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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49화 (49/210)

049화. 환생거사 (3)

* * *

세가의 장로 남궁청이 창궁검대의 대주 남궁환과 은밀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냐?”

“물론입니다. 흑시에서 백학과 마신환을 두고 다퉜던 그자들이 분명했습니다.”

“허허, 이렇게 제 발로 나타나다니. 잘하면 우리가 큰 공을 세우겠구나. 그래, 보물들도 가지고 있더냐?”

“백학은 젊은 여인이 허리에 차고 있더군요. 마신환까지 확인하진 못했고요.”

“흠, 마신환이 더 중요한 데… 뭐 일단 백학이라도 확보하면 다행이고.”

“그나저나 정말로 태상가주님의 예지력은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곳에 오면 보물들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하셔서 설마 했는데… 이렇게 딱 들어맞다니요.”

“그분의 능력이야 말해 무엇 하나. 그러니 다른 세가들도 고개를 조아리는 거지.”

“그런데… 걱정이 좀 됩니다. 보아하니 여러 강력한 조직에서 고수들을 파견한 것 같던데. 흑사련도 온 것 같고, 심지어 동창도 움직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증원을 요청해야겠어. 환생거사의 신변을 확보하고 보물까지 챙기려면 창궁검대 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이틀 후가 행사인데 어느 세월에 전력을 보강한다는 말입니까?”

“마침 가까운 곳에서 팽가의 오호도수들이 훈련 중이라 들었다. 그들이라도 부를까 한다.”

“괜찮겠습니까? 이번 건은 우리 남궁세가 단독으로 처리하라 하셨는데….”

“정보만 잘 통제하면 문제없어. 팽가는 칼잡이 역할만 하게 될 거다.”

* * *

다음 날도 여러 염탐꾼들이 계속해서 객잔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일행은 별채 안에 틀어박혀 꼼짝을 하지 않았고, 담 밖에서 헛물을 켠 흑사련 특무대는 또 한 번 정옥수에게 질타를 당해야 했다.

강한월은 매우 조심스럽게 혼자 외출을 했다.

모두 궁금해했으나, 누구를 만났고 어떤 일을 하고 왔는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환생거사의 행사가 열리는 날.

아침부터 마을 전체가 들썩거렸다.

인근 주민들은 물론 먼 외지에서 찾아온 사람들까지… 어림잡아 삼 천은 넘어 보이는 인파가 동시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민초들이었으나, 간간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무인들도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물결에 섞여 강한월 일행도 산을 올랐다.

한 시진쯤 산길을 올라가자, 행사장으로 쓰일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환생거사의 추종자들이 북적대며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곳곳에 천막이 세워져 몸에 좋다는 성수와 영약을 팔고 있었고, 새벽녘에 올라와 미리 자리를 잡은 노점상들은 여러 가지 먹거리를 준비해 놓았다.

축제 같은 분위기.

사람들의 표정이 밝은 것을 보니, 행사를 꽤나 즐기는 듯했다.

“우와, 분위기 좋은데요. 환생거사가 민심을 제대로 얻고 있는 것 같아요.”

중앙 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 진가린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넌 순진한 거야 아님 멍청한 거야? 끔찍한 사교일수록 겉모습은 밝고 선하게 포장하는 법.”

유선이 코웃음을 치며 타박하자, 진가린은 황당할 수밖에.

“헐. 그쪽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흥, 남이사.”

그녀들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강한월은 요주의 인물들을 살폈다.

중앙 무대 인근에 각각 자리를 잡는 세력들.

남궁세가, 흑사련, 그리고 동창.

기감을 퍼뜨려 서로가 서로를 경계했고, 피부가 저릿할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들이 느껴졌다.

“어머! 강 소협. 여기에 계셨네요. 저도 함께 있어도 될까요?”

인파를 헤치고 민정화가 나타났다.

강한월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진가린이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먼저 입을 열었다.

“어? 당신은 흑시… 아니, 여하튼 그때 그…?”

“하하하, 맞아요. 저예요. 진 소저는 감각이 남다르네요. 저를 바로 알아보다니.”

