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화. 비밀 감옥 (2)
* * *
“너! 자세가 흐트러진다? 나한테 불만 있다는 뜻이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땀이 나서 미끄러진 겁니다. 믿어주십시오!”
뒷짐 지고 머리를 박고 있던 벼락철퇴 용사미는 서둘러 답했다.
조금만 답변이 늦어도 주먹이 날아올 게 뻔했고, 이미 온몸에 멍이 가득해서 더 얻어맞을 곳도 없었다.
어디서 저런 괴물이 들어와가지고… 흑흑.
“땀이 난다고? 좋아, 그럼 좀 쉬도록 하지. 편하게 앉아봐.”
“괜찮습니다! 저희는 이게 편합니다!”
“좋은 말할 때 앉아라. 물어볼 게 있으니까.”
사내들이 후다닥 일어나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약속된 한 시진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있어서, 광군영은 이참에 감옥에 대한 정보나 얻어볼 생각이었다.
“너희 이곳에 갇힌 지 얼마나 되었지?”
“대략 반년 정도 되었습니다!”
“작게 말해라. 귀 안 먹었으니까. 그런데 반년이나 이 방에 있었던 거냐? 듣기로는 이 방은 신입 죄수들을 수감하는 곳이라던데?”
“그것이… 특상급 죄수들, 그러니까 초절정 이상의 고수들은 다른 곳으로 데려가던데 거긴 저희가 모르고요. 여긴 절정 이하 죄수들이 수감되는데… 이상한 검사를 한 후 다시 분류를….”
“검사? 어떤 검사?”
“피 검사를 몇 차례 합니다. 검사에 통과된 놈들은 다른 곳으로 데려가고, 다행히 저희처럼 통과 못 한 놈들은 여기 남는 거죠.”
“통과 못 한 것이 다행이라고?”
“그럼요. 경비 무사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는데 통과한 놈들은 뭔가 끔찍한 일을 당하는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그 울부짖는 소리는….”
“소리? 혹시 지금도 들려오는 이 소리를 말하는 거냐?”
우우우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광군영이 물었다.
처음에는 동굴 안에 바람이 통하며 울리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지금 들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맞습니다! 이게 계속 듣다 보면 얼마나 소름이 돋는지 밤에 잠도 못 잡니다.”
광군영은 손에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머리 쓰는 것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이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피 검사, 울부짖는 소리.
가만히 넘어가기엔 냄새가 너무 났다.
“뭐 그건 그렇고. 이 감옥엔 왜 이렇게 경비 무사가 적은 거야? 명색이 황실 비밀 뇌옥이면 수백 명이 지켜도 모자랄 것 같은데.”
“그건 대협이 모르셔서 그런 겁니다. 눈에 보이는 간수와 경비 무사는 몇 안 되지만 대신 귀신이 있어요.”
“미친. 무슨 말도 안 되는….”
“정말입니다. 저희가 똑똑히 봤습니다. 가끔 철문 구멍 뒤로 뭔가 휙휙 지나가는데 절대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귀신이 맞다고요!”
* * *
강한월과 진가린은 더 깊은 곳을 향해 걸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사람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자연 동굴의 모양새였다.
천장에 달린 종유석, 군데군데 고여 있는 물.
—대장, 이거 전에 마신환과 백학을 얻었을 때가 생각나네요.
—그렇구나. 그때는 장 천호의 도움을 받았으니, 이번엔 우리가 그를 구해야 하는데….
도대체 장준검은 어디 있는 걸까?
이렇게 헤매느니 기감을 퍼뜨려 찾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강한월은 걸음을 멈추고 기파를 발산했다.
십 장, 이십 장, 삼십 장… 동심원을 그리며 은밀히 퍼져가는 기파.
오십 장쯤 살폈을 때 뭔가 이상한 기운들이 감지되었다.
이건 뭐지? 사람의 기척은 아닌데…?
의아했지만 지금은 장준검을 찾는 게 급선무.
기파가 칠십 장쯤 퍼졌을 때 강한월이 눈을 번쩍 떴다.
—저쪽이다. 가자!
강한월과 진가린이 동굴 한쪽의 좁은 틈으로 몸을 날렸다.
놀라서 퍼덕거리는 박쥐 떼를 헤치고 전진하니 두꺼운 철문이 나타났다.
—여긴가요?
—아마도.
철문을 열기 전 강한월이 다시 한번 집중해서 방 안을 살폈다.
오직 한 사람.
