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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34화 (34/210)

034화. 흑시의 경매 (3)

* * *

강한월이 보기에 아직 포기하지 않고 보물을 노리는 탁자는 셋이었다.

도교 문파들이 연합한 것으로 보이는 이십이 번 탁자.

회귀자와의 관계가 의심되는 십육 번 탁자.

그리고 아직 한 번도 옥패를 들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는 사 번 탁자.

“자, 다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칠천만이 나왔으니 이번엔 팔천만입니다. 팔천만 계십니까?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안 계시면… 아! 손을 드셨습니다. 사 번 탁자의 귀빈께서 팔천만을 지불하실 용의가 있으십니다!”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경쟁자에게 눈길이 쏠렸다.

십육 번과 이십이 번은 발끈하는 분위기였는데, 경매를 계속할지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수를 쓸지 고민하는 듯했다.

—광군영. 사 번 탁자. 아는 자들 아닌가?

—안 그래도 그런 것 같아서 유심히 살피던 참이야.

—그래. 그곳에서도 참석 안 했을 리가 없지. 자네가 해결하게.

강한월의 전음을 받은 광군영이 사 번 탁자로 향했다.

가격이 이미 팔천만까지 올라왔으니 더 이상 여유가 없었다.

불필요한 경쟁은 빨리 털어내야 하는 상황.

광군영은 사 번 탁자의 인물들과 은밀히 몇 마디를 주고받았고, 뭔가 못마땅한 듯 고개를 흔들던 옥패의 주인이 강한월에게 시선을 던졌다.

동공이 짜릿할 만큼 강렬한 눈빛.

호기심, 의혹, 불신… 많은 의미를 담은 눈빛이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경고였다.

—일단은… 더 이상 나서지 않기로 양해를 받았네.

자리로 돌아온 광군영은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누군데?

—구천마가(九泉魔家) 가주께서 직접 오셨더군. 천마신교 내에서 서열 십 위 안에 드시는 분이지. 계획이 있다 말씀드렸더니 경매에선 빠지기로 하셨지만… 대신 십만대산까지 마신환의 호위는 직접 하시겠다고….

—그래서 뭐라고 답했는데?

—싫다고 했지.

조금 전 그 강렬한 시선이 이해가 갔다.

광군영이 마교에서 잘나간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후기지수.

천마신교의 주축인 팔대마가의 가주 입장에선 호의를 거절하는 강한월 일행에게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가뜩이나 천마신교 내에 적이 많은데, 이제 한 명 더 추가된 것인가?

강한월이 쓴웃음을 짓는 사이, 공 집사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어마어마합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의 진행을 맡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자, 이제부턴 이천만씩 금액을 올리겠습니다. 일억. 있으십니까?”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고,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만 곳곳에서 들려왔다.

이제 진가린이 나서야 할 시간.

강한월과 눈빛을 교환한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옥패를 드는 순간.

사람들의 함성이 터졌다.

“이럴 수가! 대단합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무려 두 분이 동시에 옥패를 드셨습니다. 십육 번 탁자의 귀빈, 그리고 혜성처럼 등장한 십 번 탁자의 귀빈이십니다!”

진가린의 표정이 구겨졌다.

예상했던 최고 금액은 일억 냥.

더는 돈이 없는데, 십육 번 사내가 끝까지 쫓아온 것이다.

십육 번의 표정은 진가린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진행자! 이건 규정 위반이오! 십 번 탁자. 보물의 출품자가 직접 입찰에 참여하는 법이 어디 있소?”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고,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강한월은 말없이 품속에서 옥패를 꺼내 높이 들었다.

“아, 옥패가 두 개입니다! 같은 탁자에 앉았을 뿐 출품자와 입찰자는 각기 다른 자격을 갖고 계시는군요. 이런 경우는 규정 위반이라 볼 수 없겠습니다.”

공 집사가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농락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십육 번 사내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하지만 아직은 경매가 진행 중인 상황.

“이제 십 번 귀빈과 십육 번 귀빈의 경쟁이 되겠습니다. 일억이천만 계십니까?”

십육 번 사내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옥패를 들었다.

느껴지는 분위기로 볼 때, 이것이 그가 쓸 수 있는 한계치인 듯했다.

