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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48화 (48/210)

048화. 환생거사 (2)

* * *

민정화와 강한월은 인파를 헤치고 영빈관 입구로 향했다.

미리 이야기되어 있던 것인지, 대기하고 있던 총지배인이 달려 나와 그들을 귀빈실로 안내했다.

만복자는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조금은 깐깐한 인상을 한 학자풍의 노인.

예상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첫인상이었다.

주름진 눈매 사이로 내비치는 중후한 눈빛은 내면의 학식과 연륜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깊이 숨겨둔 공력에 의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만만치 않은 거인이라는 것.

“강호의 큰 어른이신 무불통지 만복자 어른께 인사 올립니다. 저는 이 객잔을 운영하고 있는 민가라 합니다.”

예를 갖춘 민정화의 인사에 만복자도 미소로 답했다.

“하오문에 재기가 넘치는 후계자가 있다 하기에 진작부터 한번 만나보고 싶었지. 반갑네, 민정화 소저.”

역시나 무불통지라는 별호답게 만복자는 민정화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하긴,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만남을 허락한 것이겠지만.

“정보를 다루는 하오문의 일원으로서 천하제일의 현인이신 어르신을 뵐 수 있게 되어 얼마나 영광인지 모르겠습니다. 우습게도 환생거사라는 자가 나타나 이런 기회가 생겼네요.”

민정화는 자연스럽게 주제를 환생거사로 몰고 갔다.

호위무사로 변장한 강한월은 함부로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눈치 있게 행동하니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 환생거사의 등장이 큰 파장을 불러왔지. 예상보다 많은 거대 조직에서 관심을 가지더군. 그래, 민 소저가 보기엔 어떤가? 그는 사기꾼인가 아니면 진정한 예언자인가?”

“어리석은 제가 어찌 함부로 예단을 하겠습니까? 다만, 환생거사라는 명칭을 쓴 것은 좀 우습더군요. 게다가 일반 환생도 아니고 미래에서 온 회귀라니요? 그것으로 볼 때 아무래도 사기꾼일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미래에서의 회귀라니 확실히 황당하긴 하지. 그렇지만 세상일은 단정할 수 없는 법. 민 소저는 환생 자체는 믿는가?”

“윤회의 굴레를 벗고 열반하지 않는 이상 모든 생명체는 환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장의 라마승들에 의하면 그들의 지도자인 활불(活佛)은 모두 환생자라고 하고요.”

“환생은 믿는군. 그렇다면 회귀도 믿어야 하네. 환생 즉 윤회는 천하의 대도(大道). 천지를 통치하는 대도의 관점에선 시공간의 다름은 장애가 되지 않지. 즉, 앞으로의 시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면, 과거의 시간으로 환생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고, 그것이 곧 회귀일세.”

“그렇다면… 만복자 어르신께서는…?”

“그래, 난 이 세상에 회귀자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네. 다만, 환생거사가 회귀자가 맞느냐는 또 다른 문제야. 예단할 수 없지. 사기꾼일 확률도 분명히 있네.”

지적인 사고와 학문적 관점에서 회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민정화의 뒤에 서서 묵묵히 듣고 있던 강한월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어르신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결국 확인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데… 따로 계획이 있으신지요?”

“섬서의 유지들이 비싼 돈을 들여 나를 초청했으니, 나도 밥값은 해야겠지. 하지만 아직 고민이야. 어떤 방법이 있을까? 친구들이 붙여준 무불통지라는 별명은 그야말로 심한 과장이고, 나도 어리석은 늙은이에 불과하거든.”

“환생거사가 예언한 미래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렇지. 허나 당장 내일의 일을 예언하지는 않는다 들었네. 빨라야 몇 년 후의 일들인데, 사람들은 지금 당장 답을 달라 하니 문제 아니겠는가?”

방법이 없어 곤란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만복자와 민정화 모두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실은 둘 다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역시나 신통하기 그지없다는 어르신의 점괘와 비교해볼 수밖에 없겠군요.”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내 생각도 비슷하네. 나는 점을 통해서, 그리고 환생거사는 미래의 경험을 통해서… 결은 많이 다르지만, 앞날을 예견한다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지.”

“환생거사의 운명이 어르신의 점괘에 달렸군요.”