“그냥 느낌이죠. 그나저나 우리 대장하고는 자주 만났었나 보네요? 어쩐지… 대장이 말도 없이 홀로 나다닌다 했더니 바로 민 소저 때문이었군요.”

말은 민정화에게 하는 것이었지만 눈초리는 강한월을 향했다.

진가린의 눈꼬리가 묘하게 올라가고, 광군영과 유선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뭐? 왜 그렇게 보는데? 나와 민 소저는 그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당황한 강한월을 구해준 것은 때마침 울리는 커다란 북소리였다.

둥, 둥, 둥….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커다란 함성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행사의 진행을 맡은 자가 무대에 올랐다.

“이렇게 찾아주신 여러분께 환생거사님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모이신 분들. 미래가 궁금하여 찾아주신 분들 모두에게 하늘의 복이 임할지라!”

“복이 임할지라!”

크게 소리치는 것도 아니었지만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진행자도 제법 공력이 높은 것 같았다.

환호하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진행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벌써 몇 번째입니까? 환생거사께서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시어 여러분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주신 것이? 벌써 몇 차례입니까? 이름난 의원들도 고치지 못한 병을 치료하고, 누구도 풀지 못한 여러분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

“환생거사! 환생거사!”

“그렇습니다. 이처럼 환생거사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회복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계십니다. 바로 여러분을 위해 먼 미래에서 이 땅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환생거사를 믿지 못해 의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우! 누구냐? 불신자를 몰아내자!”

중간중간 선동꾼들이 섞여 있는 것일까?

진행자의 의도에 맞춰 사람들은 쉽게 흥분했다.

“아니, 그들을 적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신자도 알고 보면 불쌍한 민초. 그들이야말로 따뜻한 위로와 치료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환생거사께서는 긍휼을 베푸시어 오늘 모든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고, 모두가 하나 되는 복락의 세상을 열겠다 하십니다!”

“우와아! 환생거사는 관대하시다!”

무대 앞 특별석에 자리 잡은 섬서 유지들과 만복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권력과 명성을 가진 그들이, 진행자의 말 몇 마디에 불쌍한 의심병 환자들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마음속에 불신이 가득한 자들은 말합니다. 내게 기적을 보여달라! 그러면 믿겠노라고. 허허, 안타깝습니다.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다니. 어쨌거나 좋습니다. 원한다면 기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진행자는 잠시 뜸을 들였다.

사람들의 기대와 함성이 최고조로 올라간 순간, 큰소리로 외쳤다.

“소개합니다. 미래에서 온 환생거사님!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선녀와 천동!”

우레와 같은 함성.

그리고 실로 볼만한 장면이 펼쳐졌다.

무대 뒤쪽의 대나무 숲에서부터 세 사람이 천천히 날아왔다.

앞장선 미녀와 소년이 바구니에 든 꽃잎을 뿌렸고, 환생거사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뒤따라 날았다.

무림 고수가 펼치는 경신술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

정말로 하늘의 선인이 구름을 타고나는 것 같은 우아한 동작이었다.

“저… 저거! 설마 정말로 나는 거예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가린이 물었다.

안력을 돋우어 살펴보았으나, 몰래 끈을 매달고 나는 척하는 속임수로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은 그리 보이는구나. 공중에서 운신하는 무공 중 최고라는 곤륜의 운룡대팔식도 저처럼 천천히 날 수는 없으니.”

날아오는 환생거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강한월이 답했다.

확실히 놀라운 모습.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기도 했다.

혈승들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런 이적을 펼친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멋진 데요. 이거 둘 중 하나일 텐데… 정말로 기적을 행하는 초인이거나, 아니면 허공답보의 수준에 오른 초월경의 고수이거나. 이게 기적이 아니라면 오히려 문제겠어요. 초월경의 고수가 동시에 셋이나 나타난 것이니. 흠, 그도 아니라면… 혹시?”

민정화가 나름의 평가를 하는 사이, 이십여 장 거리를 날아온 환생거사가 무대 위에 도착했다.

