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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46화 (46/210)

046화. 십만대산 (7)

* * *

유선의 머릿속에서 단서를 발견한 천마는 꼬박 이틀 밤을 새우며 신녀의 치료에 전념했다.

이공자는 오 년의 폐관 수련을 명받고 감옥과 다름없는 천마동 안에 갇혔다.

마가의 가주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본가로 돌아갔고, 언제 내전의 위기가 있었냐는 듯 천마신교는 안정을 되찾았다.

사단이 있고 난 뒤 삼 일째 되던 날.

천마가 강한월 일행을 불렀다.

“신녀께서는 차도가 있으신지요?”

“생사의 고비는 넘긴 것 같으나 아직 정신을 차리진 못하고 있다. 내 할 바는 다 했으니 이제는 신녀 본인의 영성과 마신의 가호를 믿을밖에.”

애매한 답변이었지만, 강한월은 안도할 수 있었다.

천마의 표정을 보니 신녀의 회복은 시간문제인 듯했다.

“신녀께서 일어나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지만, 맡은 임무가 중한 관계로 저희는 복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이 마신환을 받아주십시오.”

강한월이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손목에 찬 팔찌를 끌어 천마에게 올렸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신환을 받았다.

“부족한 제자 놈들이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결국 마신환의 덕을 본 것은 자네뿐인 것 같군. 보물의 임자는 따로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어. 뭐, 어쩔 수 없지. 나에겐 별로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내가 보관토록 하겠네.”

“천마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마신환은 천마께도 효용이 있는 물건입니다.”

순간 천마의 표정이 변했다.

폐부를 찌를 듯 폭발하는 안광.

강한월의 말에 제법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자네는 내가 신외지물 따위에 연연하는 수준밖에 안 된다고 보는 건가?”

“그럴 리가요. 다만, 마신환을 발견할 때 얻은 정보가 있기에….”

“정보? 무슨 정보?”

“마신환에는 천마의 상징이라는 의미 외에도 실질적인 효용이 있다고 합니다. 신공의 수련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마기를 순수하게 정화해 마성에 물드는 것을 방어한다고 하며….”

“흥, 그런 것은 너희 같은 후기지수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그리고… 최종적으론 마신강림(魔神降臨)을 이뤄준다 했습니다.”

“무엇이라? 마신… 강림?”

파아앗!

천마의 격동이 얼마나 컸던지, 앉아있던 태사의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폭풍처럼 뻗어오는 격동의 기파가 워낙 거대해, 강한월도 급히 공력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해야 했다.

“그렇습니다. 마신의 힘이 강림하는 것은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마신환의 공능이 강신을 버틸 수 있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전대 천마 백무진께서 남기신 말입니다.”

천마가 침음을 흘렸다.

백무진을 마지막으로 실전된, 천마신공의 마지막 장이자 최강의 힘 마신강림.

여태껏 수도 없이 연구하고 파고들었으나 인세의 것이 아닌 그 파괴적인 힘을 감당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는데….

그 열쇠가 마신환이었다니.

어째서 이 작은 팔찌가 천마의 신물이자 상징으로 불렸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강한월. 네가 지금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것이냐?”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망설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의 힘만으로도 천마신교는 정파가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적. 마신강림이라는 이계의 신비가 더해지면 앞으로 저희 정파는 두고두고 열세에 놓이게 되겠지요.”

“그렇다. 그걸 아는 놈이 이걸 본교로 가지고 왔다는 거냐?”

“원래 천마신교의 것 아닙니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리고?”

“솔직히 기뻤습니다. 회귀자를 상대하기 위해선 힘을 키워야만 하니까요. 무림맹 내에도 이상기류가 포착되고 있고, 흑사련과 황실도 그들에게 장악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조직이 천마신교입니다.”

“흥, 네가 믿어준다는 것이 그다지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는군.”

“마는 마의 길을 걷고, 정은 정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반목과 경쟁은 계속될 거며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순리. 미래에서 온 회귀자들에게 휘둘리는 것보다는 각자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 옳겠지요.”

천마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들끓던 기파가 잠잠해진 것으로 보아 강한월의 말에 공감하는 것으로 보였다.

새로운 목표와 지향점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늘 허무로 물들어 있던 눈동자에도 생기가 돌았다.

