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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25화 (25/210)

025화. 기연 도둑 (3)

* * *

호통을 치며 다가오는 사내를 보고 노인의 안색이 변했다.

놀란 것은 돌무더기 안쪽의 강한월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또 누구냐? 너도 보물이 탐나서 온 것이냐?”

“보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황법으로 엄격히 금지된 폭탄이 터진 것이 더 큰 일이니.”

“황법? 흥, 말투를 보니 황제의 사냥개로구나. 운도 없는 놈이군. 지 무덤이 될 줄도 모르고 제 발로 들어왔으니.”

말은 거칠게 했으나 노인의 마음은 무거웠다.

벽력탄을 들고 있는 자신을 상대하러 오면서도, 사내의 표정은 한점 흔들림이 없었다.

실력에 자신이 있던가, 아니면 의지가 굳건하던가.

어느 쪽이든, 만만치 않은 상대.

“나 동창 천호 장준검이 명한다. 죄인은 즉시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사내가 신분을 밝혔다.

동창이라는 말에 노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한편, 강한월은 기쁨과 우려가 교차하는 미묘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장준검이라면 분명 상당한 실력자.

하지만 그가 적인지 우군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게다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이곳에 온 걸까?

“동창 천호? 이제 보니 높은 양반이었군. 하지만 그딴 관직이 이곳에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천뢰가 폭발하면 뒈지는 건 매한가지인 것을.”

“글쎄. 그럼 그렇게 해보던가.”

장준검은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표정에 답답함이 드러난 것은 오히려 노인이었다.

장준검이 입구 가까운 곳에 서 있다는 게 문제.

이 상태로 폭탄이 터질 경우, 자신이 외려 동굴 안에 갇힐 공산이 컸다.

‘곤란하게 됐구나.’

노인과 장준검의 대치는 계속됐고, 상황이 답답했던 광군영이 전음을 보냈다.

—대장. 동창의 장 천위라면 일전에 조윤의 집에서 들었던 그자가 아닌가? 대장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던데… 도움을 청해보면 어떨까?

—조금 더 지켜보자. 이 동굴에 나타난 모두는 일단 의심해야 하니까.

질문에 답하며 강한월은 무너진 바윗덩이를 살폈다.

얽히고설킨 크고 작은 돌 조각들.

쉽진 않겠지만, 한 번에 돌파할 수 있을 듯했다.

—상황을 봐서 내가 나가보겠네. 광군영 자네가 곽철과 진가린을 지켜줘.

—그 정도야 뭐. 염려 말라고.

그들이 전음을 나누는 동안, 노인의 머리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저 동창 천호는 반드시 죽여야 했는데, 여전히 걸리는 것은 서로의 위치.

‘천뢰를 쓰면 나까지 휘말릴 거고… 벽력탄이라면….’

노인은 계산을 끝냈고, 결심을 굳혔다.

자신의 빠른 경공을 믿어보기로 했다.

십이간지 중 말을 상징하게 된 이후 노인은 경공에 심취했고, 속도에 대해선 자신이 있었다.

그래, 속도로 돌파한다.

“동창 천호. 저 돌무더기 안쪽에는 다섯 명이 갇혀 있다. 그들도 분명 황제의 백성. 설마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모른 척하지는 않겠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군.”

“바로 이런 뜻이다!”

노인은 품속에서 벽력탄 두 개를 꺼내어 동시에 앞과 뒤로 던졌다.

시커먼 벽력탄이 날아가는 사이, 노인은 동굴의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지이잉~

굉음이 울리며 돌무더기 한쪽이 가루로 변하더니 강한월이 튀어나왔다.

장준검의 두 팔이 극유(極柔)의 기운을 뿜는 태극을 그리더니, 날아오는 벽력탄 하나를 기운 속에 가뒀다.

강한월은 검을 뻗어 막 땅에 떨어지려는 벽력탄을 흡(吸)의 묘리로 당기더니 다시 탄(彈)의 묘리를 써 장준검에게 던졌다.

“장 천호! 부탁드립니다.”

짧은 말을 건넨 후, 노인의 뒤를 쫓아 바람처럼 달렸다.

갑자기 나타난 강한월을 보고 장준검은 크게 놀랐지만, 그가 던져준 것까지 두 개의 벽력탄을 가둬놓는 데 집중해야 했다.

동굴 밖으로 쇄도하던 노인은 마른침을 삼켰다.

