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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51화 (51/210)

051화. 피의 제사장 (1)

* * *

급하게 객잔을 빠져나온 강한월 일행은 민정화를 먼저 찾았다.

만복자의 위치를 묻기 위해서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녀는 정확한 약도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만복자는 이미 영빈관을 떠나 외딴 장원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하오문 정보원들이 위치를 파악해 놓은 것이다.

석양이 붉게 물들어가는 시간.

강한월 일행은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을 벗어나 인적이 드문 길을 타고 질주하기를 한참.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진가린이 불만을 쏟아냈다.

“대장. 이 여자 꼭 데리고 가야 해요? 생긴 거랑 다르게 무지 무겁다고요!”

진가린이 유선을 업고 뛰고 있던 것이다.

“데려가야 한다. 무거우면 광군영에게 맡기던가.”

진가린이 슬쩍 광군영을 쳐다봤지만, 그의 반응은 매몰찼다.

“난 여자는 업지 않는다. 그리고 가린이 너! 소요자 어르신의 지도를 받고 천마께서 하사한 천년하수오까지 복용한 애가 겨우 이 정도를 무겁다고 하면….”

“알았다고요!”

본전도 못 건진 그녀는 유선의 허벅지를 꼬집는 것으로 분풀이를 대신했다.

하지만… 그녀를 데려오길 잘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 * *

달도 뜨지 않은 암흑의 밤.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낡은 장원의 어스름한 불빛이 스산한 분위기를 더했다.

강한월 일행은 지체 없이 담장을 넘어 장원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기 때문일까?

제법 넓은 장원이었지만 관리하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중간 문 몇 개를 지나 대청에 도착했다.

밤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촛불 하나만 외롭게 불을 밝히고 있는 곳.

그곳에 만복자가 있었다.

“누가 오나 했더니… 의외로군. 하오문의 호위무사라니. 아니, 이렇게 온 것을 보니 하오문 소속일 리는 없겠지만.”

“저를 알아보시는군요.”

“무불통지란 이름은 괜히 붙은 게 아닐세. 그나저나 자네들이 다인가? 환생거사는 어디 있나? 꽤나 공들여 함정을 준비했길래 우르르 몰려올 줄 알았건만.”

“함정? 환생거사의 행사가 당신을 옭아매기 위한 함정이었단 말입니까?”

“시치미 뗄 것 없네. 내가 궁금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정한 자가 누구냐는 것일 뿐. 미래에 일어날 일을 꿰고 있던 것으로 보아 회귀한 형제 중 배신자가 있음이 분명한데… 이제 보니 누군지 알 것도 같군.”

서늘한 시선으로 유선을 노려보며 만복자가 말했다.

역시나 혈승끼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것 같았다.

“난 아니니까 쓸데없는 의심은 하지 마라.”

만복자의 시선이 불편했는지, 유선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흥, 네가 먼저 입을 열었든, 아니면 고문에 의한 것이든 결국 매한가지. 네가 형제들을 배신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난 아무 말도 안 했다니까!”

“함정을 판 자, 배신한 자, 주제를 모르는 자. 너희들에게 내릴 자비는 없다. 속죄는 피 흘림으로만 가능한 것. 혈신께 드리는 산 제물이 되거라.”

이해하지 못할 이 말들은 무슨 주문이었던 것일까?

사방에서 짙은 피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역한 혈향이 퍼지며 만복자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런 제길. 하필 제사장이라니… 야, 강한월! 얼른 도망가야 해!”

유선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렸다.

제압당한 후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던 그녀가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생소했다.

“만복자가 제사장급인 거요?”

“그래. 이미 이 장원은 혈제의 영역이 된 거야. 빨리 빠져나가지 않으면 안 돼. 너희 때문에 나까지 죽게 생겼다고!”

“이미 늦은 것 같은데….”

강한월이 느낀 그것을 다른 일행들도 느끼고 있었다.

인기척 하나 없던 장원에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숨어있던 것인지….

피 안개를 헤치며 다가오는 수없이 많은 그림자들.

유선이 허공을 향해 분노의 외침을 토했다.

“야, 이 새끼야! 난 배신자가 아니라니까!”

* * *

강한월 일행이 만복자의 장원을 향해 달리던 그 시각.

남궁세가의 창궁검대와 하북팽가의 오호도수는 종남산 중턱으로 은밀히 접근하고 있었다.

