다.

“남악(南岳) 형산이요? 왜요? 저희 유람시키려는 건 아닐 테고.”

건량을 씹던 진가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형산에 들린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아직은 기대일 뿐이지만, 중추절 즈음에 회귀자가 형산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거든.”

“형산에 뭐가 있는데 회귀자가 와요?”

“보물이 발견될 거야. 중추절에.”

보물이라는 말에 광군영과 곽철도 관심이 돋는 듯했다.

회귀자가 찾으러 온다는 것은, 이백 년 후 미래에서도 기억할 만큼 대단한 보물이라는 뜻.

“무슨 보물?”

“검 한 자루. 팔찌 하나. 책 한 권.”

광군영이 물었고, 강한월이 짧게 답했다.

검과 팔찌라고?

광군영의 표정에서 급속도로 관심이 사라졌다.

강한월은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 보물들의 사연을 알게 된 후에도 이처럼 무관심할 수 있을까?

* * *

장대 같은 비가 며칠째 멈추질 않았다.

강한월 일행은 형산 축융봉 인근의 허름한 객잔에 여장을 풀었다.

중추절을 하루 앞둔 날.

폭우로 인한 산사태를 하루 앞둔 날이기도 했다.

내일도 비가 오려나?

이렇게 비가 오면 작전을 펼치기 어려운데….

“대장. 다 같이 한잔하죠? 내일이 명절인데.”

“그렇게 하자. 너는 명절 아니라도 마시자고 했겠지만.”

진가린이 입을 삐죽거리며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비 내리는 밤, 타향에서 맞이하는 명절은 일행의 감성을 자극했다.

다들 고향 생각이라도 하는지 묵묵히 술잔을 들었다.

“그런데 곽철 오라버니는 어디서 천축 무공을 배우신 거예요?”

평소 궁금했다는 듯이 진가린이 물었다.

아련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곽철이 답했다.

“안 그래도 사부 생각을 하고 있었어. 비가 오니 그 양반 생각이 나네.”

“사부님이 누구신데요? 천축의 고수신가요?”

“음, 천축인은 아니지만 천축에 대해 잘 아는 분이셨지. 좋은 분이셨어. 뒷골목 소매치기로 살던 나를 삼 년이나 돌봐주셨지.”

“어머? 겨우 삼 년 배우셨다고요? 오라버니가 천재인 거예요, 아님 사부님이 대단하신 분인 거예요?”

“사부님이 대단하시지. 천축 말고 다른 무공도 해박하셨으니까.”

“지금은 어디 계신데요?”

“모르겠어. 칠팔 년 전에 떠나신 뒤로 소식이 없으셔.”

곽철이 지난 이야기를 계속했다.

뒷골목 소매치기 소년이 서안 흑도를 장악하는 과정은 제법 흥미진진했다.

이야기를 안주 삼아 귀를 기울였고, 객잔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는 점점 거세졌다.

* * *

오(午) 혈승. 즉, 말 혈승은 산기슭에 서서 축융봉 한편의 절벽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빗줄기가 온몸을 적셨지만, 눈빛만은 열망으로 달아올랐다.

‘흐흐흐, 드디어 내일인 건가.’

그가 알고 있는 기연이나 보물의 정보는 많았다.

하지만 발견될 보물을 모두 가로채는 것은 아니었다.

혈교의 자금을 축적하기 위해 그가 벌이는 사업은 방대했고,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었다.

고만고만한 영약이나 보물이라면 굳이 발품을 팔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장대비를 맞으며 정성을 들이는 것은, 이번 보물은 그만큼 특별하기 때문.

금액으로 환산해도 어마어마했다.

보물들을 사기 위해 억만금을 지불할 곳은 많았다.

하지만 이 보물들을 팔 생각은 없었다.

조직을 위해 더 적절한 용도로 쓰일 수 있으니까.

마교는 광분할 것이며, 소림의 승려들도 목숨을 걸 것이다.

무림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 것이며, 그것은 혈교에게 큰 기회를 가져다줄 터.

신분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말 혈승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다른 혈승들은 잘 있을까?

소와 돼지는 얼만큼의 자금을 모아 놨을까?

혹시 얼마 전에 사망한 것이 그들은 아니겠지….

