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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59화 (59/210)

059화. 무림맹주 (3)

* * *

한참을 지그시 바라보던 맹주가 입을 열었다.

“병이 재발할 것이 우려되어 조용히 지내는 거라고?”

“그렇습니다. 제 공력이 십성에 이르기 전까지는 무리해선 안 된다는 게 사부님의 판단이셨죠.”

납득한 걸까?

아니면 속아주기로 한 걸까?

맹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을 풀었다.

“신주의협께서 맹주로 재직하실 당시 절반 이상 자리를 비우셨던데, 이제 보니 자네를 치료하기 위해서였군.”

“아… 아마 그럴 겁니다. 제가 무림맹에 큰 폐를 끼쳤습니다.”

“폐는 무슨. 자네가 원해서 아팠을 리도 없고. 실은 자네를 승진시켜 다른 중요한 일을 맡겨볼까 했는데 당분간은 어쩔 수 없겠군. 몸 관리 잘하도록 하게.”

“맹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건강에 대한 당부의 말까지 들었으니 이제 되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던 강한월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맹주님 바쁘실 텐데 저는 이만….”

“아, 잠깐.”

“네? 무슨 따로 하명하실 일이라도…?”

“강 대주 자네… 사부님과 연락하고 있나?”

“최근에는… 아닙니다. 사부님께서 홀로 유람 중이셔서요.”

“그런가? 알겠네. 혹시 연락이 되거든 후임 맹주인 내가 간절히 뵙고 싶어 하더라고 전해주시게.”

* * *

강한월이 떠났다.

맹주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닫힌 문만 바라봤다.

“맹주님. 의혹을 푸신 거 아닙니까? 어째 더 심란해 보이십니다.”

“흥, 이런 엉큼한 사람 보았나. 다 알면서 뭘 물어? 머리만 더 복잡해졌구먼.”

“강 대주의 말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나도 사람 보는 눈은 있잖은가. 그 친구 분명 심성이 바르고 믿음직한 사람이야. 그런데…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거든. 말이 앞뒤가 맞는 것 같으면서도 또 좀 이상하고 말이야.”

“어떤 부분 말입니까?”

“아팠다는 건 사실일 거야. 전에 소림사 방장에게 들은 적이 있어. 신주의협이 백팔나한진의 약점을 찾고 보완책을 만들어준 대가로 금강부동신공과 대환단 한 알을 줬다고. 제자의 병을 치료하는 데만 쓴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백팔나한진에서 약점을 찾아요? 역시 신주의협은 대단하군요. 그런데요?”

“그러니까 강 대주가 아팠던 건 믿는다고. 아주 많이 아팠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일 년의 절반을 자리를 비울 필요가 있었을까? 맹주전에 빈방이 몇 개인데? 그냥 제자를 불러들여 맹에서 같이 살면 되었을 텐데.”

“강 대주를 치료하는 것 외에 다른 일도 있었을 거라 보시는 거군요.”

“아, 몰라. 여튼 자꾸 신경이 쓰여. 그 양반이 보통 양반이 아니잖아. 혹시라도….”

“혹시… 뭡니까?”

“모른다니까. 머리 쓰는 일은 총군사인 자네가 해야지 왜 자꾸 나한테 물어봐?”

“죄송합니다. 어쨌건 제가 보기엔 과민반응이십니다. 은퇴한 신주의협에 대해선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천마신교, 흑사련, 오대세가… 게다가 황실까지 다른 신경 쓸 일이 차고 넘치니까요.”

“내 말이. 겉에서 보기엔 태평성대지만 어째 불안하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맹주를 맡는 게 아닌데. 실수했어.”

“맹주님께서 맹을 잘 이끌고 계신데요 뭐. 강한월 그 아이도 곧 병을 치료하고 한몫해줄 거고요.”

“응, 그건 그래. 보아하니 대성까지 얼마 안 남은 것 같더라고.”

“아, 아까 확인하셨죠? 어떻습니까, 실력이?”

“대단하더군.”

“청룡대주와 비교하면….”

“청룡대주? 좀 전에 자네 입으로 사신단주보다 나을 거라고 했잖나?”

