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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47화 (47/210)

047화. 환생거사 (1)

* * *

청해를 거쳐 섬서로 향하는 길.

적당한 객잔을 찾지 못한 강한월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노숙을 하게 되었다.

노숙의 정취는 뭐니 뭐니 해도 모닥불.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가에 둘러앉아 술병을 돌리니 마음속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언니! 술을 혼자 다 마시면 어떡해요! 언제 다시 살 수 있을지 모르는데 좀 남겨놔야죠!”

“흥, 미친… 내가 왜 언니냐? 난 원래 여자가 아니야!”

“네네, 그럼 오빠라고 불러드리죠.”

“이게 진짜!”

티격태격하는 진가린과 유선을 보며 강한월은 쓴웃음을 지었다.

성격이 포악하고 호전적인 면이 있는 유선이었지만, 그래도 말은 제법 솔직하게 하는 편.

침묵으로 일관하던 돼지와 말 혈승, 혹은 음흉하기 그지없는 원숭이 혈승보단 제법 대화가 통했다.

술을 나눠 마시며 시답지 않은 말을 주고받는 것은 혹여 그 와중에 새로운 정보를 캐낼 수 있을까 싶어서였고, 그 역할을 진가린이 제법 잘해주고 있었다.

“어쨌거나 너희들 종남산에 가는 거 다 부질없는 짓이다. 날도 추운데 헛수고하지 말고 그냥 낙양으로 가지.”

“어머, 왜요? 종남산에 언니… 아니 포로님의 동료가 있을지도 모른다니까요. 혹시 알아요 그자가 포로님을 구해줄지.”

“흥, 웃기고 있네. 우리가 얼마나 고귀한 신분인데 환생거사 같은 싼 티 나는 이름을 써서 활동을 하겠냐? 그거 어설픈 사기꾼이 분명해. 시간 낭비야. 그리고 너! 한 번만 더 포로님이라고 부르면 정말 가만 안 둔다!”

“알았어요, 언니.”

“이게!”

그녀들이 으르렁거리는 사이, 모닥불에 마른 가지를 던져 넣던 광군영이 강한월을 향해 말했다.

“대장. 유선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에도 환생거사라는 이름은 너무 노골적이야.”

“그래, 노골적이지. 마치 찾아오라고 일부러 소문을 내는 것처럼.”

“함정일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가 볼 생각인가?”

“가 봐야지. 환생거사가 누군지 궁금한 것은 우리만이 아닐 테니까.”

“무슨 뜻이야?”

“이 소문을 들은 다른 회귀자들도 분명 확인하고 싶을 거야. 환생거사가 도대체 누군지. 환생거사 본인이 회귀자일 수도 있지만, 설사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회귀자들이 확인차 모여들 가능성도 있어. 그러니 우리도 가 봐야 해.”

* * *

드디어 종남산 어귀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하오문을 통해 추가 정보를 얻은 터라, 환생거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되어 있었다.

달포에 한 번 행사를 여는데, 매번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미래에 대한 계시 같은 말씀 선포, 그리고 만병을 고쳐준다는 성수와 영약 판매, 그리고 가장 큰 환호를 받는 것은 다양한 기적의 체험이라고 했다.

하오문에 따르면 다음 행사가 열리는 것은 이틀 후.

이번 행사는 특히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아주 특별한 손님의 참가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섬서의 유지들이 무불통지(無不通知) 만복자(萬卜子)를 초청했다고 하는구나.”

하오문이 전해준 정보지를 읽던 강한월이 말했다.

“만복자요? 강호에서 가장 점을 잘 친다는 노인이잖아요?”

“맞다. 점술에 능할 뿐 아니라 통찰력 있는 만물박사여서, 가짜와 사기꾼을 가려내는 일로는 최고로 꼽히는 사람이지.”

“그런 사람을 섬서의 유지들이 왜 부른 건데요?”

“환생거사가 회귀한 예언자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지. 만약 사실이라면 예언 한마디 한마디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니까. 유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어쨌거나 이번 행사는 구경하는 재미가 있겠네요.”

“그래. 만복자가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해줄 테니 편하게 된 거지.”