목표는 환생거사가 머무는 암자.

만복자의 시험을 통과하며 미래에서 온 회귀자임이 검증되었으니, 반드시 신병을 확보하여 남궁세가로 데려가야만 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소나무 숲으로 모두들 신속하게 움직였다.

이 숲만 지나면 환생거사의 거처.

다른 세력들도 그를 노리고 있을 것이나, 다행히 자신들보다 빠른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잠깐!”

남궁청 장로가 발걸음을 멈추며 낮게 외쳤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처럼 달리던 세가의 무인들이 동시에 멈춰 섰다.

“장로님, 왜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다. 고도의 진법이 설치되어 있는 것 같아.”

“진법이요? 저는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요?”

“그러니까 고도의 진법이라는 거다. 예측했던 소나무 숲의 크기와 우리가 달리는 속도를 견주어 보면 진작에 숲을 통과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숲의 끝이 보이질 않으니….”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숲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자욱한 밤안개도 마음에 걸렸다.

안색이 가라앉은 남궁환이 창궁검대의 대원 두 명을 불렀다.

“너희가 먼저 정찰을 해야겠다. 숲이 끝나는 지점만 확인하고 오도록. 단, 이백 장 이상 전진했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으면 즉시 돌아와라.”

임무를 맡은 대원 두 명이 신중한 표정으로 정찰에 나섰다.

남궁세가의 무인에게 왕복 사백 장의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어쩐 일인지 이 각의 시간이 흐를 동안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쇄애액.

퍼억!

이번에도 애먼 소나무만 두 동강이 나서 쓰러졌다.

벌써 몇 번째인지….

남궁세가와는 다른 방향으로 숲에 들어왔던 정옥수와 흑사련의 특임대는 벌써 한 시진째 유령 같은 허깨비들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나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연기처럼 흩어지는 정체불명의 기운들.

깜짝 놀라 검기를 뿌려 댄 탓에 벌써 몇 그루의 소나무가 쓰러졌는지….

“대공녀님. 이것 좀 보십시오!”

쓰러진 소나무 주변을 탐색하던 대원 하나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검기에 맞아 찢어진 종잇조각.

“이건? 부적(符籍)이잖아?”

정옥수의 인상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드디어 유령 같은 허깨비가 나타난 원인을 찾았다.

가뜩이나 숲에 설치된 진법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곳곳에 요상한 부적이 설치되어 있던 것이다.

“흥, 좋아. 진법과 부적이 문제라면 차라리 잘됐어. 모조리 밀어버리고 전진하면 되니까. 백부님. 도와주실 거죠?”

정옥수가 고개를 돌려 뒤쪽에 있던 노인에게 물었다.

그녀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따라나선 흑사련의 원로.

생명원 사건 때 등장했던 도화곡의 흑한쌍귀보다도 한 단계 윗줄의 고수인 염왕장(閻王掌) 초윤이었다.

“흘흘. 나야 당연히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 테지만, 꽤나 소란스러울 텐데 상관없겠냐?”

“백부님이 계신데 뭐가 걱정이에요? 게다가 이 지겨운 숲속에서 허깨비들하고 숨바꼭질을 하느니 시원하게 다 부숴버리는 게 좋잖아요.”

“허허허, 맞는 말이다. 이래서 내가 널 좋아한다니까.”

시원하게 웃어 젖힌 노인이 공력을 끌어올리자, 소맷자락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주변 기류가 변하며 소용돌이쳤고.

노인이 두 팔을 죽 뻗자 강렬한 장력이 뿜어져 나왔다.

콰콰콰콰아앙!

광포한 장력이 지면을 헤집으며 전면으로 휘몰아쳤다.

장력의 여파에 휘말려 사방으로 쓰러지는 소나무들.

눈앞으로 시원한 길이 뚫렸고, 확실히 효과가 있는지 겹겹이 쌓여 있던 안개가 조금은 옅어진 듯했다.

“백부님의 염왕명부장은 정말 대단해요! 이렇게 몇 번만 더 밀어붙이면 숲을 벗어날 수 있겠어요!”

정옥수가 기쁨에 찬 감탄사를 터뜨렸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조금 이른 감이 있었다.

초윤의 장력으로 진법과 부적을 박살 내며 전진하던 중, 폭음을 듣고 방향을 잡은 남궁세가의 무리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 * *

콰아아아앙!