실로 무서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예언자이냐 사기꾼이냐가 다른 무엇도 아닌 점쟁이의 말에 의해 결정되게 되다니.

누구도 진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모든 것은 만복자의 마음에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였을까?

노인이 묘한 느낌의 눈웃음을 지었다.

장난기 같기도 하고, 뭔가 음모를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웃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만복자는 자신이 열쇠를 쥐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

* * *

강한월과 민정화는 하오문 소유의 또 다른 객잔으로 자리를 옮겼다.

간단한 안주와 술 한 병을 앞에 두고 마주 앉으니, 몇 달 전 흑시에서의 일이 생각나 민정화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민 소저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만복자 어른을 뵐 수 있었네요.”

“강 소협이 보기엔 그 노인이 어떻던가요?”

“대단히 지혜로운 노인임은 분명하더군요. 하지만 속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 노인,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음흉한 구석이 있더라고요.”

음흉하다고?

단정적인 민정화의 말이 제법 놀라웠다.

자신은 그런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

“어째서 그렇게 평가하는 겁니까?”

“환생거사의 진위를 판별하는 방법이요. 자신의 점과 비교하는 것 말고도 분명 방법이 있는데, 끝까지 모르는 척하더라고요.”

“다른 방법이요?”

“그래요. 나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명색이 무불통지라는 그 노인이 몰랐을까요? 그럴 리 없죠.”

“무엇입니까, 그 방법이?”

“흠,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일단 서장 밀교에서 활불의 재림을 확인할 때 사용하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술법, 그리고 천마신교 신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잔혼반 비술로도 영혼이 옮겨온 것인지 알 수 있겠죠.”

강한월은 놀란 표정을 감추느라 애써야 했다.

대단한 재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잔혼반 비술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만복자는 어째서 자신의 점괘와 비교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을까요?”

“자기 손으로 결론을 내려는 거죠. 뭐. 그래서 무얼 얻으려는 것인지야 모르지만. 게다가 아까 내 앞에서 그런 계획을 꺼내 놓은 것도 음흉해요. 마치 정보 집단인 하오문의 의견도 자신과 같다는 암묵적 동의를 받으려는 듯한….”

생각보다 복잡하구나.

강한월의 안색이 가라앉았다.

묵묵히 술잔을 드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민정화가 방긋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강 소협이 환생거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뭔가요?”

* * *

강한월이 민정화의 기습적인 질문에 곤란을 겪고 있던 그 시각.

종남산 중턱에 위치한 한 암자에서도 은밀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화려한 승복을 걸치고 길게 수염을 늘어뜨린 중년인이 중앙에 자리 잡았고, 그 좌우로 수행원으로 보이는 이남 일녀가 앉아 있었다.

“이제 이틀 후면 행사일이다. 준비에는 차질이 없겠지?”

“모두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크고 작은 세력들에서 사람들을 파견하여 산 아래 객잔에 진을 치고 있지요. 이번 참가 인원은 이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이 될 것 같습니다.”

“만복자는?”

“이미 도착하여 객잔에 머물고 있습니다. 영빈관이라는 최고급 객잔을 통째로 쓰고 있다 합니다.”

“흥, 늙은이가 아주 호강이군. 그나저나 감히 나의 존재를 확인하겠다 나서다니. 도대체 무슨 수를 쓰려는 것일까?”

생각만 해도 불쾌하다는 듯 환생거사가 인상을 썼다.

“호호호,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점치는 노인이 무슨 능력이 있으려고요. 기껏해야 자신의 점괘와 거사님의 예언을 비교해보는 정도겠지요.”

우측에 앉아있던 아름다운 여인이 환생거사의 기분을 풀어주려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좌측에 있던 사내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맞는 말이지만 어쨌건 조심해야 합니다. 때론 거짓이 진실을 덮는 법이고, 사람들은 만복자의 말을 신뢰할 가능성이 크니까요. 그자가 혹여 엉뚱한 속셈이라도 있을 경우 대사를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맞다. 미꾸라지가 끼어들어 흙탕물을 일으키게 놔둘 수는 없지. 대비책을 찾아야 해.”

“고민해보겠습니다. 방법이 뭐가 있을지….”