강한월과 진가린이 대화를 나누던 중, 얼굴을 잔뜩 찌푸린 유선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흥, 재미는 무슨.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사기꾼이라니까. 시간 낭비야.”

“유선.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 거요? 당신 동료가 잡히게 될까 두렵소?”

“두렵냐고? 야, 나 유선이야.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미친개라고!”

“그럼 당신의 이런 모습을 동료들이 보게 될까 봐 부끄럽소?”

정곡을 찔린 것일까?

유선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얼굴이 새빨개져 씩씩대는 그녀를 향해 강한월이 말했다.

“유선. 선택의 기회를 주겠소. 당신이 행사장에 가기 꺼려진다면 객잔 방안에 머물러도 좋소. 단, 함부로 움직이게 놔둘 수는 없으니 마혈을 짚고 포박을 할 거요. 아니면 우리와 함께 행동하는 것도 괜찮소. 대신 사람 많은 곳에선 입을 조심하겠다고 약속해야 하오.”

“내가 약속하면? 믿어는 줄 거고?”

“당신을 믿진 못하지. 내가 믿는 건 천마의 천형금제술과 마교의 고독술이오.”

분한 표정의 유선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랬다.

그녀의 몸에는 천마가 직접 시전한 강력한 금제가 펼쳐져 있었다.

함부로 공력을 끌어올리면 기맥이 뒤틀리고 사지가 오그라드는 끔찍한 혈도술.

그것으로도 안심하지 못했던지 그녀의 몸에 좁쌀만큼 작은 벌레 하나를 심었는데, 뇌 속에 자리 잡은 그 벌레는 특정한 호각음이 울리면 곧바로 폭발하여 독액을 뿜는 고(蠱)였다.

물론 호각은 강한월의 손에 있었고.

“나도 행사를 구경하겠다. 어떤 놈이 감히 회귀자를 사칭하는지 면상을 봐야겠어.”

“좋소.”

강한월이 행사장에 그녀를 데려가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혹시 그곳에 또 다른 회귀자가 나타난다면, 그녀의 존재가 하나의 유인책이 될 수 있기 때문.

혈승끼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일행들은 객잔에서 쉬게 하고, 강한월 혼자 거리로 나섰다.

하오문이 준 정보에 따르면 강호의 거대 세력들이 속속 종남산으로 모여들고 있었는데, 그중 몇몇을 만나거나 탐색해볼 필요가 있던 것이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진 한산한 객잔.

귀빈이 머물만한 모양새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만날 사람의 신분은 절대로 낮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정보력이라면, 어쩌면 자신이 도착한 것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강한월 소협이시죠? 대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역시나 객잔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 나타나 객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동창의 천호 장준검이 있었다.

“강 소협. 역시나 오셨군. 오늘 내일쯤이면 이곳에 도착하리라 예상하고 있었소.”

“장 천호를 뵙습니다. 북경으로 찾아봬야 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되어 송구합니다.”

“하하, 별말씀을. 그나저나 불과 몇 달 사이에 많이 바뀌신 것 같소이다?”

역시나 장준검은 강한월의 변화를 단번에 알아봤다.

그건 그의 수준 또한 못지않다는 뜻.

과연 장준검의 진정한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운 좋게도 기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죠.”

“다른 후기지수들이 들으면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하겠소. 그건 그렇고… 당연히 환생거사 일로 오신 거겠지요?”

“그렇습니다.”

“역시 무림맹에서도 관심을 기울이는군요. 남궁세가에서도 왔던데 거긴 별도로 행동하는 거요?”

“독자적인 움직임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궁세가가 와 있다는 것은 하오문의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흑시에서의 일이 있었던 후로 요주의 일 순위로 올라온 세가.

게다가 경매에서의 마찰이 있었기에 마주치면 불편한 일이 생길 가능성이 컸다.

“그렇군. 그리고 흑사련에서도 온 것 같던데?”

“그랬을 겁니다.”

“환생자를 자처하는 사기꾼 하나 나타났을 뿐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천마신교를 제외한 거대 조직이 모두 모였으니….”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특히나 장 천호께서 오신 것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황실에서 주목할 정도로 혹세무민이 행해진 것도 아닐 텐데요.”