“강한월. 신교는 은원이 분명하다. 비록 다른 목적이 있다고 한들 네가 본교에 공을 세운 것은 명백하니 이에 대한 보답이 있을 것이다.”

보답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규정되지 않았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무제한의 보상일 수도 있는 것.

만마의 종주가 직접 한 말이었기에 무게가 남달랐다.

거대 세력들과 싸워야 하는 강한월 입장에선 더더욱.

“천마의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미리 감사할 필요 없다. 앞으로의 일은 네가 하기에 달린 것이니. 그리고… 진가린이라 했던가? 너도 마신환을 발견하는 데 공을 세웠으니 보상을 할까 한다만.”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닌데….

강한월이 나서서 겸양의 뜻을 전하려 했으나, 진가린이 더 빨랐다.

“안 주셔도 괜찮지만 굳이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는 마단은 필요 없으니 다른 것으로… 그냥 편하게 은자나 전표도 좋고요.”

“흥, 맹랑한 아이로고. 너는 정파보단 우리 신교에 더 적합할 뻔했구나.”

피식 웃은 천마가 이번엔 광군영을 향해 말했다.

“광군영. 너에겐 줄 상이 없다.”

“저는 교를 위해 일한 것이니 당연히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 당연한 것이지. 넌 상이 아니라 벌을 좀 받아야겠다.”

천마가 농담을 하는 경우는 없었기에 광군영은 당황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천마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명색이 신교 최고의 후기지수라는 놈이 유선의 일장을 못 막고 나가떨어져? 네가 교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있구나.”

그 일이었구나.

스스로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었기에 광군영도 할 말이 없었다.

“강한월. 네 일정이 급한 것은 안다만, 이곳에 조금만 더 머물도록 해라. 내 보름 동안 광군영 이 녀석을 따끔하게 가르칠 생각이니.”

“보름으로 되겠습니까?”

“보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어떤 자에게는 한 초식 배우기에도 짧겠지만, 또 어떤 자에겐 벽을 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지. 뭐, 안 되면 죽는 거고.”

광군영의 표정이 구겨졌고, 반대로 강한월의 입가엔 미소가 그려졌다.

* * *

다음 날, 대공자가 찾아왔다.

천마가 진가린에게 보낸 하사품을 전달하러 온 것이다.

“천마께선 광군영과 함께 연공실로 드셨소. 그래서 내가 대신 전달하게 되었지.”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진가린의 두 눈은 대공자가 들고 온 보따리에 고정되었다.

“어머, 감사해라. 그런데 이게 뭔가요?”

“은자로 바꿀 생각은 말라는 천마님의 말씀이 계셨는데… 설마 이 귀한 것들을 돈으로 바꿀 정신 나간 사람은 없겠지.”

진가린은 속으로 뜨끔하면서 건네받은 보따리를 풀었다.

커다란 목곽 하나, 고급스러운 자기병 두 개, 그리고 책 한 권.

“목곽에 든 건 상품의 천년하수오. 본교에도 몇 개 안 남은 귀한 것이지. 최소한 십 년 공력은 얻을 수 있을 거요. 그리고 병에 든 것은 최상급 요상약과 금창약. 진 소저의 관상을 보아하니 사고 잘 치게 생겼다고, 이 약들이 필요할 거라 하시더군.”

나름 놀리는 말이었으나 진가린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천년하수오라니!

요상약과 금창약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천년하수오가 어떤 것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흑시의 경매에 출품될 정도로 귀하디귀한 영약.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통 큰 보상이었다.

“진 소저. 입이 귀에 걸리긴 이르오. 옆에 있는 책자가 천년하수오보다 가치가 더 크니까.”

“정말요? 이건… 무공 비급인가요?”

“그렇소. 수백 년 전 당시 천마셨던 분이 창안하신 신법인데, 이름은 무영보(無影步)요.”

“전대 천마께서 만드신 거면 이것도 마공일 텐데… 제가 익힐 수 있을까요?”

“천마께서 설마 못 익힐 걸 주셨겠소? 이 신법을 만드신 분은 마의 경지를 초월하신 분이고, 그래서 신법도 마인에겐 적합하지 않고 오히려 선가의 자유로움과 맞닿아 있다고 합디다. 성정이 맞는 인재가 익히면 천마신풍보와도 견줄만한 쾌속을 낼 수 있다 하셨소.”

