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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60화 (60/210)

060화. 장백산 (1)

* * *

죽어야 하지 않겠냐고?

얼마나 꺼내기 힘든 말이었을까.

“쓸데없는 생각 마. 급박한 상황에서 불가사의한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진가린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강한월은 그런 핑계로라도 다른 이유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죠. 한 번이라면 모를까, 알 수 없는 힘은 매번 저를 도와줬어요. 생명원에서 싸울 때도, 십만대산으로 가는 길에도… 저는 제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당연한 듯 해냈죠. 대장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었어요?”

“그렇다 해도 네가 회귀자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어. 잠재력이 생길 수 있는 다른 원인도 많아. 특수한 내공이나 희귀한 영약, 혹은 보기 드문 체질을 타고난 경우….”

“이 알 수 없는 힘이 저에게 말을 걸어온다면요?”

“…정말이냐?”

그렇지 않기를 바랐기에 애써 다른 원인을 찾고 있었지만, 이번 질문은 의미가 달랐다.

영성을 가진 힘은 단순히 잠재력이라 치부할 수는 없으니까.

“뭐 구체적으로 말을 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느낌이긴 한데… 제 안에 숨겨진 힘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저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듯한 그런 느낌. 마치 스스로 생각하며 저를 지켜주려는 것 같은….”

“그 외에도 또 있나? 가린이 네가 회귀자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또 다른 건… 원숭이 혈승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자가 저에게서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같은 회귀자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느낌이 드는 정도라고? 그럼 아닐 거다. 혈승이라면 보다 확실하게 서로를 알 수 있거든.”

“아마도… 제가 혈승임을 각성하기 전이기 때문이겠죠.”

어쩌면.

그래… 어쩌면.

“진가린. 혼자서 마음고생이 심했겠구나.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것이지? 지금까진 숨겨왔던 이야기를….”

“더 이상 혼자 끙끙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선 언니 때문에 괴로워하는 소영영 선배를 보고 마음이 아팠거든요. 그리고 더는 시간이 없기도 하고요.”

“시간이 없다니?”

“이제 몇 달 후면 제 스물네 번째 생일이에요. 제갈윤 선배가 말하기를 회귀자는 늦어도 이십사 세 내에는 각성을 한다고 하더군요. 아무 대책도 없이 혈승으로 각성해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진가린은 애써 웃고 있었다.

손에 든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꿋꿋이 말을 이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대장이 혈승을 느낄 수 있는 그 감각은 며칠 지나면 사라진다면서요? 그래서 더 늦추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대장의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러니 이제 솔직히 말해주세요. 저는 회귀한 혈승이 맞나요?”

그녀는 확신했다.

강한월의 입에서 ‘그렇다’라는 답이 나오리라고.

문무대 앞에서 자신을 봤을 때 그의 표정.

그때는 티 안 내고 참아야 했지만, 강한월의 놀란 그 표정이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던 것이다.

“모르겠다.”

“모르… 겠다고요?”

“그래. 솔직히 모르겠어. 뭔가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그게 혈승의 기운인지는 알 수 없다.”

“역시… 제가 각성하기 전이라서….”

“그럴지도. 그리고 각성 전이라면 잔혼반 비술로도 확인할 수 없을 거야. 네 가슴에 화상 흉터가 없더라도.”

“그럼 전 어떡해야 하죠? 각성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진가린. 네가 용기를 내서 말해준 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나 같으면 그렇게 못했을 거야. 하지만 벌써부터 네가 회귀자일 거라고 확신할 필요는 없어. 넌 진가린이고 문무대의 대원이다.”

“하지만….”

“그래, 물론 확인은 해야겠지. 내가 돕겠다.”

따뜻한 달빛을 받으며 강한월과 진가린은 문무대로 돌아갔다.

걷는 내내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회귀자인 것이 밝혀지면 단칼에 죽여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진가린은 묵묵히 걷기만 했다.