미약한 호흡, 느린 심장 소리.
강한월은 즉시 검을 뽑아 철문의 빗장을 갈랐다.
* * *
끼기기긱….
광군영이 철문을 잡고 힘을 주자 강철로 된 빗장이 휘어지며 천천히 문이 열렸다.
엄청난 괴력 앞에 할 말을 일은 벼락철퇴 용사미는 광군영의 모습이 문밖으로 사라지려 하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대, 대협. 저희는 버려두고 가십니까?”
“문은 열어둘 테니 너희가 알아서 해. 하지만 앞으로 두 시진은 꼼짝 않고 있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야.”
딴에는 진심 어린 조언을 남긴 후, 광군영의 모습이 휙 사라졌다.
음산한 소리가 울리는 곳을 향해 달렸고, 그곳은 멀지 않았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굽이굽이 내려가니 제법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핑, 피잉~
공간 한쪽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무사들을 향해 지체없이 돌조각을 날렸다.
그대로 쓰러지는 무사들.
광군영은 바닥을 뒹구는 그들을 뛰어넘어 문 앞에 섰다.
우우우우~
음산한 울음소리가 울려 나오는 곳. 이곳이 맞았다.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건 아닐까?
망설임이 있었지만 잠시뿐.
철문을 막고 있는 팔뚝만 한 쇠 빗장을 단숨에 잡아 뜯었다.
* * *
동굴 한편에 마련된 경비무사 집무실.
조철상과 곽철은 그곳에서 차 대접을 받았다.
“이런 누추한 곳에 동창의 간부님들을 모시게 되어 쑥스럽습니다.”
“별말씀을. 여러분이 고생이 많구려. 내 윗분들께 근무환경의 개선을 꼭 건의드리겠소.”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래만 주신다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윤 총기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따라 올렸다.
어차피 한 시진을 때워야 했기에 조철상은 한담을 나누며 차를 마셨다.
반면 곽철은 연신 집무실 안을 두리번거렸는데….
“윤 총기. 저기 저건 뭡니까?”
집무실 천장을 가로지르는 몇 개의 대나무 관을 가리키며 곽철이 물었다.
“아, 그건 뭐랄까… 일종의 경보 장치입니다.”
“기관 장치란 말이오? 아까 이야기한 철통같은 경비 수단이 이겁니까?”
“음… 이건 진짜 보안 사항인데… 두 분은 곽 공공님과 특별한 관계이니 뭐 상관없겠죠. 실은 저 대나무 관은 여기로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만 합니다.”
“무슨 신호를?”
“수감실의 죄수들에게 변고가 생기면 자동으로 신호가 오죠.”
“오~ 신호가 오면 이곳 경비 무사들이 즉시 출동하는 것이군?”
“하하하, 그 반대입니다. 저희에게 즉각 대피하라는 신호이죠. 왜냐하면… 그때부터 이곳은 귀장(鬼將)들의 세상이 되니까요.”
* * *
반쯤 열린 철문 앞에서 광군영의 몸이 굳었다.
천마신교에서 나고 자라며 온갖 몹쓸 장면을 봐온 그였지만, 지금 같은 기괴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건 대체….
줄을 맞춰 늘어서 있는 수백 개의 커다란 욕조.
머리를 산발한 죄수들이 고개만 내놓고 검붉은 액체 안에 잠겨 있었고, 붉은 옷을 입은 십여 명의 일꾼들이 부지런히 오가며 욕조 안에 뭔가를 부었다.
지옥에서 병졸을 키워낸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까?
홀린 듯 바라보다가 일꾼 하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광군영을 쳐다봤던 일꾼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이지를 상실한 자들이구나.
안심이 되었지만 한편으론 분노가 치솟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몸으로 이상한 짓거리를…!
광군영은 천천히 욕조 앞으로 걸어갔다.
동료들과 합류하기로 한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일단 이 수상한 장치들을 모조리 부숴줄 생각이었다.
* * *
철컥. 끼이익.
빗장이 잘리는 소리, 그리고 철문이 열리는 소리.
반쯤 정신을 놓고 있던 장준검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장 천호. 제가 왔습니다.”
“강… 소협? 여긴… 어떻게….”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장준검의 상태는 안 좋아 보였다.
그럼에도 강한월은 안도했다.
살아만 있으면 된 것이다. 치료야 어떻게든 될 테니까.
“제가 좀 살펴보겠습니다.”
강한월은 장준검의 명문혈에 손을 얹고 조심스럽게 진기를 주입했다.
