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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89화 (89/210)

089화. 비밀 감옥 (1)

* * *

톡, 톡, 톡, 톡….

종유석에 맺힌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처량하게 울렸다.

장준검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현철로 만든 수갑과 족쇄에 묶인 손과 발.

몸 곳곳에 꽂힌 대침들에 의해 봉쇄당한 공력.

당당한 동창의 장형천호(掌刑千戶)로서는 참으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자신을 발탁하고 키워준 그들이 원한다면 까짓 목숨 내어주겠다는 각오로 순순히 잡혀준 것인데….

며칠 전 간수들이 이상한 행동을 시작한 후부터 걱정이 시작됐다.

단순히 목숨으로 끝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걱정.

아침저녁으로 알 수 없는 약물을 먹이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향을 피워 놓는 것이 마치 무언가 끔찍한 일을 준비하는 듯했다.

설마… 나도 그렇게 변하는 건가?

* * *

“저곳입니까?”

완벽한 어둠이 내린 숲속에 몸을 숨긴 채 강한월이 물었다.

“맞소. 저 동굴이 바로 비밀 감옥이요. 동창에서 체포한 죄수를 인계하려 몇 번 와본 적이 있지.”

긴장된 목소리로 조철상이 답했다.

사실 감옥의 위치만 알려 달라 했던 것인데, 굳이 작전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본인이 우겼다.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강한월은 결국 허락했다.

실제로 그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다들 작전은 잘 이해하고 있지? 광군영과 곽철이 조 백호와 함께 먼저 들어가고, 그다음 나와 진가린이 침투해 장 천호를 찾는다.”

“걱정 마쇼, 대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청보는 제시간에 올까요?”

곽철이 물었다.

위청보는 황태자의 도움을 얻기 위해 박위 도사를 만나러 간 상태였다.

만약 작전이 실패해 붙잡히게 될 경우, 황실 감옥을 침투한 죄에서 그들을 보호해줄 누군가가 필요했으니까.

“늦지 않기를 바라야지. 하지만 황태자만 믿고 있을 순 없어. 가급적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심호흡을 하며 의지를 북돋는 대원들과 한 명 한 명 눈을 맞춘 후 강한월이 힘입게 말했다.

“시작하자.”

* * *

따각 따각 따각 따각.

밤의 정적을 깨며 어둠 속에서 말 두 마리가 달려왔다.

흠칫 놀란 무사 두 명이 급히 칼을 뽑아 들고 경비 태세를 취했다.

“멈춰라! 이곳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니….”

“하하하, 윤 무사. 오랜만이오. 나요, 조철상.”

“아! 조 백호십니까? 실례했습니다. 오늘 방문자가 있을 거란 말을 못 들어서요.”

“일이 그리되었소. 흉악한 죄인을 체포했는데, 즉시 이곳에 투옥하라는 명이 있어서.”

“역시 동창은 불철주야 노고가 많으십니다. 여기서 한가하게 밥만 축내는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하하하, 별말씀을.”

입구 경비를 담당하는 무사가 만면에 미소를 띠자 조철상은 비로소 안도했다.

만약 동창에서 자신을 찾느라 수배라도 돌렸으면, 작전은 시작부터 꼬였을 테니까.

“그런데 이분은 제가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아, 인사하시오. 곽 공공께서 새로 뽑은 곽우칠 첨형관이오.”

“오! 곽 공공께서 직접! 이거 반갑습니다. 저는 조옥 경비대의 윤 총기입니다.”

역시 동창 수장의 이름은 이곳에서도 효과 만점이었다.

경비 무사는 즉시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굽신거렸다.

같은 곽 씨이니 곽철이 곽 공공의 친척쯤 되리라 지레짐작한 것이다.

“반갑소 윤 총기. 앞으로 잘 부탁드리오. 그나저나 시간이 없으니 우선 이 죄수부터….”

곽철이 온몸을 포박당한 광군영을 말에서 끌어 내리며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죠. 허, 그놈 참 흉악스럽게도 생겼네. 그놈은 죄명이 뭡니까?”

“수십 명의 아녀자를 간살한 마교의 색마요. 피해자 중에는 곽 공공님의 먼 친척도 있다더군.”

“허, 곽 공공님의 친척까지? 간덩이가 부은 제대로 미친놈이군요.”

“맞소. 아주 흉악하기 그지없는 놈이지.”

곽철이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광군영은 쓴웃음을 삼켰다.

두고 보자. 작전만 끝나면….

“그자는 저희에게 넘기시지요. 제가 인계장을 써드릴 테니.”

