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추적-50화 (50/210)

050화. 환생거사 (4)

* * *

선녀의 기적을 본 사람들의 함성은 한참동안 계속됐다.

왠지 저 신령한 불길이라면 자신들의 고통을 모두 태워줄 것 같은 기대를 담고서.

그런 기분에 취한 것은 무대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섬서의 유지들도 마찬가지였다.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은 만복자뿐.

관중들의 함성이 잦아들자, 이번에는 천동이 나섰다.

“주변에 숨어있는 온갖 악귀들. 만병의 근원이요 고통의 씨앗인 악한 영들. 모습을 드러내라!”

근엄한 표정으로 천동이 외쳤다.

이건 무슨 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것도 잠깐….

“으아악! 이게 뭐야!”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행사장 곳곳에서 악귀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갑자기 나타났다.

반투명한 그것들이 사람들 사이를 스쳐 다니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성스러운 바람이 불어와 악한 세력들을 물리칠지어다!”

그 순간, 천동이 품에서 작은 부채를 꺼내 힘차게 휘둘렀다.

부채에서 시작된 작은 바람이 살랑살랑 무대 전체로 퍼지더니, 무대 아래로 내려오며 오히려 더 강한 바람이 되어 관중들 사이로 불어갔다.

바람에 휩쓸리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안개처럼 스러져버리는 악귀 형상들.

“우와아아! 신풍(神風)이다! 천동님이 우리를 구해주셨다!”

선녀가 일으킨 불길보다 더 거대한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갑자기 튀어나온 악귀 형상이 불러온 공포가 환생거사에 대한 믿음과 존경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건… 정말….’

이번에는 민정화도 할 말이 없었다.

무림 고수의 장풍(掌風)으로도 행사장 전체를 덮을 수는 없으니까.

“모두 진정하십시오! 너무 놀라실 것 없습니다. 환생거사님과 함께 한다면 이러한 기적은 평범한 일상이니까요. 신령한 불길과 성스러운 바람이 앞으로도 여러분을 보호할 것입니다!”

진정하라는 진행자의 말은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었고.

사람들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목이 쉬고 지쳐 더 이상 소리를 지를 수 없을 때까지 환호성은 이어졌다.

“우리는 함께 확인했습니다. 환생거사가 하늘을 날아오시는 것을! 선녀가 세상의 어둠을 태워버리는 것을! 천동이 악귀를 날려버리는 것을! 아직도 부족합니까? 아직도 믿지 못하는 겁니까? 자, 이제 섬서의 유지들이 초청한 만복자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환호와 야유가 뒤섞인 가운데, 만복자가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왔다.

환생거사가 연출한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을 리 없겠지만, 노련한 만복자의 표정엔 여유가 넘쳤다.

“강호 제일의 현인이신 만복자님. 환생거사님의 실체를 증명해주시기 위해 먼 길을 와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불신자들의 의심을 해소하는 것에 일조해주시길 바랍니다.”

“허허, 애는 써보겠소. 어떤 결론이 날지는 모르지만….”

“무어라고요? 방금 이 놀라운 기적들을 직접 보셨지 않습니까?”

“글쎄… 놀라운 장면이긴 했소. 하지만 그것이 환생거사가 미래에서 온 것을 증명하진 못하지.”

“환생거사님의 신통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있어 불과 바람을 불러오고 악귀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대단한 신통인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도력 높은 도인이나 고위 주술사가 부적이나 진법의 도움을 받는다면 유사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오.”

만복자의 대답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것.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은 진행자가 관중들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 들으셨습니까? 이게 천하제일의 현인이라는 만복자의 답변입니다. 도인이나 주술사도 할 수 있다고 하는군요.”

잠시 말을 끊어 주의를 집중시킨 진행자가 보다 격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그 도인과 주술사는? 우리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을 때 그런 능력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여러분의 병을 치료하고 마음을 위로해준 사람은 그들입니까, 아니면 환생거사입니까?”

“우우우! 만복자는 헛소리 집어치워라! 환생거사님을 의심하지 말아라!”