선가의 자유로움?

그럼 딱 내 거잖아!

무영보라는 이름은 좀 뻔하지만, 그래도 천마가 주신 거니까 분명….

입이 귀에 걸린 진가린이 정신없이 책을 펼쳐 들었다.

약간 부러운 듯 그 모습을 바라보던 대공자가 이번엔 강한월에게 말을 걸었다.

“강 소협. 광군영이 천마의 사사를 받게 되어 보름간은 발이 묶였구려. 언제 시간이 되면 술이나 한잔합시다.”

“저야 언제라도 좋습니다.”

“하하하, 좋소. 오늘 밤이라도 자리를 마련하겠소. 그건 그렇고… 이곳을 떠나면 어디로 가보실 생각이오?”

“낙양으로 복귀할 예정입니다.”

“그렇군. 그럼 가는 길에 섬서의 종남산에 한 번 들러보시오.”

“종남산?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내가 교내에서 정보 수집을 담당하고 있소. 그러다 보니 하오문과도 교류가 좀 있지.”

“하오문에서 무슨 정보를 줬길래 그러십니까?”

“최근에 종남산 인근에 스스로를 환생거사(還生居士)라 칭하는 기인이 나타났다고 하더군. 환생도 보통 환생이 아니라 미래에서 회귀한 환생이라고….”

“회귀자?”

강한월의 미간이 좁혀졌고, 책 속에 빠져 있던 진가린마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렇답니다. 미래의 일을 귀신같이 맞추고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여 급속도로 세를 확장하고 있다고 합디다. 환생거사를 신처럼 믿고 따르는 자들이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고. 나도 강 소협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이제 알게 되었으니, 이 정보가 도움이 될까 하여….”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으면 좋겠고요.”

“안 그래도 하오문에 요청을 해놨소.”

강한월은 흑시의 주인 민정화를 떠올렸다.

아마도 자신에게 전달되도록 그녀가 천마신교 쪽에 정보를 흘린 것이리라.

민정화와 관계를 튼 것은 역시나 잘한 일이었다.

이번 여정은 여러모로 성과가 많았다.

* * *

강한월은 대공자, 부교주와 어울려 자주 술을 마셨다.

진가린은 천년하수오를 섭취한 후 무영보 수련에 매달렸고.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드디어 천마와의 수련을 마친 광군영이 나타났다.

온몸이 찢기고 터진 상처로 가득했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지 눈가가 퀭했다.

하지만 눈빛은 형형했고, 입가엔 자신감으로 비치는 미소가 감돌았다.

“나쁘지 않았나 보군?”

“이렇게 많이 얻어맞기는 평생 처음이었지.”

“천마께서 단단히 작정하셨나 보네. 다른 사람에게 맞는 꼴은 못 보시겠다는 거군.”

“그래. 다시 유선이랑 붙으면 밀리지 않을 거야.”

그 정도라고?

강한월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역시 천마는 천마.

불과 보름 만에 그 수준으로 끌어올리다니.

아마도 본인의 공력이라도 나눠준 것이겠지만, 너무 자세히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닌 법.

“곧바로 출발하려 하는데, 괜찮겠나?”

“겉보기만 이렇지 몸은 날아갈 것 같아. 씻고 옷만 갈아입으면 되네.”

“좋아. 두 시진 있다 출발하세.”

강한월은 바쁘게 움직였다.

폐관에 든 천마는 뵐 수 없었지만, 부교주와 대공자에겐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신녀를 찾아 쾌유를 빌었다.

마지막으로 한 일은 천마근위대가 구속하고 있던 유선을 데려온 일.

흑시를 거쳐 십만대산에 이른 긴 여정이 끝났다.

개개인의 무위도 크게 늘었고, 거대 조직의 협조도 획득한 의미 깊은 여정이었다.

앞으로의 고난이 만만치 않겠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성과를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강한월, 광군영, 그리고 진가린의 표정은 그래서 밝았다.

회귀자와의 또 다른 승부를 위한 새로운 출발선.

마중 나온 몇몇을 뒤로하고 힘차게 말에 뛰어올랐다.

“가자, 종남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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