광군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고, 진가린은 어쩔 줄 몰라 옥패만 만지작거렸는데….

갑자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강한월을 쳐다봤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장이 까라면 까야지.

“이억!”

진가린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크게 외쳤고,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놀랍습니다! 십 번 귀빈께서 일억사천만을 건너뛰고 이억을 부르셨습니다! 흑시 역사상 최고가입니다!”

“믿을 수 없다! 보아하니 젊은 여인 같은데 이억 냥을 지니고 있다고? 출품자와 짜고 치는 것이 분명하다!”

십육 번 사내의 호통이 행사장을 울렸다.

폭발적인 기세까지 드러내는 것이, 적당히 넘어가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십육 번 귀빈께서 의혹을 제기하셨습니다. 역사적인 거래인만큼 저희도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십 번 귀빈님. 혹시 지니고 계신 자금을 확인시켜 주실 수 있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공 집사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 순간, 강한월이 꼬깃꼬깃 접은 뭔가를 진가린의 손에 쥐여줬다.

“확인해보세요.”

품속에서 꺼낸 전표와 방금 강한월이 전해준 것까지 공 집사에게 건네졌고, 두 번 세 번 꼼꼼히 전표를 확인한 공 집사가 무대로 돌아왔다.

“확인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십 번 귀빈께선 총 두 장의 전표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모두 믿을 수 있는 전장이 발행한 전표였고, 금액은 각각 일억 냥. 합이 이억 냥입니다.”

* * *

경매는 끝났다.

진귀한 음식과 명주가 넘쳐나는 연회가 이어졌지만, 강한월 일행은 조용히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대장! 너무해요. 일억 냥 전표를 꿍치고 있으면서 우리한텐 말도 안 해주고!”

“우리 것이 아니다. 며칠 전 흑시의 주인을 만났을 때 부탁해서 빌린 거야.”

“아니 그 여자가 뭘 믿고 대장한테 그런 큰돈을 빌려줘요? 혹시….”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던가.”

역시나 흑시의 주인 민정화가 별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변장하지 않은 아름다운 본모습.

아니, 실은 이것이 본모습이라 확신할 순 없지만.

“강 소협. 축하드려요. 결국 계획대로 되셨군요.”

“민 소저가 전표를 빌려주신 덕분이오. 그리고 아직 축하받기엔 이르군요. 무사히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행사장 주변으로 정체불명의 무인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습니다. 최소 두 곳 이상의 다른 집단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목적이….”

“그렇겠죠. 각오하고 있던 일입니다.”

“행사장 안의 안전은 저희가 책임집니다만, 밖의 문제에는 흑시가 관여할 수 없어요. 도움을 못 드려서 죄송하네요.”

“이미 충분히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럼 저희는 곧장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뒤돌아서는 강한월을 보며, 민정화는 아쉬움을 느꼈다.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상황이 이러니 붙잡을 수도 없었다.

‘치, 그래도 연락할 방법이라도 알려주고 가면 좋잖아.’

뭐, 크게 상관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연락할 방법 정도는 알아낼 능력이 되니까.

* * *

강한월 일행은 당당히 행사장의 정문을 나섰다.

안전을 위해서는 은신술을 발휘해 몰래 빠져나가는 것이 맞겠지만, 강한월이 원하는 것은 실은 그 반대였다.

보물을 노리고 불나방처럼 달려들 자들 속에서 회귀자를 찾아내는 것.

흑시를 찾은 진정한 목적은 이제부터인 것이다.

행사장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노골적인 기척이 느껴졌다.

어둠 속에 숨어 뒤따르는 그림자들.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그림자의 숫자는 늘어났고, 산길로 접어드는 순간 그들은 은밀함을 버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을 테니 번거로운 인사말은 생략하겠네.”

여전히 면사를 두르고 있었지만, 분명 십육 번 탁자의 사내였다.

“흑시의 경매도 끝났으니 이제 면사는 벗어야 하는 것 아니오?”

“흥, 그러는 자네들은 왜 아직 얼굴을 가리고 있나? 아직 거래할 뜻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어떤 거래를 말하는 것이오?”

“두말하지 않겠네. 마신환과 백학, 일억에 넘기게. 경매에선 이억에 낙찰받았지만, 솔직히 이쪽 주머니에서 저쪽 주머니로 옮긴 것뿐이잖나? 자네들 손해라고는 흑시의 수수료가 다일 테니까.”