“윗분의 명이 있었소.”

“동굴에서 보물을 찾아오라 명하신 분과 같은 분이겠군요. 혹시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 이야기는… 흐음, 언젠가 할 기회가 있을 거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합시다.”

중요한 정보가 있으면 공유하고, 협력할 일이 생기면 서로 돕자는 대화를 나눈 후 강한월은 객잔에서 물러났다.

몇 군데 더 돌아볼 곳들이 있었다.

남궁세가나 흑사련의 거처는 굳이 탐색할 생각이 없었다.

아직까지 장막에 쌓인 자들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

정보에 따르면 중소규모의 세력들도 많이 모여들었는데, 그중에 혈승이 섞여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중원표국, 백호방, 만검전… 한 지역에선 나름 이름을 떨치는 문파들.

그들이 묵는 객잔과 장원을 하나하나 살피며 발걸음을 옮겼다.

겉에서 훑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강한월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하나라도 더 눈에 담으며, 혹시 이질적인 무언가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렇게 두 시진 이상 곳곳을 누빈 강한월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영빈관이라는 화려한 객잔이었다.

섬서의 유력자들이 초청한 만복자가 머무는 곳.

유지들은 객잔을 통으로 빌렸고, 당연히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됐다.

그럼에도 객잔 앞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는데, 강호의 유명한 기인을 멀리서라도 한번 보려는 구경꾼들이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객잔을 바라보던 강한월이 쓴웃음을 지었다.

은신해서 몰래 침투하지 않는 한 만복자의 모습을 보기는 그른 상황.

섬서 유지들이 고용한 경비 무인들이야 무시해도 될 수준이지만, 만복자 본인의 무위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의외의 곳에서 도움이 찾아왔다.

“강 소협.”

누군가 등 뒤로 조용히 다가와 강한월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젊은 여인이 싱긋 웃고 있었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실례지만 누구신지…?”

“호호호, 저예요. 저 모르시겠어요?”

왠지 조금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낯익은 눈빛.

“민정화 소저?”

“맞아요. 그래도 잊지는 않으셨군요.”

그녀가 밝게 웃었다.

하오문주의 영애가 변장술에 능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됐다.

볼이 발간 귀여운 여인으로 변한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반갑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것은 어찌 아시고? 아… 당연히 아셨겠군요. 지금껏 계속 정보를 보내주셨으니.”

“그래요. 몇 가지 정보를 천마신교로 흘렸는데 그중에 환생거사의 건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길래, 이후로 추가 정보를 간간이 보냈지요.”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민 소저께서도 이곳에 계실지는 몰랐군요. 여기에 볼일이 있으십니까?”

민정화의 표정이 뾰로통하게 변했다.

강한월을 만날 생각으로 득달같이 달려온 것인데, 볼 일이 있냐고 묻다니.

“저야 뭐 원래 여기저기 돌아다니니까요. 이곳에도 하오문의 사업들이 있고요. 어쨌든, 보아하니 제가 도울 일이 있는 것 같군요.”

“도울 일이라니요?”

“저기 들어가고 싶은 거 아닌가요? 영빈관.”

“아, 맞습니다만… 민 소저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아무리 손님들이 전세를 냈다지만, 주인이 못 들어가는 법은 없지요. 영빈관은 저희 하오문 소유의 객잔이거든요. 호호호.”

“아! 그럼… 염치없지만 좀 부탁드립니다.”

“저만 계속 돕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좋아요.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하지만 저를 따라 들어가려면 강 소협도 신분 위장을 해야 해요. 따라오세요.”

민정화는 강한월을 데리고 인근에 세워 둔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걸려있는 수많은 옷 중 적당한 것을 찾아 강한월에게 입힌 후, 몇 가지 도구를 꺼내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얼굴색이 변하고 자연스러운 콧수염이 생겨났다.

눈매와 콧등의 선이 약간 변하니 조금은 날카로운 인상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이 정도가 좋겠어요. 만복자도 보통 사람이 아니니 과한 분장을 하면 알아챌 거예요. 자, 이제부터 강 소협은 저의 호위무사입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민정화의 얼굴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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