선녀와 천동이 뿌려 놓은 붉은 꽃잎 위로, 긴 수염과 장포를 펄럭이며 내려서는 환상적인 모습.

산중을 메아리치는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삶에 지치고 병들어 고통받는 형제들이여! 나 환생거사가 여기 왔노라!”

“우와아아아! 환생거사!”

“누군가 기적을 확인하려 한다 들었다. 나의 존재 자체가 가장 큰 기적인 것을. 불신자는 기적을 눈앞에 두고도 믿지를 못하는구나. 안타깝도다.”

“불신자를 벌하십시오, 환생거사님!”

“아니, 어리석은 중생을 계도하는 것이 나의 일. 큰 기적을 믿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이해하기 쉬운 작은 기적을 선보이도록 하겠다. 선녀와 천동은 기적을 행하라!”

환생거사의 근엄한 명령을 받은 선녀와 천동이 무대 중앙으로 나섰다.

그림에서나 나올 법한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인, 그리고 무릉도원에서 뛰어놀다 나온 것 같은 귀여운 얼굴의 소년.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하네요.”

선녀와 천동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던 민정화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무엇이 확실하다는 말이오?”

“저들… 변장을 하고 있어요. 천동이라는 소년은 축골공으로 키를 줄인 것 같고.”

변신술의 귀재인 그녀가 한 말이니 믿어도 좋을 듯했다.

그녀가 알아챘다면, 혹시 만복자도?

만복자의 반응이 궁금해진 강한월이 무대 앞에 자리 잡은 그를 쳐다보다, 때마침 고개를 돌린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비릿한 웃음.

비웃는 듯한.

그 웃음이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환생거사의 행동을 비웃는 것인지….

아니면 영빈관에서 만났던 강한월을 알아본 것인지.

만복자는 다시 앞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녀가 무대 중앙으로 사뿐사뿐 걸어 나온 것이다.

어떤 기적이 펼쳐질까?

행사장에 모인 수천의 사람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무대를 주시했다.

선녀가 손짓하자 몇몇 추종자들이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들고 나타났다.

무대 앞 공간에 허수아비를 설치하더니, 몇 동이의 물을 부었다.

도대체 무얼 하려는 것일까?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될 때, 선녀가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환생거사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늘이시어. 신령한 불을 내리시어 세상의 헛되고 악한 것들을 정화하여 주소서!”

선녀가 엄숙한 표정으로 기원을 올렸다.

몇 차례 주문이 반복되었고 하늘로 치켜든 두 손에서 밝은 광채가 일었다.

그 순간, 갑자기 허수아비가 활활 타올랐다.

흠뻑 젖은 허수아비에서 타오르는 것이라고 믿기 힘든 거대한 불길이 삼 장 높이로 치솟았고, 관중들의 함성 또한 불길처럼 타올랐다.

“우와아! 불의 기적이다! 환생거사 만세! 선녀 만세!”

아름다운 선녀의 모습은 활활 타오르는 불빛을 받아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환호하는 관중들을 향해 그윽하고 온화한 미소를 던진 선녀가 두 팔을 내리자, 언제 불길이 타올랐냐는 듯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이것 참. 대단한데요? 강 소협이 보기엔 어떠세요? 무공 고수가 삼매진화를 일으키면 이렇게 허수아비를 태울 수 있을까요?”

민정화의 질문에 강한월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허수아비에 불을 붙이는 건 어렵지 않지만, 순식간에 삼 장 높이로 치솟는 불길을 만들 수는 없죠.”

비록 말은 안 했지만, 그녀의 머릿속엔 불길을 치솟게 할 서너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허수아비를 적신 것이 물이 아니라 기름일 수도, 혹은 허수아비 안에 초석 가루를 넣어 놨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화염 계열의 고명한 부적술을 쓴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불길처럼 뜨겁게 열광하는 관중들 앞에서는 그 어떤 추리와 분석도 소용이 없었다.

사실은 중요치 않다.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믿는 순간 이건 기적인 거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 기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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