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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01화 (190/210)

101화. 소림 혈투 (5)

* * *

샤악. 퍼엉.

매서운 주먹을 맞받아치던 양혈인이 정신없이 뒷걸음질 쳤다.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식간에 송목 대사의 움직임이 말할 수 없이 빨라졌다.

속도에 뒤져 꽁무니만 쫓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다.

“저, 저건…? 설마 연대구품(蓮臺九品)?”

지켜보던 곽 공공이 눈을 부릅떴다.

지난 수백 년간 아무도 익힌 사람이 없다는 전설의 신법. 소림 칠십이종 절예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연대구품을 송목 대사가 선보인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처음부터 이 신공을 쓰지 않은 거지?

거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지만 곽 공공이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쌔애액, 쉬익, 펑!

양혈인은 빠르기만 한 게 아니었다. 강력한 내공과 날카로운 초식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 빠름이 더해지니 더욱 위력적일 수밖에.

하지만 그것이 송목 대사를 상대할 만큼 충분히 강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크윽.”

천수여래장, 반야신장, 금강지, 용조수, 심지어 달마삼검을 장법으로 변환한 것까지. 송목 대사가 툭툭 손을 뻗을 때마다 양혈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솔직히 송목 대사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승부가 끝날 상황.

독한 마무리를 미루고 있는 건 송목 대사의 성정에 불가의 자비심이 배어 있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뭔가 찜찜한 생각이 들어서였는데… 하지만 내공 대결에서 고전하고 있는 방장 대사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끝내야 할 때.

우우우웅.

왜소한 노승의 몸에서 거대한 불상의 기세가 떠오르더니 양혈인을 향해 수미범천신공이 발출되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며 쏘아지는 찬연한 금빛.

송목 대사의 승리가 분명한 것 같았다.

【 쯧쯧. 혈령 봉인을 해제한다 】

양혈인의 뇌리에 서늘한 음성이 울렸다.

그 즉시 상단전에 박혀 있던 붉은 얼음조각이 녹아내렸고, 양혈인은 기쁨인지 고통인지 모를 괴성을 토했다.

양혈인의 몸에서 사악한 기운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아미타불.

송목 대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소림의 신기라 할 수 있는 수미범천신공을 튕겨낸 걸로 보아 양혈인의 기운은 매우 강력했는데….

—대사님. 그들은 천인혈(千人血) 비술로 만들어진 괴인입니다. 그 기운을 조심하십시오. 주변의 소림 제자들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강한월의 다급한 전음이 들려왔다.

천인혈? 그게 어떤 뭔지는 모르지만 이 기운의 성격은 대략 짐작이 갔다.

엄청난 고통과 분노가 쌓이고 쌓여 형성된 사념에 집어삼켜진 영혼. 남은 것은 원망과 복수의 일념뿐이라 독기어린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천인혈이라 했으니 천 명의 희생자가 있었을 것이고, 이 정도 사념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큰 고통을 가했을까?

아미타불.

탄식 어린 불호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한숨만 뱉고 있을 수는 없었는데, 그 순간 방장 대사와 겨루고 있던 음혈인도 표독한 사념 덩어리를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상상도 못 할 원념이 분수처럼 뿜어지자 방장 대사는 기겁했고 지금껏 애써 유지하던 평정심에 금이 갔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사념들. 내공 대결 때문에 꼼짝 못 하는 방장 대사가 위기를 맞았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송목 대사가 방장 대사의 옷깃을 낚아채 멀리 집어 던졌다.

휘리릭 이십여 장을 날아가 소림 제자들 곁에 착지하는 방장 대사.

“사조님! 전 싸울 수 있습니다!”

“되었으니 거기서 제자들이나 돌봐라. 이런 아수라장에 너까지 휘말릴 필요 없다.”

단호하게 방장 대사를 밀어낸 송목 대사가 홀로 음양혈인 앞에 섰다.

진작 이랬어야 하는데.

당당하고 정명한 소림의 수장이 이런 사악한 것들과 드잡이질하게 할 필요가 없는 건데.

송목 대사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겠다. 안타깝게도 너희를 극락왕생시켜줄 능력은 내게 없구나. 그 비극적인 삶을 빨리 끝내주는 게 너희를 돕는 길이겠지. 아미타불.”

“크르르르….”

음혈인과 양혈인이 낮게 으르렁댔다.

송목 대사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이어지는 행동은 분노에 찬 공격이었다.

콰콰콰콰!

혈령 봉인이 해제된 후 한층 강해진 공력. 주변을 휘돌고 있는 수많은 사념들까지 무기가 되어 송목 대사를 향해 휘몰아쳤다.