“아니. 우리가 수감실까지 직접 가겠소. 이자가 마공을 익힌 탓에 특수한 금제를 걸어야 하는데 곽 첨형관만 할 수 있는 거거든. 게다가 새로 온 곽 첨형관에게 내부 구경도 한번 시켰으면 하고….”

“아 그런가요? 조 백호께서 원하시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경비 무사들의 안내를 받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좁고 어두운 길을 십여 장쯤 걸어가니 두꺼운 철문이 나타났다.

윤 총기가 안쪽을 향해 암구호를 말하자 철컥하고 문이 열렸다.

두 명의 경비 무사가 철문 안쪽을 지키고 있었다.

다시 한번 반복되는 소개와 인사.

“이런 썩을 놈. 감히 곽 공공님의 친척을 건드려? 맡겨만 주십시오. 저희가 하루에 열두 번씩 아주 요절을 내줄 테니.”

새로 인사한 경비 무사가 과도하게 의욕을 불태울 때.

붉으락푸르락 인상을 구기고 있던 광군영이 갑자기 괴성을 질렀다.

“크하핫! 천하의 음란요마께서 너희 같은 놈들에게 잡힐 것 같으냐!”

투두두둑.

온몸을 포박했던 굵은 쇠사슬이 산산 조각나며 사방으로 튀었다.

동시에 무럭무럭 뿜어져 나오는 검은 마기.

얼굴로 날아오는 쇠사슬 조각과 숨을 멎게 만드는 마기에 놀란 경비무사들이 몸을 웅크렸다.

“앗! 죄인이 금제를 풀었다!”

조철상과 곽철이 광군영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장풍과 권기가 휘몰아쳤고, 동굴 안을 밝히던 횃불 몇 개도 난리통에 꺼져버렸다.

휘익, 퍼엉, 타앙. 콰아앙~

한동안 이어지던 폭음이 멈췄을 때.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마른침만 삼키던 경비 무사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인은 강했지만, 동창 고수 두 명의 합공을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것이다.

“모두 안심하시오. 죄인을 제압했으니.”

“휴우, 두 분이 안 계셨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수감실까지 같이 가시겠다고 한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꺼진 횃불에 다시 불을 붙이며 윤 총기가 말했다.

그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조금 전 어둠 속에서 격한 대결이 펼쳐질 때, 귀신같은 신법으로 은밀히 지나쳐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 * *

강한월은 발자국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동굴 속을 달렸다.

무영보 수련에 꽤 진전이 있었는지 진가린도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왔다.

동굴이 양 갈래로 나뉘자 지체없이 왼쪽 길을 선택했다.

자신은 그쪽으로 가본 적은 없으나 특상급 죄인들은 왼쪽에 수감된다는 조철상의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대장. 좀 이상하지 않아요? 왜 이렇게 경비가 허술하죠?

강한월도 마찬가지 의문을 품던 차였다.

입구를 지키던 몇몇 경비 무사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으니까.

—진법이나 기관 장치가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고.

하지만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 안개나 바닥에서 튀어 오르는 철침 같은 건 없었다.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 좁은 길을 통과하자 복도 좌우로 수감실이 나타났다.

주먹만 한 창문이 뚫린 두꺼운 철문들.

문 앞에는 죄수들의 명패가 걸려있었다.

비뢰도 나백송, 양강혈창 주태민, 파계마승 공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악인들의 이름이었다.

동창이나 금의위에 체포되어 수감된 것 같았다.

예닐곱 개의 방을 지나 다음 수감실의 명패를 확인한 강한월은 깜짝 놀랐다.

남원대장군 홍원승.

자타공인 군문(軍門)의 최고수로서 몇 년 전 역모죄로 참수당한 자인데?

아마도 천하의 악인들뿐 아니라 황실의 눈 밖에 난 의인들도 잡아 가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장준검도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하지만 수감실 어디에도 장준검은 없었다.

—대장, 여기엔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것 같구나. 조금 더 안쪽으로 가봐야겠다.

* * *

조철상과 곽철은 단단히 포박한 광군영의 목에 검을 겨누고 동굴 길을 걸었다.

잠시 후 양 갈래 길을 만났을 때 곽철이 경비 무사들을 향해 물었다.

“저기 왼쪽 길은 왠지 음산해 보이는데, 저곳엔 뭐가 있소?”

“역시 곽 첨형관께선 감이 좋으시군요. 왼쪽엔 특상급 죄수들의 수감실이 있지요. 워낙 살벌한 자들이라 웬만해선 저희도 그쪽으론 안 갑니다.”