사람들의 야유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관중들을 선동하여 기선을 제압한 진행자가 만복자를 향해 말했다.

“기적을 기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만복자 당신도 불쌍한 중생이군요. 뭐, 좋습니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환생거사님의 진실을 확인하면 되겠습니까? 당신이 방법을 제안해보시지요.”

“기적은 내 관심 밖이오. 내가 온 목적은 환생거사가 미래에서 온 회귀자인지를 밝히는 것. 미래에서 왔다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겠지? 그것을 확인하겠소.”

“말은 그럴듯하군. 하지만 어떻게요?”

“강호의 동도들은 알고 있지. 나 만복자가 다른 건 몰라도 점괘 하나는 정확하다는 걸. 내가 앞날을 점쳐봤고, 여기 열 가지 내용을 적어 왔소. 점을 본 결과대로 적은 것도 있고, 일부러 틀리게 적은 것도 있지. 자, 환생거사는 이 내용을 보시고…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리는지 말해주시오. 만약 정확히 맞춘다면, 환생거사가 회귀자임을 내가 보증하겠소.”

“흥, 당신이 속임수를 쓸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걱정 마시오. 무엇이 맞고 틀리는지 미리 이 봉투 안에 적어놨으니. 믿을 수 있는 자에게 봉투를 맡기고 그가 심판을 보게 합시다.”

진행자는 다시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환생거사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만복자가 원하는 대로 하라. 어차피 예언자의 길은 고난의 길. 이 정도 수모를 견디지 못하면서 어찌 중생을 구제할 수 있으랴.”

만복자의 방법이 무엇일지는 진작에 예상했던 바였다.

진행자가 반발하는 척한 것은 관중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연출에 지나지 않았다.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 환생거사에 대한 호감이 더욱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

만복자는 다시 한번 쓴웃음을 지었다.

심판을 볼 공정한 인사로 남궁세가의 장로가 선발되었다.

강한월 입장에선 믿을 수 없는 곳이 남궁세가지만, 일반인이 보기엔 공명정대한 정파의 기둥.

만복자에게서 봉투를 건네받은 남궁청이 환생거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험험, 갑자기 심판관을 맡게 되어 당황스럽지만, 공정하게 진행할 것을 약속하겠소. 첫 번째 문제는 이것이오. 지금부터 이 년 후에 호북 지방에 큰 지진이 나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할 거라는 점괘요. 환생거사, 이것은 사실이오, 아니면 거짓이오?”

“거짓이다. 그런 큰 지진이 발생하는 것은 삼 년 후 사천에서다. 안 그래도 내 사천의 민초들을 위한 대책을 간구하려던 참이지.”

과연 맞는 답인지 아닌지는 알려주지 않고, 남궁청이 다음 질문을 던졌다.

“두 번째 문제요. 안타깝게도 오 년 후 대대적인 역병이 돈다는 점괘가 나왔소. 하지만 황실의 의원들이 빠르게 대처하여 치료법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실이오?”

“사실이다. 치료법 발견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었지. 서역의 약재가 주된 재료로 사용되는 치료법이고, 덕분에 몇몇 상단은 큰돈을 벌게 된다.”

환생거사는 거침없이 답했고, 만복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심경의 변화가 있는 것 같았는데, 사기꾼임을 확신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세 번째 문제입니다. 앞으로 이십 년 후 절강성에서 고대의 유물이 발견되는데….”

“그건 알지 못한다.”

“대답을 거부하는 거요?”

“나는 미래에서 왔지만 모든 역사를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 기억에 없는 일이니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환생거사는 조금도 위축됨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당황한 남궁청이 만복자의 의견을 물었고, 만복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뭐, 좋소. 넘어갑시다. 그럼 다음 문제요.”

남궁청이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문제는 총 열 가지였고, 환생거사는 다섯 가지에 답을 했고 나머지 다섯은 모른다고 했다.

이제 결과를 발표해야 할 차례.

봉투 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들어 정답을 확인한 남궁청이 관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험험. 그럼 시험의 결과를 발표하겠소. 다들 들으셨겠지만 환생거사는 열 문제 중 다섯 가지에 답을 냈고, 그 다섯 개의 답변은 모두 만복자의 점괘와 일치했소.”