왜소한 노인은 거친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위태로워 보였는데….

“좋다. 신나게 놀아보자!”

송목 대사의 온몸에서 천년 소림의 절기가 뿜어져 나왔다.

권, 장, 지, 퇴의 권법과 장법으로 변형된 검법과 봉술마저 물 흐르듯 펼쳐지니 음양혈인은 근처에 접근조차 힘들었다.

혈령으로 강화된 데다가 둘이 합공하는 데도 이 모양이니 좀 전까지는 송목 대사가 가진 힘의 반의반도 안 썼던 것.

열세를 확인한 음양혈인이 작전을 바꿨다.

주변을 맴돌고 있는 각각 천 도합 이천의 사념들이 주변으로 퍼져 날았다.

소림의 일반 제자들을 공격하여 송목 대사의 심기를 어지럽히려는 것.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음대로는 안될 것이다.”

소림 제자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향하던 사념들이 무형의 벽에 막혀 튕겼다.

순간 공기가 출렁였고, 그제야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대결 장소 주변 삼십여 장 공간이 거대한 기벽(氣壁)으로 덮여 있는 것을.

쾅 쾅… 사념체들이 기벽을 뚫으려 두들겨봤지만 주변 공기만 흔들릴 뿐 소용이 없었다.

이럴 수가…!

곽 공공의 관자놀이로 식은땀이 흘렀다.

초반에 송목이 속도가 딸리는 척 사방을 뛰어다닌 이유가 이런 기벽을 설치하기 위함이었구나!

이제 봤더니 진짜 괴물은 자신이 데려온 음양혈인이 아니라 송목 대사였던 것.

—너희 흑사련이 이번 판을 맡고 싶다고 했지?

상황이 불리하단 판단한 곽 공공이 정옥수에게 은밀히 전음을 보냈다.

—그렇습니다, 대인. 기회만 주십시오.

—좋아, 너희를 믿어보겠다. 잠시 후 내가 신호를 보내면….

거대한 기벽으로 사념체들을 가둬둔 채 송목 대사는 음향혈인을 몰아붙였다.

음혈인의 빙음기공은 무상보리신공으로 무력화시키고 양혈인의 쾌속은 연대구품으로 누르니 마치 어른이 아이 둘을 데리고 노는 모양새.

슬슬 마무리를 짓기 위해 오른손 검지에 힘을 줬다.

마지막을 장식할 절예, 대력금강지.

—지금이다. 가라!

곽 공공이 전음을 보냈고, 정옥수가 즉시 손을 치켜들었다.

쏜살같이 튀어 나가는 다섯 그림자.

핏빛 안개를 뿜으며 달려간 오방혈수가 송목 대사가 쳐 놓은 기벽으로 몸을 던졌다.

기벽은 사념체를 가두기엔 충분했지만 고수의 육탄공격을 막기엔 부족했다.

펑펑펑펑펑.

기의 장막에 큰 구멍이 숭숭 뚫렸고 그 틈으로 사념체들이 우수수 튀어나왔다.

“이런, 안 돼!”

송목 대사가 다급히 외쳤다.

즉시 내공을 뿜어 기벽의 틈을 막으려 했지만 음양혈인에 더해 오방혈수 다섯까지 돌진해오자 손발이 막혔다.

기벽의 틈을 헤집고 나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선 것은 강한월이었다.

우우우웅.

범음청량(梵音淸凉)의 파동을 담은 검으로 베자 파지직 연기가 피어오르며 사념체들이 소멸되었다.

하지만 강한월이 막기 전 이미 기벽을 빠져나간 것들은 소림의 어린 제자들을 덮치고 있었는데….

“아미타… 흐어억.”

몇몇 제자들이 머리와 가슴을 움켜잡고 바닥을 굴렀다.

소림의 고수들이 장력을 품으며 사념체를 밀어내려 했지만 물리적 형체가 없는 그것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갈(喝)!”

방장 대사가 항마의 기운을 담은 사자후를 터뜨리자 비로소 사념체들이 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아무리 방장 대사라도 사자후를 쉬지 않고 계속할 수는 없는 법.

“나한들은 진법을 써 제자들을 보호하고 사십이수 주(四十二手 呪)를 외워라!”

방장 대사의 지시는 매우 적절했다.

강한월이 사념체를 베는 것을 보고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단초를 얻은 것이다.

옴 제세제야 도미니 도제 삿다야 훔 바탁.