등 뒤에서 엄청난 속도의 무언가가 따라붙고 있기 때문.

‘뭐 이런 괴물 같은 놈이….’

십여 걸음만 더 달리면 동굴을 벗어날 수 있고, 그러면 천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데….

하지만 강한월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달리는 기세를 몰아 손을 앞으로 뻗자, 회선기류가 뿜어져 노인의 등을 잡아 끌었다.

노인도 기를 뿜어 회선기류를 떨쳐버렸지만, 그 틈에 강한월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노인은 몸을 돌려 장력을 날렸고, 강한월은 검으로 장력을 가르며 속도를 높였다.

그야말로 코앞까지 따라 잡힌 상황.

강한월의 왼손에서 다시 한번 회선기류가 소용돌이쳤다.

‘쳇, 아깝지만 그 방법밖에 없겠군.’

노인은 피눈물을 삼키며 품속의 보물, 천 조각들을 꺼내 던졌다.

강한월은 놀라서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을 터.

그 잠깐의 시간이면 동굴을 벗어날 수 있고, 즉시 천뢰를 써서….

하지만 노인의 예측은 빗나갔다.

강한월은 눈앞에서 팔랑거리는 천 조각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장력을 쏘았다.

강렬하게 소용돌이치는 장력.

가루가 되어 휘날리는 천 조각.

노인은 놀란 눈을 부릅떴고, 그 순간 회선장력이 밀어닥쳤다.

퍼어엉!

“크윽… 이 미친놈! 저 천 조각이 어떤 보물인데!”

장력에 맞아 비틀거리면서도 노인은 미친 듯이 악을 썼다.

내상을 입은 데다 심장까지 두근거리는 통에 강한월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몇 번은 어찌어찌 막아냈으나, 공력을 끌어올릴 때마다 몸속에 침투한 회선장력이 기이한 파장을 일으켜 챠크라를 방해했다.

결국 빛살같이 뻗어오는 검을 피하다가, 동시에 짓쳐오는 장력에 복부를 맞고 무릎을 꿇었다.

진득한 피를 뿜으며 기절하기 직전, 노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마지막 말을 남겼다.

“천하의 보물을 가루로 만든 놈. 넌 도대체 누구냐?”

‘마불진경을 가루로 만든 게 나라고?’

강한월이 쓴웃음을 짓는 사이, 동굴 안에서 광군영 등이 달려 나왔다.

뒤따르는 장준검의 양손에는 벽력탄이 하나씩 들려 있었고.

“장 천호께 인사드립니다. 좀 전에는 경황이 없어서 폐를 끼쳤습니다.”

상의도 없이 벽력탄을 떠넘긴 것을 사과하는 말이었다.

“아, 이거요? 괜찮습니다. 가장 적절한 대처였는데요 뭐. 빠른 판단에 과감한 행동…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장난감이라도 되는 듯, 벽력탄을 던졌다 받기를 반복하며 장준검이 웃었다.

분위기 좋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지만, 실은 강한월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노인을 잡았다고 끝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찌 보면 웃고 있는 장준검을 상대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으니.

“무림맹에서 눈이 마주친 이후로 강 소협을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네요. 솔직히 이게 우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또한 뵙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황실의 고관께서 이곳엔 어쩐 일로…?”

“윗분의 명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혼란케 할 물건들이 발견될 테니, 가서 확보하라 하시더군요.”

말을 하면서도 장준검의 눈은 광군영의 팔찌와 진가린의 검을 향해 있었다.

발견될 보물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온 것이 분명했다.

장준검이 말한 윗분은 누굴까?

동창의 수장인 병필태감? 아니면 더 높은…?

“그러셨군요. 그럼… 이 물건들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북경으로 가져오라는 명을 받긴 했는데… 강 소협 생각엔 어쩌는 게 좋겠소?”

“이미 주인을 찾은 물건이니, 모른 척해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주인 있는 물건이라….”

장준검은 광군영과 팔찌를 유심히 보더니, 이어서 진가린의 검에 눈길을 주었다.

“마기와 선기를 내뿜는 보물… 느낌엔 물건이 주인을 제대로 찾은 것 같군요. 나머지 하나는 좀 전에 가루가 된 그 천 조각들이겠죠? 뭐, 그렇게 합시다. 동굴에 가봤더니 아무것도 없었다고 보고하지요.”

듣는 사람이 당황할 정도로 시원스러운 답변이었다.

장준검의 속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강한월은 내친김에 한 가지를 더 요청했다.