결국 그렇게 되더라도, 당장엔 대장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강한월도 그냥 걸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주겠다는 말을 속으로 삼킨 채.

* * *

늦은 시간 진가린과 함께 복귀하는 강한월을 보고 대원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누구도 나서서 물을 수 없었는데, 그 정도로 강한월의 표정이 심각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회의를 해야겠다. 민 소저와 장 천호도 함께하시죠.”

“그러시죠. 대장. 잠이야 나중에 자도 되죠. 맹주 건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맹주는 회귀자가 아니야.”

“아! 정말요?”

“잔혼반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니 공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느낌엔 확실해.”

“대장이 무사히 복귀한 것을 보고 그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 다행이네요. 무림 맹주까지 혈승이라면 정말 끔찍했을 텐데….”

제갈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실은 개인적인 고민도 하나 있었던 것이다.

맹주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는 총군사 제갈현선이 바로 자신의 숙부이니까.

만약 맹주가 혈승이었다면…?

어휴,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상황.

“그래, 다행이지. 하지만 그게 다야. 당장엔 맹주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

“왜요? 맹주에게 회귀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아직 꺼려지세요?”

오히려 맹주가 신주의협과 자신에 대해 의심하는 것 같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 또한 희미한 추측에 불과하니까.

“아직은. 잔혼반으로 확인한 건 아니니까. 게다가 맹주의 속도 모르겠고. 민정화 소저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 역시 강 소협의 의견에 동의해요. 아직은 때가 아니죠. 특히 남궁세가의 경우가 그래요. 확실한 증거를 잡기 전까진 맹주로선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오대세가를 적으로 돌린다는 건 곧 무림맹의 해체를 의미하니까요.”

“역시 증거가 필요하군요.”

“맞아요. 회귀자가 존재한다는 증거만으로는 부족해요. 남궁세가에 혈승이 있다는 증거, 흑사련에, 그리고 황궁에 혈승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만 맹주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원점이네요.”

“네. 하지만 정보는 좀 더 구체화되었죠. 이걸 보세요.”

민정화가 커다란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자, 축, 인, 묘… 십이간지가 적혀 있었고, 원숭이, 돼지, 말, 개, 닭에는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줄에는 황실, 남궁세가, 흑사련.

“보시는 것처럼 열두 명의 혈승 중 체포하거나 사살한 것이 다섯 명입니다. 그리고 강한 확신이 있는 곳이 세 곳. 도합 여덟 명이죠. 즉, 저희가 아직 감을 못 잡고 있는 혈승이 네 명이 있어요.”

아니, 넷이 아니라 세 명이야.

조만간 나도 포함될 테니까.

진가린이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지만, 그걸 알아챈 것은 강한월뿐.

“자, 이 시점에서 저희가 선택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아시겠죠?”

“전혀 모르겠는데?”

광군영의 대답이 당황스러웠지만, 민정화는 살짝 웃은 후 설명을 계속했다.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첫째, 아직 밝혀진 게 없는 네 명의 혈승을 찾아내는 것. 둘째, 확신을 갖고 있는 황실, 남궁세가, 흑사련에 집중하는 것. 어느 것을 선택하실 건가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건 강한월밖에 없었고, 평소 생각해둔 바가 있었기에 거침없이 말했다.

“하나를 고를 순 없습니다. 둘 다 병행할 수밖에.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제갈윤은 정보를 수집해서 숨어있는 네 혈승의 종적을 찾아야 합니다. 민 소저의 정보력이 합쳐진다면 그만큼 가능성이 올라갈 겁니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세 곳에 대해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겠죠.”

“맞습니다. 남궁세가와 흑사련은 당장은 어렵습니다. 저희가 파고들 접점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황궁이라면….”

강한월의 시선이 장준검을 향했다.

“황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여기 장 천호가 계시니까요.”

“맡겨주시오. 강 소협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몹시 위험할 겁니다. 황궁 내부의 일이라 저희가 도와드릴 수도 없고요.”