“특상급 죄수를 가둔 것 치고는 경비가 허술한 것 아니오? 지키는 무사들이 눈에 안 띄던데…?”

“하하하, 그건 곽 첨형관께서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경비 무사는 없지만 철통같이 지켜지고 있지요. 막말로 천마나 흑사련주라도 저기서 탈출하진 못할 겁니다.”

“천마도 못 빠져나온다고? 대단하군. 설마, 폭약이라도 매설되어 있는 거요?”

“어쩌면 폭약보다 더한… 여하튼 저희 입으론 말씀 못 드리고요, 궁금하시면 곽 공공님께 직접 물어보시죠.”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더 캐묻기엔 눈치가 보였다.

대장과 진가린이 무사하길 기원할 수밖에.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깁니다. 신입 죄수들을 수감하는 곳이죠.”

“알겠소. 그럼 내 다시 한번 내공 금제를 가하겠소. 이번엔 매우 강력하게 손을 쓸 테니 좀전처럼 금제가 풀리는 일은 없을 거요.”

곽철은 광군영의 혈도를 짚는 척 시늉을 한 후 포박을 풀고 수감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광 형. 조심하쇼. 한 시진 후에 행동하는 거 잊지 말고.

—걱정 말아. 곽철 자네도 조심하게.

콰앙. 철커덕.

수감실의 철문이 거칠게 닫히고 사람들의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그러자 광군영을 격하게 환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신입. 넌 어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귀냐?”

수감실 구석에 쭈그리고 있던 험상궂은 사내 셋이 광군영을 둘러쌌다.

“똥물에도 위아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겠지? 난 이 수감실의 방장인 벼락철퇴 용사미다. 오늘부터 네놈이 모셔야 할 두목이란 말이다.”

이건… 황실 감방이라고 별다를 게 없구나.

광군영은 쓴웃음을 삼켜야 했다.

“신입. 이제 신고식을 시작해볼까? 후후후.”

* * *

【 이봐 말! 도대체 언제까지 고민만 할 건가? 시간이 없다고! 】

혈령심언을 통해 전해지는 원숭이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불안이 가득했다.

벌써 며칠째 결론을 못 내고 있으니 폭발 직전인 것이다.

하지만 답답하기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원숭이란 놈은 도무지 믿을 수 없으니까.

【 토끼가 잡혀 왔고, 우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말은 믿겠네 】

【 당연히 믿어야지!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나? 만약 토끼가 먼저 법력을 회복하면 당장 우리부터 잡아 먹힐 거라고! 혈령의 힘을 얻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놈이야, 토끼는! 】

그 말은 믿는다니까.

문제는 원숭이도 다를 바 없다는 거지.

【 원숭이. 정말 다른 방법은 없나? 아무리 그래도 내 힘을 자네에게 빌려주는 건 좀… 】

【 다른 방법은 없어. 날 믿게. 일을 마친 후 즉시 자네의 혈령을 돌려줄 테니까. 우린 반드시 힘을 합쳐야 하네. 만약 토끼가 자네 층에 수감이 됐다면 내 힘을 자네에게 빌려줬을 거야. 하지만 내 옆으로 왔으니 어쩌겠나? 자네가 힘을 빌려줘야지 】

말은 고민스러웠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 그건 그렇고. 강한월 패거리가 자리를 비운 건 사실인가? 】

【 그렇다니까. 말 자네는 지하 삼 층이라 감지하기 어렵겠지만, 여기서는 대충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어제부터 북적임이 느껴지지 않아. 분명 한두 명만 남고 다 어디론가 떠난 거야 】

원숭이의 말은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

오늘만 해도 밥을 갖다주러 소영영이 내려왔던 것이다. 평소에는 곽철이 왔었는데.

그렇다면 이건 하늘이 준 기회.

원숭이와 힘을 합쳐 토끼를 죽이고 혈령의 힘을 빼앗으면… 그러면 얼추 탈출할 수 있는 힘이 갖춰진다.

문제는 단 하나.

과연 원숭이를 믿어도 되는가…?

【 이봐 원숭이. 이렇게 하면 어떨까? 내 혈령을 빌려주긴 하겠지만 한 가지 안전장치를 걸겠네. 하루 안에 내 몸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혈령이 폭발하도록 비술을 거는 거지 】

【 뭐라고? 그런 비술을 거는 데도 자네의 힘을 상당히 소진해야 할 텐데… 남은 힘이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낭비를 하나? 자네가 너무 손해 보는 것 아닌가? 】

나도 안다고 이 자식아!

너를 못 믿으니까 이러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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