“그리고 벽력탄과 이 노인에 대해서는….”

“사실 그게 더 곤란한 문제죠. 폭탄의 사용은 법으로 엄격히 금하고 있고, 보통 역모로 취급되는 터라… 못 본 척하기가 힘들군요.”

“자세한 설명을 드릴 수는 없지만, 황실과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저에게 맡기시는 것이 옳은 길입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몹시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실제로 장준검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강한월의 말투 때문은 아니었다.

최근에 황실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이해할 수 없는 지시들… 그런 것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 보물 건도 마찬가지였다.

뜬금없이 나타난 폭탄도 그렇고.

“강 소협. 동창의 관리에게 명령을 수행하고 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죠?”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 건에서 손을 떼는 것이 맞다고 보는 겁니까?”

“그렇게 확신합니다.”

한동안 강한월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장준검이 마음을 정했다.

“좋습니다. 오늘 일은 제가 못 본 것으로 하죠. 보물에 대해선 꾸지람을 듣겠지만, 폭탄과 노인에 대해선 위에서도 말이 없으셨으니….”

장준검 입장에서는 모험이었다.

강한월이 전대 맹주의 제자라는 배경은 이미 조사를 했지만, 실제로 어떤 자인지는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장준검은 자신의 육감을 믿기로 했다.

황실이 겪고 있는 혼란을 푸는 단초를 강한월에게서 얻을 수도 있겠다는 예감.

“쉽지 않은 결정이실 텐데… 장 천호께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언제 한번 북경으로 와 주실 수 있겠소?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좀 있어서.”

“급한 일을 끝내고 꼭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난 이만 가보겠소. 생각 같아서는 술 한잔하고 싶지만, 우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서 좋을 게 없으니.”

쥐고 있던 벽력탄을 넘겨주고 장준검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강한월은 그가 멀어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다행히 장준검은 아직 오염되지 않았다.

하지만 황궁의 누군가가 회귀자일 거라는 확신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우리도 내려가자.”

* * *

강한월 일행은 객잔으로 돌아왔다.

정신을 잃고 있는 노인에게 다시 몇 겹의 강력한 금제를 가한 후, 탁자에 둘러앉았다.

“대장, 이 노인 혈승이 맞죠?”

“소영영이 없으니 당장 확인할 수는 없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지.”

“우와! 정말 뜻밖의 성과네요. 영생궁이 목표였는데 광동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한 건 했으니.”

호들갑을 떠는 진가린을 보며 강한월은 담담히 웃었다.

그녀에게는 뜻밖의 성과겠지만, 그에게는 아니다.

오래전부터 동굴의 입구가 열릴 날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그 천 조각들… 아까워서 어쩌죠? 소림의 원법대사가 이 사실을 알면 저승에서도 땅을 치실 텐데.”

“괜찮아. 원법대사의 심득은 소림에 전해질 거야.”

“네? 어떻게요? 이미 가루가 됐는데….”

“내가 내용을 외우고 있다. 나중에 적어서 소림에 전하도록 하지.”

“대장 천재였네요! 짧은 시간에 그걸 다 외운 거예요? 하하하, 그것도 모르고 노인이 꼼수를 피우다가 제 꾀에 넘어간 거군요.”

진가린과 광군영이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곽철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장이 천 조각을 집자마자 절반을 노인에게 줬는데… 어느 틈에 내용을 외운 거지?

실제로 강한월은 천 조각을 읽을 시간이 없었고, 실은 읽을 필요도 없었다.

굳이 설명하진 않았지만, 마불진경은 이전부터 기억 속에 심어져 있었으니까.

“대장. 원법대사의 보물은 그렇다 치고. 이건 어쩌지? 이 마신환은 신교의 보물인데….”

광군영이 조금 머뭇거리며 물었다.

혹시라도 강한월이 마신환을 달라고 할까 걱정이 된 것이다.

문무대의 작전 중 확보된 물건이니 권한은 강한월에게 있는 게 맞았다.

하지만 신교의 교인이 아닌 자에게 넘기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보물.

“마신환은 천마의 상징. 신교로 돌아가는 게 당연하지. 광군영 자네가 계속 지녔으면 하는데.”

광군영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덩달아, 진가린의 눈빛도 기대감에 반짝였다.

“대장. 그럼 이 검은?”

“아까 곽철이 그러더군. 땅에 떨어진 물건은 먼저 주운 자가 임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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