“황궁이 위험하지 않은 적은 단 하루도 없었소.”

“그래도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혈승을 체포하실 필요는 없어요. 다만, 가장 가능성 높은 게 누구인지만 밝혀내 주시면 됩니다. 증거가 있으면 더욱 좋겠고요.”

장준검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하지만 눈빛은 처연해 보였다.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었지만, 굳이 이 자리에서 밝히진 않았다.

조만간 가족 같던 은인들에게 칼을 겨눠야 할 터였다.

장준검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일 당장 북경으로 가겠소.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반드시 확실한 내용을 밝혀내고 연락을 드리겠소.”

“감사합니다. 그럼 황실은 장 천호께 맡기고, 나머지는 정보 수집과 분석에 전념하는 것으로….”

“잠깐만요.”

“민 소저.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그럼요. 아직 중요한 게 남았어요.”

“혹시… 유선에 대한 겁니까?”

“그래요. 강 소협도 알고 계시고, 제갈 소협도 그렇고… 모두가 그녀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네요?”

문무대 대원들에게 있어 유선은 특별했다.

소영영과 친자매처럼 지내온 관계.

그렇기에 누구도 쉽게 그녀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전…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공과 사가 구분되어야 함은 알고 있습니다.”

소영영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고, 민정화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라도 나서서 말할 겁니다. 왜냐면… 소영영 소저를 위해서이기도 하니까요.”

민정화는 붓을 들었다.

까맣게 지워지는 유선의 이름.

“그, 그건 무슨 뜻입니까? 설마 유선을 죽이자는…?”

놀란 곽철이 호들갑을 떨었고, 민정화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제갈윤이 설명을 거들었다.

“아니오. 죽이자는 게 아닙니다. 민 소저는 유선을 혈승에서 제외시키자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인데?”

제갈윤이 손을 들어 강한월을 가리켰다.

대장은 이해했을 테니 그에게 들어보라는 듯이.

“유선을… 전향시키자는 말이군요.”

“맞아요. 이미 두 번의 삶을 산 그녀에게, 세 번째 기회를 주자는 말입니다.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혈승이었던 그녀가 우리를 돕는다면.”

“유선이 그걸 원할까요?”

“원하게 만들어야죠. 황실 그리고 흑사련과도 맞설 각오를 한 우리가 사람 마음 하나 돌리는 걸 두려워해서야 되겠어요?”

강한월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소영영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대장이 허락만 한다면 어떻게든 유선의 마음을 돌려놓으리라 다짐하면서.

그리고 강한월의 입만 주시하고 있는 또 한 사람.

진가린이었다.

과연 회귀자에게 세 번째 기회가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살아도 되는 건가?

“불가(不可).”

하하, 역시 대장이구나.

끈이 뚝 끊기는 것처럼 마음이 철렁했지만… 진가린은 강한월이 밉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의 이런 모습을 좋아했으니까.

“원칙적으로 불가합니다. 혈승은 그리 쉽게 변할 존재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도 그 하지만에 기대가 있기는 합니다. 천마신교의 신녀님 밑에서 자란 유선이라면, 소영영과 자매처럼 지냈던 그녀라면… 어쩌면 변할 수도 있겠죠.”

“그럼 강 소협의 결정은…?”

“지켜보겠습니다. 소영영이 유선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지. 만약 그녀가 혈승이 아닌 우리 편에 서길 원한다면… 우리도 그녀 곁에 있어 줘야겠죠.”

소영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건 없지만,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소영영. 신녀님이라면 어찌하셨을까를 생각해서 기회를 주기로 한 거다. 석 달 동안 최선을 다해봐. 내가 다녀온 후 유선을 만나볼 테니까.”

“어? 석 달이요? 다녀온 후라니… 대장 어디 가세요?”

“난 장백산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장백산? 거긴 가린이 고향이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진가린과 함께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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