한동안 내리는 비를 바라보던 말 혈승이, 내일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 * *

언제 비가 내렸었냐는 듯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해 뜨는 시간에 맞춰 강한월 일행은 산을 올랐다.

저 멀리, 산사태로 무너진 절벽이 보였다.

일행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절벽의 틈에서 동굴의 입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엔, 한발 먼저 도착한 사람도 있었다.

동굴 입구를 기웃거리던 누군가가 강한월 일행의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당… 당신들은 뉘슈?”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형산 유람을 나왔다가, 여기 산사태가 난 것 같아 한번 들러봤습니다.”

“산사태가 뭐 볼 게 있다고. 보아하니 무림인들 같은데?”

“지금은 그냥 유람객일 뿐이죠. 그러는 노인장께서는?”

“나야 약초꾼이지. 척 보면 모르겠소? 산사태가 난 후에는 평소 안 보이던 귀한 약초들이 드러날 때가 있어서 둘러보던 중이오.”

미래의 기록에 의하면 동굴의 입구를 발견한 것은 약초꾼이 맞았다.

하지만 당일 아침 해 뜨자마자는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은 중추절. 노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명절도 아랑곳하지 않는 정말 부지런한 약초꾼인 셈인데.

“아, 그러시군요. 그럼 약초 잘 찾아보시고 좋은 성과 거두시길 바랍니다.”

“댁들은 뭐 하려고?”

“여기 동굴이 모양새가 특이하네요. 저희야 유람 나온 것이니 이런 동굴 구경을 놓칠 수 없죠.”

‘역시 뭔가 알고 온 놈들이구나!’

약초꾼 노인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무림인이라지만 특별히 기세가 드러나지 않으니 기껏해야 이류, 아님 일류 수준.

단숨에 제압해버릴까 고민을 했으나 결국 손을 쓰지 않았다.

아직은 적인지 아군인지가 불분명했다.

그렇다면 좀 더 지켜보는 게 맞았다.

“동굴로 들어가겠다고? 뭐, 좋소. 그럼 같이 갑시다.”

“노인장은 어째서요? 약초를 찾으신다면서요?”

“흥, 뭘 모르는 소리. 음기를 품은 귀한 약초는 동굴 안에서 자라는 법이지.”

계획에는 없었으나, 강한월 일행과 노인은 함께 동굴로 들어가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면서.

* * *

입구는 무너진 바위 사이의 좁은 틈에 불과했으나, 동굴 안은 의외로 넓고 깊었다.

한참을 들어가니 더 이상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곽철과 진가린이 화섭자에 불을 붙이는데, 약초꾼 노인도 화섭자를 꺼내 들고 있었다.

“어머? 약초를 캐시는 분이 웬 화섭자죠?”

“유람객이 화섭자를 들고 다니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지.”

서로가 의심의 눈초리를 빛내며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일 다경쯤 지났을까,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다.

동굴이 두 갈래로 나눠진 것이다.

어느 길이 맞는지는 강한월도 알지 못했고, 더 속이 타는 것은 노인이었다.

그는 혼자였으니까.

“이제 어쩌죠?”

강한월은 진가린의 물음에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노인이 어느 길로 갈지를 우선 파악해야 했다.

노인은 고민 중이었다.

보물이 어디 있을지 알지 못하니, 차라리 저들이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보물을 가로챌까?

하지만… 만약 동굴에 다른 출구가 있다면?

“노인장은 어찌하시렵니까?”

“지금 생각 중이니 재촉하지 마시오!”

강한월의 질문에 짜증으로 답한 노인이 양 갈래 길을 바라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노인은 신의 가호가 언제나 함께한다 생각했고, 그렇기에 자신의 육감을 믿었다.

“난… 오른쪽으로 가겠소.”

고개를 끄덕인 강한월이 전음으로 지시를 내렸다.

—내가 곽철과 함께 노인을 따라가겠다. 광군영과 진가린은 왼쪽 길로 가보도록.

* * *

이번 동굴 길은 좁았다.

강한월이 맨 앞에 섰고 그 뒤는 곽철이었다.

한 걸음 뒤에서 곽철을 쫓아가는 노인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처음에는 몰랐으나, 이렇게 가까이 붙으니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곽철의 몸에서 은은히 풍기는 챠크라의 기운.

바로 자신의 몸속에 똬리를 튼 것과 같은 기운이었다.