“돈이 일억밖에 없소? 아까는 일억이천만까지 불렀던 것 같은데?”

“그건 정상적인 거래였을 때의 이야기고. 복면을 쓰고 칼을 빼든 성의를 봐서 값을 좀 빼줘야지. 아, 만약 마불진경까지 내놓는다면 삼억을 다 쓸 용의도 있네.”

진경의 이름까지 거론되자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남은 궁금증은 오직 하나.

저들 중 혈승이 있는가, 아니면 수하들만 보낸 것인가?

직접 맞붙어봐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거래에 응하지 않는 것이 당신한테는 더 좋겠군. 돈도 낭비하지 않고, 보물을 빼앗을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네.”

거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낀 듯, 사내의 몸에서 서서히 기세가 일어났다.

강한월은 재빨리 적들의 기운을 살폈다.

수장급으로 보이는 자들이 넷. 수하 무사들이 스물.

혈승이 직접 오지 않았더라도 만만한 전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강한월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았다.

—광군영. 진가린을 보호해. 자폭하는 혈면귀와는 느낌이 좀 다르지만 그래도 조심하고.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진가린이었다.

백학을 얻은 후 써볼 기회가 없어서 답답하던 차, 이런 기회를 놓칠 그녀가 아니었다.

날다람쥐처럼 튀어 나간 그녀가 복면인 두 명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원래 기본기가 충실한 데다, 흐름을 읽는 육감까지 지닌 그녀.

문무대에 들어온 이후 연이어 죽을 고비를 넘겼고, 수련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 전설적인 명검이 쥐어졌으니, 무림맹 신입 무사라고 보기에는 믿을 수 없는 강력한 공격이 펼쳐졌다.

진가린과 복면인이 격돌하는 순간, 나머지 복면인들이 광군영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강한월과 십육 번 사내도 맞붙기 시작했다.

십육 번 사내는 고수였다.

그것도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히 검을 놀릴 정도의 고수.

사내의 검에서 웅장한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쾌속의 묘를 일으키며 강한월에게 쇄도했다.

눈 깜짝할 순간, 사내의 검은 이미 강한월의 코앞에 도달했다.

웅장한 기세가 만들어낸 여파에 코끝이 시큰했지만, 부드럽게 허리를 돌려 검을 피했다.

곧바로 이어지는 사내의 공격.

쐐애애액.

내공이 둘린 검이 공기를 갈랐고, 이번에도 불과 한 치 차이로 강한월은 검격의 범위를 벗어났다.

쇄애액. 샤악.

속도에 속도를 더하며 번개같이 쇄도했으나, 가벼운 발재간과 부드러운 허리 놀림으로 빠져나가는 강한월을 보며 사내는 분통이 터졌다.

“흥,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거냐?”

여태껏 힘과 속도만으로 검을 날리던 사내는, 미꾸라지처럼 잘 피하는 강한월을 잡기 위해 검에 변화를 가했다.

속도 안에 격식이 녹아들기 시작했고, 강렬함만 뽐내던 기운이 날카롭게 정제됐다.

확실히 내기의 운용과 절묘한 초식이 결합되니 위력이 배가되었다.

공기를 짓이기는 파괴적인 소리는 줄어든 반면, 싸늘한 검기가 자연스럽게 맺히며 음험한 살기를 휘날렸다.

맺혀 있던 검기가 쭉쭉 늘어나며 사각을 찔러오자, 강한월의 상태가 위태로워 보였다.

“대장, 뭐 해요?”

복면인 두 명을 몰아붙이면서도, 강한월의 모습을 놓치지 않던 진가린이 외쳤다.

걱정이 되어 물은 것은 아니었다.

강한월에게 아직 여유가 있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으니까.

십육 번 사내의 속도는 빨랐지만 충분히 빠르지는 못했고, 초식은 변화무쌍하고 사악했지만 강한월의 감각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슬아슬하게 겨우 피하는 듯 보이는 것은, 실은 가장 효율적인 회피 동작이었다.

‘아직 충분히 약이 오르지 않은 건가? 슬슬 본색을 드러낼 때가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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