“그건 그냥 맹주님 장단에 맞춰드리느라… 설마, 그 정도입니까?”

“내가 확인한 것만 그 정도야. 문제는 숨겨둔 힘도 있는 것 같다는 거지. 뭔가 꽁꽁 싸매 놓고 드러내질 않던데 도대체 그게 뭔지….”

“허허, 대단하군요. 역시 소림사 대환단의 힘일까요?”

“대환단은 무슨. 분명 신주의협의 가르침 덕분인 거지. 역시 대단한 분이란 말이야. 허, 또 궁금해지네. 신주의협은 지금 어디 있는 걸까?”

제갈현선이 맹주의 잔에 찻물을 따랐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쓸데없는 걱정은 잊기를 바라면서.

신주의협의 과거 행보에 대해선 그 역시도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의문을 덮을 만한 큰 믿음도 있었다.

신주의협이라는 이름이 주는 믿음.

그래, 그분이 엉뚱한 일을 꾸밀 리가 없지.

맹주가 괜히 신경이 날카로운 거야.

당장 신경 써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보고하려는 일 같은….

“맹주님. 남궁세가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남궁세가? 천마신교에 항의단 빨리 안 보낸다고 또 뭐라 하던가? 도대체 오대세가의 수장이라는 집이 뭐 하는 짓이야? 낙양 혈사 그거 누가 봐도 마교의 짓이 아닌 게 뻔한데.”

“하지만 공식 조사단의 보고서가 마교를 지목한 터라….”

“흥, 조사단 배알도 없는 놈들. 얼마를 받아먹고 그딴 보고서를 썼는지.”

“냄새가 나죠. 하지만 이번엔 마교에 항의하라고 재촉한 것은 아니고요, 실은 더 이상 항의하지 않는 조건으로 다른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래? 다른 거 뭐?”

맹주의 관심이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제갈현선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보고를 계속했다.

“정파 무림의 후기지수를 대상으로 행사를 열자고 합니다. 말하자면 신룡대회인데, 친목도 다지고 비무도 하고 그런 행사랍니다.”

“나쁜 생각은 아니군. 그런데 왜 남궁세가가 주도하는 건데?”

“원래 나서기를 좋아하는 집안 아닙니까? 주변의 시선을 즐기고 싶은가 보지요.”

“어쨌건 괜찮은 생각이야. 정마대전보다 훨씬 좋군. 자네가 남궁세가와 함께 잘 준비해보게.”

“그리하겠습니다.”

용무를 마친 총군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막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아, 잠깐! 이제 막 기억난 건데… 자네 조카도 문무대에 있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제갈윤이라는 녀석이지요.”

“강한월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

“그게… 실은 문무대에 들어간 이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더군요.”

“그런가? 아쉽군. 자네 조카면 분명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본가의 자기 부모한테도 연락을 안 한다고 합니다.”

“할 수 없지 뭐. 우리 첩자 노릇 하라고 할 순 없으니. 어쨌거나 자네 조카도 이번 신룡대회에 참가를 시키게. 좀 챙겨주라고. 명색이 가족인데.”

“알겠습니다.”

제갈현선이 씁쓸하게 웃으며 방문을 나섰다.

대회에 참가시키면 그 녀석이 좋아할까?

인상을 구기는 제갈윤의 표정이 눈에 선했다.

* * *

맹주전을 나와 문무대로 돌아오는 길.

강한월은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맹주와의 만남은 일단 성공적이었다.

십 할 장담할 순 없지만, 구 할의 믿음은 생겼다.

맹주는 회귀한 혈승이 아니다.

무림맹의 수뇌부까지 혈승에게 장악된다는 최악의 가정을 피했으니 기쁠 법도 한데, 왠지 마음은 무거웠다.

생각을 복잡하게 만드는 두가지 일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강한월 스스로의 문제였다.

맹주의 의식이 자신을 들여다볼 때, 몸속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린 것 같은데….

마치 누군가 엿보는 게 싫어서 급하게 숨는 느낌.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분명치는 않았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두 번째는 사부에 관한 것이었다.

맹주는 신주의협이 재직하던 시절, 절반 이상 자리를 비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병을 치료하려 금검문에 들른 것은 길어야 일 년에 한두 달.