“그 외의 준비상황은? 이적과 예언의 말은 다 준비되었나?”

“이적 체험은 선녀와 천동이 준비를 갖췄습니다. 눈이 번쩍 뜨일 강력한 것으로 서너 가지를 선보일 겁니다. 예언은 준비가 되긴 했지만… 만복자의 행동을 보며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 이번 행사는 매우 중요하다.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네.”

환생거사가 점잖게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예언을 설파하기 시작한 지 어언 수개월.

이제 승부를 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추종자는 기하급수로 늘었고, 그들이 바치는 성금의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

이대로 세를 확장하느냐 아니면 여기서 끝을 보게 되느냐가 이번 행사로 결정될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들에 관한 소식은 아직 없는가?”

“어제까지 확인한 바로는 아직 종남산에 도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행사까지 겨우 이틀 남았는데….”

“내일 날이 밝으면 사람들을 풀어 다시 확인토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확인토록 하라. 이번 행사의 성패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바로 그들이니까.”

* * *

“대장! 지금까지 도대체 뭐 하다가 오는 거예요?”

달이 휘영청 높게 뜬 제법 늦은 시간.

민정화와 대화를 마치고 객잔으로 복귀한 강한월을 향해 진가린이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지만, 괜스레 위축되는 강한월.

“어? 어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구나. 동창의 장 천호를 만나보고… 또 만복자도 확인을 하느라….”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냄새는 무슨. 가볍게 몇 잔 한 것이 다인데. 왜? 무슨 일 있었어?”

“염탐꾼들이 여럿 찾아왔다고요. 혹시 무슨 일 있을까 봐 조마조마했네 진짜.”

“누가 왔었는데?”

“백학을 뺏으려 했던 남궁세가의 재수 없는 아저씨도 왔었고, 척 봐도 흑사련 냄새를 팍팍 풍기는 사파의 고수들도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라고요.”

“신경 쓸 것 없다. 지금은 서로 경계하는 분위기니까. 그들이 우리를 염탐하려 하는 것은 당연한 거지.”

“그건 그렇죠. 유선 언니가 한바탕 쌈질을 하려 했으니까 문제지.”

“뭐라고?”

강한월이 인상을 쓰며 유선을 바라봤다.

말썽을 피우지 않기로 단단히 약속을 해놓고 그새를 못 참아?

“내 잘못이 아니다.”

천마의 금제와 고독이 마음에 걸렸던지, 유선이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변명을 했다.

“사파의 잡것들이 나한테 치근덕댔다고!”

* * *

높은 담장 안에 감춰진 비밀스러운 장원.

흑사련이 종남산 어귀에 마련한 안가(安家)에 험상궂은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앞에 선 도도한 표정의 여인.

생명원의 관세음보살이라 불리던 그녀, 바로 정옥수였다.

“그래서? 신분을 확인했다는 거야, 못했다는 거야?”

“그것이… 덩치 큰 사내와 젊은 여인은 인상착의가 제법 흡사했는데, 검을 쓰는 사내나 껄렁껄렁한 사내는 없었습니다. 대신 여인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덩치 큰 놈은 마공을 쓴다고 알려줬잖아! 그건 확인했어?”

“네, 대공녀님. 안 그래도 여자 일행에게 치근대는 척하며 덩치 큰 놈이랑 시비를 붙어볼까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가 아주 미친개 같아서요. 외려 그 여자랑 싸움이 붙을 판이라 일단 철수를….”

정옥수의 눈빛이 표독하게 변했다.

외모와는 다른 미친 성격이라면 그녀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흑사련 특무대라는 놈들이 여자랑 싸움이 붙을까 무서워 도망을 쳐? 그걸 지금 보고라고 하는 거야!”

피잉~

퍽!

찻잔이 날아가 사내의 이마를 강타했다.

주르륵 피가 흘러 얼굴을 적셨지만, 그는 감히 닦아낼 생각도 못 했다.

“죄송합니다, 대공녀님! 내일은 반드시….”

“꼴도 보기 싫으니까 썩 꺼져!”

왠지 강한월도 이곳에 올 것 같아 일부러 먼 길을 왔는데, 수하들의 일 처리가 영 어설펐다.

‘흥, 걸리기만 해봐라. 이번엔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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