백팔 나한이 한목소리로 외우는 진언이 진법에 의해 증폭되자 강한월이 사용하는 범음청량과 유사한 효과를 가져왔고, 사념체들은 감히 진법의 영향권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강한월은 즉시 송목 대사를 향해 달렸다.

아직 수백 개의 사념체들이 우글거리는 기벽 안으로는 방장 대사도 들어갈 수가 없으니 그 외에는 나설 사람이 없었다.

우우웅, 샤악.

물밀듯 밀려오는 사념체를 베며 전진하던 강한월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억지로 진정시키고 있던 내상이 다시 악화된 것.

내공을 역류시킨 탓에 엉망으로 훼손된 기맥이 끊어질 것 같았다.

“강한월! 난 괜찮으니 자네 부상이나 돌보게!”

송목 대사가 만류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음양혈인, 오방혈수와의 칠 대 일의 난타전. 송목 대사가 월등한 고수인 것은 맞지만 그가 언제 이런 개싸움을 경험해봤겠는가?

게다가 기벽을 설치하느라 막대한 내공을 사용했고, 나이가 나이인지라 육체의 지구력도 문제였다.

그러니 강한월은 울컥 치솟는 핏물을 억지로 삼키며 검을 휘두를 수밖에.

우우웅, 샤아악.

내상의 악화를 각오하고 검을 휘두르니 사념체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갔다.

조금만 더 베어내면 기벽 내의 사념체는 모두 제거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걸 강한월은 상상도 못 했다.

—백부님. 아시겠죠? 소림의 늙은이들이 뛰어들기 전에 단숨에 끝내야 해요.

—걱정 마라. 저놈 아직 두 발로 서 있는 게 신기한 상태야. 일 초면 끝장낼 수 있다.

정옥수의 눈은 복수심으로 불타올랐고, 염왕장과 흑한쌍귀 등도 오방혈수의 활약에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다.

몰래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며 준비하고 있을 때…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강한월이 마지막 사념체들을 향해 검을 휘두른 것.

“가자!”

염왕장을 선두로 흑사련의 고수들이 득달같이 튀어 나갔다.

기벽을 돌파하는 순간 발출한 염왕명부장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앞서 날았고, 뒤이어 흉험하기 그지없는 장력과 비검, 독침이 쇄도했다.

“강한월, 조심하게!”

등 뒤에서 위험을 느낀 것과 송목 대사의 경고가 들려온 것은 동시였다.

강한월은 검을 되돌릴 틈도 없이 호신강기를 일으켜 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콰아앙!

순간 금빛이 번쩍 한 것을 보니 금강부동신공의 호신강기가 작동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평소에 비해 턱도 없이 미약했다.

정통으로 염왕명부장을 얻어맞고 나뒹구는 강한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송목 대사가 급히 손을 써 이어지는 공격은 막아준 것인데….

“너희들… 정녕 내가 지옥에 가길 바라는구나. 아미타불.”

내장 조각이 섞인 피를 토하는 강한월을 보며 송목 대사가 한탄했다.

어떻게든 살행만은 피하려 했지만 이젠 어쩔 수 없었다.

금광이 번쩍이며 팔부신장(八部神將)의 거친 기파가 터져 나왔다. 살기가 너무 강해 칠십이종 절예에 포함되지 못한 소림의 비전.

단 일 초에 음혈인의 손가락이 꺾이고 오방혈수 한 명의 어깨뼈가 가루가 되더니, 독수냉침이 피분수를 뿜으며 날아갔다.

다들 놀라 입이 벌어질 때, 팔부신장의 잔혹한 공격은 계속되었다.

또 다른 오방혈수의 무릎이 꺾이고 염왕장의 허벅지 살 한 움큼이 떨어져 나갔다.

【 소림에 괴물이 있구나. 아깝지만 할 수 없지. 혈폭. 】

그 순간 양혈인의 뇌리에 뱀의 목소리가 울렸다.

온몸이 불같이 달아오른 양혈인이 송목 대사를 향해 몸을 던졌다.

“안 돼!”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키던 강한월이 다급히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송목 대사의 무쇠 같은 주먹이 양혈인의 복부를 꿰뚫는 순간… 그는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낙양 변두리에서 강한월이 경험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거대한 폭발이었다.

용광로 같은 열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반쯤 일어섰던 강한월은 충격으로 날아갔고, 폭발 위치에 가까이 있던 흑사련의 귀살검은 몸의 절반이 사라졌다.

“사조님!”

제자들에게 달라붙는 사념체를 제거하던 방장 대사가 기겁하며 달려왔고, 곽 공공의 붉은 무사들은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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