그렇다면 나머지 시간 동안 사부는 무엇을 한 걸까?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 천하를 헤매셨던 것인가?

아니면 어디 조용한 곳에서 신공을 연마하셨나?

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부를 만나보기 전에는 해결되지 않을 의문.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문무대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 번째 혼란을 느껴야 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를 본 순간이었다.

“대장.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일은 잘 보신 거예요?”

진가린이 밝게 웃으며 물었다.

혼자서 맹주를 만나러 간 강한월이 걱정되었던 모양.

그도 그럴 것이 만에 하나 맹주도 회귀한 혈승이라면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었으니까.

“어… 그래.”

강한월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진가린도 덩달아 당황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침착하기 이를 데 없던 대장이 이런 표정이라니?

“왜요? 대장 무슨 일 있었어요?”

강한월은 말없이 진가린을 바라봤다.

그녀가 문무대에 들어온 후 거의 매일 붙어있었고 또 여행도 함께 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변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감각이 변한 것.

아마도 혈령을 관조하며 얻은 감각의 영향일 테지.

그래,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진가린에게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어떤 것.

그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느낌.

걷는 내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던 사부에 대한 생각마저 단숨에 잊게 만드는 것이었다.

“진가린. 술 한잔할까?”

강한월과 진가린은 가까운 주루로 자리를 옮겼다.

달빛이 쏟아지는 탁자에 앉아, 그다지 중요할 것 없는 몇 마디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진가린은 자연스럽게 강한월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 우수에 젖은 눈빛… 대장의 모습은 그날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오늘 나누게 될 대화는 훨씬 더 무거운 것이리라.

“대장. 할 말 있으면 편하게 하세요.”

“음? 아… 너야말로 할 말이 있어서 문밖에서 나를 기다린 거 아닌가?”

실은 그랬다.

홀로 맹주를 만나러 간 강한월이 걱정된 것도 사실이지만, 실은 남들보다 먼저 그를 만나고 싶었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결심이 선 것은 아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것 말을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 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무슨 뜻이지?”

“그러니까… 제가 보통 사람하고 달라 보이지 않냐고요.”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그녀가 먼저 꺼내자 강한월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설마 재능이 남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테고… 역시 본인도 느끼고 있는 걸까?

강한월이 아무 대답을 못 하고 술잔을 집어 들자, 진가린이 보다 직접적으로 물었다.

“대장. 제가 회귀자일 것 같다는 생각 안 드세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회귀자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양보나 타협도 없는 그였지만, 진가린을 향해 차마 그렇다는 답을 하긴 힘들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든 것이지?”

“문무대에 들어온 이후 계속 생각해오던 거예요.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봐.”

“소영영 선배가 잔혼반 비술의 시범을 보여줬을 때부터 생각하던 거예요. 선배가 비술의 진언을 외울 때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었는데… 잔혼반이 나타나는 자리를 본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어요. 저는 가슴 여기에 심한 화상 흉터가 있거든요. 마치 잔혼반을 확인 못 하게 일부러 감추려는 것처럼.”

“고의로 만든 흉터라는 이야기인가? 도대체 누가?”

“그건 모르죠. 어릴 적 집에 불이 나서 생긴 화상이라 들었는데 솔직히 저는 기억이 안 나요.”

강한월은 모르는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스스로를 의심했다는 말인데, 그런 고민을 안고 회귀자를 잡으러 다녔으니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다음은 항주 오성상단에서 이막기를 잡을 때였죠. 혈복 비술에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저는 멀쩡했잖아요.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살았다는 기쁨보다는 저 자신에 대한 의혹과 두려움이 더 컸어요.”

그 후로도 그런 이상한 일들이 계속 반복됐다.

이막기의 피를 주입 받고도 혈복으로 변하지 않은 것에서 시작해….

백로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것.

소요자라는 대단한 고인의 지도를 받았다지만 그 짧은 시간에 검기를 응결한 것.

주위를 감탄하게 했던 그 능력들이, 실은 마음의 고통으로 계속 쌓여왔던 것이다.

“대장. 말해봐요. 아무래도… 전 죽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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