노인은 어젯밤 빗속을 거닐던 바로 그 말 혈승이니까.

‘역시… 우리 혈교의 교인이 분명하구나. 누구의 제자일까? 보물을 찾으러 온 걸로 봐서 소 아니면 돼지인데….’

지금 터놓고 말을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누구의 제자인지 모르지만, 혈교나 회귀에 대해선 비밀로 했을 가능성 때문이었다.

자신도 많은 수하가 있으나 모든 것을 함구한 것처럼.

어쨌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결국엔 한 식구인 것이 밝혀질 테니.

“그런데… 댁들은 어느 조직에 몸담은 무인들이오?”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묻는 노인의 말에, 곽철이 뒤도 안 돌아보고 대답했다.

“영감님은 알 것 없어요. 알려줘도 모를 거면서 뭘.”

이… 이런 건방진!

분명 자신이 사백이나 사숙일 텐데, 저런 예의 없는 말투라니.

노인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한편, 강한월은 선두에서 걸으면서 계속 노인을 살폈다.

그가 혈승이라는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다가왔다.

가급적 동굴 안에서는 부딪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무술을 담당하는 혈승이라면, 강한월 자신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든 일.

사방이 막혀 있는 동굴 속에서는 대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다행히 노인도 능청스레 연기를 하고 있으니, 우선은 보물을 찾고 볼 일인 것이다.

주목적은 혈승을 잡는 것이지만, 사실 강한월은 보물에도 관심이 많았다.

절대로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놔둘 수 없는 물건들.

특히 광군영에겐 중요했고, 어쩌면 진가린이 기연을 얻을 수도 있었다.

만약 연이 닿는다면.

* * *

“광 선배. 아까 그 약초꾼 노인 아무래도 이상하죠?”

“냄새가 나니까 대장이 그 노인을 따라간 거겠지.”

“그럼 선배도 그쪽으로 갔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노인이 혈승일 수도 있잖아요.”

“혈승일 수도 있지만, 나까지 갈 필요는 없다. 대장이 갔으면 된 거야.”

“하지만….”

“가린아.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이 대장 걱정하는 거다. 우리는 빨리 보물이 있는지만 확인하면 돼.”

이건 절대적인 믿음이야, 아니면 머리 쓰기가 귀찮은 거야?

광군영의 등 뒤를 따라 걷던 진가린이 삐죽 입을 내밀었다.

하지만 천마신교의 최고 기재는 등 뒤에도 눈이 달린 듯했다.

“입 내밀지 말고.”

“…네.”

한참을 더 걸었다.

얼마나 깊숙이 들어온 걸까?

길이 구불구불하여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못해도 이백 장 이상은 온 것 같았다.

조금 더 들어가자 갑자기 길이 넓어지더니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땅속에 이런 곳이 있다니?

화섭자를 쳐들고 사방을 둘러보니, 족히 오십 장은 넘는 공간이었고, 중앙에는 호수처럼 물이 고여 있었다.

“선배… 저기… 저거 보이세요?”

진가린이 가리키기 전부터 광군영은 그곳을 보고 있었다.

물이 고여 있는 곳 건너편에 희끄무레한 물체 두 개가 보였다.

좌선하는 듯한 모양새로 바위 위에 앉아있는 그것은, 백골이었다.

“가보자.”

진가린의 팔을 잡아챈 광군영의 몸이 부웅 떠올랐다.

단숨에 열다섯 장 너비의 호수를 건너뛰어 바위 앞에 내려섰다.

화섭자의 불빛을 받아 선명히 보이는 백골 둘.

앙상한 뼈가 보기 좋을 리 없지만, 웬일인지 두 구의 백골에선 알 수 없는 위엄이 풍겨 나왔다.

* * *

광군영과 진가린이 백골을 발견하던 그 시각.

하얀 무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사내가 날렵한 신법으로 산에 올랐다.

순식간에 무너진 절벽 앞에 도착한 그는 망설임 없이 동굴의 입구로 다가갔다.

‘이상한데? 어르신 말씀대로면 입구가 이제 막 열렸을 텐데, 벌써 찾아온 사람들이 있다니….’

바위틈으로 들어가려던 사내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살폈다.

발자국으로 볼 때 선객은 총 다섯. 그중 하나는 아마도 여자인 것 같았다.

‘뭐, 들어가 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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