잠시 후, 그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다행히도 장준검의 상태는 생각만큼 심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내공을 금제하고 있는 대침만 제거하면….
강한월의 손에 찬연한 금빛이 번지며 금강부동신공의 요상기(療傷氣)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툭, 투둑….
단전 주변에 박혀 있던 대침들이 하나하나 밀려 나왔다.
마지막 대침이 몸 밖으로 떨어지자, 장준검은 검은 핏덩이를 토했다.
“쿨럭. 후우. 이제 호흡이 제대로 되네요.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그런데 몸 안에 좀 수상한 기운들이 있더군요?”
“요 며칠 이상한 약을 먹어서 그런 겁니다. 하지만 문제없어요. 몸이 회복되면 내공으로 태워버릴 수 있는 수준이니까요. 그건 그렇고, 여긴 도대체 어떻게 알고…?”
“일단 여기를 벗어난 후 이야기하시죠. 먼저 수갑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잠깐!”
막 검으로 수갑을 끊으려던 강한월이 손을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이 수갑과 족쇄… 기관 장치에 연결되어 있는 것 같소.”
기관 장치?
과연 그랬다. 쇠사슬은 동굴 벽 정교한 구멍 속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단순히 몸을 구속하는 이상의 쓰임새가 있어 보였다.
신경이 쓰였지만 이것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강한월은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챙, 챙, 챙.
깨끗하게 잘려 나가는 수갑과 족쇄.
호신강기로 장준검과 진가린까지 감싸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마조마했네요. 다행히 기관 장치는 아니었나 봐요.”
혹시 폭약이라도 터질까 봐 긴장했던 진가린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것 같군. 가린, 앞장서라. 여길 빠져나가자.”
강한월이 장준검을 둘러업었다.
* * *
“하하하, 그러니까 그 벼락철퇴라는 놈이 얼마나 흉악한 놈이냐면 말입니다….”
조철상과 곽철을 상대로 한창 수다를 풀어놓던 윤 총기의 표정이 굳었다.
천정을 가로지르는 대나무 관이 갑자기 파르르 떨렸기 때문이다.
뿌우~
곧이어 대나무 관에서 나팔 소리 같은 것이 울리자 윤 총기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이런 제길. 하필 내가 당직서는 날 이런 일이….”
“윤 총기.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럽니까?”
“비상입니다. 특급 수감실 쪽에 문제가 생겼어요. 저희도 빨리 대피해야 합니다.”
윤 총기는 집무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손잡이를 당겼다.
끼기기기긱.
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조그만 공간이 나타났고, 윤 총기와 경비 무사가 즉시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두 분도 빨리 여기로 숨으세요. 사태가 완료될 때까지 이 안에 있어야 합니다.”
“허, 참. 우린 괜찮으니 윤 총기나 경비 무사들과 함께 대피하시오. 우린 밖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살펴봐야겠소.”
“안 됩니다! 두 분이 고수인 건 알지만 지금은 숨어야 해요. 비상사태에는 귀장들의 방문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아군 적군을 구분하지 않아요!”
윤 총기의 눈빛은 절박했다.
하지만 절박하기는 곽철과 조철상도 마찬가지.
“뜻은 고맙지만 우리도 사정이 있어서… 보중하쇼.”
곽철이 주저 없이 벽의 손잡이를 당겼다.
끼기기기긱.
벽이 다시 닫힌 순간, 곽철과 조철상은 이미 동굴을 달리고 있었다.
* * *
광군영이 열두 개째 욕조를 깨부쉈을 때 그 소리가 울렸다.
뿌우~
이건 무슨 소리지?
광군영은 잠시 손을 멈추고 소리가 울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것은 붉은 옷의 일꾼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광군영.
초점 없이 퀭하던 눈동자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설마 정신이 돌아온 건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깊이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붉은 일꾼들이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쇄도했기 때문이다.
쾌애애액.
동물처럼 울부짖으며 날아드는 일꾼의 팔을 붙잡아 그대로 메다꽂았다.
쿠웅!
목이 부러지며 바닥을 구르는 일꾼.
다행히 그리 세지는 않구나.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죽은 줄 알았던 일꾼은 목이 꺾인 기괴한 자세로 다시 일어섰다.
닭 혈승의 혈제 영역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기에 광군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휴우, 이러면 일이 정말 피곤해지는데.
광군영의 한탄은 단순히 십여 명의 일꾼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욕조 속의 죄수들도 하나하나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