어?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답한 다섯 개 모두 일치했으니 시험을 통과한 건가?

아니면 열 문제 중 다섯을 놓쳤으니 판단 보류?

사람들의 시선이 만복자에게 향했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만복자가 좌중을 향해 선포했다.

“나 만복자의 견해로는… 환생거사는 미래에서 온 것이 분명하오.”

열렬한 환호성이 터졌다.

환생거사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관중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반신반의하던 자들마저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다.

상황을 주시하던 각 세력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쉼 없이 귓속말과 전음을 주고받고, 몇몇은 급하게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의 행동을 준비하는 듯했다.

“대장. 결론이 이렇게 났네요. 우리도 빨리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마음 급한 진가린이 물었지만, 강한월은 담담한 표정으로 무대 위를 주시할 뿐이었다.

그가 뚫어지게 바라본 것은 만복자.

마치 그가 환생거사보다 더 중요하단 듯이.

그런 강한월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복자는 환생거사와 전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환생거사. 자네 도대체 정체가 뭔가?

—아직도 의심을 풀지 못한 건가? 만복자 당신이 낸 시험은 통과한 것으로 아는데?

—그랬지. 그러니 더욱 의심이 갈 수밖에.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서 좋을 게 없을 텐데. 하필이면 회귀자를 사칭하다니.

—사칭? 만복자 당신은 정말 믿음이 부족하군.

—허허, 뭐 좋아. 어쨌거나 혼란을 야기시키려는 의도는 성공한 것 같군. 하지만 감당할 수 있을까? 이제 여러 세력들에서 자네를 잡으려 할 텐데?

—만복자 당신 오지랖이 넓군. 내 걱정까지 해주고 말이야.

—대책이 있는 건가? 뭐, 좋아. 그럼 또 보세나. 만약 자네 목이 계속 붙어있을 수 있다면 말이지.

만복자는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서 내려갔고, 섬서의 유지들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고 행사장을 떠났다.

이후로는 환생거사의 추종자들을 위한 축제.

더 볼 필요 없다고 느낀 강한월 일행도 조용히 산을 내려왔다.

* * *

“대장. 행사를 지켜본 소감은 어때? 성과가 있었던 건가?”

객잔으로 돌아온 후 궁금해 죽겠다는 듯 광군영이 물었다.

좀 전까지는 하오문의 민정화가 있었기에 함부로 묻지도 못했던 것이다.

“흥, 성과는 무슨. 환생거사 그놈 사기꾼이 분명하더만.”

빈정대며 유선이 끼어들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강한월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유선. 환생거사가 혈승이 아니라고 확신하나?”

“당연한 걸 왜 물어?”

“미래의 일을 정확히 맞췄는데도?”

“예언자인가 보지 뭐. 하지만 회귀자는 아니야.”

“거리가 멀어 확실하진 않았지만, 환생거사에게서 챠크라의 기운도 느껴지던데?”

“맞아. 그러니까 더더욱 아닌 거다. 어디서 감히 그런 어설픈 챠크라를 우리와 비교해? 흥, 어림도 없지.”

“그렇군. 공력을 제한당했지만 유선 너는 여전히 챠크라를 감지할 수 있는 거군. 그럼… 만복자의 챠크라는 어땠는데?”

“뭐… 뭐라고? 갑자기 만복자는 왜….”

유선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렸다.

혹시나 하고 찔러본 것인데, 역시나 유선은 무언가를 알고 있던 것이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만복자에 대해선 왜 묻냐니까?”

유선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강한월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광군영. 성과가 있냐고 물었지? 성과가 있을 것도 같다. 우리는 만복자를 잡으러 간다.”

“만복자? 그도 의심스러운 것은 맞지만, 그래도 환생거사가 우선 아닌가?”

“환생거사는… 결국 우리 손에 들어올 거야.”

“뭐? 아니, 어떻게? 흑사련과 남궁세가에서도 노리고 있을 텐데….”

“나중에 설명할게. 일단 만복자를 잡는 게 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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