소나무 숲에서 터져 나오는 폭음이 암자 안에까지 생생하게 들려왔다.

“허, 이거 대단한 고수가 온 모양이네. 소리만 들어도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어.”

암자 안에 느긋하게 앉아 차를 마시던 환생거사가 혀를 내둘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색이 태연한 것이 그리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래 봐야 숲을 벗어날 즈음에는 내공이 바닥나 있을 겁니다. 설치된 진법이 그리 허술한 것이 아니니까요.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숲 안에서 삼박사일은 뺑뺑이 돌 게 만들 수도 있는데….”

행사 진행을 맡았던 사내가 조금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때,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손님을 맞이하러 나갔던 천동이 돌아온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숲 안이 하도 난장판이어서 멀찍이 돌아서 오느라 늦었어요.”

“어, 수고했다. 장 천호께서도 잘 오셨습니다.”

환생거사가 반갑게 맞이한 손님은 동창의 장준검이었다.

남궁세가와 흑사련은 진법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웬일인지 장준검만큼은 천동을 보내 안내해온 것이다.

“장준검이라 합니다. 그런데 호칭을 어찌해야 하나요? 환생거사라 불러야 하는지…?”

“하하하, 이미 그에게 이야기 들으신 거 아닌가요?”

“누구 말씀이신지? 강한월 소협을 뜻하시는 건가요?”

“아, 이런 이런. 제가 몇 달 동안 혼신의 연기를 펼치느라 정신이 오락가락합니다. 헤헤, 대장을 ‘그’라고 부르면 안 되는데….”

환생거사가 쑥스럽게 웃었고, 장준검은 아직도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강 소협에게서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습니다. 환생거사는 악인이 아니니 체포할 필요 없다고. 오히려 당신을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역시 대장답네요. 딱 필요한 이야기만 했군요.”

“강 소협의 부탁이 있으니 돕긴 하겠지만… 나도 좀 압시다. 환생거사 당신, 그리고 이분들은 도대체 누굽니까?”

“이런. 숲 안에 설치된 진법과 부적들을 보고 대충 눈치채신 줄 알았는데. 그런 고도의 진법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지요. 대표적인 곳이 공명의 후예인 제갈세가. 그리고 사용된 부적 또한 아주 귀한 것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명색이 모산파의 부적술이니까요.”

“그럼 당신들은?”

“저희는 강한월 대장과 함께 일하는 대원들입니다. 환생거사 역할을 맡은 저는 곽철이라 하고요, 선녀는 소영영, 천동은 위청보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계획은 여기 제갈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지요.”

“강 소협의 대원들이라고요? 그럼 이 모든 것이 계획된 연극이었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말하자면 함정을 판 것이죠. 대장의 지시에 의해서.”

“도대체 무얼 위해 함정을 팠다는 말입니까?”

“함정의 목적은… 지금 이 시각 대장이 있는 그곳에 있겠지요.”

* * *

“제발 좀 죽으라고!”

진가린이 악을 쓰며 검을 휘둘렀다.

시퍼런 검기를 두른 백학이 휩쓸고 간 자리에 팔 한 짝이 뚝 떨어졌지만, 새빨간 눈동자의 괴인은 고통도 못 느끼는 듯 공격을 계속했다.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질긴 생명력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핏빛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백여 명의 괴인들은 마치 불사신 같았다.

팔다리가 잘리고 심장에 검이 박혀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괴물들.

게다가 몸은 강철같아서, 검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상처를 내기도 힘들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 뭐냐고요? 강시인가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건 유선밖에 없었다.

“강시가 아니야. 피의 제사를 통해 만들어진 혈병(血兵)들이다. 팔다리를 베어봐야 소용없어. 멈추게 만들려면 목을 잘라야 해!”

“그게 말처럼 쉽냐고요!”

그 순간, 일 검에 혈병 셋의 목을 베어버리며 강한월이 다가왔다.

“유선. 이들도 성전이 선포되면 자폭을 하나?”

“흥, 아는 것도 많구나. 성전까지 아는 놈이 겁도 없이 제사장급을 잡으러 와? 하지만 이들은 아니야. 혈병은 자폭은 못 해.”

“그래? 그럼 부담 없이 죽여도 되겠군.”

강한월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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